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역사에서 오늘의 우리가 나아갈 길을 묻다
『조선왕조실록』 을 펴낸 이덕일 작가 인터뷰
역사의 눈을 가지고 현재를 바라보면 미래의 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늘 역사는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018. 07. 24)
500년 조선 왕조의 역사를 빠짐없이 기록한 최고의 역사서이자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 최고의 기록유산.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수많은 사극이나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큼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지만, 사실 그 방대함으로 인해 일반 독자들이 직접 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만화로 된 책이나, 한 권짜리 다이제스트로만 소개되어왔다. 그런데 지금 조선왕조실록 전체를 무려 10권이나 되는 대작 시리즈로 담아내는 정통 역사교양서가 출간됐다고 한다. 이 책의 출간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작가 이덕일을 인터뷰해보았다.
현재 조선왕조 전체를 다루는 시리즈 대작을 집필하고 계신데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에 나서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조선 시대를 잘 아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실제로는 당대의 사료인 조선왕조실록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이 아주 많은 거죠. 후대에 누군가가 특정한 의도로 만든 내용들이 사실인 것처럼 각인된 탓입니다. 그래서 당대의 목소리를 통해 당대의 사건을 조명하되 해석은 현대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는데, 드디어 그 첫발을 뗀 것입니다.
2018년 현재, 우리가 조선왕조실록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조선이 518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국왕을 포함해서 권력의 전횡과 부패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제가 왜곡한 조선을 실제 조선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는 늘 청와대 비서실과 검찰의 전횡이 문제가 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런 문제 자체가 발생할 수 없었던 구조입니다.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이라 할 승정원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또한 사헌부를 비롯해서 의금부, 형조, 포도청 등 여러 기관으로 수사권을 분산해 서로 견제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법부의 자의적 판결도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조선의 선조들이 최선의 지혜를 짜내서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려 했음을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책들은 지금까지 꽤 많이 출간되어 왔는데, 그 책들과 차별점으로 생각하시는 점이 있을까요?
조선왕조실록이란 제목의 책들이 꽤 있어서 다른 제목도 생각해봤지만 생생한 조선의 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데는 조선왕조실록이란 제목 이상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뚜렷한 관점을 통해 차별성은 저절로 드러나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시대 속에 들어가서 마치 그 시대 속에 사는 듯한 서술방식을 통해서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살아있는 드라마를 동시에 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1, 2권은 태조에서 태종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대해 우리가 가장 주목할 인물이나 시대적 과제가 있을까요?
조선 개창은 단순히 왕조가 왕씨에서 이씨로 바뀐 것이 아닙니다. 고려 말 소수 권세가들이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면서 공동체가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조선은 바로 이런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개창된 것입니다. 정도전은 혁명적인 토지개혁을 통해 민생을 되살렸고, 태종 이방원은 신분이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의 신분을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하는 종부법으로 개정함으로써 조선이 신분적 평등사회로 가는데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요동정벌의 계기가 되었던 철령위가 현행 국사교과서의 설명대로 함경남도 안변이 아니라 중국의 요녕성 심양 남쪽임을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명사(明史) 등 중국사료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고려, 조선 초의 국경은 일본인 식민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가 만든 것을 그대로 추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 누구보다 나라의 강역에 관심이 많았던 태조, 태종, 세종께서 이제야 나라의 강역이 다시 잡혔다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이 특별히 본받았으면 하는 왕이 있을까요?
먼저 조선은 국왕은 물론 모든 벼슬아치들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역사에 대한 지식은 가장 기본이었습니다. 역사를 알면 현재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 정책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죠. 또한 대부분의 임금들과 벼슬아치들은 독서가였습니다. 지금의 정치인들과 사뭇 다른 점이죠.
태종은 수많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과제를 명확히 알았습니다. 그 과제는 바로 과감한 개혁과 숙청을 통해 국왕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법 아래 존재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태종의 개혁과 숙청은 권력 내부로 향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정적을 숙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최측근을 숙청함으로써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이지요. 구 정권의 적폐청산만으로 박수 받는 현재의 상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정권 내부로 과녁이 향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현 정권의 미래도 명확해질 것입니다. 부디 태종의 리더십을 본받아 다음번에는 세종 같은 임금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집필할 왕 중에서 가장 기대되는 왕이 있으신가요?
모든 임금은 그 재위기간이 길든 짧든 모두 흥미진진합니다. 권력의 정점이기 때문이지요. 조선은 군주제지만 사대부들의 합의를 중시했기 때문에 국왕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성종 같은 경우는 자신을 임금으로 만들어 준 훈구세력과 그 훈구세력의 전횡을 비판하는 사림세력 사이의 균형을 갖추는 것으로 왕권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연산군은 이런 권력 운용의 묘를 몰랐기 때문에 훈구와 사림의 연합세력에 의해서 쫓겨나고 황음한 군주로 조작된 것입니다. 특정한 어느 임금 한 사람보다는 모든 임금에 대해 이런 식의 평가를 하고 새롭게 조명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는지 작가로서의 바람을 말씀해주세요.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로 들어가되 늘 현재의 시각을 놓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눈을 가지고 현재를 바라보면 미래의 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늘 역사는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권력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대의 여건과 그 자신의 역량에 의해 크게 제약 받는 것입니다. 정조처럼 부친을 죽인 거대한 적당에 둘러싸여서도 시대적 과제를 실천했던 군주들은 후대에 평가받지만 그렇지 못한 군주들은 비난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선왕조실록 1 태조이덕일 저 | 다산북스
날카롭고 단단한 문체로 기존 해석에 질문을 던지고 현대적인 의미를 찾는다. 조선을 이끈 주요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평가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련태그: 조선왕조실록, 이덕일 작가, 500년 역사, 역사교양서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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