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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당신을 격렬비열도로 초대합니다”

『(함께 가요, 함께 가꿔요, 함께 지켜요) 격렬비열도』 김정섭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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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비열도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가치, 전통미와 현대미가 공존하는 예술 섬이라고 할까요. (2020.10.20)



격렬비열도는 관광, 환경, 생태, 어족과 광물자원, 안보 측면에서 골고루 가치가 높아요. 뱃길만 열리면 섬을 직접 보고 의미를 되새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보물섬’입니다. 동해의 지존이 독도라면 서해의 지존은 단연 격렬비열도죠. 

물(서해)의 끝에 있어 예로부터 ‘물치’라고 불렸던 섬, 격렬비열도는 그 옛 이름처럼 서해의 최서단 무인도다. 제주도보다 탄생 역사가 오래되었고 가거도보다 중국과 가까운 이 섬에는 새벽이면 산둥반도의 닭 울음이 들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만큼 중국 어선의 불법 어획과 밀입국이 횡행하고 중국 정부가 인근 해역에 대해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중국인들이 이곳 어장을 장악하고자 섬을 매입하려고 했던 비사가 있다. 

하지만 격렬비열도 해역이 항상 갈등의 중심지인 것만은 아니다. 이곳은 오랜 한중 문화 교류사의 주 무대였고 그에 따라 숨은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환황해권(環黃海權)의 중심에 위치한 격렬비열도의 의미와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고조되는 추세다. 기자 출신의 대중문화예술 연구자가 섬의 문화, 관광, 역사, 생태, 안보 콘텐츠를 민속지학 방법으로 채록, 검증하고 심층 분석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김정섭 선생님의 『격렬비열도』를 통해 섬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독자들도 많을 듯합니다. 격렬비열도가 어떤 섬인지, 간단한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는 암초를 포함해 모두 열두 개로 이뤄진 섬입니다. 이름의 의미는 ‘격렬하고 비열한 섬’은 물론 아니고요. ‘새들이 대열을 지어 날아가듯(格列飛) 늘어선 섬(列島)’이라는 뜻이에요. 7000만 년 전에 화산 분출로 생겨났다고 하니 제주도보다 역사가 깊지요. 기이한 절벽과 암석이 예술품처럼 섬을 둘러싼 천혜의 비경이 일품입니다. 감성돔, 참돔, 농어, 광어, 조기 등이 풍성한 황금 어장이자 난대 식물의 북방 한계선이기도 합니다. 

섬 앞바다는 고려와 조선 시대 내내 한중 외교와 교역의 핵심 경로였습니다. 동시에 경상, 전라, 충청의 세금을 수도로 운송하던 험준한 조운로였지요. 2012년과 2015년에 중국인들이 조선족을 앞세워 최서단의 서격렬비도를 매입하려고 한 일, 이 섬에서 열린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중국이 발끈하며 견제한 일, 중국 어선들의 무단 침투로 어로 전쟁이 격하게 벌어진 일, 태안과 중국을 직통하는 밀입국 통로가 되어온 치안 현실 등으로 인해 ‘서해 수호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관광, 환경, 생태, 어족과 광물자원, 안보 측면에서 골고루 가치가 높아요. 뱃길만 열리면 직접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보물섬’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박정대 시인의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2001, 민음사)를 통해 이 섬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셨는데요. 선생님도 ‘문학소년’ 출신이라 들었는데, 혹시 격렬비열도와 관련해서 추억담이 있으실까요? 

초중고교 시절 시와 에세이를 많이 쓰고 상도 많이 받으며 문재(文才)를 인정받아서인지 한때 시인(詩人)을 꿈꾸었어요. 그런데 군사정권 때 청소년기를 보내며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코자 망설임 없이 기자로 진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풋풋한 감성과 온유한 서정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어 군 복무를 할 때 상급 부대의 잔류 요구를 뿌리치고 바닷가 가장 말단 부대인 서산, 태안, 당진의 해안 부대로 갔어요. 그러면서 격렬비열도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작전지역이 아니라서 갈 수 없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뜻대로 기자가 되어 15년간 팩트와 논리를 다투며 살았지요. 결핍되는 듯한 심적 여유와 정서를 시와 에세이로 채우고는 했는데, 어느 날 질문하신 대로 박정대 시인의 시집이 눈에 들어왔어요. 시인은 이 섬을 ‘사랑의 망명지’로 노래했는데 저에게는 오로라가 찬란한 북극처럼 꼭 가야 할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속에 응축해 둔 동경과 갈망을 원동력으로 삼아 2년간 이 섬을 탐구하고 사진도 찍으며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격렬비열도가 매력적인 섬인 건 맞지만, 동해의 독도나 남해의 마라도만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격렬비열도를 연구하실 때 자료가 부족하다든가 해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셨는지요? 

외딴 무인도인 만큼 확실히 자료가 많지 않아요. 국회도서관 등에서 각종 연구서부터 시작해 조선왕조실록까지 뒤져 보았습니다. 해양경찰청과 군산해경, 국방부와 해군본부 등에 정보공개 청구도 넣어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자료는 구하지 못했어요. 지금 제 직업은 대학교수인데 강의가 없는 날이면 종종 서울에서 태안까지 내려가 태안군청이나 태안군립도서관 등을 찾았지요. 태안군립도서관에 장서나 자료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군지(郡誌)와 지역 신문을 뒤지며 자투리 정보를 찾고 있자니 도서관 사서분들이 나서서 자료 복사를 도와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답은 ‘현장’에 있음을 깨달았죠. 어렵게 수집한 정보의 조각들을 갖고 안면도, 가의도, 격렬비열도를 찾아 섬 어르신들의 구술을 모으고 확인 작업을 거치며 유의미한 정보로 격상시켰습니다. 안면도를 서너 번째로 찾았던 날이 기억나는데요. 마침 안면읍 사무소에서 이장 회의가 열리던 참이라 한자리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책을 쓰면서 ‘민속지학 방법’으로 직접 섬을 탐방하기도 하셨는데요. 그러는 과정에서 어떤 인상 깊은 해프닝 같은 일이 있으셨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군 생활을 이 근처에서 한지라 태안 지리는 낯설지 않습니다. 다만 처음에 태안을 찾았을 때 이곳 분들의 반응이 좀 싸늘했어요. 군청 공무원들부터 마을 어르신들까지 “외지 사람이 왜 여길 오셨시유?”, “가기 힘든 섬인데 어떻게 연구를 해유?”라는 반응들이었죠. 기초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나서 흥신소 직원처럼 끈질기게 섬을 관할하는 태안군청과 안면읍 사무소, 안면읍의 마을들을 돌았죠. 그랬더니 점차 낯이 익으며 말문을 열고 도와주시는 거예요. 가령 가세로 태안 군수님도 제 진의를 아시고 탐방용 배편을 지원해 주셨지요. 그렇게 얻은 배편도 짙은 해무, 높은 파고와 풍랑, 태풍으로 네 차례나 연기된 끝에 겨우 출항했습니다. 그때 ‘하늘이 허락해야 갈 수 있는 섬’이라는 말을 실감했죠. 

그리고 해프닝까지는 아니지만 1978년 겨울 동격렬비도에서 큰 조난 사건이 있었어요. 무인도에서 약초를 캐던 사람들이 엄동설한에 갇혀 44일간 조난당한 일인데 당시에도 큰 사건이었지요. 그때의 진상이 궁금해 사건 관계자들을 수소문했는데 대부분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우연히 찾아뵌 당시 선장님은 42년이나 흘렀는데도 죄의식에 트라우마를 앓고 계셔서 가슴이 아팠어요. 

독자들 입장에서 격렬비열도라는 섬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이 섬에 가본 이들은 일부 공무원, 낚시꾼, 사진가, 스킨 스쿠버, 카야커(kayaker) 등 소수에 불과합니다. 정부나 중앙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섬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섬을 오가는 여객선이나 유람선 등의 정기 노선이 없어요. 이 섬은 문명사적으로 환황해권의 중심 해역으로 공해에서 불과 22킬로미터 떨어진 우리 영해 기점 중에 하나입니다. 동해의 지존이 독도라면 서해의 지존은 단연 격렬비열도죠. 어족과 광물자원이 풍부해 어업권과 해양자원 보호 및 해난 사고 방지를 위한 선박 피항지(避港地)로서도 중요합니다. 안전한 조업과 항해를 염원하는 ‘용굴 설화’나 전통 어로법 등 전통문화가 온존하고요. 시인들의 판타지가 이입되어 ‘로맨스 섬’으로 재창조된 것도 대중의 호기심과 감성을 자극할 만한 요소죠.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가치, 전통미와 현대미가 공존하는 예술 섬이라고 할까요. 이미 논의가 진행되는 중이지만 격렬비열도를 국유화하고 섬에 환경친화적인 국가관리 연안항을 만들고 문화와 생태에 초점을 둔 스토리텔링이 가미된다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섬이 될 것입니다. 

책에서 섬의 비경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셨지만, 책에 쓰는 것과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게 또 다를 듯해 한 번 여쭤봅니다. 격렬비열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섬의 비경은 신선이 흥취에 겨워 홀연 그려낸 산수화 같습니다. 봄에는 동백꽃과 유채꽃이 절경이고, 여름이면 우거진 산록이, 가을과 겨울에는 각종 철새와 청정한 바람이 매력입니다. 섬의 지세는 멸종 위기종 군락 등 다양한 수목과 화초가 분포하는 산등성이를 둘러 주상절리, 해식애, 해식동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바닷속에는 희귀 동물을 비롯해 살진 고기 떼가 어부를 유혹하고 물 위에는 괭이갈매기 떼가 파도를 타고 춤춥니다. 주요 세 개 섬 중에 동격렬비도는 나무와 풀이 우거진 짙푸른 ‘생태 섬’이고요. 북격렬비도는 동백꽃과 유채꽃이 철에 따라 만개하는 ‘꽃 등대섬’입니다.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서격렬비도는 한반도의 서쪽 주춧돌처럼 묵직한 ‘터 잡이 암반 섬’이죠. 모두 계절, 파도, 햇빛, 달빛, 해무, 눈(雪)의 양에 따라 아름다움의 결이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향후 격렬비열도와 관계된 계획이 있으시다면 마지막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두 가지 의미 있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먼저 격렬비열도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뱃길을 열고 항구를 만들어 섬을 문화적, 생태적으로 가꾸고 지키는 캠페인을 전개하려고 해요. 학자, 예술가, 기업인 등 참여하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다음으로 이미 잠깐 말씀드렸지만 1978년 한겨울 ‘44일간의 서격렬비도 조난 사건’을 멋진 블록버스터 영화, 웹툰, 북툰 등으로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고 싶습니다. 이 사건은 감동의 깊이와 극적 가치가 남달라 제가 매우 철저하게 취재해 책에 기록해 두었어요. 이야기를 끌어가는 서사의 힘과 극적 반전이 매력적인 희귀 실화라고 할까요. 콘텐츠 제작에 관심 많은 대중문화예술 연구자로서 자연스레 극적 상상을 가미하며 영화 시나리오도 한 편 썼습니다. 투자가 마무리되면 매력적인 배우들과 촬영도 하고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많은 분들께 충격, 반전, 휴머니즘이 있는 감동 영상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영화 제작이 실현되도록 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관심과 사랑, 감사합니다. 



* 김정섭 

충남 서산·태안·당진 해안 부대에서 현역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대학원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로 문화예술정책,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아티스트 경영을 연구한다. 문화예술의 미개척 분야 탐구와 통섭에 집중해 『한국 대중문화 예술사』, 『케이컬처 시대의 배우 경영학』, 『명품배우 만들기 스페셜 컨설팅』,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고 마는 걸까』(로맨스 심리학), 『한국 방송 엔터테인먼트 산업 리포트』, 『협동조합: 성공과 실패의 비밀』 등 저서와 역서 『할리우드 에이전트』를 펴냈다. 학계 입문 전에는 ≪경향신문≫ 정치·경제·사회·문화·미디어·기획취재부 기자로 15년간 일했다.




격렬비열도
격렬비열도
김정섭 저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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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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