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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 귀퉁이를 내어주는 어느 검사의 이야기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정명원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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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세상이 지향해야 할 완전무결함이나, 거악 척결 등 거대한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늘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검찰청 한 귀퉁이에 기록으로 실려 오는 수많은 인간 군상과, 때론 ‘웃프고’ 때론 애잔하게 저자를 심적으로 괴롭히고 보람을 느끼게 했던 사연들을 이 책에 담았다. (2021.08.20)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은 현재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 부부장으로 재직 중인 16년 차 여성 검사 정명원이 쓴 첫 책이다. 저자는 검사라는 직업이 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차갑고 공격적이고 조직 논리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실상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검사들은 특수부·공안부 검사 들일 뿐이며 이들은 대한민국 전체 검사 중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나머지 90%인 형사부·공판부 소속의, 야근 많고 재판 도중 울기도 하고 민원인과 좌충우돌하기도 하는 ‘비주류’이자 ‘회사원’ 검사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에 나오는 검사님의 ‘외곽주의자 선언’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어요. ‘중심’을 향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검사는 ‘의욕 없는 검사’로 평가된다는 게 너무 서글펐는데요, 검사 세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다 그런 분위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도 검사님처럼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지론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요?

아주 오래 고민하고 흔들리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그 어느 곳보다 ‘중심의 질서’가 명확한 사회잖아요. 서울, 강남, SKY 대학, 대검, 중앙지검 특수부…. 중심을 향해 형성되는 물결이 거센 곳일수록 그곳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면 자기중심이 확실해야 해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무엇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내 머리로 생각해서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모두가 A가 최고라고 말할 때, ‘정말 그런가, 나도 그런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나만의 생각, 나만의 기질을 세상의 질서보다 존중해주겠다는 다소간의 고집이 필요한 것 같아요. 

책에는 쓰지 않으셨지만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담당 검사로 해당 사건의 진실을 밝히시는 데 큰 활약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모두 공개하긴 어려우시겠지만 혹시 해당 재판을 준비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기억에 남았던 것들이 있으실까요? 

거의 아침 10시부터 자정까지 5일간 꼬박 진행되었던 재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참여재판 중 최장기 재판이라고도 하는데요, 사건 자체도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당시 언론의 관심도 워낙 뜨거워서 재판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많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재판에 들어가 있는 5일 동안에는 정말 사건과 재판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오직 사건과 나와 배심원만 존재하는 듯한 몰입의 경험은 이후 제가 국민참여재판에 매력을 느끼고 전문화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 밤 11시경에야 선고가 났는데, 재판이 끝나고 거의 탈진 상태에 있던 배심원들의 표정이 오래 기억이 남아요. 그분들로서도 너무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어렵게 결정한 순간이었겠지요. 배심원들의 그 순간까지를 이끌어오는 것이 검사의 역할이라는 것이 뿌듯하고도 뭉클했습니다. 

책에 ‘울보검사’인 후배분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는데요, 검사님도 눈물을 참아보신 적까지는 있을 것 같은데 울보검사님처럼 재판하시다가 결국 못 참고 뚝뚝 흘려보신 경험이 있으실까요?

가공된 이야기가 아닌 실제 있었던 비극적인 일들이 가장 집약적으로 펼쳐지는 곳이 형사법정이 아닐까 합니다. 비교적 무거운 죄들을 다루게 되는 합의부 재판을 많이 담당했는데요, 합의부 재판 중에 아주 많은 죄명이 살인입니다. 재판은 검사가 ‘공소사실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어떤 날은 누가 누구의 생명을 어떻게 빼앗았는지를 연속으로 몇 사건이나 ‘낭독’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비록 글로 된 공소사실을 낭독하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의 생이 끝나는 순간을 거듭 읽다 보면 내 안에 어떤 슬픔이나 서글픔이 쌓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검사의 아이템_찢어진 골무

‘검사의 보자기’, ‘검사의 캐비닛’ 같은 ‘검사템’에 관한 얘기도 흥미로웠어요. 이 두 가지 외에 검사들만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든지, ‘템 빨’을 보유하고 계신 검사님만의 특별한 물건이 있으실까요?

검사들이 가장 애정하는 검사템은 ‘골무’입니다. 지금도 제 오른손 엄지손가락에는 초록색 골무가 끼워져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종이로 된 서류를 가장 많이 보는 직업 중 하나가 검사가 아닌가 합니다. 종이 기록을 수없이 넘겨야 하기 때문에 검사들은 대부분 골무를 손가락에 끼고 일합니다. 하루 종일 골무를 끼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대로 골무를 낀 채 퇴근하는 경우도 있고요, 주머니에서 골무가 여러 개 발견되기도 합니다. 언젠가 노래방에서 주머니에 있던 골무를 꺼내서 끼고 노래방책을 넘기는 검사를 본 적도 있어요. 자신의 취향과 손가락 사이즈에 맞는 골무를 고르는 것이 중요해요. 검사가 비장한 표정으로 골무를 다잡아 낄 때, 지금부터 사건 한번 제대로 파보겠다는 뜻입니다. 

많은 여성 독자분이 책의 〈딥 블루 레이디를 위하여〉나 〈범죄의 평준화〉처럼 여성이 겪는 부조리함에 관한 글에 공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남성문화’가 가장 뚜렷한 검사 세계에서, 여성 검사로서 버티기도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16년간 한 자리에 계실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눈에 보이는 공식적인 차별들은 많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지만 정말 여성들의 삶을 위축되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게 깔려 있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검찰 역시 남성중심 문화가 지배하는 대표적인 조직으로 꼽혀 온 것이 사실이지요. 과거에 여성 검사가 정말 극소수로 존재하던 시절에는 여성 검사가 조사하는 것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지금은 여성 검사의 수가 늘어가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여성검사들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조직의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변화의 속도가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화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딥블루 레이디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변화는 더욱 빨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책의 첫 글인 〈털 있는 것들의 비극〉 글을 보며 사람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법조인들에 의해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경계하시는 검사님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검사님처럼 십수 년을 변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분들이 많다면 뉴스를 보면서도 허탈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검사가 되어 자괴감이 드셨던 적이나 후회하셨던 적이 있으실까요?

신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진실의 세계는 확신을 할 수가 없어요. 최선을 다해 진실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것뿐이지요. 그러다보니 내가 내어 놓는 답이 맞는 것일까 늘 두려워요. 또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누군가는 만족하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하기 마련이지요. 늘 정말 그것이 최선이냐고 추궁당하는 자리에 있다고 할까요. 그런 추궁을 감내해 내는 일이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끝도 없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는 민원 앞에 가끔은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글인〈그리고 금속 탐지기가 남았다〉에서 보면, 스위스 여행 중에 잃어버린 남편분의 핸드폰을 금속 탐지기로 찾다가 포기하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언젠가 다시 찾으러 가실 계획이 있으신지, 혹시 후속작도 쓰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남편은 벌써 눈이 녹은 알프스에 휴대폰을 찾으러 갔을 겁니다. 결국 휴대폰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고요 첫 번째 책을 내면서 검사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가 어떤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었어요. 또 검사로 일하고 있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어디까지 괜찮은 것일까에 대한 고민도 컸고요. 그에 대한 답을 지금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방금 나온 첫 책의 진동이 가라앉고 나면 찬찬히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이야기를 해도 좋을지,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정명원

2006년부터 지금까지 16년째 검사로 일하고 있다. 대구에 살고, 대구 인근 지역 근무를 줄기차게 희망한 결과 ‘신라검사’라고 불린다. 줄곧 형사부에서 금융·조세·환경·식품·소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담을 아우르며 ‘통상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나 특출한 실적 없음’ 검사로 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자신 안에 있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고 국민참여재판 전문 검사로 활약하고 있다. 특수부, 공안부만이 중심인 것처럼 보이는 대한민국 검찰에서 행복한 형사부, 공판부 검사를 꿈꾸며 지금도 2006년식 법복을 걸치고 법정에 나간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정명원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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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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