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보여지는 이미지와 저는 좀 달라요 (G. 뮤지션 정새난슬)
『러키 서른 쎄븐』 “창작하는 과정 자체에 환희가 있는 것 같아요”
오늘 모신 분은 음악을 만들고 일러스트를 그리고 글을 쓰는 ‘전방위 예술가’입니다. 사랑하고 이혼하고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삶, 꿈꾸고 좌절하고 다시 나를 복원한 시간들을 솔직하게 들려주셨는데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두 장의 앨범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과 『다 큰 여자』를 발매하셨고요. 첫 번째 에세이 『다 큰 여자』에 이어 두 번째 책 『러키 서른 쎄븐』을 쓰셨습니다. 정새난슬 작가님 모시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2018. 10. 04)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쓰라린 기억. 도무지 흉터가 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진행중인 고통.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 것인가, 치유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내 몸과 마음에 그려진 작은 생채기, 제법 커다란 흉터조차 받아들이고 살기로 했고 그것을 떠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방정맞게 지난날의 절망을 전시한다며 손가락질 받더라도 그러한 방식만이 나를 나아가도록, 살아가도록 만든다. 젊음의 풍경, 사랑과 이혼, 우울, 기쁨, 허위로웠으나 내가 진실하게 마주한 순간들. 내가 겪은 모든 일들 위에 마음에서 쏟아져 나온 단어와 그림의 딱지를 앉힌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고통은 괴로웠으나 흉터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 나의 영혼에 단단히 결속되어 새 생명을 얻고 수다를 떠나는 예쁜 흉터. 타투들은 나를 스토리텔러로 만든다.
싱어송라이터 정새난슬의 에세이 『러키 서른 쎄븐』 에 실린 이야기였습니다.
<인터뷰 - 뮤지션 정새난슬 편>
김하나 : 원래 첫 질문은 ‘이름, 부모님, 타투, 싱글맘 같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셨을 것 같다’는 거였는데요. 오늘 오셔서 셔츠를 벗으시는 순간, 제가 타투 이미지에 넋을 빼앗겼어요(웃음). 진짜 타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네요. 타투를 맨 처음 하신 게 몇 년쯤이에요?
정새난슬 : 아마 스물여섯 살 때 제일 처음 했을 거예요.
김하나 : 그러면 11년 전이네요.
정새난슬 : 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김하나 : 지금 몸에 총 몇 개 정도의 타투가 있나요?
정새난슬 : 몇 개가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확장을 하다 보니까 이제 개수보다는 어느 부위에 있다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고, 하나씩 안 세게 되는 것 같아요.
김하나 : 『러키 서른 쎄븐』 의 표지도 센 느낌이고 『다 큰 여자』 안에 있는 여러 이미지들도 굉장히 센 느낌이고, 셔츠를 벗었을 때 타투 이미지도 굉장히 세잖아요. 그런데 목소리는 아주 미성이시네요.
정새난슬 : 보여지는 이미지랑 실제 저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사회적인 나와 내가 다루는 나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고 할까요. 그래서 실망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요(웃음).
김하나 : 저는 그게 아주 재밌어요. 음악을 들었을 때도 펑크 쪽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포크적인 느낌이었고, 기대를 배반하는 점이 재밌어요.
정새난슬 : 어쩌면 제 자신이 스스로 유약한 모습을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한 일련의 일들이 있는 것 같아요. 타투도 그렇고. 제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그냥 한 번에 보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거나 싫은 것 같아요. 아니면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부모님의 이미지가 덧대어져 있잖아요. 20~30대 분들은 모르지만 조금 나이가 더 있으신 분들은 ‘정태춘ㆍ박은옥의 딸은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겠지’라는 식으로 푸근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뚫고 나가고 싶었던 20대가 있었어요. 정반대에 위치하고 싶다는.
김하나 : 제가 어렸을 때 ‘가요 힙스터’였어요. 가요를 너무 좋아하는 꼬마였는데, 새로이 나오는 도회적인 이미지의 곡들을 되게 좋아했어요. 김완선이라든가 윤상이라든가. 그런데 저희 엄마 아빠가 갖고 계시던 테이프 중에 ‘정태춘ㆍ박은옥 골든 베스트’가 있었던 거죠. 그걸 너무 좋아했어요. 저의 음악 취향의 스펙트럼에서는 아주 이질적인 부분인데, 지금도 기억하고 따라 부르는 노래가 많아요. 아주 좋아하고요. 정태춘, 박은옥 두 분의 딸이라고 하면 음악적인 것에 대한 압박이나 부담을 많이 느끼지는 않았나요?
정새난슬 : 아뇨,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대체로 제가 노래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시고 크게 실망하시고는 했죠. 그게 너무 여러 차례 반복되다 보니까 제 자신이 ‘나는 음악이 너무 싫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약간 올가미처럼. 사실 집에서는 ‘쟤가 음악에 소질이 없구나’ 하고 약간 체념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김하나 : 어렸을 때 많이 시켜보고는 ‘어? 아닌 것 같다’ 이런 건가요?
정새난슬 : 아뇨, 그렇게 많이 시켜보지는 않으셨는데요. 일단 피아노를 가르친다거나 했을 때 아이가 상당히 흥미가 없고 소질이 없고(웃음). 그리고 노래를 조금 들어봐도 알잖아요, 두 분이 가수이시니까. 그런 것들에 의해서 ‘쟤는 음악은 아닌가 보다’ 하고 접으셨는데, 나이가 들어서 갑자기 제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거죠.
김하나 : 음악에 별로 소질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책에 있잖아요. 그런데 정규 앨범 『다 큰 여자』 를 들어 보니까 노래 너무 잘하시던데요?
정새난슬 : 아니에요, 노래 못하고요(웃음).
김하나 : (웃음) 기계로 만진 거예요?
정새난슬 : ‘스튜디오형 가수’라고 불러주세요(웃음).
김하나 : (웃음) 라이브는 조금 약하고?
정새난슬 : 제 생각에는 ‘내가 노래를 하고 싶은가?’ 하고 생각해 봤을 때, 정확하게는 가사를 쓰고 싶은 것 같아요.
김하나 : 아, 가사 좋아요!
정새난슬 : 노래를 소박하게 만들고, 제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는 건 아니니까, 기타의 기본 코드로 음악은 만들 수 있어요. 신이 저주를 하셨는지 ‘(재능을) 여기까지만 줄게’라는 식으로. 그 과정에서 제일 즐기는 부분이 가사를 입히는 거였는데요. 제가 유명인이 아니다 보니까 누가 제 노래를 불러주겠어요, 저라도 불러야죠(웃음). 그래서 ‘이 노래들을 바깥에 내놓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실제로 저는 엄마와 비교해봤을 때 그런 음색이나 바이브레이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비교를 하면 상당히 작아지죠(웃음).
김하나 : 전혀 그럴 필요 없을 것 같고요. 책 『다 큰 여자』 의 뒤쪽에 보면 정규 앨범에 들어있는 곡들의 가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써두셨잖아요. 그 글을 읽고 음악을 들었더니 그림이 확 그려지기도 하고, 이야기가 가사화될 때 이루어지는 어떤 선택들이 보여서 정말 재밌었어요. 가사를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정새난슬 : 음악을 만드는 경험 자체가 상당히 경이로운 부분이 있어요. 저는 저의 창작물을 대부분 좋아하지 않는데...
김하나 : 좋아하지 않으세요?
정새난슬 : 네, 상당히 제 취향이 아니에요(웃음). 제 그림 같은 것도 그렇고, 세련되고 싶은데 세련되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웃음). 그런데 음악은 훌륭하다 싶어서 좋아한 게 아니라 그만큼 마음이 많이 쓰이고요. 창작하는 과정 자체에 환희가 있는 것 같아요.
김하나 : 내가 들어도 좋다거나, 완성도가 높아졌을 때 스스로가 느끼는 쾌감 같은 것들인가요?
정새난슬 : 네. ‘내가 이 노래를 만들려고 저런 경험을 했을까?’ 싶은 순간,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그게 저한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할 수 있는 창작인 것 같아요.
김하나 : 제가 『박완서의 말』 을 읽다가 그런 부분을 봤어요. (박완서 작가님께서) 글을 쓰시다 보니까 아주 모멸감을 느끼거나 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이것을 언젠가 내가 글로 쓰겠구나’ 생각하면 덜 아프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말씀과도 통할까요?
정새난슬 :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이혼을 하고 우울증을 심하게 겪고 나서 치유로써 글쓰기가 힘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됐거든요. 예전부터 오래 글을 썼던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정말 그렇고요. 저한테는 음악이 그렇게 분석적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와 닿아 있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음악이 나에게로 온 거군요.
정새난슬 : 글쎄요(웃음). 아주 조금(웃음).
김하나 : 『다 큰 여자』 를 썼을 때는 어떤 힘듦이 조금 더 직접적일 때였나요?
정새난슬 : 아마 이혼 직후에, 아니면 전후에 썼던 글들을 모은 책이라서요. 지금 읽어 보면 뭔가 격정에 사로잡혀 있어요(웃음). 한창 뜨거울 때. 지금에 와서 보자면 뭔가 활활 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김하나 : 『러키 서른 쎄븐』 을 봤더니 『다 큰 여자』 보다 더 경쾌한 리듬으로 읽히는 것 같아요. 유머러스한 분위기도 더 많아진 것 같고요. 두 책 사이의 간극이 2년 정도잖아요.
정새난슬 : 네, 맞아요.
김하나 :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새난슬 : 상당히 많은 체념과(웃음), 저 자신을 약간 되찾은 느낌이 있어요. 격정에 사로잡힌 분노, 다시금 생겨나는 여러 가지 문제의식, 거기에서 제 자신의 리듬을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또 어떻게 보면 아이가 있으니까 ‘붙박이장 인생이구나’ 하고 약간 체념하다시피 한 게 있어요. 그게 어떤 날은 정말 무겁게 다가오고 어떤 날은 상당히 코믹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있는 그대로의 제가 이번 책에 실린 것 같아요.
김하나 : 여기에서 잠깐, 뜬금포로 ‘스피드퀴즈’ 들어가겠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지 마시고 바로바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정새난슬 : 네.
김하나 : 다음 책에도 에필로그를 쓰지 않겠다.
정새난슬 : No.
김하나 : 최근 잊지 못할 언어폭력, 시선폭행을 경험했다.
정새난슬 : Yes.
김하나 : 직장생활은 정말이지 다시는 못할 것 같다.
정새난슬 : Yes.
김하나 :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정새난슬 : Yes.
김하나 : 선배 여성으로서, 딸 서하에게 ‘이런 선택은 하지 마’라고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새난슬 : Yes.
김하나 : 지금도 서하는 내가 만든 노래보다 ‘렛잇고(겨울왕국 O.S.T)’를 더 좋아한다.
정새난슬 : Yes.
김하나 :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은 미련 없이 버린다.
정새난슬 : No.
김하나 : 내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은 하트를 받은 사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정새난슬 : No.
김하나 : 우리 엄마에게 마이클잭슨이 있었듯이, 내게도 흠모하는 뮤지션이 있다.
정새난슬 : Yes.
김하나 : 이제 ‘장기 연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정새난슬 : 쓰읍....
김하나 : ‘스’라고 써놓을까요(웃음)?
정새난슬 : ’...‘ 같은 거 없나요(웃음).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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