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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옹기종기] 자꾸 헌시를 쓰라고 강요했어요 (G. 유희경, 이상협 시인)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어떤 사람이 시를 잘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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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옹기종기’ 두 번째 공개방송, 저희는 지금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온다빌레’에 있고요. 제 곁에는 두 분의 시인이 나와계십니다.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웃음)’ 최근에 시집을 출간한 유희경 시인, 이상협 시인을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2018.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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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켜주고 갔습니다 미간을 찌푸려 가늘게 눈을 뜨고 방금,

 

읽어가던 것을 시옷의 형태로 내려놓습니다 기다립니다 그만 내려오기를 내려오고 내려오다 더 갈 데가 없을 때까지

 

바람이 불어옵니다 간판이 흔들리지만 가게는 없고 야윈 손님이 찾아옵니다 이 밤은 어느 때의 것입니까 왜 아무런 말도 없이 불을 켜주고 간 것입니까

 

더 갈 곳 없어 지금을 빌리는 중이니, 이 불빛은 꺼두어도 좋겠습니다 나는 오래도록 없어지고 있습니다 견고한 물질 위에 마른 손을 올려 두고서

 

안녕하세요, 오은입니다. 방금 읽어드린 시는 유희경 시인의 「시를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읽어가던 것을 시옷의 형태로 내려놓습니다”라는 구절이 참 좋죠. 책을 읽다가 잠시 덮어둔 그 모양을 상상하면서 문득 시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잠시 멈추고, 내려놓고, 숨을 돌리며 읽는 것. 오늘 ‘오은의 옹기종기’는 여러분들의 시심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드릴 예정이에요. 방송을 듣다가 여러분은 무조건 시를 읽고 싶어질 겁니다.(웃음) 


시인 유희경, 그리고 시인 이상협과 함께 시와 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볼 생각이에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인터뷰- 유희경, 이상협 시인 편>

 

오은 : 유희경 시인님부터 소개를 해드릴게요. “시인. 서점 주인. 유희왕.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로 등단. 올해로 등단 10년 차 시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극작을 전공한 유희경은 사실 2007년 희곡 「별을 가두다」를 통해 극작가로 먼저 데뷔했고, 「실선」, 「부부의 식탁」, 「별을 가두다」 등을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희곡창작집단 ‘독’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며 2015년에는 ‘독’의 첫 희곡집 『당신이 잃어버린 것』 을 출간했다.

 

하지만 유희경은 천생 시인.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남들은 그냥 지나치곤 하는 것도 잘 지나치지 못한다. 그런 자신의 눈에 포착된 작고 사소한 일상의 모습을 시로 담아내는 것이 좋다. 완성된 시보다 시를 쓸 때의 감정을 훨씬 좋아하는 이유. 세 권의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2018),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2017), 『오늘 아침 단어』 (2011)을 펴냈고, 오은과 함께 하고 있는 시 동인 '작란'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다.

 

10년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유희경. 그가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의 주인으로 변신한 것은 2016년 6월이다. 올해로 서점이 2주년을 맞은 위트앤시니컬은 이미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유희경은 이 서점이 어떻게든 없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점에서 만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류가 무척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시집을 추천해달라는 분을 만나면 하루가 행복하다.

 

술은 약하지만 술자리는 좋아한다. 기계를 좋아하지만 잘 다루지는 못한다. 새로운 일 구상하기를 좋아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어서 이상협 시인님 소개도 나갑니다. “시인. 아나운서. 뮤지션. 시간 순으로 굳이 따지면 뮤지션, 아나운서, 시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1997년 ‘제9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푸른 새>로 동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 음반 <에고트립>을 내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음악을 하려고 했지만 밥벌이가 힘들 것 같아 KBS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2002년 KBS 아나운서가 된 이상협은 2009년 KBS1 '바른 말 고운 말’, 2013년 KBS2 '추적 60분' 등을 진행했고, 파업 때는 맨 앞줄에서 북을 쳤다. 특히 지난 겨울 파업 당시 그는 파업 현장에서 시인 윤동주 전집을 낭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민무늬 시간」, 「비대칭 행성」, 「앵커」같은 ‘여의도 3부작’은 그 시절 나온 시들이다. 솔직히 이런 시는 이제 그만 쓰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12년 이상협은 「너머」로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다. 게으른 탓에 첫 시집을 펴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2018년 4월 첫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이 세상에 나왔는데 먹여 살릴 식솔 많은 집 첫째가 홀가분히 출가해 나온 기분이다. 제목은 역시 ‘시인들의 작명소’ 김민정 시인의 작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팟캐스트 <오디오 진정제>에서 감미로운 중저음의 목소리를 담당하고 있다. 얼마 전 봄 개편으로 KBS 클래식FM에서 <당신의 밤과 음악>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개인 사진전을 열 정도로 사진을 사랑한다. 음주를 사랑한다. 허름한 술집에서 술 많이 먹고 진지하게 낭독하다 막 웃고 다 취하는 게릴라 낭독회를 해보고 싶다.”

 

유희경 : 완전히 감동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술을 별로 안 좋아하고요. 술자리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상협 : 이렇게 들으니까 저희 두 사람이 훌륭한 사람처럼 느껴져요. 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런 일들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오은 : 유희경 시인은 완성된 시보다 시를 쓸 때의 감정을 훨씬 더 좋아하신다고요?

 

유희경 : 네, 저는 퇴고할 때가 가장 괴로우면서도 좋아요. 시를 쓸 때, 그때 제가 시인인 것 같고요. 시를 송고하고 나면 그 시에 대한 감정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다 가끔 낭독을 할 기회가 오는데요. 그러면 시를 쓸 때의 생각이 나서 낭독회를 되게 좋아요. 계획하기로는 시 한 권을 통째로 읽어보고 싶어요. 계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오은 : 먼저 저희는 인터뷰 시작 전에 ‘deep & slow’ 질문을 드립니다. 인터뷰 마지막 단계에 이에 대한 답을 해주세요. 유희경, 이상협 두 시인분께 드리는 ‘deep & slow’는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를 잘 쓸까요?”

 

이상협 : 오은이죠, 오은.(웃음)

 

오은 : 본격적으로 ‘오은의 옹기종기’ 시작할게요. 두 분 모두 시집 내고 많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지내세요?

 

유희경 : 시집을 내면 많이 마음앓이를 해요. 시집이 부끄러워서도 아니고요. 탈고했다는 기분 때문도 아닌 것 같아요. 이 까닭을 도대체 알 수가 없는데요. 이번에 마음앓이를 아주 심하게 했습니다. 살이 빠져나갈 정도로 괴롭더라고요. 많이 괴로워서, 그래서 일들을 많이 벌려놨는데요. 그걸 수습하느라 요즘 바쁘게 살고 있는 중이에요. 시집을 축하하는 자리도 만들지 못했어요. 만들기도 싫었고요. 무기력하게 보냈고, 천천히 메우는 중 같아요.

 

이상협 : 시집 나오는 시기가 방송 제작하는 시기였어요. 석 달 정도 출장을 다녔고요. 첫 시집이 나왔는데 남들이 먼저 본 거죠. 유희경 시인이 트위터에 시집을 올렸더라고요. 제가 “그 시집 어디서 구했니?” 물어보고 그랬어요.

 

오은 : 이상협 시인은 특히 첫 번째 시집이라 기분이 달랐을 것 같아요. 기분이 좋은 게 컸죠?

 

이상협 : 차근차근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늦어버린 거죠.

 

유희경 : 예전에 오은 시인과 김소연 시인이 제게 “첫 시집이라 좋겠다”라고 따로 얘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첫 시집, 굉장히 소중하고 두 번 다시 못 겪을 것이니까 잘 간직하라는 이야기였는데요. 정말 그래요. 첫 시집이 좋은 게 아니고요. 첫 시집이 제일 덜 괴로운 것 같아요. 두 번째 시집이 조금 더 괴롭고요. 세 번째 시집은 더 괴로워서 첫 번째 시집이 낫구나, 생각했어요.

 

오은 : 저는 세 번째 시집 낼 때 기분이 제일 좋았는데.(웃음)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에요. 이상협 시집 입구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우리는 진동한다 / 사이엔 두루 있으리” 어떤 의미였나요? ‘두루’라는 부사를 써서 뭔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거든요. 

 

이상협 : 모두 간격을 두고 있잖아요.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 각자의 이유와 간격으로 배치가 되어 있고요. 그걸 ‘사이’라고 부르죠. 그것이 그리움이든, 애증이든, 어떤 마음으로 채워져 있는데요. 그 안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흐르는 거죠. 쉽게 표현하면 이런 거예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 보셨죠? 거기 이런 대사가 나와요. “사랑이 존재한다면 우리 안은 아닐 거야. 사이일 거야.” 관계라는 건 사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고요. 우리는 진동하는 존재들이죠. 그런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적었던 말이에요.

 

오은 : 인간이라는 말 안에 이미 ‘사이(間)’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인간과 인간 사이’라고 할 때는 ‘사이’라는 말이 두 번 들어가서 더 깊은 느낌이 납니다. 유희경 시인의 시인의 말은 이래요. “나타나지도 않았고 / 사라지지도 않는 / 우리들의 옛 마음에게” 어려운 말이에요.

 

유희경 : 우리는 늘 감정을 유보하고, 어떤 것을 기다린다고 생각해요. 기다린다는 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고, 나타나지 않는 게 잊히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런 문장을 썼는데요. 되게 부끄럽네요.(웃음) 저는 늘 기다리는 것 같아요. 사람을 기다리고, 새로운 감정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요. 지금 당장 내 앞에 나타난 것보다 그 뒤, 그 다음을 생각해요. 그 간격에 있는 것이 신적 존재 같고요.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는 의미로 문장을 적었어요.

 

오은 : 「앵커」, 「기록」, 「저절로 하루」 등에서 이상협 시인은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내요. 한 인터뷰에서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에 집중했다”고 하셨는데요. 정확히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상협 : 시 잘 쓰는 분들은 너무 많잖아요. 저는 소재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거죠. 저의 직업적 특수성으로 만들어진 체험들, 거기서 느낀 감정들은 그래도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DJ가 주인공이라든지, ‘여의도 3부작’ 같은 것들은 제가 아니면 그렇게 표현하기 힘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앵커」라는 시도 그런데요. 뉴스 들어가는 사람에 대해 추체험을 통해 표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직접 해본 사람은 또 다를 거예요. 저는 그런 것들을 좀 더 쓰고 싶어요.

 

오은 : 유희경 시인은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출간 당시 “이번 시집을 내면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요”라고 했죠. 왜 그랬을까요? 트위터에는 “시집을 한 권 내면 몇 년치는 한꺼번에 늙는 기분입니다.”라고도 하셨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파악해도 될까요?

 

유희경 : 조금 다른 내용인데요. 얼마 전에 거울을 보다 앞머리를 쓱 넘겼는데요. 흰머리가 장난 아니게 많더라고요.(웃음)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트윗을 올렸어요. 첫 번째 시집은 아무래도 소년의 감정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수습하지 못하고, 정해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방황, 갈등 같은 것이었는데요. 이번 시집은 담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저지레가 아니라 수습하는 과정에 들어섰다고 생각을 했죠. 저 스스로를 키워가는 과정 같고요. 내가 자라나는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번 시집에서 만족하게 되는 어떤 지점 같아요.

 

오은 : 두 시인께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이 하나 있어요. 정말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읽은 시집이 있나요? 오은 시인의 시집을 제외하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이상협 : 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 시집이 있어요. 장석남 시인의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이라는 시집인데요. 종로 모처 어학원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거든요. 졸업하고, 취직이 안 돼 백수생활을 하던 때였는데요. 이상하게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시집을 샀어요. 무슨 얘긴지 처음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읽을수록 뭔가 있는 것 같은 거예요. 텍스트에 대한 독해도 아니고요. 읽을 때마다 어떤 감정들이 마음 속에 고이는데 그런 체험들이 너무 소중했어요. 정말 많이 읽었어요.

 

유희경 : 오은 시인의 『호텔 타셀의 돼지들』  많이 읽었는데요. 이 시집은 신기한 시집이어서 당시에는 정말 ‘어? 이거 뭐야?’라는 생각에 자꾸 되짚게 되는 시집이었어요. 또 허연 『불온한 검은 피』 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제일 많이 읽었던 건 기형도 같아요. 요즘도 계속 읽게 되는데요. 일적인 측면도 있지만 제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기형도를 읽게 돼요. 지금 보면 처음 기형도를 읽었을 때 느꼈던 것이 안 느껴지거든요. 가끔은 유치해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길을 잃었다고 생각이 들면 아주 자연스럽게 기형도 시집을 꺼내게 되고요. 제 책상에서 가장 낡은 시집도 기형도 시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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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 두 분에게 시 낭독을 청해 듣고 싶어요. 어떤 시를 읽어주시겠어요?

 

유희경 : 조금 긴 시예요. 오은 시인이 자기 헌시를 쓰라고 저한테 강요를 했었어요. “왜 ‘오은에게’ 안 써?”라고 했는데 끝까지 안 썼어요.(웃음) 결국 썼을 때는 오은 시인한테 안 말해주고 발표를 했죠. 원고가 다 묶였을 때 “너에게 주는 시야.”라고 밝혔어요. 그 시를 읽어드릴게요. 「어깨가 넓은 사람 - O로부터」라는 시입니다.

 

이야기란 그렇다
도무지 끝나질 않고


매번 시작되기만 하지
그래서 나는 네게


부루퉁한 표정의 네게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방금
고등어구이를 먹고


고등어구이집을 빠져나온
가시가 걸린 기분이 가시지 않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게 분명한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
(「어깨가 넓은 사람 - O로부터」 일부)

 

유희경 : 오은 시인과 가끔 심란한 일이 있을 때 생선구이집에 가요. 두 번 갔어요. 그런데 오은 시인 보면 여러분, 사과 진짜 잘해요. 빨리 사과합니다. 그렇게 사과 하는 은이가 가끔 짠해요. 일단 마음 상하게 하고, 사과하죠.(웃음) 그게 짠해요, 마음 아프고.

 

오은 : 미담으로 연결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군요.(웃음)

 

이상협 : 이 시를 좋아하며 읽었는데 오은 시인에게 쓴 시인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루퉁한 표정의 네게”라는 시구가 있었죠. 거기서 알아챘어야 했네요. 그리고 역시 시는 그 시를 쓴 시인이 읽는 게 가장 아름다운 낭독인 것 같아요.

 

오은 : 이상협 시인은 어떤 시를 읽어주실지 기대가 되네요.

 

이상협 : 「정동 산책」이라는 제목의 시가 두 개 있어요. 두 번째 「정동 산책」을 낭독할게요. 이 시가 좋다는 분이 두 분 계셨거든요. 읽겠습니다.

 

라일락이 시작되었어
목발 짚은 회화나무 그늘을 지나왔어


나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빗방울이 시작되었어


턱을 괴고 무릎에 기대고 있었어

사람들은 모두 한쪽 방향에서 온다


죽은 작곡가의 기념비에선 노래가 흘러나왔지
(「정동 산책」 일부)

 

오은 : 시작된다는 표현은 보통 현상을 표현할 때 쓰는데 “라일락이 시작되었어”라는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확실히 시는 읽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듣는 장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습니다. 자, 저희가 처음에 deep & slow로 “어떤 사람이 시를 잘 쓸까?”라는 질문을 드렸잖아요. 오늘 이야기에서, 답을 찾으셨나요?

 

유희경 : 혼자를 잘 견디는 사람이 시인이 되는 것 같아요. 결국은 정말 끝까지 외로워지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외로움 아닌 다른 걸 느껴요. 혼자 있는 게 별로 외롭지 않은 순간이 올 때 감각이 열리는 것 같아요.

 

이상협 : 같은 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사람, 하나를 깊이 응시할 수 있는 사람. 뭔가를 계속 응시하면 아주 낯설게 보이거든요. 미시감이라고 하잖아요. 몰입을 통해 흘러나온 감정을 문장으로 받아 적을 수 있고, 그 문장을 오래 품을 수 있는 사람, 오래 품어서 확장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은 : 두 분의 말에 다 동의가 돼요. 조금 보태자면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시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시를 쓸 때 매번 힘든데 엄마가 “이걸 십 몇 년 째 하고 있는데 왜 힘이 드느냐”고 하세요. 그러면 “지금 쓰고 있는 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시니까.”라고 답하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두렵기보다는 해볼 만해요. 그래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란 어쩌면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늘 클로징 멘트는 유희경 시인, 이상협 시인 두 분과 함께 해보겠습니다. 마지막 ‘안녕!’을 해주시면 되고요. 내 안에 있는 어린 아이를 최대한 끌어내서 인사해주세요.(웃음) 지금까지 옹기처럼 소박하지만 종기처럼 난데없이 등장하기도 하는 오은과 함께한 ‘오은의 옹기종기’였습니다. 내일 또 만나요! 안녕!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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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오은(시인)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너랑 나랑 노랑』 『유에서 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을 썼으며,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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