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죽이는' 과학책이 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조은영 역자 인터뷰
독자는 저자가 말한 '스티븐 킹과 스티븐 호킹의 만남'을 지켜보며 등줄기가 싸늘해지기도 하고 실없이 킬킬거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인체와 자연, 지구와 우주, 물리와 화학에 대해 꽤 쓸모 있는 상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2018. 04. 03)
놀이터에서 흙 묻히고 놀던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터널을 파겠다고 나서본 적이 있었을 겁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거대한 고래나 상어에게 통째로 잡아먹히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 적도 있을 테고요. 우주복 없이 맨몸으로 우주에 가면 안 된다는 건 알겠는데, 대체 어떻게 죽게 될지 궁금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이런 일을 실제로 체험한(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그 궁금증에 시원한 답변을 내려줄 수 없었지요.
신간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의 저자 코디 캐시디와 폴 도허티는 이런 허무맹랑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아주 과학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이들은 다른 괴짜 과학자들의 연구와 논문을 참고했고, 무모한 도전자들의 경험담을 경청했습니다. 어떤 질문에는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지식을 초월하는 답변이 필요하기도 했지만요. 여러분의 밤잠을 방해하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소해줄, 이 특별한 책의 번역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어려운 과학책은 쉽게, 쉬운 과학책은 재미있게 번역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현재 모 출판사에 계시는 J 팀장님 덕분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떤 외서의 검토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 발췌 번역을 눈여겨보셨는지 덥석 책 한 권을 맡기시더라고요. J 팀장님에게나 저에게나 모두 무모한 도전이었죠. 그렇게 처음으로 번역하게 된 것이 『10퍼센트 인간』 이라는 책이었는데, 막상 출간되고 보니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에요. 그 이후로 번역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마침 직장을 그만둔 시기와 맞물려서 번역 일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고군분투 중입니다. 평생 이과생으로 살아온 저에게 번역가라는 타이틀은 너무 과분하지만, 이렇게 한 책의 번역자로 인터뷰까지 하게 된 마당에 본격적으로 명함도 파고 제대로 번역가의 길을 걷고 싶다는 욕심이 마구 생기네요.
흔히 과학 자체만 해도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이 어려운 과학을 다루는 책을 번역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실 만큼, 번역이라는 일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도 과학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사과정 5년차에 공부를 그만두고 석사 학위만 두 개 있는 자칭 척척석사가 됐습죠. 척척석사란 말은 씁쓸한 제 과거에 대한 자조 섞인 표현이지만,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전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두 번의 대학원 과정에서 공교롭게 생물학의 커다란 두 갈래인 거시생물학과 미시생물학을 다 맛보았거든요. 이런 경력이 학자로서는 핸디캡이 될지 모르지만 과학책을 옮기는 사람으로서는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례로 예전에 번역한 『세렝게티 법칙』 은 거시생물학과 미시생물학을 하나로 아우르는 법칙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주제입니다. 사실 이 책을 번역하며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두 분야를 흉터 하나 없이 봉합한 거장의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만약 제가 이 책을 역자가 아닌 독자로 접했다면, 솔직히 그와 같은 감동은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제 잘못된 독서 습관 때문에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성실히 읽은 적도, 더욱이 몇 번씩 반복해서 읽은 적도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번역을 하다 보니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매 문장 매 구절을 수없이 반복해가며 작가의 눈으로 보고 독자의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진지하게 대할 때마다 예전엔 몰랐던 지적 쾌감을 느꼈습니다. 또 그만큼 잘 옮기고 싶다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게다가 누군가 내가 번역한 책을 읽고 마음에 들어 다른 책을 의뢰한다면, 지금으로선 그만큼 또 매력적인 일이 또 있을까 싶네요.
첫 번째 독자나 다름없는 역자의 입장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무엇이었는지 소개해주세요.
이 책은 총 45개의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선 질문부터가 범상치 않습니다.
“산 채로 땅속에 묻히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치명적인 독극물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수심 11킬로미터의 마리아나 해구에서 수영하면 어떻게 될까요? 화산에 제물로 바쳐지면 어떻게 될까요?”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했을 법한 이 질문들의 답은 의외로 쉽습니다. 이 45개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단 하나, 바로 이 책의 원제인 '그러면 당신은 죽을 겁니다(And Then You're Dead)'입니다. 엽기적인 질문과 뻔한 답. 이 엉뚱한 조합으로 책 한 권을 썼다는 자체만으로도 저에겐 크게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더 흥미진진합니다. 이 책에서 (대체로) 끔찍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나, 그러니까 저자가 '당신'이라고 부르는 독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억울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책 속의 당신은 참으로 끈질기고 집요하게 죽음에 도전합니다. 기어이 지구 반대편까지 이어지는 터널을 뚫고 뛰어들질 않나, 달에 한 번 가보겠다고 우주복도 입지 않고 중국발 우주선에 밀항을 하질 않나, 비행기 값 좀 아낀답시고 비행기 바퀴집에 숨기도 하고, 빛의 속도로 양성자를 움직이는 강입자충돌기에 겁 없이 손을 넣기도 합니다. 쿠키를 한 번에 60개나 먹는 것도 모자라, 자처해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이 되겠다고 실험대 위에 오를 정도니 아무튼 못말리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이처럼 비현실적인 황당무계한 상황을 몸소 겪고 또 도전한 실존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바나나 껍질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보겠다고 한 다발을 모조리 까서 바닥에 던져놓고 일부러 밟고 다닌 대학 교수들이 있는가 하면, 벌과 각종 독충에게 일부러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을 쏘게 하거나 웃옷을 벗고 수만 마리의 모기떼 속으로 들어간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나무통 속에 들어가 자신의 생일에 50미터 높이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진 선생님과, 무려 11일 동안이나 잠을 자지 않은 고등학생도 있지요. 이 책을 소설이 아닌 과학책으로 팔리게 만들어준 이들의 이야기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당신'으로 설정된 독자를 죽이고, 또 죽이는 다소 황당한 형태인데요. 블랙홀, 고래, 운석 등의 습격으로 벌어지는 45번의 죽음(?)으로 인해 독자들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일부 독자가 기대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은 아닐 겁니다. 그런 기대를 안고 이 책을 펼친다면 적잖이 충격을 받으실 거라 경고합니다. 책 속의 당신은 몸이 국수 가닥처럼 늘어나고 플라스마 형태로 대기를 떠돌며 값비싼 향수가 되어 어느 여인의 몸에 그윽한 향기로 남을 테니까요. 그뿐인가요, 소고기 맛이 나는 감차칩이 되어 수많은 사람의 간식거리가 되거나 몸이 쪼그라든 채 썩지도 않고 몇 천 년 동안이나 우주나 심해에서 떠돌게 되겠죠.
이처럼 끔찍한 자신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독자는 이 모든 게 실제상황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약실이 100만 개나 되는 커다란 총으로 러시안룰렛을 하다가 죽을 확률과 비슷하니까요. 독자는 저자가 말한 '스티븐 킹과 스티븐 호킹의 만남'을 지켜보며 등줄기가 싸늘해지기도 하고 실없이 킬킬거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인체와 자연, 지구와 우주, 물리와 화학에 대해 꽤 쓸모 있는 상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론과 실제 양쪽 모두 말이죠.
책의 에피소드가 모두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만큼 창의적이고 유쾌하긴 하지만, 그중에 역자로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제일 재미있었던 질문은 ‘땅속에 지구 반대편으로 연결되는 터널을 파고 뛰어든다면?’이었어요. 어린 시절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독자의 모습이 너무 리얼하게 그려졌거든요. 독자는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마침내 고성능 단열재를 사용한 진공 터널에서 그네를 탈 때와 똑같은 탄력을 이용해 38분 11초 만에 지구의 반대편에 가까스로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려는 순간 저자는 무덤덤하게 경고하죠. 지면에 닿는 순간 재빨리 터널 출구의 가장자리를 잡고 올라오지 않으면 중력 때문에 도로 아래로 떨어져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만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정말 빵 터졌어요.
지금까지 작업하셨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거나,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었던 책이 있었다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작업했던 모든 책에 나름의 뒷이야기가 있지만, 제일 추천하고 싶은 책은 『10퍼센트 인간』 이에요. 이 책의 출간 전후로 우리 몸속에 거주하는 착한 세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관련 책도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책만큼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이 없는 것 같아요. 장내세균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제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장내세균의 속성과 최초로 장내세균이 우리 몸속에 정착하는 과정입니다.
한번 정착한 장내세균은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앉아 웬만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유산균 몇 번 먹는다고 해서 장내세균의 조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오죽하면 현재로서 성인의 장내세균 조성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대변 이식밖에 없다고까지 할까요. 하지만 어린아이는 다릅니다. 엄마 뱃속에서 무균상태로 지내던 아기는 출산과정에서 엄마로부터 최초의 세균을 물려받습니다. 또한 이 개척자들이 아기의 몸속에서 자리 잡는 데는 몇 년이 걸립니다. 따라서 엄마가 아기에게 맨 처음 어떤 세균을 주느냐에 따라, 또 혼돈과 불안정한 시기를 거쳐 마침내 어떤 세균이 아기의 몸에 정착하느냐에 따라 성인까지 이어지는 평생 건강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10퍼센트 인간』 의 내용 중에서도 임신과 출산, 유아기로 이어지는 초기 장내세균의 일대기와 그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설명한 책이 『차라리 아이에게 흙을 먹여라』 입니다. 대화의 주제가 항상 결국 어디가 아프다거나 운동해야겠다거나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나이가 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 두 책을 소개하게 됐네요.
앞으로도 국내에 흥미로운 과학책을 계속 소개해주실 계획이 있나요? 최근 관심을 두고 계신 분야나 주제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물론이죠. 4월에 곧 출간 예정인 리처드 포티의 신작 『나무에서 숲을 보다』는 평생을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죽은 화석을 만지며 살아온 저자가 런던 근교의 그림다이크우드라는 작은 숲의 주인이 되면서,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의 기쁨 그리고 그 작은 숲의 '모든' 것을 기록한 일종의 숲 '바이오그래피'입니다. 또 현재 『오해의 동물원(가제)』이라는 책을 작업 중인데요, 비버, 펭귄, 침팬지, 하마, 박쥐, 하이에나 등 우리에게 친숙한 13종류의 동물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오해와 미신을 다룬, 진지한 과학자들의 엽기적인 행각을 그린 책입니다. 그 외에 인체의 모든 것을 다룬 인포그래픽 책도 준비 중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코디 캐시디, 폴 도허티 저/조은영 역 | 시공사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의 생존 지침에서부터 비행기 좌석을 고를 때 활용할 꿀팁까지, 여러분의 실생활과 밀착된 실전 과학 지식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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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코디 캐시디>,<폴 도허티> 저/<조은영> 역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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