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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수 “왜 소설 쓰냐고요? 게임만큼 즐거워서요”

『제레나폴리스』 조선수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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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동안, 몸은 일상사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자유로운 한때를 만끽합니다. 더 늦기 전에 나는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존감과 더불어, 아마도 게임하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같을 거예요. (2021.02.23)


‘제레나폴리스’는 ‘초록색이 되다’라는 뜻의 제레나zelenat에 도시 국가를 의미하는 폴리스polis를 붙여 만든 단어다. 우리가 마침내 당도한 이 낯선 초록의 세계는 간결하면서도 정밀하다. 소설이 한 세계를 만들 때 그 바탕은 무궁무진하다. 환상과 현실이 조우해 새로운 거울 세계를 만들어내는 경우, 그 거울이 비추는 장면은 무엇일까?

조선수 작가는 엉겅퀴, 고양이, 낙선작 등 자신이 만질 수 있는 것들과 불면, 중독, 맛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요소들을 모아 ‘제레나폴리스’를 지었다. 국적을 가늠할 수 없는 배경과 간결한 문장으로 제조해낸 풍경 속의 인물들은 현대인의 그림자를 모아 꿰매놓은 것처럼 무기력하거나 수다스럽거나 활기차거나 침울하고, 이들의 삶에는 누구나 가진 숨겨진 조각들이 존재한다. 틀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모호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세계에는 우리와 닮은 이들이 구석구석 살고 있다. 살아 숨 쉬는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 갑작스레 찾아온 균열과 여백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의 타자들의 가려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201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셨어요.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의 소설은 한 사람에 대한 오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한밤중에 슬그머니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첫 소설을 썼습니다. 식구들이 깰까 봐 조심조심 화장실 발판에 앉아서 쓰기도 했어요. 이틀 밤을 새운 적도 있었어요. 입에 붙어 있는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낱말이 적확한지 모르겠어서 사전을 찾아가며 단어들의 먼지를 탈탈 털어가며 한 문장 한 문장 썼습니다. 머릿속에서 샘솟던 이야기를 막상 글로 옮기려니 필력이 전무한 상태에서는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둑새벽이 되었어요. 어느 순간 한 사람을 잊어버리고, 저 자신마저 잊어버리는 지점에 달했어요. 그때 나에서 탈피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전의 나와 글을 쓰는 나는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느낌이 어렴풋이 좋았어요. 

오기에서 비롯된 글쓰기였지만 돌이켜보면 뭔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자신이 송두리째 잠식될 것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십구 일이 지나서 첫 소설인 「클릭」을 썼습니다. 매 순간 죽음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쓰다 결국 새로운 기억(소설 속 인물의 죽음)을 만들어낸 셈이었습니다.



『제레나폴리스는』 등단하고 5년 만에 나오는 첫 소설집이에요. 그동안 여러 잡지에 소설과 에세이를 기고하시며 작업을 이어가셨는데, 작가님께서 이 시간 동안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게 했던 ‘글 쓰는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요?

잠시 미국에 살았을 때, 쿠폰이란 말을 처음 듣곤 그 단어가 참 신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둔 쿠폰을 계산대에 내미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공기, 비, 눈처럼 우리말은 프리 쿠폰입니다. 무료인 단어를 무한정으로 사용하여 새로운 세계로 다가간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것이 가장 귀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뭔가를 쓰기 시작한 후부터 세상에서 가장 흔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중 제일은 단어였고요. 단어를 무한정으로 쓰면서 새 세계를 만드는 즐거움이 있었죠.

그렇게 소설을 써나가던 중에 어느 날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요즘 취미로 옷 만드는 걸 배우는 중인데, 재단하는 것부터 바느질까지 해야 할 게 끝이 없고 바늘귀가 안 보여서 힘들어.” 제가 한마디 했죠. “옷을 만들어 팔 것도 아니잖아. 옷감이랑 부자재 값을 따져보면 사 입는 게 더 쌀 텐데. 시력도 나빠지는 것 같다며 왜 힘들게 바느질을 하니?” 그랬더니 친구가 대뜸 반문했어요. “1~2만 원이면 저명한 작가의 소설책을 살 수 있는데 넌 소설을 쓴답시고 왜 그러고 사는데?” 

잠시 멍했죠. 내 눈치를 살피더니 친구는 부연했어요. “네 말대로 옷은 사는 게 더 싸다. 내 손으로 만들고 싶어서 더 늦기 전에 시도하는 거지, 난 원래 고생을 사서 하는 편이잖아 너도 마찬가지고.” 

조곤조곤한 친구의 말에 순간 느꼈어요. 고생을 즐기며 한다면 정말 예술이 될 텐데……. 제 소설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도, 한 작품을 마치고 잠시 맛보는 그 뿌듯함이란! 글을 쓰는 동안, 몸은 일상사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자유로운 한때를 만끽합니다. 더 늦기 전에 나는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존감과 더불어, 아마도 게임하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같을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간 작가님의 세계를 담은 첫 소설집, 『제레나폴리스』는 어떤 내용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물과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테면 마저럼이라는 향신료가 있는데요. 이 마저럼은 방부제처럼 관에 넣는 용도로도 쓰이고 결혼식과 장례식을 장식하는 꽃으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심지어 고기를 재울 때 냄새를 잡아줍니다. 음식에 마저럼을 더하면 문득 행복해져요. 그런 쏠쏠함으로 소소한 세계에 대한 열망을 담았습니다.

표제작이자 등단작인 「제레나폴리스」의 주상복합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메이’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어요. 주인 없는 공간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기생충>이 생각나기도 했고요. 이 인물이 불러오는 긴장과 파국이 흥미로운데요, 작가님은 이 인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메이는 양순한 사람이었어요. 직업에 대한 편견도 없었어요. 그런 메이가 차츰 변해가죠. 3707호와 자신이 사는 데를 은연중에 비교하고, 드러내진 않지만 고양이를 질투하게 돼요. 왜 그럴까요? 제레나폴리스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주택에서 살았다면 볼 수 없는 장면을 아파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죠. 옆집에서 텔레비전을 바꾸었구나, 차를 새로 구입했구나 등등. 하지만 그 이면은 모르는 거죠. 3707호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그 집을 사준 거나 다름없죠. 자신들은 그 집을 소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물질적인 것에 대한 단순 비교가 아니라, 그로 인한 선택의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3707호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주인 여자가 주는 양주를 집에 가져가지 않았다면, 고양이를 잘 살펴보았다면……. 후회는 끝이 없고 죽을 때까지 해야 다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하지만 메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있으니 다시 다른 선택을 해야 하겠지요. 3707호에 새로운 고양이가 들어온다면, 엄마가 죽었어도 살아남았으니까, 그 집에서 계속 일할까요? 메이의 행방을 생각하면 또 다른 타워에 갇힌 듯해 안타깝습니다.



정은경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집에 대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의 타자”가 존재하며, “조선수 작품 속 익숙한 풍경의 구석에 놓인 낯선 존재들은 우리들의 익숙함과 평범함을 비웃듯 오점으로 치부된 그들의 실존을 명백하게 증언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렇듯 작가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공간은 대개 익숙한 일상의 풍경인데, 이런 배경과 상황에서 소설적인 순간을 어떻게 착안하시는지요?

주로 식탁에서 밤늦게 글을 씁니다. 잠자는 방에서는 글이 안 써지고 책상이 있는 방에서도 집중이 안 되는데 이상하게도 식탁에선 사뭇 손가락이 움직입니다. 식탁에서 식사하고 그 자리에서 씁니다. 된장찌개를 끓이다가 양파를 썰다가 뭔가가 떠오르면 얼른 받아 적고 차차로 그걸 확장하여 이야기를 끓입니다. 영어로 정물화를 스틸 라이프Still Life라고 하잖아요. 명화 해설에서 그 단어를 보았을 때 아, 하는 탄성이 나왔어요. 화가는 딱 그 순간을 포착한 거죠. 저는 배추를 썰 때에도 제각각 다른 모양을 내는 걸 좋아해요. 정물화를 지긋이 바라보면 그 화가만의 고유한 표적이 보여요. 

소설을 잘 쓰고 싶다. 꿈을 품은 제 머릿속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감흥이나 기분에 의해 소설적인 스틸 라이프를 점찍는 듯해요. 한순간 사람이 사물 같고 사물이 사람 같을 때가 있어요. 그때 그 인물이 문장 속으로 들어오고 그 사물이 조사 옆에 자리하게 되죠. 소설은 단어들의 정물화입니다. 관심이 있으면 보이게 마련인가요?

『제레나폴리스』를 쓰며 가장 좋았던 인물이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마저럼」을 좋아합니다. 최수용이란 인물을 좋아합니다. 그의 종이를 찢는 버릇은 저를 닮았습니다. 빗물에 젖은 종이 쪼가리들이 길바닥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듯했던 그의 존재감은 대책 없이 사표를 내는 지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자잘한 걱정을 달고 사는 인물이었지만 차츰 자신의 꿈을 되찾으려고 합니다. 

저는 본래 앞날을 미리미리 걱정하는 편이었어요. 종이를 찢는 버릇은 매사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종이를 만지는 걸 좋아하는 데에서 비롯되죠. 최수용에게 그걸 부여하고부터 종이를 찢던 제 버릇이 슬그머니 사라졌어요. 그의 앞날을 걱정하다가 그리 된 듯합니다.

「마저럼」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꿈입니다. 이루지 못할 꿈, 이룬 꿈, 이루어야 할 꿈 등등. 그런데 사람마다 꾸는 그 꿈이 다 다르잖아요. 수박이 될 수도 있고, 냄새일 수도 있고, 황금이 될 수도 있고, 지금처럼 사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최수용이 사표를 낼 때 마주한 부장의 웃음. 얼핏 비웃음 같았지만 그냥 그 자리가 멋쩍어서 한번 웃어주는 듯했어요. 그 웃음이 최수용을 내내 따라다녀요. 앞으로 그의 대책 없는 나날은 어찌 될까? 꿈을 찾을까? 그 꿈을 찾으려면 걱정을 달고 사는 일은 포기해야겠죠. 식칼로 툭툭 오이를 자잘하게 썰다가 상상력을 발현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걸 꿈과 연결할지도 모르지요. 아마도 최수용은 무언가를 손수 만드는 작업에서 그 실마리를 모색할 가능성이 큽니다.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혔으면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도 말씀해주세요.

프랜 레보위츠의 말을 빌리면 최악의 책은 읽다가 그 책을 읽는 걸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제발 제 책을 읽다 잊어버리지 않기를! 독자들이 『제레나폴리스』를 읽다가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을 단 한 줄이라도 발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어떤 극적인 상황이나 정서에 기대지 않고 인물과 사건의 심리를 묘사하는, 일견 마술적 리얼리즘이 떠오르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쓰고 싶습니다. 탤런트 성동일은 자기 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연기가 매번 변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처럼 제 스타일은 지니고 있으면서 제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이 작가가 그 작가인가?’를 의아해할 만치 매 소설마다 달라지는 소설가가 되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밥하는 일에 과하게 익숙해졌어요. 다음 작품으로 ‘럭 캐리어’라는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미뤘는데요, 이 작업을 끝마쳐야 비로소 작가로서 변신을 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겐 일종의 부채 같은 소설이라 그 빚을 갚아야지 시작하다 만 이야기에게 부끄럽지 않을 겁니다.



* 조선수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201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제레나폴리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제레나폴리스
제레나폴리스
조선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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