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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영 “27년차 기자가 나홀로 여행을 시작한 이유”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 박대영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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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같이 평범한 직장인이 이렇게 여행에세이를 내게 된 것도 느리게 걸은 길 위에서 주워 온 것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속도가 버거운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느리게 살아도 괜찮은 걷기는 커다란 선물인 셈입니다. (2020.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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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면 일생 동안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뇌리를 스쳐 간다고 한다. 그 후에 ‘나’라는 존재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먼지가 되는지, 이집트의 신화처럼 육체를 벗어난 영혼으로서 긴 여행을 떠나는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있음 그 자체로 더욱 소중해진다.


그런데 가장 최후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각 시기마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일종의 작은 죽음들이 찾아온다. 유년 시절의 끝 무렵, 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그네를 타던 날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분명 존재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점점 인생에 찾아오는 작은 죽음들을 분명하게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년이 되고 30살을 지나면서 슬슬 ‘나이’를 자각하다가 마흔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지나온 시간을 두고 ‘세월’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소회에 젖는다. 마흔 이후를 두고 인생 2막, 인생 후반전 등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른 분기점과는 다른 특별한 감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신간 에세이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 가 주목하는 것 역시 마흔 이후의 삶이다. 27년 차 방송기자인 저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과 추억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기 위해 ‘걷기’라는 행위를 선택했다. 걸음걸음 밟아가는 동안 저자의 마음을 스쳐 간 생각들은 무엇일까. 못난 사람이 사연은 풍성하다고, 지름길이 아닌 길 또한 그렇다. 저자가 발견한 사연들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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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없이 홀로 여행을 떠나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일까요?


동행 없이 홀로 걷는다는 것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물론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또 익숙하지 않음으로 인해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겠지요. 걷는다는 것이, 또 여행이라는 것이 단순히 ‘즐기기’ 위한 그 무엇이 전부가 아니라면,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나만의 공간에서 스스로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한 인간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의무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혼자 걷고 여행할 때, 우리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봄날이면 어디서든 싱그러운 바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며, 풀숲 어느 틈에서 함초롬히 미소 짓고 있는 들꽃들과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홀로 걷는 이는 자기의 의지대로 멈춰서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도, 긴 대화도 가능할 것입니다. 맑아지는 마음은 덤입니다. 홀로 걷는 길이, 여행이 주는 선물입니다.

 

왜 하필 ‘걷기’를 선택하셨나요? 걸을 곳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우리는 흔히 빠르게 살아가는 삶이 잘 사는(?)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를 이겨야 성공한 삶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굳이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니, 빨리 가고자 했지만 빨리 갈 수 있는 행운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그렇게 빠름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느림’을 선택했을 때, 그 구체적인 방법이 걷기였습니다. 느리게 걸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행복한 삶은 속도와는 무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빠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개인의 성취에 목적이 있다면, 그 대상만 다를 뿐, 느리게 걷는 삶 속에도 성취는 있기 때문입니다. 저같이 평범한 직장인이 이렇게 여행에세이를 내게 된 것도 느리게 걸은 길 위에서 주워 온 것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속도가 버거운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느리게 살아도 괜찮은 걷기는 커다란 선물인 셈입니다.

 

우리나라 길을 걸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특색이나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길은 오직 걷기만을 위한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길에는 우리네 이웃들이 있고, 그들이 그들만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길을 걷는 이유는 자연과 벗하며 걷는다는 기본적인 이유 말고도, 바로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인식하고,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그들의 성실한 삶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더불어 있습니다. 외국의 길에서는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것들이지요. 우리 이웃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내가 살아가는 바로 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비를 맞고, 같은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우리나라의 길을 걸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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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검색이면 최단 거리가 산출되는 시대에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걷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지름길을 돌아서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지름길을 가고자 하지만 그 지름길은 조금 좁은 길인지라 몇몇의 날랜 사람들에게나 허락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둘러’ 간다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 자체가 둘러가는 길이 아닐까요? 어쩌면 이상과 실제의 간극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물길이 그러하듯 ’둘러서‘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모두는 계곡을 둘러 흐르는 물처럼 바다로 향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제 갈 길을 열심히 헤치며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삶의 의미는 어쩌면, 둘러서 가는 그 굽이굽이마다에 고개 내밀고 있는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40~50대가 밟아온 역사와 그들만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40~50대는 아마도 조금은 덜 개인화된 사회를 살아온 세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화가 덜 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공동체의 질서와 이익이라는 가치가 개인적인 삶의 행복보다도 우선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공동체 또는 조직의 질서와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사고로 살아오면서, 어느 날 문득 나이를 먹고, 조직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으로 귀결되지 않는 모순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알 수 없는 공허와 상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면 무언가를 이룰 거라 생각했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금쯤은 아프게(?) 깨닫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네 40~50대의 삶의 가치는 ’나보다는 우리’, 조직으로 통칭되는 ‘우리’ 속에 나의 성취를 찾은 어쩌면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그 세대는 삶의 여정이 경험하게 한 나와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어긋남과, 그로 인한 상실이 ‘자신에게로 돌아가라’고 강제하고 있는, 그 어떤 힘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중일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삶의 가치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인생과 행복에 대한 구절이 많은데,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지금껏 우리의 일반적인 삶의 가치이자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물질의 ‘소유’와 그 소유를 바탕으로 하는 풍족한 ‘소비’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강권한 삶의 논리가 그러했습니다. 물질만능주의, 돈만 있으면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온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살아보니 정말 그랬을까요? 나 역시 일천한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라, 섣불리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소유한 물질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크기도 꼭 그렇게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론 물질의 소유를 도외시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적절한 물질의 크기를 가늠하고 욕심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음의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이자, 그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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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나홀로 여행 계획, 꼭 밟아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딱히 가야 할 그곳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야 할 곳은, 아마도 가보지 않은 그곳일 것입니다. 가보지 않은 곳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내 삶의 크기를 키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크기는 다름 아닌 경험의 크기입니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 많이 걷고, 또 경험하고 싶습니다.


굳이 먼 미래의 바람이 있다면, 남북한을 아우르는 백두대간을 처음으로 종주했던 뉴질랜드 출신 탐험가이자 산악인 로저 쉐퍼드처럼 한반도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습니다. 그저 막연한 바람입니다.

 

 

 

* 박대영


앞만 보고 달렸고,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그러다 문득 중년이라는 고갯마루에 멈춰 서서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본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진 시기가 아마도 마흔 즈음이었을 것이다. 조금은 고달프고 아쉬웠던 삶의 여백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채워야 했다. 그 방법은 바로 느려도 늦지 않은 삶, ‘걷기’였다.

 

때때로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어도 좋았다. 잊고 살았던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며, 수줍은 듯 고운 들꽃의 미소에 화답하기도 하면서 걸었다. 그 길 위에는 새로운 삶이 있었다. 정겨운 사연들은 아마도 덤이었을 것이다. 길은 어디에나 있었고, 그곳이 어디든 걸어야 할 이유 또한 충분했다. 현재는 SBS에서 27년 차 방송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한적한 어느 산골에서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별을 헤고픈 소망 하나를 보석처럼 품고 살고 있다.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 박대영 저 | 더난출판사
27년 차 방송기자인 저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과 추억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고 스스로를 달래어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걷기’라는 행위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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