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 “4200km를 완주한 단 하나의 이유”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솔직해졌다』 이수현 저자 인터뷰
길 사진 한 장에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운명적인 직감이 왔어요. 영화 〈인투 더 와일드〉의 주인공처럼 길 위에서 자유를 얻고 싶었죠. (2020.01.07)
종종 사람들은 ‘나’를 찾고 싶어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서 길을 걷는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잃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걷기와 길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산티아고의 5배나 되는 길이의 길이 있다고 한다. 바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멕시코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걷는 이 길을 완주한 여성이 여기 있다.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솔직해졌다』 에는 조금 더 솔직한 내 모습을 마주하고 싶어 걷고 또 걸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긴 길을 걸어낸 이수현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책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줄여서 PCT를 걸어낸 이야기죠. 4,300km나 되는 길이라고 하는데, 독자분들은 생소할 수 있으니 어떤 길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미국의 장거리 하이킹 중 3대 하이킹이라 불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AT(The Appalachian Trail), PCT(Pacific crest trail), CDT(Continental Divide Trail)인데 그중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태평양 연안의 산맥을 따라 4,300km 걷는 하이킹입니다. 사우스캘리포니아, 하이시에라, 노스캘리포니아, 오레건, 워싱턴 총 5개의 주를 넘어 캐나다에 도착하는 하이킹 코스예요. 국내에 잘 알려진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5배에 이르죠. 길을 모두 걷는 데에 6개월이 걸리고, 주를 넘을 때마다 시시각각 계절이 바뀌어요. 종일 사막을 걷는 날도 있고, 한동안 매일 산과 강을 건너는 날도 있고요. 야생 그 자체라고 생각하시면 쉬울 것 같아요. 저는 먹을 것과 물, 텐트를 등에 지고 눈과 비 온갖 자연을 뚫고 걷는 그 길이 어쩌면 고된 수행의 길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어떻게 길을 걷기로 마음먹으셨는지가 궁금해요. 가늠도 안 될 정도로 무척 긴 거리잖아요.
PCT 하이커가 되기 전에 가난한 배낭여행자였어요. 23살에 대한민국을 떠나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죠. 매일 신날 것 같지만 2년째 되던 해 여행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죠. 그즈음, 자전거 여행을 하는 부부를 만났는데 그들이 PCT의 존재를 알려줬어요, 제게 보여준 길 사진 한 장에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운명적인 직감이 온 거예요. 사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채워지지 않던 욕망이 있었는데 바로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거였어요. 영화 〈인투 더 와일드〉의 주인공처럼 길 위에서 자유를 얻고 싶었죠.
제가 여행을 하면서 얻은 이점은 무언가를 실천하기 위해 변명을 줄이게 됐다는 거예요. 조금 더 추진력이 생겼달까요? 덕분에 변명 없이 길 위에 서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책 첫 장에 나와 있듯이 길을 잘 몰라서 생겼던 무모한 용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 하이킹 여행도 그렇고, SNS를 보아도 작가님 여행 스타일은 다른 여행 크리에이터분들과 확실히 다른 것 같은데요. 보통 어떤 여행을 선호하시나요?
제 여행 스타일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히피’예요. 일상에서 잘 드러내지 못한 자유로운 모습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실현하는 짜릿함을 좋아합니다. 사나운 도시의 건물보다는 나무와 강이 있는 자연을 추구하는 편이고요.
책을 보면 PCT 길 위의 매 순간이 인상 깊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돌아와서 유독 오래도록 생각나는 장면이 있을까요?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의식주가 완전히 충족될 때인 것 같아요. 실제로 저도 오랜 여행 끝에 한국에 돌아와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 텐트가 아닌 천장을 바라보며 잠이 들 때, 바짝 마른 옷가지를 입을 때가 안정감이 느껴져서 좋아요. 하지만 날것의 모습이라 사랑했던 길 위의 순간들을 돌아보면 또 다른 행복을 느끼게 돼요. 지극히 평범한 지금의 날들과 정반대인 그 당시에 평범했던 일상이라고 여겼던 날들이요. 매일 스리라차 소스에 밥을 말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난 후 마셨던 물 한잔, 무서운 산속에 나 혼자 잠이 들 때면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 한바탕 내리는 소나기를 맞고 몸을 덜덜 떨며 마시던 코코아 한잔과 같은. 그때는 불편했던 일상이 가끔 모닥불의 잔향처럼 은은하게 제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더라고요.
모든 여행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만 다녀온 뒤에 이것만큼은 달라졌다, 싶은 게 있나요?
여행을 다녀와서 취향에 대한 확고한 고집이 생긴 것 같아요. 저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됐기 때문이죠. 여행은 사람들과 함께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로운 길 위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모이고, 혼자만의 시간에서 내가 어떤 걸 그리워하고 있는지에 대한 작은 단상들이 모여 저에 대해 차근차근 알게 되는 거죠. 그 때문에 여행을 다녀와서 제가 어떤 것을 하고 싶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그 길이 너무 어려워서 사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저 자신이 종종 빛나 보여서 묵묵히 걸을 힘으로 삼곤 해요. 그리고 취향에 대한 고집이 아집이 되지 않도록 늘 배우려는 자세를 취합니다.
아무래도 작가님은 또 걸을 계획이 있으실 것 같네요. 다음으로 걷고 싶은 길은 어디인가요?
다음에는 티베트를 걷고 싶어요. 티벳인들은 카일라스 산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신체의 다섯 부위를 차례로 땅에 대고 절하는 수행 방법인 오체투지를 합니다. 카일라스 산 자체를 신처럼 여기거든요. 전 그 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풍경을 보며 매일 걷고 싶어요. 신성한 그 길을요.
그리고 제가 아직 걷지 않은 미국 3대 트레일 중 AT와 CDT도 걷고 싶어요. 3곳을 모두 걷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 꼭 트리플 크라우너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PCT를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청춘이 걸었으면 합니다. 나이에 국한되지 않고, 열정과 용기가 있는 모든 분이요. 물론 지켜야 하는 일상이 있기 때문에 6개월을 온전히 걷기로 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인생에 한 번쯤 어떤 수식어 없이 오로지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이 길을 추천해 드립니다. PCT는 인생의 작은 축소판 같거든요. 때로는 건조한 대지를 걷기도 하고, 때로는 매일 오는 비에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또 어떤 날은 푸르고 싱그러운 풀밭을 걷기도 하고요. 마치 우리 인생처럼요. 그 위에서 온전한 자신을 만나고 싶은 분들 모두 그 길을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야생이기 때문에 사전에 잘 준비를 해간다면 말이죠! 자유로운 길 위에서 다시 한번 우리가 만나길 바라며, See you on the trail!
* 이수현
1992년 경기도 평택 출신. 현재 홍제동에 살고 있지만 몇 년 동안 여행을 하며 나름 전 세계에 나만의 은신처, 고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니까 필연적인 고향이 아닌, 선택과 우연으로 머문 곳들을 상상하며 버티고 삶을 설계한다. 기억을 토대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진짜였던 세상이 거짓말 속으로 들어와 다시 또 세상을 만드는 일이 대단하다고 느껴 최근에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솔직해졌다이수현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다양한 계절을 맞는 길에서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스스로 한 뼘 만큼은 자란 여정이 아닐까 돌아본다.
관련태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솔직해졌다, 이수현 작가, 4200km, 완주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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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위에서 나는 솔직해져 보기로 결심했다.”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쓸데없이 관대할 필요도, 움츠러들 필요도 없이 딱 내 존재만큼만 인정하고 알아가는 168일간의 이야기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4,300km의 트레킹 코스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