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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짧은 소설] 숲의 끝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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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내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눈을 보고 말했을 거야. (2021.12.02)


나는 결국 너를 만나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왔어.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저번 주에 네가 사는 오울루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고,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더 올라가 예전에 우리가 살던 곳에 갔어야 했어. 하지만 핀란드로 들어가기 한 주 전에 내가 머물던 도시는 바이러스 통제를 위한 봉쇄가 시작되었고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내가 너를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찾아가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했어. 항상 머리로 생각하는 이유는 있었던 것 같아. 헬싱키도 아니고 오울루라니 너무 멀다고, 핀란드야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니까 안 가본 나라들을 먼저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어. 대학을 졸업하고 오페어로 영국에 머물고 있었을 때도, 나는 시간이 나면 주변 나라들을 가면서도 네가 있는 핀란드에는 가지 않았지. 언제나 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사실 조금 안심했다. 너를 만나지 않아도, 핀란드에 가지 않아도 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거야. 너를 이십 년 만에 다시 만나고, 우리가 살던 곳에 다시 발을 디딘다는 사실이 무서웠던 것 같아. 내가 무서워? 이 글을 읽는 너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 나는 너를 다시 만나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던 것 같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쑥스럽고 불편한 마음이야 자연스러운 마음이겠지만, 그걸 넘어서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어.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핀란드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정확히는 몰라. 내 나이 열일곱에 핀란드에 가서 열아홉에 한국에 돌아왔으니까, 이 년이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벌어졌던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어. 아버지의 군대 선임이었던 의중 아저씨의 일을 돕겠다고 간 것이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우리는 핀란드 정착에 실패했지. 의중 아저씨도 우리가 한국에 돌아가고 이 년 뒤에 다시 한국으로 오셨잖아.

그 시절의 일은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 마음 깊이 생각을 억압해서였는지 꿈에서도 핀란드는 나오지 않았어. 나에게 핀란드라는 말은 실패의 동의어였던 것 같아. 핀란드를 생각하면 그 추위,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와 흑야가 떠올라. 아침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둡고, 오후가 되어서 잠시 햇빛이 나오나 싶다가 바로 해가 지던 겨울과, 그보다 더 깊은 겨울이 있었지.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어둡고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던 일이 기억나.

차라리 어린 나이에 갔으면 언어라도 빨리 배웠겠지만, 열일곱이 다 되어서 핀란드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학교에 가서 어려움도 컸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기질에 언어를 빠르게 학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모든 것이 낯선 교실에 앉아서 울음을 삼켰던 날들이 많았어. 너는 그런 나를 많이 도와줬지. 옆자리에 앉아서 나의 언어 문제를 도와주려고 노력했어. 네가 없었다면 나는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을 거라고 생각해.

나를 그냥 모른척했다면, 학교에서 요구하는 정도로만 네가 나를 도왔다면 너는 훨씬 편안했을 거야. 하지만 너는 나를 위해 행동해줬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을 통역해주고 숙제와 알림 사항들을 한국어로 메모해서 나에게 줬어. 심지어 우리 집에도 도움을 줬지. 변기가 고장나면 배관공을 불러줬고 핀란드어를 모르는 우리 부모님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줬어.

우리보다 십 년 전에 핀란드에 오셨던 너희 부모님도 핀란드어를 능숙하게 하지는 못하셨던 걸로 기억해. 그런 부모님을 위해 너는 부모님과 같이 병원에 가고 쇼핑을 가고 집주인과 의사소통을 하기도 했어. 우리는 둘 다 맏이에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있었지. 하지만 부모님과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나와는 달리 너와 너의 가족은 무척 친밀해 보였고 나는 너와 나의 그런 차이를 느낄 때면 마음이 아팠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뿌리가 자라는 시기라고 생각해. 어떤 땅에서 자라났는지, 그때의 기후가 어떠했는지에 따라서 뿌리의 생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씨앗으로서는 아무리 자기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토양이 척박해서 양분이 부족하면 그 뿌리가 어떻게 굵고 단단하게 땅 아래로 뻗어나갈 수 있겠어. 뿌리가 작고 연하고 약하면 그에 맞게 줄기도 작고 연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게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이미 그 시기가 지나면 뿌리는 더 자라지 않는 것 같아.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어려워. 늘 뿌리 뽑혀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게 나야. 이런 내가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어.

‘핀란드에는 겨울만 있는 게 아니야.’

핀란드의 날씨에 대해 불평하는 나에게 너는 말했지. 그러다 칠월이 되니 핀란드에도 봄이 오더라. 우리는 우리 동네의 호수에 자주 갔어. 호수는 꽤 커서 둘레를 따라 걷다 보면 깊은 숲의 입구가 나왔어. 동네와 면한 호숫가에 앉아서 보면 검은 숲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었고. 가장 따뜻한 시기인 팔월이 되어도 호숫가에 바람이 불면 추워서 팔짱을 껴야 했어. 내가 타월을 깔고 앉아서 책을 읽을 때 너는 초록색 비키니를 입고서 호수로 들어가 수영을 했지. 네가 첨벙거리는 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았어. 호수며 숲이 모든 소리를 다 빨아들이는 것처럼 고요했어. 나는 수영을 하지 못했고 추위도 많이 타는 편이어서 호수에 발만 담그는 정도였는데 물이 얼마나 차가웠던지 그조차도 오래 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런 차가운 호수에서 너는 참 오래도 헤엄을 쳤지. 호수에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말리고 오들오들 떨면서 너는 호수 너머를 바라봤어.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왜 너에게 편안함을 느꼈었는지, 너 또한 왜 내게 쉽게 다가올 수 있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어.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웅크리고 있는 너를 안아주고 싶었지. 나의 온기로 너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고 물에서 갓 빠져나온 너의 몸이 얼마나 차가울지 내 피부로 느껴보고 싶었어.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카세트테이프를 들었어. 넌 네가 한국을 떠났던 96년 초반까지의 한국 가요를 들었지. 너는 H.O.T도 젝스키스도, S.E.S도 핑클도 g.o.d도 몰랐어. 나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인터넷이라는 것을 조금 맛보기는 했었지만, 너희 집에는 컴퓨터 자체가 없었고 너는 인터넷이 어떤 개념인지에 대해서 내게 자주 묻곤 했어. 한인 커뮤니티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문화를 접할 수도 없어서 너는 한국 대중문화를 잘 몰랐고 서태지가 컴백했다는 사실도 나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어.

너는 서태지와 아이들 2집 테이프가 없었어. 왜 서태지의 앨범들 중에서 그 앨범만 없느냐고 물으니 핀란드에 와서 그 앨범을 너무 많이 들었던 탓에 테이프가 다 늘어나서 복구가 불가능했다고 했지. 나는 호의의 표시로 내가 가지고 있던 서태지 2집을 너에게 줬어. 우리는 호숫가에 앉아서 그 앨범 A면과 B면을 통째로 다 따라 불렀지. 너는 나에게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고 내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어.

서태지 4집을 같이 듣던 어느 날 너는 나에게 조심스레 말했지. 불경한 말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네가 서태지를 너무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You must come back home'이라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어. 우리 마을에 서태지의 음악을 아는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었는데도 너는 마치 서태지의 팬들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기라도 하듯이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지. 철이 없어서, 반항심에 집을 나가는 애들이 몇이나 되겠냐고 말이야. 그런데 그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그애들이 왜 집을 나갔는지에 대한 생각이 느껴지지 않아서 마음이 안 좋다고 했어.

‘집이 지옥인 애들이 있잖아. 집에 가면 실제로 죽을 수 있는 애들도 있어. 그런 애들보고 무조건 집에 가라니. 듣고 있기가 힘들어.’

난 너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서태지의 컴백홈을 듣고서 집으로 돌아온 가출 청소년들의 기사가 미담처럼 뉴스로 방영되는 것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고, 너의 해석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을 했지.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나도 삶이라는 걸 지나다 보니 그때의 너의 말이 옳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 그래, 어떤 사람들에게 집은 안전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도망쳐야만 살 수 있는 폭력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걸, 이제 나는 알아. 그런 사람들에게 집으로 꼭 돌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핀란드에서의 두 번째 겨울이 찾아왔고, 그즈음 우리는 우리의 ‘컴백홈’을 고민했지.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어쩌면 조만간 가족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을 엿들으면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한국에서 놓친 교육과정을 따라갈 자신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직 말도 잘 익숙해지지 않은 핀란드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어. 그 어떤 대책도 없는 부모님에게 화가 났지. 부모님도 힘든 걸 아니까 내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디 그게 잘 됐겠어.

반면에 너는 한국으로 대학을 가려고 했어. 너처럼 한국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을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아. 한국의 온돌과 사계절, 거리에서 먹는 떡볶이와 붕어빵 같은 걸 이야기하며 너는 목소리를 높였어. 한국이 최고라고, 이 어두운 핀란드를 떠나서 한국의 습한 여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고 했지. 며칠이고 해가 거의 뜨지 않고 비가 오던 한겨울의 낮에 너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어. 살면서 너의 의지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너의 의지는 존중받지 못했지만 가족에 대한 너의 의무는 너무 무거운 것이었다고. 영원히, 이 어둡고 추운 핀란드의 시골에서 가족들의 통역사와 매니저 역할을 하며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것조차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했지.

너의 아버지는 다정하고 천성이 따뜻한 분이셨던 것 같아. 어느 날 그분이 네가 잠시 자리를 떴을 때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 네가 한국으로 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된다고, 있는 힘을 다해서 지원할 생각이라고. 그리고 나도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부디 너에게 힘이 되는 가족이 되어달라고 하셨지. 너희 아버지는 네가 한국에서 가혹한 경쟁을 견디는 걸 원하지 않으셨다고 했어. 핀란드로 애써 온 건 너와 너의 동생이 보다 자유롭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아버지의 진심이 너에게도 전해졌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해. 그 긴겨울이 끝날 무렵 너는 핀란드에서 대학을 가기로 했어. 이곳보다 한참은 남쪽에 있어서 기후가 좋은 헬싱키로 갈 거라고 내게 말했지. 너는 헬싱키로 같이 가자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어. 너희 아버지도 내가 너와 헬싱키로 같이 간다면 좋겠다고 하셨지. 나는 오래 고민했어. 

우리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가고 우리가 쫓겨나듯 한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나는 차마 너에게 할 수가 없었어. 핀란드어가 기적적으로 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언어의 장벽이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느껴지고 내 삶의 뿌리를 영구적으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도 말할 수 없었어. 하지만 너에게 그런 말을 하기가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아. 그 대신 나는 한국에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어. 

너는 상기된 얼굴로 그 소중한 사람들인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되는대로 있지도 않은 친구들을 만들어내서 너에게 말했지. 마치 네가 내 그 많은 친구 중 하나일 뿐이라는 뉘앙스를 깔고 말이야. 그게 너에게 상처가 될 걸 알아서 그렇게 말했어. 이십 년이 지나서야 너에게 나의 진실을 말한다면, 너는 영원히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호 너는 북반구부터 남반구까지, 이 세상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통틀어서 유일한 나의 친구였어. 한국에서 내가 얼마나 겉돌았는지 나는 너에게 말하지 않았지.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내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눈을 보고 말했을 거야. 지호야, 너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 친구야. 너는 나를 판단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 있으면 온전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나도 너와 함께 헬싱키로 가고 싶지만 우리 식구들은 곧 쫓겨나듯 한국으로 가야 할 거고 나는 홀로 이 나라에 남아서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자신이 없어. 이곳은 이 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도 내게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너를 잃는 것이 아파. 나의 무능력과 약함 때문에 이곳에 홀로 설 수 없는 내가 밉고 부끄러워.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마치 한국이 이곳보다 내게 훨씬 더 좋은 곳이고, 너 정도는 대체할 친구들이 많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렸어. 그리고 다시 겨울이 시작되던 때 우리 가족의 한국행이 정해졌지.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그때는 그게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변화를 거부하며 사는 것이 겁이 많고 불안이 많은 나에게는 안전한 선택지였으니까. 

지호야, 나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어느 지점까지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었어. 큰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덜 상처받고, 덜 위험한 길만을 골라서 갔지. 그리고 그건 언제나 내 마음속 욕구와는 다른 길이었던 것 같아. 계속 그런 식으로만 살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

핀란드를 떠나기 두 달 전, 졸업 여행으로 우리 반 아이들 전체가 근교의 호숫가로 여행을 갔었지. 나무로 지은 오두막에 짐을 풀고 이야기를 나눴어. 어떤 애들은 사우나를 하고 그 차가운 호수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지. 수영을 하고 다시 사우나실로 들어갔다가 다시 찬물에서 노는 식이었어. 초겨울이었지만 날씨가 조금 풀려서 아주 춥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기도 했었고.

너는 나를 따로 불러 산책을 하자고 했지. 아직 해가 하늘에 걸려 있었고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아서 걷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오두막을 등지고 호숫가를 따라 조금 걷다가 호수와 면한 숲으로 들어갔어. 따로 길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자국은 있어서 되는대로 숲길을 헤치며 들어갔던 것 같아. 길을 잃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어. 단순한 길이었으니까. 하늘에서 엷은 눈이 날리듯 조금씩 내리기는 했지만 곧 그칠 것처럼 보였었고. 너는 화장실이 급하다면서 잠시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갈 테니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라고 했지. 아직도 기억나. 그 숲의 나무들이 얼마나 컸는지, 그 나무의 이파리들이 하늘을 가려서 숲이 한낮에도 얼마나 어둡게 느껴졌는지. 

나는 너를 기다렸어. 

너는 나타나지 않았지.

처음에는 네가 그곳을 찾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섭더라.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 사람을 잃었을 때는 한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길이 엇갈릴 수 있다는 말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따르려 노력했어. 얼마나 그곳에 서서 너를 기다렸는지 모르겠어. 그때 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너는 알까. 네가 쓰러지거나 실족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거의 확신으로 변했을 때 숲은 겨우 나무의 형체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워졌어. 들어올 때는 그토록 확실했던 길이 돌아갈 때가 되니 헷갈리는 거야. 호숫가 쪽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어둡고 사방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걸어가는지 알기가 어려웠어.

한참을 헤맸어, 지호야.

어디선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 소리에 기대어 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그곳에 숲의 끝이 있었지.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아이들 틈에서 너의 얼굴을 봤어. 나를 발견해서 안심하는 아이들의 모습과는 달리 너는 화가 나 보였어. 너는 볼일을 보고 내가 기다리는 자리에 갔지만 그곳에 내가 없었다고 했지. 내가, 너와의 약속을 어기고 먼저 숲을 떠나려 한 거 아니냐고 했어. 그래도 넌 내가 걱정되어 오두막으로 와서 다른 아이들에게 나를 같이 찾아 나서자고 말했다고 했지.

‘난 그 자리에 있었어.’ 

넌 고개를 저으며 옅게 웃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더라. 너의 얼굴은 나의 그런 거짓말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었어. 나는 네가 상처받았다는 걸 알았지.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너를 기다렸어.’ 그 말만 되풀이하는 나의 말을 너는 믿어주지 않았어.

나는 너를 끝까지 믿었어. 네가 나를 그 자리에 버려두고 먼저 떠났다고 믿지 않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는 그날의 일에 대한 의문이 싹텄지. 어째서 그때의 나는 네가 나를 버리고 갔으리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네가 나를 바로 의심한 것과는 다르게. 

어쩌면 모든 건 숲의 일이었는지도 모르지. 해가 지기 시작한 숲은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우니까 우리는 그저 서로 어긋났던 것뿐일 거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해. 그날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 이후로도 우리는 이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스카이프를 하기도 하며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지. 연락의 빈도가 뜸해져서 생일날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는 정도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날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어. 너에게 그날의 일에 대해 묻지는 않았을 테지만, 적어도 그때 핀란드에서 네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핀란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마음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하고 싶었어. 꼭 오래 미뤄둔 숙제처럼, 그 말을 하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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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은영(소설가)

소설가. 장편 소설 『밝은 밤』과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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