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믿었던 기억을 딛다
제 159회 나오키상 수상작 『퍼스트 러브』김난주 번역가 인터뷰
이 작품, 또는 이 제목이, 우리는 어떤 첫사랑을 했을까, 하고 돌아보는 계기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격정적이거나 유치해서 기억에 오롯이 새겨져 있거나 아예 잊히고 마는 ‘첫사랑’이라는 경험을, 그리고 지금 첫사랑과는 다른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죠. (2019. 03. 12)
출처_미즈내일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스물두 살의 여대생 칸나와 그녀를 인터뷰해 한 권의 책을 집필하려는 임상심리사 유키. 이 두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퍼스트 러브』 는 살인 사건의 전모를 살피는 미스터리의 요소를 소설에 가미한 동시에,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무의식중에 자신을 학대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따라가는 소설이다.
27년차 번역가로 현재진행형의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김난주 번역가가 시마모토 리오 작가의 나오키상 수상작 『퍼스트 러브』 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일본 유명 소설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겨 온 김난주 번역가가 일본의 천재 여성 작가로 주목받는 시마모토 리오의 작품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대가들의 문장을 보고 만지며, 제일 먼저 한국어로 옮기는 그에게 『퍼스트 러브』 의 작업 과정과 번역자의 일상에 대해 물었다.
그동안 번역해 오신 성인 단행본만 해도 200권이 훌쩍 넘었습니다. 번역자의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작업과 집안일과 약간의 운동을 병행하면서 아주 단순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가급적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번역을 정신적인 작업으로만 여기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체력과 지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거든요.
많은 작업량으로 힘드실 때도 있을 듯한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시나요?
밖에 나갈 상황이 안 될 때는 집안에서 주로 고양이들과 놀거나, 마당(아파트라 베란다입니다)에 나가 키우는 식물들 물 주고 꽃도 바라보고, 햇볕도 쬐고 그래요. 가끔 밀린 청소를 한바탕 하기도 하고요. 밖에 나갈 수 있을 때는 산책 겸 동네에 있는 산을 오릅니다. 날씨 좋은 계절에는 체력도 단련할 겸 자전거를 타요. 강변 자전거 길을 씽씽 달리고 들어오면 기분도 개운해지고, 운동도 되고. 그리고 간간이 여행을 떠납니다. 걷는 여행이요. 여러 가지로 버거울 때 훌쩍 떠나서 사나흘을 아무 생각 않고 걸어요. 집안청소처럼 머리도 몸도 청소하는 셈이죠. 때로 뮤지컬이나 콘서트도 찾아다닙니다.
이번 신작 『퍼스트 러브』 는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시마모토 리오의 네 번째 책입니다.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에 『퍼스트 러브』 라는 제목을 지은 작가의 의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라는 독자의 리뷰가 기억에 남는데, 『퍼스트 러브』 라는 제목에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네. 제목에 끌려 저도 첫사랑 얘기가 등장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 않았죠..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두 여자 주인공 히지리야마 칸나와 마카베 유키에게 과연 어느 사랑이 첫사랑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데, 칸나의 사랑은 보호와 의존을 목적으로 한 상당히 왜곡된 형태여서,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다만 이 작품, 또는 이 제목이, 우리는 어떤 첫사랑을 했을까, 하고 돌아보는 계기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격정적이거나 유치해서 기억에 오롯이 새겨져 있거나 아예 잊히고 마는 ‘첫사랑’이라는 경험을, 그리고 지금 첫사랑과는 다른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죠.
『퍼스트 러브』 에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의 긴장들을 번역으로 옮기면서 느끼셨을 감정이 궁금합니다.
이 작품의 스토리텔러는 임상 심리사인 마카베 유키라고 볼 수 있는데, 덕분에 그 긴장감에 완급이 생겨서 스트레스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히지리야마 칸나 1인칭 소설이었다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번역하시면서 『퍼스트 러브』 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어떤 부분인가요.
역시 칸나가 법정에서 자신의 ‘말’을 하는 장면이죠. 그 동안 칸나 내면에서 억눌려 있던 언어들이 정연하게 흘러나오는 부분에서 무척 안도했습니다.
주인공 칸나가 살인 용의자로 재판에 선 때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칸나가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제대로 마주하게 되어서 안도하신 걸까요?
저는 여성의 정신적, 경제적 자립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래야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고 말이죠. 이 작품 속에서 칸나는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는 즉 사회적 독립을 뜻하잖아요. 그런데 그 전 단계인 정신적 자립은 이루지 못한 상태죠. 이루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이 망가져 있습니다. 제가 칸나가 법정에서 자신의 ‘말’을 하는 장면에서 안도한 것은 이 때문이에요. 그녀가 이제야 정신적 자립의 문턱에 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선생님께서 지금 번역하고 계신 시마모토 리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 짧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에 『여름의 재단』이라는 장편을 탈고했습니다. 작가가 『퍼스트 러브』 를 쓰기 이전 작품으로 아쿠다가와상 후보에도 오른 수작이죠. 역시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 때문에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퍼스트 러브』 와 연관 짓자면, 나이 서른에 트라우마를 딛고 ‘첫사랑’을 하게 된 여자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퍼스트 러브시마모토 리오 저/김난주 역 | 해냄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상처와 비로소 마주하게 된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되찾아가는 여정에 오르는 동안, 독자들은 당위적 사랑에 물음을 던지며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시마모토 리오> 저/<김난주> 역13,500원(10% + 5%)
17세에 데뷔해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비상한 글재주를 보여 온 일본의 젊은 작가 시마모토 리오가 2018년 제159회 나오키상 수상작 『퍼스트 러브』로 한국 독자들과 다시 만난다. 등단 후 18년 동안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네 번, 나오키상 후보에 두 번 올랐던 작가가 순수문학이 아닌 엔터테인먼트적 장편 집필을..
<시마모토 리오> 저/<김난주> 역9,000원(0% + 5%)
나오키상 심사평 절제미가 있고, 행간이 풍성하다고 느꼈다. 어둠을 조심스레 더듬고, 파헤치고, 그러다 보면 사람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진실에 손이 닿을지도 모른다는 쾌감이 있었다. - 기타카타 겐조, 『영웅 삼국지』의 작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재능의 방울이 똑똑 떨어져 향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