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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음악인생 40년의 소회, ‘잘 버텨왔다’

살아있는 음악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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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기보다는 개성의 시대다. 발음이 정확해야 하고 숨소리도 나지 않아야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듣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오히려 숨소리가 나고 발음도 꼬아야 매력 아닌가. (2018. 05. 17)

라이브 퀸, 라이브 여황(女皇). 인순이의 정체성과 궤적과 관련해 그를 이 수식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그는 무대에서 성장했고 공연을 통해 오늘날 '살아 있는 음악전설'로 점프했다. 어쩌면 공연과 인순이는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숨 가쁜 호흡으로 무대에서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쏟아내면서 어느덧 40년이란 장구한 이력을 쌓았다. 여성 3인조그룹 '희자매'로 데뷔해 '실버들'로 전국적 지명도를 쾌척한 그는 이후 인순이와 리듬터치, 밤이면 밤마다, 열린 음악회, 친구여, 거위의 꿈, 혼혈의 진실(다른 인종의 장점이 합쳐진 사람), 아버지, 해밀학교(다문화대안학교) 등 중요한 모멘트와 함께 역사적 인물이 됐다. 성수동 '서울의 숲' 부근 북카페에서 만난 그는 즐겁게 리얼하게 또 노래하듯 대화를 이어갔다. 40년의 소회를 겸손하게 '잘 버텨왔다'는 말로 축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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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한지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렇다 하기에 그리 큰 건 없는 것 같다. 열심히 하던 와중 40년이 흘렀고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달리 이쁜 표현이 없는 것 같은데 '잘 버텨왔다'가 적절한 것 같다.

 

음악 활동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중요했던 순간을 뽑는다면.


내 아이를 만난 순간. 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새로운 순간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전까지는 모든 순간들이 나의 위주로 돌아갔다면, 아이를 낳고 나선 아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더라. 지구에서 달로 간 느낌이랄까. 신세계를 영접한 기분이었다.

 

딸을 출산하고 나서 일이 더 잘 풀린 것인가요.


거의 그렇게 얘기해도 될 것 같다. 음악인생에서 꽤 중요한 순간인 1994년 <열린 음악회> 출연이 딸 낳기 1년 전이었으니까. 아이를 갖고 나서, 내가 쓰러지면 왜 안 되는지, 왜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40년을 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다른 가수들이 '방송 위주의 가수'라면 나는 시작부터 '쇼 위주의 엔터테이너'인 것 같다. 옛 매니저 한백희 씨의 제안이기도 했지만 제가 원하기도 했고, 하다 보니 재미도 들었고. 홍보에 효과적인 방송 출연보다 공연 위주로 활동하다 보니 ('친구여' 이전에는) 히트곡이 적다. 그러나 내가 복이 많은 지, 홈런을 여러 번 치게 되었다.

 

공연에서 인순이 노래의 창법, '내 노래는 이것이다' 하는 것은?


내가 노래 하나하나의 주인공이 되는 것.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된다면 자연스레 표현들이 살아난다. <열린 음악회> 출연 이전, 슬럼프를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방방곡곡의 나이트클럽들을 순회했고 밴드와 함께 야외 공연도 자주 했다. 미군 부대에서 공원 이곳저곳까지 찾아다니며 팝을 시작으로 옛 음악까지 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했고, 그중 몇몇 곡들은 비록 나의 곡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그 후 <열린 음악회>에서 '님은 먼 곳에'와 'La bamba'를 불렀는데 예상하지 못한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다. 당시 무대감독과 상의 끝에 부르고 싶은 걸 하라고 해서 공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불렀었던 '창부타령'과 '사설 난봉가'를 무반주로 불렀다. 근데 그게 (호응이) 터졌다. 노래마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부르는 노래들의 핵심이다.

 

인순이의 3요소를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소울풀(Soulful), 파워풀(Powerful), 댄서블(Danceable)!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랐기에, 사실 나의 음악적 기반은 뽕필('뽕'의 느낌)이다. 다른 가수들보다 팝을 맛있게 불렀다고 할까? 거기서 '소울풀'이란 키워드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워낙 무대 위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걸 즐기다 보니 '파워풀'과 '댄서블'이 따라붙은 것 같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의상'. 드레스부터 핫팬츠까지, 내가 부르는 노래마다 당시 시대적 유행을 고려하여 의상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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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자매는 어떻게 출범하게 됐으며 히트곡 '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희자매는 한백희 씨 아이디어다. 미8군에서 노래했던 언니(한백희)의 스타일을 그대로 물려받은 거다. 그때 희자매 멤버 셋이 정말 노력을 했다. 발레 슈즈도 신어보고, 설장구와 한국무용도 배웠다. 섹시 콘셉트를 가동한 것도 사실이다. 여가수는 대리 만족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버들'은 서구적인 트로트라고 해야 할까. 그저 심플한 트로트가 아닌, 편곡 자체가 풍성하고 고급진 곡이다.

 

인순이와 리듬터치는 어떤 구상에 따른 것인가요.


많은 분들이 리듬터치를 그룹 혹은 별도 팀으로 오해하는데, 실은 나의 사설 무용팀 이름이다. 백댄서로 구성된 리듬터치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남자들을 섭외했고,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등 유명 팝 레퍼토리들을 연습하고 준비했다. 아이디어 구상까지 다 해결했다. 예를 들어 호남을 가면 남진 선배의 곡들을 준비한다던지, 어르신들이 많은 곳에 가면 올드 팝이나 트로트를 위주로 하고. 무대 구성부터 의상까지, 공연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정말 끊임없이 작전을 세웠었던 것 같다. 맞다. 작전이다(웃음).

 

행사장이든 공연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스타일입니다. 인순이씨 다음 순서에 있는 가수가 한때 '왜 인순이 뒤에 나를 배치했느냐?'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예전 가수들은 요즘처럼 가성이 아니라 통성으로 불렀기에 성량이 대단하다. 그렇기에 옛 마이크를 쓰면 편한데 요즘 마이크를 쓰면 불편하다. 콘서트 때 마이크 헤드를 옛 모델로 바꾸면서 조절한다. 또한 음향효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MR보다 밴드 셋을 선호한다. 실력만 있는 어린 친구들이 아니라 옛 것과 트렌드에 모두 능한 농익은 연주자들을 주로 섭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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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와 접점을 마련하면서 인순이 노래인생의 프레임이 새롭게 구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방송에서 세 가지 모멘트로 정리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첫 번째 모멘트는 1996년 박진영이 써준 곡 '또'였다. 나는 롤 모델인 패티김 선배처럼 되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았던 사람이다. 항상 선배처럼 드레스를 입었고 무대를 소화하는 것도 그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와중 박진영 씨를 만났고, 함께 음악 얘기를 하다 내가 트로트를 하겠다고 하니 그가 '요즘 가수들이 선배님을 따라 하고 있는데, 선배님이 트로트 외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나이 들면 다 트로트 해야 하는 것이냐'라고 했다. 나는 당시 음악을 오래하려면 옛 것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냥 알겠다고만 했다. 그 후 그에게 연락이 와서 가보니 김형석 씨와 같이 있었고, 그분들과 함께 노래 '또'를 냈다. 그 곡이 히트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도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두 번째 모멘트는요.


결정적인 곡, 2004년 조PD '친구여'다. 박진영 씨가 트렌드를 따르라고 했으나 사실 나는 재즈를 하고 싶었다. 재즈를 배우러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후, <EBS 스페이스 공감>과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대학로 등을 순회하며 재즈 공연을 했다. 그러던 와중 (댄스그룹 소방차 출신의 제작자) 정원관씨에게 연락이 왔다. 피처링을 해달라는 전화였다. 사실 피처링 때문에 여러 가수들에게 받은 데모 CD들이 쌓여있던 시기였다. 피처링이라는 것이 한창 인기를 얻던 시기였지만, 듀엣도 아닌 생소한 개념이라 전부 거절했었다. 그러나 정원관 씨에게 받은 곡과 가사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당시 조PD 씨는 27살, 나는 47살이었다. 친구에 대한 27살의 생각과 47살의 생각이 다를 것 같아 재밌을 것 같아 찾아가서 녹음을 했다. 그리고 바로 헤어졌는데, 어느 날 TV 공연 5번만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 곡이 1위 후보로 올라간 것이었다. 정말 놀랐다.

 

마지막 모멘트는 말씀하지 않아도 알 것 같네요. '거위의 꿈'이겠지요.


그렇다. 내 콘서트는 처음엔 신나게 뛰면서 노는 노래들로 시작하다 잔잔한 노래들로 마지막에 감동을 주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10여 년 전의 당시에도 어떤 노래들로 감동을 줄까 고민하다 문득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부분의 멜로디가 떠올랐다. 찾아보니 김동률과 이적의 프로젝트 '카니발'의 곡이었고 바로 결정했다. 가사가 정말 내 얘기가 같아 당시 연습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는 성공을 못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나는 '두고 봐, 나는 대기만성 형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간 난 올라갈 것이다'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노래 가사가 나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당시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곡이었고 5분이 넘는 노래였기에 이 '거위의 꿈'을 누가 좋게 들어줄까 걱정하던 와중, 신곡을 홍보하기 위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갔다. 세 곡을 준비해달라는 요청에 신곡과 '친구여' 그리고 '거위의 꿈'을 선곡했는데, 유명하지 않은 곡을 부른다는 말에 주변에서 만류를 했다. 그러나 나는 PD에게 이 프로그램을 보는 청춘들에게 꿈이란 화두를 던져보겠다며 밀고 나갔다. 결국 기립박수가 나오더라.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제가 부른 '거위의 꿈'을 많이들 찾아주셨다. 원곡자인 이적 씨와 김동률 씨를 찾아가 허락을 받고 이듬해 1월에 싱글로 발표했다. 그 해 11월 <뮤직 뱅크>에서 섭외 요청도 왔다. 어린 친구들을 위해 나가서 불렀는데 원더 걸스의 'Tell me'를 제치고 1위를 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랬나(웃음).

 

이적과 김동률은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둘 다 좋아했다. 이적 씨와 김동률 씨의 골수 팬들께서는 곡을 훔쳤다(?)고 생각을 하시던데, 어떤 노래를 세대를 불문하고 꾸준한 인기를 받는 국민가요로 만드는 건 쉽지 않다. 그저 곡을 재조명했을 뿐인데, 그쪽 팬 분들에게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있다. (웃음) <The Voice of America>에 출연한 한 친구가 나의 팬이라고 말하더라. 그 친구가 '거위의 꿈'을 또 한 번 리메이크하고 있단 소식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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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본인이 생각하는 중요한 노래는?


<에레나라고 불리운 여인>에 수록된 '비닐 장판 위의 딱정벌레'를 꼽겠다. <에레나라고 불리운 여인>이란 소설과 함께 냈던 음반이었다. 혼혈인으로서의 나의 삶에 대한 노래다. 그리고 드라마 <기억>의 OST '선물'. 가사가 정말 내 이야기다. 죽고 싶은 날도 많았고, 삶의 끈을 놓으려고 할 때 나에게 힘을 주는 것들에 대한 노래이다.

 

하인즈 워즈, 다니엘 헤니 등 혼혈 붐이 일었을 때, 2006년에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 출현했지요. 혼혈이라는 것을 부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았는데, 과감한 시도였다고 봅니다.


누군가 한 번은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상처가 나면 감추지 말고 그 자리에서 아물게 해야 한다. 내가 받은 상처들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이 땅에서 당당히 살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놀리는 사람들과 싸우면서 깨달은 것이다. 인정하는 것이 해답이었다.

 

2013년에 강원 홍천에 설립한 해밀학교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세요. 운영의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으실 것 같습니다.


공립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을 못 받는다. 재정 지원제도가 있긴 하다. 그걸 해주면 참 고마울 것 같은 마음은 늘 가지고 있다. 말씀하신대로 운영이 어렵다.

 

해밀학교가 주는 도덕적 만족도는 어떠한가요.


1000%. <열린 음악회>부터 '친구여', '거위의 꿈' 등 나의 스토리는 다른 가수들에겐 찾아볼 수 없는 서사들 아닌가. 마치 기적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이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한 수녀님과 양로원을 할 생각도 했고, 고아원을 만들 생각도 했다. 그러다 다문화 이야기가 한창 화두였던 2010년, 이것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아이들도 어렸을 때의 나처럼 힘들 것이라 느꼈다.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잘 알기에, 그것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내가 도와주는 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갈 때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굳은살을 가지고 나갔으면 한다. 우리의 목표다.

 

인순이를 가수로 만든 사람이나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나는 가수에 대한 꿈이 없었다. 커서 노래를 하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뭘 해줄 수 없으니 '너 뭐 할래?'라 묻지 못하고, 나는 엄마가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걸 뻔히 아니 '뭐 하고 싶어요'란 말을 못하고. 그저 둘이 얼굴만 보고 울고 웃고 살았다. 설마 우리 같은 사람이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의 담력을 키워준 사람은 학창시절 음악선생님인 것 같다. 음악시간만 되면 나를 불러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시켰다.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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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만한, 본받을 만한 혹은 출중한 역량이 부러운 뮤지션이 있다면?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와 웨일즈 출신의 가수 셜리 베시(Shirley Bassey)를 좋아한다. 다이애나 로스는 그야말로 여자의 매력이 물씬 풍겨나는 사람이다. 물론 노래도 잘하지만. 요즘 가수들이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다이애나 로스만큼 여자 같은 여자는 없는 것 같다. 그가 보여준 여자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 노래를 표현하는 방식은 셜리 베시다. 그가 노래하는 영상들은 마치 3분짜리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의 손짓과 표정은 늘 노래의 내용을 말한다. 또한 듣는 이에게 어떤 감정과 내용들을 전달하기 위해 가사를 꼭꼭 곱씹으며 노래한다. '셜리 베시를 알기 전의 나'와 '알고 난 후의 나'의 정체성이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기 노래를 드라마로 만드는 건 셜리 베시가 거의 유일한 가수인 것 같다.

 

눈여겨보는 후배가 있나요.


예전처럼 가수들이 한 스타일로 노래를 부를 때는 평가의 잣대가 뚜렷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들 각기 다른 개성들이 있어서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기본기보다는 개성의 시대다. 발음이 정확해야 하고 숨소리도 나지 않아야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듣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오히려 숨소리가 나고 발음도 꼬아야 매력 아닌가. 그래서 나도 발음을 꼬아서 노래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웃음)

 

향후 행보에 대해.


작곡가에게 아주 재미난 곡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와 '거위의 꿈' 같이 감정이 깊게 들어가야 하는 곡들을 부르고 나면 정말 지친다. 휘청거릴 만큼 에너지 소모가 크다. 게다 작곡가들이 주는 노래들을 보면 음역대가 높은 노래들이 대부분이라 부담이 된다. 그래서 젊은 층과 다시 만날 수 있는, 정말 재밌는 노래를 하나 부탁했다. 나도 실실 웃으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될 것이다. 기대해 달라.

 

 

인터뷰 : 임진모 이택용 박수진
사진 : 박수진
정리 :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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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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