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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라우> 거역하고 버티고 저항해서 지켜내다

201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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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장르의 초월 속에서 오래된 규칙을 뛰어넘는 <바쿠라이>의 방식은 낯설지만, 통쾌한 데가 있다. 기존 질서에 무작정 순응하지 않는 정신이 <바쿠라우>를 지탱하는 것이다. (2021.08.26)

영화 <바쿠라우>의 한 장면

세상에 무슨 영화인가 싶다. 스크린에 광활한 서부가 펼쳐지는데 별안간 비행접시 같은 게 출몰하고, 지배 계급의 억압에 맞선 민중의 저항이 주제인 듯한데 장르적 재미가 넘쳐나고, 가까운 미래를 설정하고 있는데 외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제가 뭔 소용이 있나 싶다. 제목은 또 어떤가, ‘바쿠라우 Bacurau’라니, 이 영화에 관해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제목만으로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감도 안 잡히는 것이다. 

극 중 바쿠라우는 브라질 북부에 위치한 외딴 마을이다. 얼마 전까지 구글 맵과 같은 전자 지도에서 검색하면 바로 찾아볼 수 있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바쿠라우 주민들은 현재 고립된 상태다. 물이 끊겨 몰래 조달해오지 않으면 마실 물도, 씻을 물도 사용하기 쉽지 않다. 마을의 경계선이 봉쇄된 까닭에 오토바이가 아니고서는 나갔다가 들어오는 일도 힘들다. 

시장 후보가 선거 운동을 한답시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과 찢어진 책을 기증하면서 투항하라는 걸 보면 바쿠라우 주민들이 지배층의 눈 밖에 나는 일을 한 것 같다. 시장의 제안을 거절한 후부터 영어를 쓰는 용병들이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하나둘 총격을 가한다. 이에 물을 가져오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 수배 중인 젊은 리더 룽가(실베로 페라라)를 중심으로 하나가 된 주민들은 용병은 물론 이들을 고용한 시장을 상대로 피의 복수를 감행한다. 

브라질 영화 <바쿠라우>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201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영화 팬의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경이로운 서부극의 매시업’(Vanity Fair), ‘풍부하고 풍미 좋은 장르 스튜’(Los Angeles Times) 등 장르 교배와, ‘사회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악을 다룬다.’(Haper’s Magazine), ‘피바다로 물드는, 독이 든 우화’(Guardian) 등 정치와 사회와 역사를 아우르는 풍자로 모인다. 

분류하여 소개한 평가와 다르게 <바쿠라우>에서 장르와 풍자는 하나의 맥락에서 폭발력을 갖는다. 서부극은 미국의 개척정신을 긍정한 장르로 시작해 미국 폭력의 역사를 폭로하는 수정주의로 진화하였다. <바쿠라우>는 서부극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모두 반영하면서 이를 브라질의 지역적 특성에 맞게 변주한다. 브라질 지배 계급의 억압과 수탈로 폭력이 난무하는 서부 배경 속에 주민들의 저항을 자기 땅을 지킨 일종의 개척 정신으로 의미 부여한다. 

사실 바쿠라우는 영화를 위해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줄리아누 도르넬리스 공동감독이 가상으로 설정한 마을이다. 모티브로 삼은 곳은 브라질 북동부의 빈민 지역인 ‘세르타오 Sertão ‘다. 가난과 빈부격차 등 부정적 편견으로 가득 찬 이곳은 실제로는 사회에서 소외된 마을 사람들이 인종과 민족의 차이를 넘어선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다양성을 지킨 것으로 알려진다. 

영화 속 바쿠라우 또한 남녀노소가 어우러져 땅을 일구고 지킬 뿐 아니라 역사박물관을 운영할 정도로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특히 이 박물관에는 그동안 외부 세력으로부터 마을을 지킨 민초들의 저항의 역사가 담긴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는 모든 시간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는 영화가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 그러니까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바쿠라우> 공식 포스터

질긴 생명력을 지닌 잡초 같은 민중의 저력은 <바쿠라우>가 중요하게 참조한 세르타오에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방역 지침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브라질의 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독단적 행태에 관해 브라질 시민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오른 상태다. 극우 대통령으로 악명 높은 보우소나루를 향한 시민들의 저항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민중의 피를 빨아 지배 계급의 배를 불리는 행태는 브라질뿐 아니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외부의 지원으로 나라를 통치하며 독재자로 군림하는 이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세계의 축소판처럼 <바쿠라우>는 열강이 개입한 식민주의, 한 사회 안에서 목격할 수 있는 지역 간 불균형, 이념과 주의의 충돌로 벌어지는 세력 다툼 등 과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행되고 있는 불공정과 불평등을 브라질의 특수성을 넘어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한다. 

신자유주의하에 비슷한 형태로 전 세계의 민중이 신음하는 상황에서 <바쿠라우>의 결말은 가해와 피해의 위치를 전복하여 지배 계급과 부조리한 통치 시스템을 향한 처벌의 방식으로 짜릿함을 선사한다. 힘없고 약해 보이기만 했던 주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시장 후보는 물론 그에 협력하는 이들을 응징하는 풍경은 호러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기저기 넘쳐나는 피의 흔적 때문에 주술적인 의식의 과시로 다가온다. 

드론으로 밝혀지는 비행접시 등 첨단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는 바쿠라우 주민들의 저항에는 초자연적인 힘이 감지된다. 주체성을 가지고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열의가 이들의 미래를 긍정하게 한다. 미국에서 발명된 장르는 주어진 틀 안에서 전개되는 특징이 있다. 어느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장르의 초월 속에서 오래된 규칙을 뛰어넘는 <바쿠라우>의 방식은 낯설지만, 통쾌한 데가 있다. 기존 질서에 무작정 순응하지 않는 정신이 <바쿠라우>를 지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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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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