시한부 선고를 받으신 할머니와 손녀의 마지막 일상
『나이롱 시한부』 김단한 저자 인터뷰
슬픔도 결국 사랑에 의해서 파생되는 것이고, 사랑이 덮어줄 수 없는 슬픔은 없으니까 사랑의 힘을 믿는 것 같아요. (2022.03.03)
『나이롱 시한부』는 독립출판 에세이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너를 앓고』와 『연못 산책』으로 두 번이나 작품을 출간한 김단한 작가의 신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으신 할머니와 손녀의 마지막 일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죽음, 그리고 남겨지는 이들에 대한 고찰을 김단한 작가만의 정제된 문체로 담았다.
『나이롱 시한부』는 작가님의 세번째 작품인데요, 두번의 독립출판에 이어 세번째 작품까지 세상에 내놓으신 소감이 궁금하네요.
조금 더 세밀한 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설레면서도 감회가 남다르네요. 제가 처음 글을 쓰면서 딱 하나 바랐던 건, '솔직하게 쓰자' 였는데 꾸준히 쓸수록, 책을 거듭해서 낼 수록 그 부분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 같아서 놀라워요. 그래서 저는 ‘혹시 사람은 쓰면 쓸수록 솔직해 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 글을 집필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글 속에 등장하는 '안나'(할머니)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후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루하루가 그냥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게 느껴졌기 때문에요. 처음에는 단순한 기록용으로 썼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것이 많아 이 글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안나'가 보낸 시간에 관련하여 가족들은 단순히 제가 말로 건네는 이야기들만 접했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조금 더 색다를 것이라 생각했어요. 물론, 안나에게도 읽어주고 싶었고요. 그렇게 쓰다보니까 또 욕심이 생겨서, 브런치에 연재를 하게 되었어요.
세번째 책을 낸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특히 이 책의 주인공이시기도 한 할머니(안나)의 반응은요?
다들 제가 이렇게까지 꾸준히 글을 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나 봐요.(웃음) 주변 지인들 중에는 놀라는 분들도 있고, 끝까지 잘하는 모습을 보이니 멋지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책의 주인공인 '안나'는 안타깝게도 이 소식을 접하지 못했어요. 이 이야기를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치매가 찾아왔고, 요양병원에 가게 되셨기 때문에 알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언제 알려드릴 수 있을까 저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얼마전 조금 더 편한 곳으로 가셨기에 더는 알려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아셨으면 누구보다 더 기뻐하셨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그렇지만 어딘가 멀리서 저를 보며 응원해주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이전 두 작품도 그랬지만 작가님은 누군갈 ‘사랑’하는 이야기를 꼭 담으시는데요, 이전 두 작품과 지금의 작품에서 작가님께서 느끼시는 공통점, 혹은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달라진 점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매번 같은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람과 사랑은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사람과 사랑을 굉장히 지겨워해요. 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고, 꼬이고, 넘어지고, 부딪히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나 사람이 없는 삶을 생각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제 글은 저의 감정만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게 다 사랑이나 사람에게서 오는 것들이었어요. 슬픔, 분노, 아픔, 아련함, 행복, 기쁨 이런 감정들이 전부 다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쓰는 모든 글에서는 아마 이런 메시지를 느껴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살이가 막막할수록, 사람이 사랑을 하고 살아야지, 그럼그럼'
이 책을 쓰시면서 제일 어려우셨던 점이 무엇인가요?
제일 처음 초고를 쓰던 시기에는 '안나'의 병세가 그리 깊지 않았기 때문에 마냥 재미있었어요.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었고, 매번 '안나'를 만나고 난 다음에 일기처럼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죠. 그런데, 한 권으로 묶기 위해서 글을 다시 정리할 때는 앞서 말씀드렸듯 '안나'의 병세가 더 심각해졌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짜가 점점 다가옴을 느끼면서 원고를 정리할 때는 저도 모르게 울게 되더라고요. 지나간 일들이지만 써놓길 잘했다, 맞아 이런 이야기를 나눴지,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우느라 원고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적도 많아요. 불쑥불쑥 떠오르는 '안나'에 대한 그리움들을 제어하면서 너무 감정적이지 않게 글을 쓰려 노력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반대로 집필을 마치고 제일 뿌듯하셨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여담이지만, 마지막 교정을 보던 날이 '안나'의 장례 마지막 날이었어요. 장례를 모두 끝내고 화장터에서 돌아와 교정을 봤었는데요. 그때는 의외로 굉장히 담담했던 것 같아요. 뿌듯했지만, 완성을 했다는 것이 그리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완성된 것을 보고 나면 그때서야 마음을 놓고 비로소 뿌듯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책을 보면 꼭 ‘슬픔’이 같이 등장해요 사랑과 슬픔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잖아요. 사랑하면 슬퍼지고, 슬퍼지지 않으려면 사랑하지 않는 방법밖엔 없는데, 작가님께선 슬픈데도 계속 사랑을 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을 세권이나 쓰실만큼이요.
사람은 사람이 주는 사랑에 의해서 위로 받는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통해서 상처 받기도 하지만, 결국 그 상처도 사랑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니 만큼 모든 것의 처음은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슬픔과 상처는 옅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반면에 사랑은 옅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짙어지는 습성이 있죠. 그래서 자꾸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슬픔도 결국 사랑에 의해서 파생되는 것이고, 사랑이 덮어줄 수 없는 슬픔은 없으니까 사랑의 힘을 믿는 것 같아요.
요즘은 독립출판도 잘 활성화되어 있어서,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께선 독립출판과 기획출판 모두 경험해 보신 바로, 그 둘은 각각 어떤 매력이 있었나요?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독립출판은 개개인의 개성들이 너무 찬란해요. 독립출판을 하면서 북페어에도 참가한 경험이 있는데요. 정말 한 부스 한 부스 개성이 넘쳐나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하는 것도 너무 매력적이고요. 독립출판은 기획부터 시작해서 편집, 디자인, 교정, 교열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아서 책 한 권에 오롯이 작가의 생각과 분위기가 담긴다고 생각해요. 참 매력적인 출판 방법이에요. 요즘에는 기획출판에서도 작가의 문체를 그대로 담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훨씬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출판사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글을 쓸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또, 잘 다듬어지고 정돈된 느낌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두 출판 방법 모두 다 매력적이에요. 오래오래 끊임없이 뻗어나갔으면 해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무언가 쓰는 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언가 쓰는 이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이라고 생각해요. 또, 무언가 위로 받고 싶은 이가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무언가 나누고 싶은 이, 무언가 알리고 싶은 이가 될 수도 있겠네요. 저도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쓰고, 그걸로 위로 받고, 또 그걸로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주변에 넌지시 알리고 있어요. 사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글도 많아요. 홀로 적는 글이죠. 일기 형식으로 적는 것인데, 그것은 제가 온전히 제 자신을 홀로 위로 하고 싶을 때 써요. 그러면서 위로받죠. 꼭 감정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하는 부분을 나누는 것이 쓰는 방법이라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쓰고, 나눴으면 좋겠어요.
책에서 ‘…그래서 더는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문장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그렇게 꿋꿋하게 마음먹을 땐 언제고, 또 쉽게 슬퍼하는 ‘단한’의 모습 때문에 더 마음이 미어지기도 했고요.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퍽 잘 슬퍼낼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이 있을까요?
'퍽 잘 슬퍼낼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슬퍼하는 것인 것 같아요. 울음은 참으려고 해도 비집고 나오게 마련이잖아요. 터져나오는 것들은 터트려서 흘러가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슬퍼하지 못하면 마음에 고이는 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마음의 응어리가 생기더라고요. 눈물이 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슬플 때 마구 슬퍼하는 것이 잘 슬퍼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나이롱 시한부』가 어떤 분들에게 읽히길 바라시나요?
누군가가 그리운 분들이 읽으셔도 좋고, 저처럼 죽음이나 헤어짐, 이별과 같은 단어가 두려우신 분들이 읽으셔도 좋아요.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나 죽음을 피할 방법 같은 건 제 책에 나오지 않지만 읽으신 후에는 각자 나름의 마음가짐을 정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의 죽음과 남의 슬픔을 책으로 엿봄으로써 우리는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어질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독자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이롱 시한부』를 읽으신다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우리들은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 '나와 비슷한 것을 느끼고 쓰는 작가'가 되려 노력하려 해요. 이 말은 바꿔 생각해 보면 당신도 내 마음과 같았구나 하는 힘이 돼요. 그리고 그 힘을 원동력 삼아 저는 다시 글을 쓸 수 있고요. 꾸준히 찾아주시고, 읽어주신다면 많은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단한 가끔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많이 쓰려 노력하는 중이다. 쓰는 글 중에 사람과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 글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랑에 대해 지겹다 말하면서도 이 두 가지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말간 백지를 보며 얼굴이 새하얗게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위안을 받는 사람. 내면에 숨쉬는 다양한 것들을 숨김없이 끄집어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쓰고 싶단 생각을 품고 있다.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너를 앓고』와 『연못 산책』을 독립출판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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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안나와 아직 그녀를 위해 해 줄게 많은 단한의 이야기 안나는 가끔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며, 아픈 것도 다 거짓말 같다고 말한다. 통증이 없다고, 오늘은 피를 쏟지 않았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나는 나이롱 시한부다! 나이롱 시한부! 하나도 안 아픈 시한부다! 안 아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