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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단편 영화의 완성, 넬의 정규 9집
넬(Nell) <Moments In Between>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음악으로 살아온 1980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은 매번 '넬스러움'이란 고유의 특성 앞에 미사여구를 들여와 도전을 거듭했다. (2021.09.29)
문명사회와 단절되어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하던 영화 <넬(Nell)>(1995)의 주인공처럼 동명의 밴드 넬 역시 그들만의 음악적 어휘로 세상과 소통했다. 초기에 거칠고 과장된 면이 있었음에도 특유의 우울한 정서에 공감하는 팬들은 물론 묵묵히 함께 해온 멤버들과 다져온 유대를 통해 젊은 시절의 응어리는 세련된 모습으로 정제되었다. 22년이란 긴 세월 동안 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와의 '관계'로 귀결된다. 아홉 번째 정규작으로 돌아온 40대의 넬은 관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사이의 순간들'을 탐미한다.
보편적인 콘셉트 앨범이긴 하나 과거에 제시했던 방법론과는 상이하다. 메이저 정규 6집 <Newton's Apple>로 완결 지었던 중력 3부작이 하나의 키워드에서 파생된 영감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흩뿌린데 비해 본작은 기억의 파편들을 차례대로 이어붙여 유기적인 짜임새를 갖춘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동치는 감정 변화의 서사라는 점에서 각각의 곡에 부여한 의미보다 전체가 전하는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어느 때보다 앨범 단위의 청취를 요구하는 만큼 자연스레 글귀에 시선이 집중된다. 한때 그룹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현학적인 노래 제목과 가사는 아니다. 다만 일상의 언어로 써 내려간 노랫말은 그리움이란 파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파랑 주의보'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다 고치겠다며 끝없이 상대를 붙잡는 '말해줘요' 같이 수동적인 입장을 적극 대변한다. 구어체가 전작들의 문체에 비해 평이한 건 사실이나 오히려 그에 뒤따른 빈약함이 쓸쓸함을 배가해 텍스트를 극의 주된 요소로 만든다.
반복과 여백의 미학은 사운드에도 영향을 미친다. 6분 30초 간의 황홀경 '위로 危路'가 리얼 세션과 전자음으로 조밀하게 채운 팝 록 '유희'와 함께 더블 타이틀로 나선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과 불안이 공존하는 '위험한 길'의 풍경은 잔잔한 전자기타를 타고 그려지기 시작한다. 간소한 악기 구성으로 미리 비워둔 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름답구나 그대/아름다워라'를 되뇌는 김종완의 목소리다. 여린 읊조림 한 번의 반향은 미미하지만 도돌이표를 통해 점층적으로 고조된 파동은 현악기와 조우하며 장엄함을 연출하기 이른다.
'위로 危路'와 'Duet'을 기점으로 전반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함을 서서히 실체화하기 시작한다. 작품 구조상 이별은 정해진 결말이었다. 밝은 선율에서 왠지 모를 위태로움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조 진행으로 변모하며 그 묘한 음울함을 극대화한 곡이 바로 'Sober'다. 사랑보다 이별에 능숙한 '내'가 아닌 '우리'를 기억해달란 외침. 스산한 기타 리프가 서로의 온몸에 새겨지는 순간 화자와 청자가 뒤섞이면서 앞선 아홉 곡에도 재해석을 가미해 입체적인 감상의 여지를 남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음악으로 살아온 1980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은 매번 '넬스러움'이란 고유의 특성 앞에 미사여구를 들여와 도전을 거듭했다. 이번 작품에선 덤덤한 대사와 사운드를 최소화한 청각적 미장센을 중심으로 색다른 단편 영화를 완성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 관계와 감정을 노래한 신보의 이야기엔 결말이 있지만 넬의 연대기는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Sober'의 마지막 바램처럼 <Moments In Between>은 대중에게 기억될 만한 분기점으로 자리하며 그룹의 영속성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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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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