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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노스탤지어에 대한 뜨거운 안녕

기린 <The 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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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되지 않은 형태의 순수를 전파하는 <The Town> 또한 소통의 매개체로서 기억에 남을 확률이 높다.(2020.12.01)

기린이 복각해낸 과거는 한낱 모형으로 그치지 않았다. 시티팝으로 시작돼 디스코까지 흘러간 복고의 흐름 중에서도 그가 유독 돋보이는 것은 본격적으로 유행이 시작되기 이전인 2011년도 발매한 첫 앨범 <그대여 이제>부터 뚜렷하게 드러낸 지향점 때문이다. 뉴잭스윙을 중심으로 고증해낸 당대의 감각은 찰나의 번뜩임으로 끝나지 않았고, 다양한 작업물을 거치며 확장한 그의 영역과 함께 '기린'이란 이름을 고유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은퇴를 선언한다. 아쉽지만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며, 1990년대도 앞자리의 숫자가 바뀐 밀레니엄을 앞둔다. 낭만이 가득 찼던 세대에 대한 그의 존중도 이제는 이별을 맞이할 차례다. 사랑해 마지않던 노스탤지어에 대한 뜨거운 안녕. 기린의 세 번째 정규 앨범 <The Town>이다.

'사치'는 기린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이다. 월세 벌기도 바빠 연애조차 사치가 되는 현대 청년의 고민을 올드스쿨 힙합을 기반으로 한 과거시제로 물들이며, 시대를 관통하는 교차점을 통해 공감의 여지를 만들어낸다. 래퍼 리오 케이코아(Leo kekoa)가 머물렀던 힙합 듀오 2MC가 1999년 발표한 'Fantasy'의 후렴구를 따온 동명의 곡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그때의 감성을 가져오는 것에 멈추지 않고 현재로 시점을 옮겨 가공하기에 음악은 세련되게 재생된다.

동시에 세세하다. '안돼'에서 녹음한 음성 내레이션과 'I belong to you'의 '송승헌 눈썹보다 더'란 가사, '어떡해'에서 민영이 대희를 찾기 위해 집으로 전화하는 방식 등 디테일한 시대적 해석은 그의 시각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는 확고하게 뼈대를 잡은 기린의 기획력을 구현해 낸 브론즈와 디제이 유누 등 프로듀서 진의 힘이 크며, 충실한 재현을 바탕으로 드비타를 비롯한 개성 강한 참여 진도 흔들리지 않고 콘셉트에 녹아든다.

프로듀서 모과(Mogwaa)와 함께 한 'Town now'는 이정현의 '와' 등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세기말 분위기를 꺼내온다. 미완성이었던 당시의 테크노 장르를 더 완벽하게 갖춰낸 보코더와 전자음의 반복은 'Step to you'와 박문치가 편곡한 '버스 안에서' 등으로 발현되는 앨범의 따뜻한 정서와 다소 어긋나지만, 마지막 트랙이자 마스타 우, 원타임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초반 힙합 넘버 'Puff Daehee Intro: The Message'로 이어지며 기린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암시한다.

이렇게 기린이 제공한 추억이 막을 내린다. 다만 음악 플레이어의 발전 속에서도 라디오가 사연을 타고 아직 개인의 마음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변형되지 않은 형태의 순수를 전파하는 <The Town> 또한 소통의 매개체로서 기억에 남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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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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