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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 작가 “버티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

『모범생의 생존법』 황영미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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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잘 다니는 학생은 다 모범생 같아요. 이 소설도 그런 관점에서 썼고요. 사실 누군들 드라마틱한 일탈에 대한 욕구가 없겠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마음을 다스리며 본인의 인생을 만들어가요. (2021.11.18)

황영미 작가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로 20만 청소년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작가 황영미의 새 청소년소설 『모범생의 생존법』이 출간되었다. “청소년의 삶과 심리를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린다”(이금이)라는 평을 받은 황영미 작가는 이번에도 생동감 넘치는 묘사, 재치 있는 대사, 무엇보다 보편의 고민거리를 시원하게 짚어 주는 공감의 화법으로 또 한 번 청소년들에게 성큼 다가선다.



새 청소년소설 『모범생의 생존법』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이 반가워할 소식인데요. 이번 책 『모범생의 생존법』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버티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 작품 속엔 ‘빠삐용’이 넘쳐 나지만, 현실엔 ‘드가’ 같은 인물이 더 많으니까요. 지금 한국이 입시지옥이라고들 해도 입시천국인 나라는 없고, 그런 역사도 없지요. 지옥에서 꺼내 줄 게 아니라면, 그 속에서 견디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입시와 진로를 소재로 한 이야기지만 시험지 훔치기, 커닝, 친구간의 극한 갈등, 이런 장면은 하나도 안 나오고요, 자살이나 가출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방식의 문제제기가 옳을까 하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MZ세대의 막내인 청소년들한테 〈빠삐용〉 같은 비장한 서사가 안 어울릴 것 같았어요. 요즘 아이들은 소설 속 유빈이처럼 기존 질서를 쿨하게 무시해 버리거든요. 아이들은 이 세계가 불의한 것도 알고, 이런 현실에 타협할 의사도 없어요. 다만 대안이 없으니 버티는 거죠. 어쨌든 견뎌야 어른이 되고, 더 많은 일을 모색할 기회가 주어지니까요.

전작에 대해 “이 소설은 댓글을 다는 심정으로 시작되었다”라고 말하신 적이 있어요. 『모범생의 생존법』은 어떤 마음에서 출발해 쓰기 시작하셨나요?

이 작품도 비슷해요. 두 아이의 입시를 치르면서 수험생 카페에서 활동한 기간이 있었는데요, 한번은 입시에 실패한 친구들을 향해 꽤 긴 글을 써서 올렸어요. 얼굴은 모르지만 몇 년 동안 소통하던 사이잖아요. 불합격을 받은 친구들의 좌절이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제 아이도 겪었고, 저도 거듭된 실패로 허우적거렸던 전적이 있는 데다, 한편으론 승승장구하는 인생이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나이도 되었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았어요. 우울하고 속상해하는 건 오늘까지만 하자고 말했지요. 많은 친구들이 고마워했어요.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이다 보니 아이들이 정서적 위로를 잘 못 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이 시기를 잘 견뎌 보자고 쓴 작품이에요.  

소설 속 아이들이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제각기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작품을 쓰기 전 실제로 학생들을 많이 만나 보셨을 것 같아요. 취재 과정을 조금만 들려주세요.

작가 초청 강연을 다니면서 전국의 많은 청소년들을 만났어요. 답답했던 마음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시원해졌지요. 직접 만나 보니까, 아이들에게는 서열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지 않는 어떤 생동감이 있더라고요. 모두가 명문대를 꿈꿀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요즘 아이들은 꿈도 다양하고, 각자의 꿈을 지지해 주는 어른들도 곁에 있어요. 이게 교육 덕분인지 사회 분위기 덕분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만난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앞으로 쓸 작품들에도 두고두고 영향을 줄 거예요.

하지만 소설에서 문제는 언제나 디테일이죠. 제가 입시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저희 둘째가 18학번이거든요. 몇 년 만에 달라진 부분이 많더라고요. 게다가 올해는 문이과 통합 수능을 치르는 첫 해잖아요. ‘정독실’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일 텐데, 이걸 작품에 써도 괜찮을까 싶었죠. 그런데 조사해 보니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정독실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폐지할 의향도 없어 보여요. 정독실 때문에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요. 아, 세상이 쉽게 안 바뀌는구나, 싶었어요.

그밖에도 요즘 학교 분위기,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소재 등은 딸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딸이 후배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한 결과를 알려 줬지요. 제 딸의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인터뷰에 응해 준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한때 ‘프로아나’였던 하림이는 타인의 시선에 시달리느라 고민이 깊고, 웃음이 많은 유빈이는 SNS에 오가는 소문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요즘의 아이들이 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소설에 무척 잘 녹여 내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하림이 같은 아이들이 꽤 많아요. 부모가 앞장서서 성형수술을 시키고 단식원에 보내기도 해요. 연예인이 되려면 적당한 학벌도 필요하니 입시 학원도 다니고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니 어떤 면에선 명문대가 목표인 아이보다 훨씬 고달프죠. 

어마어마한 스펙을 갖추고도 취업 못 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명문대가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아는 시대가 되었어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여전한 상황에서, 연예인은 ‘계층 상승’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많더라고요. 노선을 그렇게 정하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수순을 밟죠. 대학 가려고 휴대폰 빼앗기고 기숙학원에 가는 것처럼요.

유빈이는 교묘한 폭력의 피해자예요. 여자아이들 외모 순위를 매기고는 SNS에 올려 문제가 된 사례들이 최근에도 계속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외국까지 포함해서요. 학교폭력의 공간이 이제는 SNS까지 확장되었어요. 학폭 가해자가 되면 그 이력이 계속 따라다니거든요. 대학 가기도 어렵게 되고요. 그래서인지 증거가 잡히지 않는 교묘한 방식으로 학교폭력이 진화한 것 같아요.

흔히 ‘모범생’이라고 하면 우등생을 떠올리게 되는데, 작가님의 이번 소설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작가님이 정의하는 ‘모범생’은 어떤 존재인가요?

학교 잘 다니는 학생은 다 모범생 같아요. 이 소설도 그런 관점에서 썼고요. 사실 누군들 드라마틱한 일탈에 대한 욕구가 없겠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마음을 다스리며 본인의 인생을 만들어가요. 어른들의 이해와 지지가 부족할 뿐이죠. 억울한 일도 많고, 나노 단위로 평가당하고 무시당하는 일이 다반사지만 아이들은 참고 등교해요. 과제를 해내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요. 대단하지 않나요? 제 생각인데, 모범생의 사전적 해석도 바뀔 것 같아요. 저라면 성실하게 본인의 미래를 잘 준비하는 학생, 이렇게 정의할 것 같아요.

소설엔 수험생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다양한 매뉴얼이 등장합니다. 그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매뉴얼을 딱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어요? 

‘내 앞에 놓인 일들을 그냥 하기’입니다. 실력은 출중한데 멘탈 관리를 못해서 시험을 망치는 일은 너무 흔하죠. 저도 큰 시험을 앞두면 보름 전쯤부터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불안 때문에요. 그런데 소설에서 준호 아빠가 그러잖아요.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그냥 오늘 할 일을 하라고요.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의 저서를 꽤 읽었는데, ‘오늘 할 일을 하는 것’이 불안과 좌절을 다스리는 데 좋다고 합니다. 실연당해서 우울의 늪에 빠졌을 때, 입시에 낙방했을 때,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을 때도요. 목표가 무너지더라도 밥 차려 먹고, 산책하고, 샤워하는 등의 일상적인 습관은 지키는 게 좋다고 해요.

쉽지는 않겠지만, 마음을 잘 다스려 보자고요. 성적, 등급, 입시 등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거든요. 세상이 나를 5등급, 8등급으로 낙인찍어 틀 안에 구겨 넣더라도 거기에 빨려 들어가지 말아요. 우리 모두는 단순한 등급에 갇힐 존재가 아니거든요.

마지막으로, ‘모범생’이라 불리는 세상의 전교 N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사실 이 말 하려고 소설 썼는데요. 당장 시험 못 봐도 괜찮고, 원하는 대학에 못 가면 다른 길이 또 열립니다. 그 다른 길이 더 근사한 인생을 만들어 줄 수도 있어요.  

인생은 마라톤이잖아요. 내가 지금 전교 N등이라고 영원히 N등인 건 아니거든요. 시험 결과에 우쭐하거나 좌절하는 건 1절만 하자고요. 

나그네는 길을 탓하지 않는답니다. 각자가 만들어 낼 멋진 인생을 위해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맵시다. 시험 보느라 고생했고, 재미도 없고 할 일만 많은 오늘을 견뎌 낸 것도 기특하고 장해요. 오늘을 잘 살아 낸 여러분, 멋져요! 짝짝짝!    




*황영미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수상작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그해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청주, 천안, 포천, 의정부, 전남, 구미, 울산, 제주, 제천, 경남, 양주 등 전국 지자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이 된 바 있다.




모범생의 생존법
모범생의 생존법
황영미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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