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만남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품고 있죠”
『여름의 빌라』 백수린 저자 인터뷰
4년 동안 마음을 다해 쓴 소설들을 읽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여름의 빌라』에 실린 소설들이 일상을 지키기조차 어려운 이 날들을 견뎌낼 수 있는 자그마한 숨 쉴 틈이 되어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2020. 08. 25)
“성급한 마음을 유보한 채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직시하고 찬찬히 기록”하기를 소망하는 소설가 백수린.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인생과 사람을 조심스럽게 되돌아보는 것과 동의어일 테다. 불가해하게만 느껴지는 인생도 사람도 백수린의 렌즈를 통과하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축복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왜일까?
가만하고 또 찬찬한 백수린의 소설을 읽노라면, 이 가혹한 여름도 조금은 가라앉아 새로운 풍경을 보여줄 것만 같다. 올여름, 세번째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들고 돌아온 작가 백수린을 서면으로 만나보았다.
작가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여름의 빌라』 출간 이후 어떻게 지내시나요?
『여름의 빌라』를 출간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번주에 출간 예정이 되어 있는 뒤라스의 소설 『여름비』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짧은 그림책 한 권도 번역해서 원고를 넘겨둔 상태고요. 올해 안에 출간하기로 약속한 책이 많아서 그다지 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마감에 쫓겨 읽지 못했던 책들도 펼쳐보면서 조금은 재충전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소설 속에는 한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혹은 어떤 계기로) 멀어지게 된 인연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경험 같아요. 이런 헤어짐 또는 멀어짐에 대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관계는 한결같을 수 없고, 만남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품고 있죠. 결국,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어떻게 하면 우아한 방식으로 이별을 맞이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를 배우는 일의 연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도 같아요.
과거의 사건이나 시기를 회상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아름다웠던 시절도 있고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있는데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과거를 거듭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과거를 거듭 돌아보는 것은 아마도 제가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윤리적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시간을 되돌려 어떤 시절을 다시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없지만, 우리는 과거를 곱씹음으로써, 과거에 했던 어떤 일들을 반성하고, 해석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좀더 나은 방식으로 바꿔나갈 수는 있죠. 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연약해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들이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기를 바랐고, 소설가로서 그런 인물들을 그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살아보고 싶어지는데요, 혹시 작가님께서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나라나 도시가 있을까요?
제가 소설 속에 즐겨 등장시키는 공간이 아무래도 특별한 도시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제게는 파리와 인천이 특별한 도시인 듯합니다.
오늘날의 작가님이 있기까지 영향받은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꼭 문학작품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은 너무 많은데요. 소설가가 되기까지로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저의 문학 취향이라든가 세계관 같은 걸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작가들은 아마도 뒤라스와 카뮈일 것 같아요. 베케트의 희곡들도 무척 좋아했고요.
내년에 첫 장편소설을 연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리고 그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내년에 연재가 예정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이야기가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아서 괴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는지를 말하기는 조금 조심스러워요. 만약 지금 구상 노트에 메모하고 있는 이 이야기가 정말 저의 첫 장편소설이 된다면, 제가 살아본 적 없는 나라, 살아본 적 없는 도시,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산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게 될 것 같다는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관련 책이나 자료들을 찾아 읽으며 제가 쓸 수 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보고 있는 중인데요. 만약 제 역량으로는 아직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구상해서 첫 장편소설을 써야 하겠지만 모쪼록 취재가 잘되어서, 제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이 이야기로 첫 장편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름의 빌라』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을 출간하고도 코로나 때문에 독자님들을 직접 만나 인사드릴 기회가 많지 않아 안타까운 여름이지만, 소설가는 소설로 독자와 만날 때 가장 깊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4년 동안 마음을 다해 쓴 소설들을 읽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여름의 빌라』에 실린 소설들이 일상을 지키기조차 어려운 이 날들을 견뎌낼 수 있는 자그마한 숨 쉴 틈이 되어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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