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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맥라클란,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강인한 투사

이즘 특집 음악계 여권 신장에 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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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머리에 수수한 차림, 어깨에 걸쳐 맨 어쿠스틱 기타. 사라 맥라클란은 미소를 띠며 그에게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상을 안겨준 'Building a mystery'로 무대를 연다.(2020. 06. 12)


유대 신화에는 여성 악마 릴리스(Lilith)가 존재했다. 아담이 이브와 결혼하기 전 첫번째 부인이었던 릴리스는 아담과의 성관계에 있어 여성은 따르기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아담을 떠나 혼자 살며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악마를 자처한다. 다소 노골적인 이 신화 이야기에는 남성 상위 문화에 반기를 들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자리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적 의미가 담겨있다.

분노의 얼터너티브 록이 활개를 치던 1990년대 초반, 음악 신에도 릴리스가 있었다. 캐나다의 포크 가수 '사라 맥라클란'이 바로 그 주인공. 신화 속 강렬한 이미지의 릴리스와는 달리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을 선보이는 그는 긴 무명의 끝에 네 번째 정규 앨범 <Surfacing>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한다. 이 도약은 그가 진짜 '릴리스'로서의 활약을 펼치게 될 기원이 된다.



#1.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강인한 투사로, 릴리스 페어(Lilith Fair)

짧은 머리에 수수한 차림, 어깨에 걸쳐 맨 어쿠스틱 기타. 사라 맥라클란은 미소를 띠며 그에게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상을 안겨준 'Building a mystery'로 무대를 연다. 1997년 시작되어 1999년 막을 내린 여성 음악 페스티벌 릴리스 페어(Lilith Fair)의 첫 장면은 이토록 인상 깊다. 1990년대의 음악 시장은 남성 뮤지션들에게만 유독 관대했다. 사라 맥라클란을 비롯해 토리 에이모스, 트레이시 채프먼 등 쟁쟁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넘쳐났지만 무대도, 라디오도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1997년 그의 나이 30살, 주어지지 않으니 창시하기에 이르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연과 라디오에 거부당한 사라 맥라클란의 분노는 1,6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성공적인 여성 음악 축제를 낳는다. 오롯이 여성만 출연할 수 있으며, 남성 출연자들은 연주를 보조하는 세션으로만 허용되었다. 트레이시 채프먼, 셰릴 크로우, 수잔 베가, 시니어드 오코너, 폴라 콜 등 내로라하는 여성 가수들이 출연해 남성이 주도하고 있는 록 신에 반기를 들며 음악계 안에서의 여권 신장에 연대하고 화합한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그가 직접 언급했듯, 릴리스 페어는 여성의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무대 위 남성 뮤지션들을 무대 아래서 바라봐야 했던 여성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무대를 갈망했다. 비단 그들이 얻은 건 무대뿐만이 아니다. 흔히 여자들이 모이면 서로를 적대시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출연자들은 서로 사랑과 기쁨을 공유했다. 무대 위에서는 기쁨의 노래를, 무대 아래에서는 속 깊은 대화로 서로의 삶을 나눴다.

릴리스 페어는 여성을 '위한' 페스티벌보다 여성 '중심의' 페스티벌에 가까웠고, 이 이상의 다양한 인권을 인정하는 평등의 장이었다. 흑인 알앤비의 대표적인 여성 뮤지션 인디아 아리(India arie)는 릴리스 페어를 기점으로 모타운과 계약을 체결했고, 영국 밴드 모치바(Morcheeba)의 결정적인 인물 스카이 에드워즈(Skye edwards)는 “나는 흑인임에도 싱어송라이터가 된 게 아니라, 그저 싱어송라이터인데 마침 흑인인 것뿐이다”라며 릴리스 페어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당시 무명이었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또한 1999년 릴리스 페어에 설 기회를 얻었다. 무명과 흑인, 그리고 여성. 이유 없이 약자가 되었던 그들도 릴리스 페어에서는 그저 한 명의 뮤지션이었다. 여성의 인권을 넘어서 모두의 인권을 통용한 아름다운 페스티벌로 남았다.



#2.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결국엔 음악

'Adia I do believe I failed you / Adia I know I've let you down (이디아, 내가 널 저버리고 / 실망시켰다는 걸 알고 있어)' 언뜻 보면 연인에게 바치는 화해의 노래 같지만, 사실은 친구의 전 남자친구와 결혼해 미안한 마음을 담은 'Adia' 속 가사이다. 그렇게 결혼한 남편과의 이혼, 딸의 탄생과 맞물린 어머니의 죽음까지. 녹록지 않은 그의 개인사는 수준 높은 음악으로 승화됐다.

2010년 발매된 7번째 정규앨범 <Laws Of Illusion>에 수록된 'Changes'로 이혼의 심정을 토로하고, 다음 작인 <Shine On>의 'Song for my father'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의 상처와 허물은 자전적인 음악을 성취해냈다. 릴리스 페어를 창시하고, 음악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더욱 빛나게 해준 건 무엇보다도 탄탄하게 다져진 음악적 능력이었다.

상업적 음악인 틴 팝, 라틴 팝의 유행으로 주어진 곡을 부르는 여성 가수들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직접 곡을 쓰는 그의 행보는 독립적이며 주체적이었다. 그렇게 뽑아낸 양질의 음악은 OST에서의 활약을 이끌었다. 영화 <City Of Angel>의 OST로 알려진 'Angel'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스매싱 펌킨스의 키보디스트 조나단 멜보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토이스토리2>에 수록된 'When She Loved Me'는 애절한 목소리로 장면의 몰입을 도와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이외에도 그의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밴쿠버 아이들이 무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라 맥라클란 음악학교(Sarah McLachlan School of Music)'를 설립하고, 'World on fire'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한 15만 달러의 예산 중 제작비 15달러를 제외한 금액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단지 그는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는 모습이 전부이고, 세계 각국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담아낸 뮤직비디오는 좋지 못한 품질에도 마음을 울린다.

2010년,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그의 'Ordinary miracle'이 울려 퍼졌다. '삶이란 매일 우리를 위해 포장된 선물 상자이고, 열어보고 베푸는 방법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노랫말처럼 그의 음악사는 언제나 자유로이 날갯짓했다. 여성은 수동적이며, 무언가를 해내지 못할 거라는 시대의 편견을 무참히 무너트렸고, 시대를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주지시켰다. 온화한 미소의 그는 사실 착하기만 한 'Angel'이 아니라 고요하지만 강인하게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던 'Lilith'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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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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