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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 “슬픈 이야기를 해도 돼요”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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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무언가를 바라보고 내 삶과 연결 지으며 살잖아요. 저는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고 상상하는데요. 관객이 된다는 것은 그 나무를 가꿔가는 일 같아요. (2022.02.07)


공연은 끝나는 순간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예술의 근본에는 슬픔이 있다고, 목정원 작가는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 썼다. 그는 프랑스에서 한 생을 보내며 여러 공연을 봤고, 시간과 더불어 생생함은 사라졌다. 하지만 슬픔의 기억들은 남아서 한 권의 책이 됐다. 질서를 부수고 알지 못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비극은 뒤늦게, 하지만 정확히 돌아온다.



뒤늦게 쓰인 비평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공연 예술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어요. 

어릴 때는 예술가가 꿈이었고, 사실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예술가는 못 될 것 같은 거예요.(웃음) 대신 아름다움을 변호하기 위해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하게 됐는데, 1학년 수업시간에 니진스키의 춤 ‘목신의 오후’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사람이 몸을 움직인다는 게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 공연이 고전에서 현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품이거든요. 지금도 경계에서 약동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이번 책도 에세이와 평론의 경계에 놓인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본 공연에 대한 비평이자,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처음 시도하는 종류의 글이었어요. 직전에 낸 글은 박사논문인데다가 외국어로 써야 했으니까요. 당시에도 비평을 바로 쓰고 싶을 만큼 좋은 작품이 많았는데, 논문 때문에 유예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비평을 쓰기엔 늦었으니 이번에는 자유롭게 써보고 싶었죠.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순간들을 길어올리면서요.

공연은 상연 후 사라지기 때문에 바로 글을 쓰지 않으면 생생함이 사라지는데요. 그런데도 오래 기다린 후에 쓰는 것을 택하셨어요. 

맞아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뒤늦게 쓰인 비평’인데요.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독자는 글에서 다뤄지는 공연을 못 봤을 테니, 저 또한 많은 것을 잊은 뒤 남은 기억만 갖고 쓰면 독자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인지 공연장에서 있었던 일이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함께 녹아 있어요.

작품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프랑스에 있을 때,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가 떠오르는데요. 한 연극 연출가가 세상을 떠나서 추모 행사가 열렸어요. 미리 공연장에 갔는데도 절대 못 들어갈 만큼 긴 줄이 있는 거예요.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무슨 줄이에요” 묻는데, 연출가 이름을 듣더니 다 고개를 끄덕이는 거죠. 한 연출가의 죽음을 모두가 알고 공유하는 문화가 놀라웠어요. 그런 순간을 만날 때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 갔던 것 같아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어서 느리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글이었어요. 실제로 쓰실 때는 어땠나요?

처음에 생각한 주제는 많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딱 10편만 쓰게 됐어요.(웃음) 글에는 슬픔이 많이 담겨 있지만, 쓰는 사람으로서는 감정에 취하는 것을 경계했어요. 슬픔이 찾아오면 잠깐 멈췄다가 다시 담담한 상태로 돌아오고. 그렇게 느리게 쓴 것 같아요.

작가님이 오래 기억하는 공연은, 전달 불가능한 슬픔과 고통을 전하려고 시도하는 작품 같았어요. 어떤 순간이 작가님을 사로잡았나요?

사실 저는 평화롭고 잘 짜인 연극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다만 할 말이 생기는 순간들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해결되지 않은 고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뤄서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리는 작품을 보고 내가 크게 건드려졌다면,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져요.


우리는 비극을 왜 볼까

제목이 시적이었어요. 책장을 다 넘긴 후에야 뒤늦게 의미를 깨닫게 돼요. 

오래전부터 막연히 첫 책의 제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문장이었어요. 프랑스에서 살면서 늘 외국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거든요. 그 막막함이 모국어로도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걸 느꼈을 때 이 표현을 떠올렸다가 노랫말에 쓴 적이 있어요. 파리의 길은 방사형으로 생겨서 한번 잘못 들면 완전히 멀어진다는 가사였는데요. 이번 책을 쓰면서도 내가 결국 말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해 쓰고 있었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었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제목을 주게 됐죠. 

글과 함께 사진을 만나는 감동도 있었어요. 직접 찍은 사진이죠?

필름 카메라를 들고 여행갈 때마다 틈틈이 찍었어요. 뒤표지 사진은 가장 아끼는 것인데요. 이 모래 언덕이 보기보다 굉장히 높아요. 힘들게 올라가면 이런 평지가 나오고 양 옆으로 숲과 바다가 보이죠. 처음 흑백 필름으로 찍어봤는데 다행히 잘 나왔어요. 제가 잘 찍었다기보다는 우연히 거기 있었기 때문에 포착할 수 있었던 풍경이에요.(웃음)

'비극의 기원'을 읽으면서, 두 가지 비극에 대해 생각했어요. 카타르시스를 주고 안정된 질서로 돌아가게 하는 비극은 이해가 잘 됐어요. 그런데 진실을 전복하고 억압된 것을 폭로하는 비극은 불편한 것이겠구나 싶었는데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것을 보러 갈까요?

‘우리는 비극을 왜 보러 갈까’ 물으면 의외로 답하기 어려워요.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가설을 내놓았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잘 모방된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껴요. 현실에서 죽은 동물을 보면 절망과 슬픔을 느끼지만 그것이 잘 묘사된 그림은 어쩐지 들여다보게 되고, 그게 무엇인지 인식하면서 배우게 돼요. 비극을 볼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요. 우리 삶의 고통이, 세계의 모순이 저런 것이었구나, 알게 되는 데서 일종의 해소를 겪을 때가 있잖아요. 편안한 작품만이 아니라 질서를 전복하는 작품을 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물론 잘 만든 작품은 단지 불편함만 남기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그 이상의 것을 전달하죠.

‘테러와 극장’을 유독 힘들게 쓰셨다고요. 파리에 테러가 나던 날의 기억에서 시작해서, 테러를 논쟁적으로 다루는 앙헬리카 리델의 연극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연출가 앙헬리카 리델의 연극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어요. 리델의 작품은 늘 논란을 불러일으켜요. 테러 자체를 억압된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보기도 하고, 한 여성이 강간범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도 하죠. 강력한 전복으로만 읽어내기에는 혼란스러운 지점들이 있어요. 실제 현실에서 사람들이 죽잖아요. 그 죽음에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오래 고민해야 했어요.


풍성한 나무가 되는 꿈

언젠가 꿈이 관객 학교를 만드는 것이라 하셨어요. 작가님이 꿈꿨던 ‘관객’의 모습이 궁금했어요.

한국에서는 공연이 싫어서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관객은 잘 없잖아요. 그런데 아비뇽 연극제에서 쿵쾅거리며 자리를 뜨는 관객들을 만났어요. 동시에 환호하는 관객들도 옆에 있었고요. 그 부끄럼 없는 반응들의 공존이 좋아 관객 학교를 꿈꾼 적이 있는데요. 사실 지금은 꿈이 없어요.(웃음) 염세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낙관적인 마음이 된 것일 수도 있어요. 현재 관객들이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과거보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도 많아졌고요.

책을 읽으며 관객이 되는 것이 곧 삶을 살아가는 것과 겹쳐 보여서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무언가를 바라보고 내 삶과 연결 지으며 살잖아요. 저는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고 상상하는데요. 본 것과 알게 된 것을 축적해가며 뿌리를 내리고 풍성하게 가지를 뻗어 나가는 거죠. 관객이 된다는 것은 그 나무를 가꿔가는 일 같아요. 이때 본다는 것은 물론 은유적인 말이에요. 우리는 눈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서도 보니까요.

공연을 향유한다는 건, 몸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움직임을 기록한 문장을 따라가면서 몸들을 상상하게 되는데요. 작가님은 춤을 배우기도 했는데, 어떤 경험이었는지요?

몸은 정직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미지의 영역 같아요. 무용을 배운 건, 지금 움직여보지 않으면 나중에 글을 쓸 때 부끄러울 것 같아서였어요. 처음에는 테크닉에만 집중하느라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기도 했지만, 어느새 체화되어서 자연스러운 감각이 되더라고요. 프랑스 국립무용단에서 매시즌 정기 공연 전 관객들에게 춤을 나눠주는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거기서는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런 경험 덕분에 하나의 공연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감각적인 언어들이 있구나 조금씩 깨달았던 것 같아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노랫말도 쓰신다고요.

프랑스에 있을 때, 기타를 하나 샀는데 미학자이자 뮤지션인 최정우 씨가 이름을 뭘로 할 거냐고 묻는 거예요. “내 기타의 이름은 기타로 할래요”라고 대답했어요.(웃음) 그 뒤에 최정우 씨도 새 기타를 사더니 이름이 ‘바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우리 활동하면 ‘기타와 바보’로 하자 하면서 웃었거든요. 그러다 논문 쓰기가 힘들어서 도피가 필요한 때에 함께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노랫말을 써서 문자로 보내면, 최정우 씨가 곡을 붙여줬죠. 음악 축제날 루브르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누가 동전을 놓고 가는 거예요. 그 경험이 너무 즐거웠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을까요?

올해 ‘기타와 바보’의 앨범이 나와요. 제게 음악은 그동안 순수한 재미였거든요. 이제 더는 아마추어일 수 없으니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하네요.(웃음)



* 제목은 ‘기타와 바보’의 동명의 노래에서 가져왔습니다.




*목정원

서울대 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렌느2대학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공연예술이론 및 예술학일반을 가르치며, 변호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비평을 쓴다. 가끔 사진을 찍고 노래 부른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저
아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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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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