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당신과 보낸 모든 계절이 새로웠다"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정우성 저자 인터뷰
한 사람을 사랑하면 모든 계절이 새로워졌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보냈던 그 모든 계절들을 다시 한 사람이 새롭게 알려준 셈이었죠.(2019.12.17)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는 사랑하는 순간들을 다채롭게 다룬 에세이와 진한 아포리즘이 가득하다. 만나고 헤어지고, 행복했다가 다시 아파하는 연속에 지친 누군가에게 특별한 설렘과 위로를 건넨다. 모든 과정이 결국 자연스러운 일상이며,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의 모든 과거가 쌓인 총합이라는 사실, 그렇게 모든 시간을 딛고 마침내 만난 소중한 인연이라는 사실을 가만히 깨우쳐준다.
<GQ>, <에스콰이어>의 오랜 에디터였던 저자 정우성은 만화가 이크종과 함께<더 파크>를 설립한 후에도 <엘르> <릿터>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글을 선보여왔다. 특별히 저자의 첫 에세이인 이 책은, <엘르>에 ‘사랑’ 테마로 일부 연재할 당시부터 2030 여성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사랑에 대한 섬세한 단상을 전하는 정우성 저자를 만나 보자.
기존의 사랑 에세이에선 보지 못했던 색다른 매력의 글입니다. 보다 섬세하고 정성스럽다고 할까요? 이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인생의 어떤 시기를 지나기 전에 관계와 연애에 대한 생각을 한번 정도는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원고를 시작할 당시의 저한테도 큰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10년 이상 갖고 살았던 ‘기자’ 직함을 버렸고, 회사를 나와서 제 회사를 만들었어요. 그즈음 <엘르> 디지털 팀에서 연재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 달에 2편씩 쓰기 시작했어요. 그 원고를 한겨레출판에서 발견해주셨습니다. <엘르>에 연재했던 10편의 원고에 새로운 글들을 써서 보탰습니다. 몇 편은 아주 오래전에 <지큐>에 짧게 썼던 원고를 바탕으로 다시 쓰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 지나간 줄 알았던 원고들도 모두 현재성을 얻었습니다. 이 책이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읽힌다면, 그건 모든 원고가 그저 ‘지금’의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제 마음이 드러난 결과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보면서 설레는 문장들로 가득해요. ‘사랑’이라는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인 건데, 모두가 어느 상황에서 읽어도 감동받는 문장들은 어떻게 쓰셨는지 궁금해요.
어떤 문장에서 누군가 감동할 거라는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솔직하고 그만큼 담백하게 오래 생각했던 말,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이었어요. 개별 에피소드들은 연애와 관계에 대해 제가 하고 싶은 말과 전하고 싶은 감정을 보다 선명하게 전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어떤 에피소드로부터 감정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제가 관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전하기 위해 그 순간들을 새로 채집했다는 뜻입니다. 그 과정에서 잊은 줄 알았던 몇 초, 잊히지 않는 몇 분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잊히지 않는 과거라고 다 미련은 아니며, 과거의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도 그때 했습니다. 그저 성실하고 담백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어떤 독자분께서는 “쉬운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근사한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이라고 써주셨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를 원했거든요. 다른 여러 독자분들께서는 어떤 꼭지, 어떤 문장을 좋게 읽어주실지 너무 궁금해요.
사랑을 계절과 연결 지은 제목이 참 매력적입니다. ‘당신과 몇 년을 보냈다, 몇 개월을 보냈다’ 이런 것보다 훨씬 낭만적인 것 같아요. 제목의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 속에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행복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숲이나 산의 색깔이 어느새 변한 걸 보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원하는 오후, 저기 피어 있는 예쁜 꽃의 이름은 뭔지 궁금해하는 마음 같은 것들. 바로 그럴 때 ‘아, 나는 지금 괜찮게 살고 있구나’ 생각해요. 그런 순간들을 둘이 나눌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요? 한 번도 좋아한 적 없는 계절이 갑자기 좋아지기도 하고, 이 모든 계절을 한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또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보내는 모든 계절이 새로워졌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보냈던 그 모든 계절들을 다시 한 사람이 새롭게 알려준 셈이었죠.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라는 제목은 그런 마음으로 썼습니다. 낭만적으로 읽히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사실적인 제목이기도 해요.
많이 추상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작가님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또 이 책을 쓰시며 그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태도 혹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힘.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랑에 대한 그 숱한 판타지들이 자리 잡을 틈을 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떨려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나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쾌락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지만, 이 책을 쓰면서 생각했던 사랑은 그보다 훨씬 지루한 형태를 지향하고 있었어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어떤 감정의 파동도 없는 상태. 둘이서, 그저 평화롭게 하루를 살고 버틸 수 있는 힘으로서의 사랑. 그저 ‘지금, 이 사람이 내 옆에 있구나’ 하는 생각, 그 존재감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의 온도가 조금은 올라가는 일상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 순간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평화롭고 지루하게 보내는 일상으로부터, 우리는 또한 고약한 시간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같이 기를 수 있겠죠. 그렇게 믿습니다.
지나간 사랑들을 돌이켜본다는 것, 그것을 글로 옮긴다는 건 글쓴이에게 어떤 경험인가요? 어려움은 없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에 쓴 모든 에피소드는 어떤 고백도 보도문도 아닙니다. 예쁜 기억으로 남았다고 그걸 다 사랑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지나간 일들은 그저 지나간 거죠. 그때는 그때의 진실이 있고, 그걸 떠올리는 지금은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때가 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순간들은 아주 새로운 의미가 되기도 하고 아주 의미를 잃기도 했습니다. 어떤 순간들은 충분히 사랑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때는 알 길이 없었다는 걸 나중에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런 마음의 변화, 과거의 재해석을 지켜보고 글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동시에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기도 합니다. 뭣보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결국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사는 게 아니니까요.
이제 막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사람, 또는 아직 용기 내 고백하지 못한 사람을 위한 구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지나고 보면 담백해지는 것만이 중요했다. 산책은 산책일 뿐이라서, 그 짧은 시간의 모든 자극에 마음을 빼앗겼다 해도. 혼자서 부풀린 마음은 혼자만의 것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모든 고백이 선물은 아니니까.” 첫 번째 꼭지 「사랑은 간청해선 안 됩니다」 14쪽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과 의지를,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뒤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철저히 개인인 것처럼 그 모든 사랑의 얼굴도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랑에 빠졌을 땐 그저 담백해졌으면 합니다. 어떤 순간 어떤 표정이 너무 예쁘다는 말,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도 그래야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고백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절당하는 마음이 쉽지만도 않죠. 하지만 사랑도 고백도 억지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저 좋은 순간에,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같지 않다면? 아쉽지만 거기까지인 겁니다. 모든 고백이 선물은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이크종님과 <더파크>에서 소개해주시듯이, 사랑을 테마로 한 (또는 이 책과 같이 보면 좋을) 넷플릭스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추천해주세요.
로맨틱한 영화를 자주 보지는 않습니다만,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가 넷플릭스에도 몇 편 있습니다. 저는 마음이 허할 때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틀어둡니다.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이라는 대사에 대해 볼 때마다 생각해요. 잭 니콜슨과 헬렌 헌트를 좋아합니다. 로맨스 소설 작가로 나오는 잭 니콜슨의 강박증과 괴팍함도 사랑해요. 그가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는 저도 언젠가 꼭 치고 싶습니다. 아,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세 편도 모두 넷플릭스에 있어요. 낭만과 현실의 콘트라스트, 극복의 힘과 지속적인 태도에 대해 이런 화법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는 ‘비포 시리즈’가 거의 유일하지 않나요?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많은 대화를 나누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커플입니다. <어바웃 타임>의 판타지. 그 감동과 사랑스러움도 참 좋아합니다. 사랑의 진실, 그 밋밋하고 깊은 표정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결국 판타지가 필요한 걸까,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정우성
미디어 스타트업 <더파크> 대표. 요가 수련하는 사람. 19권의 <레이디경향>, 96권의 <GQ KOREA>, 17권의 <에스콰이어>를 만들었다. 마음이 소란할 때마다 음악과 책을 챙겨 걷는다. 가끔 나무를 보러 가고, 좋아하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를 늘 기다린다.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정우성 저 | 한겨레출판
우리는 ‘사랑과 이별, 다시 사랑’이 놀이공원의 대관람차처럼 큰 원으로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지나온 사랑을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곁에 있는 이가 서로를 모를 때의 시간을 딛고 마침내 만난 소중한 인연임을 깨닫는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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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내 곁의 사람에게 들려주고픈 사랑의 말들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을 서서히 움직이는 누군가는 늘 우리 앞에 다시금 나타나고, 우리는 서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