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책임] 혼자 읽기 너무 아까운 책
『벗지 말걸 그랬어』, 『가장 사소한 구원』, 『박하』
안녕하세요. ‘어떤, 책임’ 시간입니다. 저는 불현듯이고요. 오랜만에 곁에 프랑소와 엄님과 캘리님 나와 계십니다. (2018. 05. 24)
불현듯 : 지난 3회 때 광화문에서 특집 공개방송을 하는 바람에 <어떤, 책임>이 한 주 쉬었어요. 어떠셨어요? 쉬어서 그런지 오늘 더 기대가 되고 그래요.
캘리 : 제 삶의 즐거움을 하나 잃었었잖아요.(웃음) 그 동안에 저 혼자 다음 주제를 상상하면서 책도 읽고 그랬습니다. 너무 기다렸어요.
불현듯 : 사실 일종의 짐이면서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누군가에게 좋은 책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시간이에요. 프랑소와 엄님은 어떠셨어요?
프랑소와 엄 : 저는요, 식욕이 떨어져서요.(웃음) 하루에 한 끼만 먹고 3주 버티다가 왔습니다. 오늘은 잘해야 하니까 맛있는 점심 먹고 왔어요.
불현듯 : 오늘 주제는 ‘혼자 읽기 너무 아까운 책’입니다. 프랑소와 엄님께서 강력 추천한 주제예요. 이런 책 너무 많잖아요. 숨어 있는 나만의 책. 그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벗지 말걸 그랬어』
요시타케 신스케 저/유문조 역 | 스콜라
'혼자 읽기 너무 아까운 책', 오늘의 주제를 듣자마자 떠오른 책입니다. 처음으로 그림책을 소개하게 되었어요. 요시타케 신스케의 『벗지 말걸 그랬어』 를 소개할게요. 표지 먼저 보여드릴게요. 정말 귀엽죠?(웃음)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함께 놀다보면 정말로 아이가 된 것처럼 행복해지고, 순수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마음의 빗장을 싹 열게 되는데요. 그림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사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은 이와무라 카즈오의 『생각하는 개구리』 시리즈인데요. 아쉽게도 절판이 되었어요. 재출간을 기다립니다.(웃음)
우선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의 기준은 글밥이 적어야 한다는 것. 글밥 많은 것은 많은 대로 맛이 있지만 이왕 그림책이라고 하면 한 편의 시와 같은 글, 그리고 문장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 있으면 좋아요. 생각이 여러 갈래로 퍼지면서 굉장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오늘 소개할 『벗지 말걸 그랬어』 는 제가 선호하는 그림책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정말로 즐거워지는 책입니다. 먼저 첫 장면이 시선을 붙잡습니다. “옷이 걸려서 벗을 수 없게 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웃음)라는 독백과 함께 어린 아이의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보니까 아이가 혼자서 옷을 벗으려다가 얼굴이 너무 커서 옷이 목에 걸려버린 거죠. 벌 서는 자세가 되어서 옷에 갇혀버렸습니다. 앞도 볼 수 없고요. 목욕하자는 엄마의 말에 "혼자서 벗을 수 있단 말이야!"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 아무래도 안 됩니다. 옷에 갇혀서 이 아이는 “이러다 평생 못 벗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에 온갖 상상을 해요. 옷에 걸려 있어도 훌륭하게 자란 사람은 많겠지, 라는 글과 함께 그 상태로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연단 위에 올라선 그림도 나오는데요. 정말 재미있어요. 아이는 어쩌면 이대로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약간의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 상태로 여행하는 장면도 나오고요.(웃음)
그런데 고양이가 배를 간지럽히면 막을 수가 없잖아요. 이렇게 있다보니까 배도 조금 시렵고 말이죠. 혼자 벗기를 포기하고 엄마한테 벗겨 달라고 하자니 조금 자존심이 상해요. 그래서 아이는 바지라도 먼저 벗어볼까 하죠.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됐겠어요.(웃음) 바지까지 걸려버린 거예요. 손을 쓰지 못하니까 다리로만 벗으려다가 손과 발을 아예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려요. 결국 엄마가 들어와서 옷을 훌러덩 훌러덩 벗기고 목욕을 시키면서 이 상황이 일단락됩니다.
하지만 약간의 반전이 있어요. 끝까지 보셔야 하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의 순수함과 상상력을 정말 잘 표현해낸 그림책이에요. 작가가 어쩜 이렇게 아이의 찰나를 잘 표현해냈을까, 놀라면서 읽었고요. 이 책을 동네 책방에서 정말로 우연히 발견했거든요. 그 자리에 서서 혼자 엄청 낄낄거리면서 책을 읽은 거예요. 책이 얇으니까 금방 읽었죠. 그때 정말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이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혼자 읽기는 정말 아까워서요. 이 아이 너무 귀엽지 않나요, 라고 말도 걸고 싶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날은 짐이 많았던지 책을 못 사왔는데요. 이번에 주제를 받자마자 이 책이 떠올라서 다시 그 책방에 가서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 기분을 느끼고 싶은 거예요. 통창으로 해가 드는 그 오후의 책방, 한 구석에 서서 낄낄거리며 이 그림책을 보던 그 기분 말이에요. 저는 이제 이 책만 보면 그 순간의 완벽에 가까운 즐거움이 떠올라서 우울하다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책이 하나의 상징적인 물건처럼 되어버렸어요. 생각해보면 이런 경험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 주말에 가까운 서점에 가보시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 찾아보셔도 좋겠고요! 요시타케 신스케의 『벗지 말걸 그랬어』 입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가장 사소한 구원』
김현진, 라종일 저 | 알마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2015년 1월에 출간해서 3개월 간 당시 4쇄를 찍은 책인데요. 『가장 사소한 구원』 입니다. 라종일 교수님과 김현진 작가님 두 분이 서로 주고 받은 32통의 편지 내용을 담은 책이에요. 이 책은 김현진 작가님이 라종일 교수님과 편지를 주고 받다가 책으로 묶고 싶다고 한 것이었는데요. 라종일 교수님은 반대를 아주 진지하게, 오래 하셨대요. 이게 어떻게 책이 될 수 있느냐, 라는 말씀이셨던 건데요. 김현진 작가님은 이렇게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럼에도 부끄러움이 충만한 이 기록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선생님의 답장들을 나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7쪽)
오늘 주제가 ‘혼자 읽기 너무 아까운 책’이잖아요. 여기 딱 똑같은 표현이 나오죠. 의도한 건 아닌데요. 이런 표현을 이 글을 읽고서 계속 영향을 받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2015년에 제가 라종일 교수님 인터뷰를 하고서 이분에 대한 인상, 교수님께 받은 느낌이 굉장히 강렬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거든요. 그때 기사 리드에 이렇게 썼어요. ‘얼마나 많은 곳에 밑줄을 쳤는지 모른다. 더 이상 밑줄을 그으면 줄무늬 노트가 될 것 같아 포기했다. 이건 누구 한 사람의 ‘사소한’ 구원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오늘 ‘알쏭달쏭’에 사연을 보내주신 세 분이 이 책을 읽으시면 도움을 많이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라종일 교수님과 김현진 교수님, 두 분의 인연이 특이해요. 왠지 김현진 작가님이 연락하셨을 것 같잖아요. 그게 아니고요. 라종일 교수님이 먼저 김현진 작가님이 2009년에 썼던 『그래도 언니는 간다』 를 인상 깊게 읽고 만남을 청한 거예요. 라종일 교수님은 엘리트 코스를 밟으신 분이고, 모범생 기질이 있으신 분인데요. 김현진 작가님은 그렇지 않죠. 그런 김현진 작가님이 고민도 많고, 상처도 많다고 얘기를 하니까 라종일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시거든요.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나는 네 편이다.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느냐?” 참 좋죠. 또 이런 말씀도 하세요. “마음의 상처란 주는 사람만큼이나 그것을 받는 사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수님이 하는 표현 하나, 하나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어요. 그것을 거창하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시고요.
또 한 말씀을 소개하고 싶어요. 라종일 교수님이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누구를 만나건 우선 그 사람의 부모가 그를 낳고 키우면서 기울였을 애착과 정성을 봅니다. 이제는 말도 잘 안 듣고 공부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더 관심이 갑니다.”라고 하셨거든요. 모든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의 부모를 생각하고, 저 사람은 얼마나 귀한 존재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게 정말 놀라웠어요. 주변에 없던 어른을 만난 것 같았어요. 인터뷰 당시에 제가 힘들었을 때였거든요. 제가 물었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시느냐고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특별히 존경할 만한 그런 분들도 있는데요.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만나는 사람마다 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고요. 제가 모르는 것, 좋은 점을 갖고 있어요. 70대 중반까지 살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위로는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도 만났는데, 완벽해 보이고 성인이고 특히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 자기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 필적할 지식, 정보를 모두 갖춘 사람은 못 봤어요. 다 불안정해요. 반대로 아무리 형편 없는 사람을 만나도 훌륭한 점이 있어요.” 당시 또 제가 자주 질문하던 게 있었어요. 일간지 1면, 전면이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하는 질문인데요. 교수님은 외교 일도 하셨잖아요. 역사적이고, 큰 얘기 하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사람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말자”고요.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 같은데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대답이었어요. 책을 다시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사람에게 기대는 너무 크게 하지 않되, 그의 부모가 얼마나 귀하게 그를 키웠는지 생각할 줄 아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불현듯이 추천하는 책
『박하』
허수경 저 | 문학동네
제가 가지고 온 책은 2011년 12월에 출간한 장편소설 『박하』 입니다. 이전에도 『모래도시』와 『아틀란티스야, 잘 가』 라는 장편소설을 내셨는데요. 저도 이 작품을 읽은 다음에 다른 소설들을 읽었어요. 워낙 시인으로 유명하신데 시집이 아니라 『박하』 를 가져온 것은 이것이 정말 허수경 시인 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에요. 시인의 소설이라고 하면 문장이 시적일 것이다, 정도의 기대를 하잖아요. 하지만 이 작품에는 그 이상이 있어요. 허수경만 쓸 수 있는 문장들, 소재들이거든요. 가령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독일의 뮌스터죠. 지금 그곳에 허수경 시인이 살고 계시고요. 그곳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셨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녹아 있는 책이어서, 작품에 허수경 시인이 얼핏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욱 좋았어요. 책이 출간된 2011년 잠시 허수경 시인이 귀국한 적이 있어요.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이 책에 사인을 받았거든요. 허수경 시인이 이렇게 써주셨어요. “오은 시인께, 오래 생각날 거예요.”라고요. 저도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어요. 쾌차하시기를 바라요.
이 소설은 액자소설이에요. 주인공 ‘이연’은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사람이에요. 실직을 했고요. 그에게는 ‘마준’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독일에 있다가 귀국을 해서 이연에게 책 두 권을 줍니다. 발굴된 책인데 출판해도 좋을 것 같으니 읽어보라고요. 1900년대 초반에 쓰인 책이었는데요. 책을 펼치니 ‘이무(李無) 혹은 칸 홀슈타인의 기록-1902년 봄에서 1903년 겨울까지’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렇게 하나는 주인공 이연의 이야기, 다른 하나는 그 책의 서사, 두 가지로 진행이 되는 소설입니다. 이연은 마준에게 책을 받고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그 사이 아내와 두 아이를 잃는 불행한 사고를 겪거든요. 두문불출하던 이연에게 어느 날 마준이 전화를 해서 독일로 오라고 해요. 그렇게 이연은 독일에 갑니다. 마준과 함께 마준이 건네준 책에 나온 여정을 따라 여행을 해요. 그런 이연의 서사와 그 책의 서사가 있어서 집중해서 책을 읽어야 하고요. 다행히 글씨체가 다르게 되어 있으니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또 허수경 시인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이 두 서사가 교묘히 만나는 부분이 많이 있거든요. ‘박하’라는 것도 그렇고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계속 진눈깨비가 내리는 소설이에요. 어느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서사의 흐름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작품인 거죠. 또한 그 사이에는 허수경 시인의 유려한 문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요 마치 지금 쓴 것 같은 문장이 작가의 말에 있었어요. 제가 느끼는 감정도 비슷합니다.
“지난봄은 참으로 겨웠어. 꽃이 피는 것도 지는 것도 잎들이 돋아나오는 것도 참 버거웠어. 나이가 들어갈 때 사람들은 어떻게 눈물을 관리하고 사는지 참 궁금했던 봄이었지. 그리운 것도 구체적이지 않아서 메일로 벗들을 괴롭히기도 했고. 구체적이야, 이 그리움은 구체적이야, 하면서 애먼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기도 했고. 아마 그들은 알 거야. 내가 뭔가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나를 이해해주었을 거야. 시달릴 때만큼 마음에 성실할 때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므로. 하지만 미안해, 다만 곁에 있어주어서 고마워. 그대들이 시달릴 때 나도 그대들 곁에 있을게요, 꼭 그러기를 바라요.”(275쪽)
2011년에 여러 일들이 있으셔서 이런 글을 쓰셨던 것 같은데 2018에 이 글을 다시 읽으니까 이 봄도 마찬가지였던 거예요. 저희가 알고 있는 많은 분들이 크고 작은 상처들 때문에 마음을 태우고 다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박하』 라는 소설을 읽고 옛날을 그리워하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를 얻었어요. 허수경 시인의 목소리가 많이 느껴져서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이 나는 작품이었거든요. 읽는 분들마다 더 가깝게 느끼는 부분이 다를 것 같아서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누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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