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공장이 사라진 실직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
『실직 도시』 방준호 저자 인터뷰
한국지엠 군산 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두 제조업 공장이 군산을 떠났습니다. 떠난 시점, 떠난 자리에서 공장에 얽힌 군산 사람들의 기억을 듣습니다. 공장이 사라진 뒤 겪은 일을 관찰합니다. 그 의미를 생각합니다. (2022.01.10)
전라북도 군산 인구 4분의 1을 책임지던 현대중공업과 한국지엠 공장이 문을 닫았다. 공장 폐쇄는 지역 경제를 순식간에 무너트렸지만, 대중들은 더 큰 화젯거리에 눈을 돌렸다. 그 사이, 제조업 생산 기지였던 거제, 울산, 통영, 창원 등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지역의 고용 위기는 누군가의 과거이자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공장이 떠난 도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군산으로 내려가 6주 간 30여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재취업에 실패하고 치킨집을 여는 사람, 남편의 해고 때문에 구직에 나선 아내 등 실직으로 인한 그들 삶의 변화를 들여다보고 노동자들의 솔직한 심정을 『실직 도시 : 기업과 공장이 사라진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에 담았다.
『실직 도시』,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어떤 책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지엠 군산 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두 제조업 공장이 군산을 떠났습니다. 떠난 시점, 떠난 자리에서 공장에 얽힌 군산 사람들의 기억을 듣습니다. 공장이 사라진 뒤 겪은 일을 관찰합니다. 그 의미를 생각합니다.
한국지엠 군산 공장 폐쇄 1년 뒤인 2019년, <한겨레21>에 실었던 「공장이 떠난 도시」 르포 기사가 바탕입니다. 거기에 2018년 처음 군산을 방문했던 날, 2020년 드문드문 군산 사람들이 들려준 소식, 2021년 다시 만난 군산 사람들과의 대화 같은 것들을 덧붙였습니다. 군산의 성공, 그리고 좌절과 연결된 2000년대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와 정책을 짚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개인적인 생각, 혼란, 반성도 담았습니다.
기사가 바탕이래도 기사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적어 놓고 보니 소설 같기도, 향토 역사서 같기도, 수필 같기도, 보고서 같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 무엇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상한 책입니다. 그냥 사실을 바탕으로 한 어느 이야기로 읽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의 계기가 되었던 「공장이 떠난 도시」 기사가 나간 지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왜 지금 이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려고 하신 건가요?
변화, 전환의 시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합니다. 어느 시대가 그렇지 않을까, 과대망상일까, 생각해 보지만 역시 세계가 이전과 다른, 달라져야 할 시점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제4차 산업 혁명 때문일 겁니다. 기후 위기 때문일 테고, 코로나19 때문일 것입니다. 달라집니다. 믿었던 것들은 부서집니다. 오늘도, 어딘가, 누군가는 그렇습니다.
군산은 2010년대 후반 지역 제조업 생산 기지라 이르는, 믿었던 질서 하나가 부서지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돌아보니, 글로벌 기업의 생산 공장으로서의 성장과 공장의 비용 절감 논리는 생산과 소비, 교육 기관, 인프라, 주거의 성질 등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생활 양식 전부에 특정한 질서를 부여했습니다. 떠난 공장을 따라 이 모든 것의 의미가 흐릿해집니다. 물론 전과 다른 새로운 질서와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다짐합니다. 애씁니다. 그들의 슬픔과 고군분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질문을 꼬리를 물고 던집니다.
지역이 제조업 생산 기지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그 공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하청 따위 서로 다른 처지로 갈린 노동자는 연대할 수 있을까, 아 그들은 노동자임과 동시에 지역 주민일 텐데 그럼 주민들은 이제 어디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며 같이 위기를 헤쳐 나갈까, 그런데 정말 일이란 무엇일까, 일자리를 잃거나 다른 일자리를 얻어도 한 사람의 존엄은 지켜질 수 있을까…. 군산의, 어느 한때에만 유효한 질문은 아닐 것 같았습니다. 지금 여느 곳에도 필요한 질문 같았습니다.
당시 기사에서는 군산과 함께 울산의 이야기도 다뤘는데요, ‘실직 도시’로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다른 도시들은 어떤 곳이 있을까요?
제가 군산을 취재하는 동안 <한겨레21> 동료인 조윤영 기자는 조선업 위기 한복판인 울산 동구를 취재해 기사를 썼습니다. 오랜 제조업 전통을 지닌 그 도시의 질서는 아무래도 군산과 달랐고 실직 역시 군산과 다른 결을 지닙니다. 의외의 변화 앞에 혼란하고 고통스럽다는 점만은 같았습니다. 우리는 막막한 현장에서 통화하며 번갈아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다른 도시들의 이야기를 책 뒷부분 짤막하게 언급했습니다. 군산을 다녀온 뒤에도 여러 도시를 다니며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제법 있었습니다. 실직 도시라는 표지를 붙이기 모호하지만, 저마다 ’우리 도시는 이런 도시야’ 하고 말할 수 있게 해 주던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때는 섬유 제조업의 도시, 이제는 서비스업의 도시 또는 소비의 도시라고 믿었던 대구는 코로나19로 불어닥친 대면 서비스업의 위기 앞에 당황했습니다. 긴 조선업 불황의 끝자락이자 중소 조선업 도시인 전남 영암은 이제 산업 회복을 기대하지만 막상 돌아오지 않는 내국인 노동자 탓에 애태웁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자리를 채웠는데, 정작 그들을 어떻게 주민으로 품어야 할지 막막합니다.
특히, 녹색 전환과 함께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을 도시들은 또한 숱할 것입니다. 탄소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제조 산업의 몰락과 거기 얽힌 사람들, 불안정 노동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업의 휘청임과 또 거기 얽힌 사람들을 품은 도시는 독자분들, 바로 자신의 도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6주 동안 군산에 머무시면서 다양한 분들을 만나셨는데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만나는 사람 한 분 한 분, 당장 내 삶에 도움 하나 되지 않을 취재를 위해 시간을 내어 주고 기꺼이 기억을 되새겨 주었습니다. 인상적인 기억이 담긴 도시의 장소를 데리고 다녀 주신 분도 계시고, 요청하는 저조차 힘들 수 있겠다 싶은 요구를(사진 촬영이랄지, 다른 사람을 소개해 달랄지 하는) 흔쾌히 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취재 공간을 이동할 때 운전 신세도 무척 많이 졌답니다(제가 운전을 못 합니다). 취재라고는 해도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앉아 딱딱하게 질문과 답만 주고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농담하고, 그러다 침묵하고, 그러다 진지한 얘기도 해 보고, 그러다 민망해서 다시 농담하고 그런 여느 대화 같은 과정이었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아무튼 만나는 사람들 하나같이 군산이라는 도시에 얽힌 마음이 애틋해서, 살고 있는 곳을 그저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길 뿐인 저한테는 정말 이상한 감정으로 여겨졌습니다. 흥미로웠습니다. 문제를 잔뜩 늘어놓고 답을 찾지 못한 취재에서, 그래도 이 도시의 희망이라면 이런 애틋함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책 여러 부분 등장하는 한국지엠 실직자 김성우(가명) 님과는 취재원과 기자라기보다 그냥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안부를 묻고, 맛있는 걸 먹고(군산은 사실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도 다 맛있습니다), 드라이브하는 사이사이 요즘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주변 사람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 원래도 생각 많은 편이었지만 실직을 겪고 하게 된 더 깊은 생각을 들으면서, 그를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네, 저 다짐하고 망치고 다시 다짐하는 것 좋아합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대표 김광중 씨를 처음 만난 날도 기억납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들뻘 기자한테 연신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비 맞으며 배웅해 주었습니다. 민망하고, 죄송하고, 슬펐습니다.
군산의 현실을 취재하시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요?
생각은 많이 했습니다. 단 하나의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읽으시는 분에 따라 다양한 지점을 짚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용 안전망을 떠올릴 수도, 신산업의 발굴과 적응을 떠올릴 수도, 좀 더 효율적인 재정 집행이 필요하다고 여기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대목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 하나하나 써보면서 계속 머리에 두려고 했던 건 거창하게 말하면 공동체의 회복에 얽힌 문제였습니다. 공동체 의식은 그 힘들다는 전환 과정의 기초 체력쯤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많이 훼손된 상태입니다.
책의 절반을 들여 군산이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세계 무역의 확대, 신자유주의와 함께 정점에 이르는 순간을 담은 것도 그런 공동체 의식의 훼손 과정을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빛나는 성장의 과정인데,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갈라지고 미묘하게 멀어집니다. 같은 공장 안에서 정규직 - 정규직이 된 비정규직 - 비정규직이 갈렸고, 본청과 하청의 위계가 엄격히 갈렸으며, 세계 각 지역의 공장들이 서로 갈렸습니다. 2000년대에도 여념 없이 성장한 한국 경제는 자랑스럽지만, 최소한 그 성장의 상징 같은 도시인 군산에서는 또한, 개인을 고립시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 비용을 최소한의 수준에 맞춰 절감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공장이 떠나고 이제는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기 위해서 이해관계가 다른, 더 달라진 사람들 사이 양보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이어질 텐데 그건 서로에 대한 공감, 모두를 위한 고민, 뒤처질 수 있는 이들을 위한 지원을 바탕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이고, 그나마 아직 이 도시를 '우리 도시'라고 부르며 옆 사람을 ’이웃’으로 이를 수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군산은 그런 면에서 희망적이기도 합니다.
왜 독자들이 『실직 도시』를 읽어야 할까요? 이 책이 군산 밖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라시나요?
앞서 말씀드린 전환 시대 앞의 공동체 의식, 공감은 사실 한 도시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전환의 방식은 전과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취재하며 무척 많이 들었습니다. 더는 사람 사이를 가르며 성장하는, 각자도생의 방식이어선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혼란하고 정신없는 시대에, 그런 시대이므로 타인을 지켜보고 공감하는 건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하고 두려운데, 아무튼 변하고 나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한테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저 조롱하거나 눈감고 있지 않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황당한 일을 그래도 같이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버틸 수 있습니다. (서울도 아니고, 내 주변 이야기도 아닌) 군산 사람들 이야기라는 점을 알면서도 굳이 책에 관심을 가져 주신 모든 분들이 사실 그런 지지자, 연대자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변화 앞에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그렇게 지켜봐 주셨으면, 가능하면 마음에 새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내가 같은 상황 앞에 놓일 때 또 그들이 손 내밀어 주리라고 우리 모두 믿게 되면 좋겠습니다.
『실직 도시』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답변이 또 잔뜩 진지해지고(재미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책도 명랑한 척 시작하는가 싶다가 슬프고 진지하게 맺습니다. 기왕 이리된 것, 진지하게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못한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독자께서 누군가 생각해 주신 것처럼 누군가, 그도 아니라면 사회와 제도라도 독자를 생각하고 있다고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방준호 1986년 태어났다. 2013년부터 《한겨레》기자로 일했다. 2019년부터 《한겨레21》에 속해 있다. 주로 현장을 돌아다니며 르포 비슷한 기사를 썼다. 사람 만나는 일을 힘들어하지만, 사람 이야기 듣는 일은 좋아한다. 힘들게 좋아하는 일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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