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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펭귄, 우리와 동등한 지구의 생명체”

『펭귄의 여름』북토크 펭귄과 함께 보낸 어느 43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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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이 귀여운 캐릭터, 하나의 마스코트로 소비되는데요. 펭귄도 그 나름의 생태가 있는, 환경에 적응해온 남극 생태계의 터줏대감이에요. (2019. 07. 26)

이 책은 펭귄과 함께 보낸 어느 해 여름, 43일 동안 남극세종과학기지에 머물면서 남긴 기록이다. 43일은 한 달하고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지만, 펭귄이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나오고 보육원에 들어가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다. 펭귄은 남극의 짧은 여름을 압축해서 살았다. 낮이고 밤이고 부모는 분주히 바다로 나가 먹이를 잡아 왔고, 새끼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하루는 일주일처럼 길었다.(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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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행동학자, 극지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이원영 박사가 쓴  『펭귄의 여름』  은 펭귄과 함께 보낸 어느 ‘펭귄의 여름’ 43일 간의 일상을 담은 책이다. 지난 7월 12일, 삼청동 과학책방 갈다에서  『펭귄의 여름』  출간 기념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이날 북토크에서 이원영 박사는 2014년 12월, 처음 남극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가 직접 겪고, 관찰한 남극의 여러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생생하게 전달했다. 펭귄의 생태를 엿볼 수 있는 사진들, 인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진 등을 보여준 이원영 박사는 “남극은 지구를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며 “세종기지가 있는 지역은 매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도가 바뀔 정도로 금세 바뀌는 중이다. 지구 환경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곳이 남극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극에 가는 사람은 정해져 있죠. 그래서 책을 통해 최대한 나누고 싶었고요. 한편으로는 동물원에 안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펭귄이 귀여운 캐릭터, 하나의 마스코트로 소비되는데요. 펭귄도 그 나름의 생태가 있는, 환경에 적응해온 남극 생태계의 터줏대감이에요. 많은 분들이 펭귄을 이미지가 아니라, 나름대로 새끼를 키워내려고 애쓰고 자기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동등한 지구의 생명체라는 생각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나는 어디까지나 방문자

 

“남극에 처음 도착했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때까지도 저는 젠투 펭귄과 턱끈 펭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어요.(웃음) 심지어 남극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는 상태로 남극에 간 거죠. 남극 도착 다음 날 아침, 턱끈 펭귄, 젠투 펭귄, 웨델 물범이 한가롭게 있는 장면을 보고 정말 평화로운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요. 지금까지도 ‘남극’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그날의 평화로운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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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원영 박사는 남극에서 발견한 혹등고래의 뼈 사진을 보여주었다. 남극은 얼핏 “인간 손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곳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와서 괴롭혔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이 한 장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원영 박사는 매번 남극에 갈 때마다 “나는 어디까지나 방문자다, 여기 원래 사는 생물은 따로 있다, 괴롭히지 말고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자”고 생각한다며 연구자로서의 태도를 밝히기도 했다.

 

“남극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수목한계선’이에요.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곳이죠. 여기서 나무란, 사람 키 정도로 크게 자라는 나무를 말하고요. 이런 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을 수목한계선이라고 해요. 지금 보시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고래의 뼈입니다. 갈비뼈도 있고, 척추뼈도 있는데요.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은 혹등고래가 많은 곳으로 유명해요. 예전에는 여기 포경선이 와서 고래를 잡고, 이 해변에서 해체 작업을 해 돌아갔다고 합니다. 고래를 그대로 잡아 가기에는 너무 무거우니까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포경선이 자주 왔던 곳이라고 해요. 지금도 세종기지가 있는 곳은 여러 나라의 기지가 모여 있는 곳이고요. 인간에 의해 남극이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육상에서 북극곰, 북극여우 등의 포식자가 활동하는 북극과 달리 남극의 동물들에게는 육상에서 자신을 위협할 포식자가 없다. 따라서 남극의 동물들은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겁낼 필요가 없다”며 이원영 박사는 인간이 가까이 다가가도 한가롭게 낮잠을 자는 웨델 물범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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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을 포획하다 보면


펭귄은 남극의 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12월부터 2월까지 번식한다. 이원영 박사는 이 시기에 한국 연구자들이 ‘펭귄마을(공식적인 명칭은 나레브스키 포인트)’이라고 부르는 펭귄 번식지에 가서 연구한다. 펭귄을 포획해 추적기를 부착하고 풀어주거나, 갓 태어난 새끼의 무게를 달고, 털을 뽑기도 하며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원영 박사는 펭귄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펭귄이 18종 정도 있다고 얘기하는데요. 가장 큰 펭귄이 황제펭귄, 그 다음 임금펭귄, 그 다음으로 큰 펭귄이 젠투 펭귄이이에요. 젠투 펭귄이 저는 가장 정이 가는데요. 얘네는 몸 길이 60-70cm정도, 몸무게는 6-7kg정도예요. 그래도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해서 때리면 타격감이 있습니다.(웃음) 물론 제가 맞을 짓을 많이 했어요. 변명하자면 펭귄 연구학자로서 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크는지 성장곡선을 알고 싶었고요. 어떤 먹이를 먹는지도 알고 싶었죠. 혈액과 깃털을 뽑아서 화학적 분석을 해보면 어떤 먹이를 많이 먹었는지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슴 털을 뽑기도 하거든요. 물론 그 후 재빠르게 둥지로 돌려보내지만 이런 걸 한 번 겪은 펭귄들은 저를 매우 싫어했어요. 지금도 펭귄에게 물린 자국이 손에 남아 있을 정도예요.”

 

작업을 마치고 나니 옷에 펭귄 분변이 가득하다. 붉은 작업복이 거의 흰색에 가까워졌고 손에는 분변이 딱딱하게 말라붙었다. 몸에서 조류 특유의 분변 냄새가 진동한다. 이런 날은 동료들도 날 피한다. 괴롭지만 펭귄을 포획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손에 잡힌 펭귄은 긴장해서 상당한 양의 분변을 내보낸다. 가끔 얼굴에 맞는 일도 있는데 오늘은 운이 좋게도 얼굴은 피한 것 같다.(86쪽)

 

추적관찰을 위해 특정 펭귄을 집중 연구하기도 했던 이원영 박사는 이 과정에서 떠올린 생태학자로서의 고민을 토로했다. 연구 대상 개체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절충안을 찾아야 했다며 “정말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을 연구하지만 동물을 굉장히 많이 괴롭힌다. 피도 뽑고, GPS도 달았다가 떼고 한다. 얼마나 거리를 두고 얼마나 다가갈지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 둥지에 말뚝으로 표시도 해놓고 관찰을 했어요. 처음 목적은 얘네가 하루에 얼마나 자라는지 보는 거였어요. 그런데 두세 번 연속으로 가니까 얘네가 바들바들 떨고 있더라고요. 저를 신경 쓰는 게 느껴져서 더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최대한 먼 거리에서 망원경으로만 확인하고, 일주일 또는 보름에 한 번으로 접근 간격을 확 늘려서 새끼의 몸무게만 측정하는 방법을 택했죠.”

 

한편 번식지에서 다소 떨어진 해변가에 둥지를 튼 젠투 펭귄 사례는 과학자인 동시에 펭귄을 좋아하는 사람이 갖는 고민도 생각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펭귄들은 새끼를 다 키운 즈음이었는데 이 녀석만 알을 낳고 둥지에서 혼자 키우고 있더라고요. 아마도 초보 부부가 아닐까 하는데요. 자기 둥지를 제대로 갖지 못했던 거죠. 다 각자 자리가 있거든요. 50% 이상은 다음 해에도 자기 자리를 찾고요. 새로 짝을 맺은 신혼 부부들은 가장자리로 밀려나겠죠. 대부분은 제대로 번식 성공을 못해요. 과학자로서는 이런 장면을 보면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만 펭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응원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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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펭귄?


이어 이원영 박사는 남극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위험한 곳에 둥지를 틀어 다친 펭귄의 모습, 알을 품고 있는 펭귄의 모습, 바다에 나가 먹이를 먹고 돌아오는 펭귄들의 모습 등을 보여주며 펭귄의 생태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펭귄의 신체 중 가장 놀라운 부분은 위예요. 신축성이 대단하거든요. 아주 작아졌다가 늘어날 때는 거의 배 전체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나요. 어떤 펭귄은 4kg이었던 애가 바다에 나갔다 들어오니 6kg이 되어 돌아온 적도 있어요. 거의 자기 몸의 절반을 바닷물과 크릴 등을 먹은 거죠.”

 

바다에 뛰어들기 위해 모여 있는 펭귄의 모습. 우리에게 흔히 ‘퍼스트 펭귄’이라고 알려진 상식, 즉 용기 있는 펭귄이 바다로 먼저 뛰어들면 나머지 무리가 따라 뛰어든다는 선구자나 도전자를 의미하는 말에 대해 이원영 박사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 낭설”이라고 말했다.

 

“제가 원한 장면은 한 녀석이 뛰어들면 우르르 따라 뛰어드는 장면이었는데요. 그렇게 하지는 않더라고요. 저들끼리도 모여서 계속 서로 눈치를 보고요. 옆에 있는 애를 툭 치기도 해요.(웃음) 어쩌다 한 마리가 뛰어들면 몇 마리가 따라 뛰어들다가 또 금방 멈춰요. 조심성이 굉장히 많은 건데요. 왜냐하면 바다에 자기를 노리는 포식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죠. 목숨 걸고 들어가는 거예요.”

 

이날 북토크에는 남극체험단으로 남극에 방문했고,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소설가 천운영이 함께 자리했다. 그는 “남극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다시 한 번 갈 수 있다면 영혼도 팔겠다고 했을 정도다.(웃음) 남극은 그 어떤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주는 곳이었다.”며 남극을 다녀오면서 “내가 그냥 인간이 아니고 우주적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해 남극의 특별함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펭귄의 여름이원영 저 | 생각의힘
남극행을 위해 칠레 공군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출남극 후 다시 도시의 나무와 아스팔트의 냄새를 맡는 순간까지, 저자는 그사이에 보고 듣고 겪고 만나고 느끼고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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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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