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막막할 때 ‘명화독서’
『명화독서』 문소영 저자 인터뷰
같은 이야기를 각기 다른 식으로 풀어낸 여러 시대 여러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당시 사회의 통념과 그것이 미술에 끼친 영향, 미술 사조, 개별 화가의 개성에 눈을 뜨게 되죠. (2018. 02. 26)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과 미술은 서로 영감의 원천이었다. 가장 오래된 문학인 신화는 서양 회화의 단골 소재였고, 동양에서는 시와 그림이 동일한 이념과 과정에 의해 창작되어야만 높은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했다. 여기 그림에 매혹되지 않았다면 고전을 다시 찾아 읽지 못했을 거라 단언하는 이가 있다. 시각 문화에 숨은 이야기를 꾸준히 풀어온 문소영의 『명화독서』 이야기다.
『명화독서』 는 부제 ‘그림으로 고전 읽기, 문학으로 인생 읽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명화 한 점을 꺼내놓고 그와 관련된 고전을 펼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진 그림들도 다루지만, 대부분은 저자가 사회사?경제사?정치사적으로 연계시킨 그림이 등장한다. 명화를 통해 고전을 읽어내고 나면 작품의 메시지는 자연히 인생을 살아내는 방법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명화독서』 에서 말씀하셨다시피, 고전이란 것이 워낙 두껍고 피상적으로 널리 알려져 맘 잡고 펼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의 부담감이 또 모두 있고요. 기자님께서는 이 고전들을 부담 없이 읽으셨는지요? 고전 읽기의 팁을 주신다면?
가장 고생하며 읽은 건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였어요. 책 『명화독서』 에 이렇게 쓸 정도였죠. “이 시를 이해하려면,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 아닌 이상, 한두 행을 읽을 때마다 주석을 뒤져야 한다…… 430여 행의 시를 중간에 집어던지지 않고 다 읽으려면 꽤나 인내가 필요하다.” 이게 저의 절절한 심경이었답니다. 바로 제가 중간에 몇 번 집어던졌었거든요. 하지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명구가 하도 자주 뉴스에 나오니, 시인의 의도를 알아야겠다는 오기로 읽었죠. 그 과정에서 시의 메시지가 주는 묵직한 울림은 물론, 많은 지식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훨씬 더 긴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진짜로 재미있게 읽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돈키호테』 는 정말 현대적이거든요. 옛글답게 다소 현학적인 구절들과 좀 늘어지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것만 참아 넘기면 현대 장르 소설보다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하고 매력 넘친답니다. 셰익스피어 희곡들도 그래요. 셰익스피어 시대에 이 연극들은 귀족뿐만 아니라 상인과 직공들도 입석에서 많이 즐겼다고 합니다. 입석 관객들은 극이 지루해지면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다고 해요. 그래서 셰익스피어 희곡 대사들은 비극에서조차 중간에 웃기는 장면이나 위트 넘치는 대사들이 종종 튀어나와요. 그것들이 극의 전반적인 무게를 해치지 않고 도리어 다채롭게 해줍니다. 사실 우리 인생 자체가 희비극이니 이상할 것도 없지요. 그리고 제가 특히 좋아하는 E. T. A. 호프만의 「모래남자」로 말하자면, 와, 19세기 단편소설인데도 정말 현대 ‘SF 판타지 공포 블랙코미디’ 영화 뺨치게 재미있고 독창적입니다.
그러니 고전과 친해지기 위해서 중요한 건, 우선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떨쳐버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회자되는 고전들은 지금 읽어도 재미있거나, 우리 시대와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거든요. 아까 「황무지」에 대해서 지루하다고 불평했지만, 그 시가 제기하는 문제인 ‘점차 죽어가면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은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이기도 해요. 장편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 , 『마담 보바리』 등등도 다 지금 우리 인생에 닥친 문제들을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언어로 다루고 있지요. 그래서 제 책 『명화독서』 가 되었든, 고전문학에 대한 다른 에세이가 되었든, 고전이 우리 삶의 문제들과 어떻게 밀착되는지 소개하는 책들을 먼저 읽고, 거기에서 흥미가 가는 고전 원본을 골라 읽으면 훨씬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길이가 부담된다면 단편소설이나 비교적 덜 난해한 시부터 먼저 읽는 것도 방법이고요.
고전 회화 또한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기는 마찬가지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원화를 볼 기회가 적어서도 깊이 이해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명화가 어려운 분들에게 조언한다면요?
어릴 때부터 집에 있는 화집이나 백과사전에서 고전 회화를 보고 재미를 붙인 것 같아요. 이야기가 있는 그림들이었기 때문이죠. 그 그림들이 무슨 이야긴지 궁금해하다가 어린이용 그리스 신화나 역사책을 읽고 나서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더 많은 신화나 역사 이야기를 찾아 읽게 되고, 또 같은 이야기를 주제로 한 다른 그림도 찾게 되고, 이런 식으로 미술과 신화와 문학에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는데, 유행 화두가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힘은 사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중요합니다.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이야기 고리를 찾아 나가다 보면 억지 공부보다 오히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요.
그림으로 이야기를 보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더 함축적이고 열린 해석이 가능하고 시각을 통한 미적 감동이 있다는 면에서요.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각기 다른 식으로 풀어낸 여러 시대 여러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당시 사회의 통념과 그것이 미술에 끼친 영향, 미술 사조, 개별 화가의 개성에 눈을 뜨게 되죠. 저는 예나 지금이나 그림에서 이야기를 찾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이 책을 썼습니다. 추상미술이 지배한 20세기 전반 모던아트 시대에는, 이야기가 있는 미술을 ‘문학에 종속된다’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모던아트 이후 동시대 미술에서는 다시 내러티브가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쉽답니다.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면 말이지요.
전공 이력이 독특합니다.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뉴욕타임스에서 미술 기사를 주로 쓰는 기자인데, 경제학 공부를 하셨네요. 지금은 예술학을 공부하고 계시고요. 어떠한 경위로 이러한 행로를 밟게 되었는지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게 참 어려운 일 같아요. 그걸 찾아서 멀리 돌아온 시간이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릴 때부터 그림 보는 걸 좋아하고, 그림에서 이야기를 찾는 걸 좋아했지만, 그걸 공부할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저 부모님의 권유로 경제학부에 갔지요.
그렇다고 경제학 공부한 걸 후회하진 않습니다. 경제학은 물질과 노동은 물론, 시간과 인간의 관심 등 모든 것이 무한하지 않은 현실에서, 개인적으로, 또 세상 전체로, 그들이 어떻게 운용되고 배분되어야 좋은지 연구하는 학문이거든요. 원래 철학에서 분리된 정치경제철학이기도 했고요. 인간과 세상을 이성적으로 크게 바라보는 힘을 길러주죠. 제가 좋아하는 그림과 시각문화 전반에 숨은 정치?경제?사회적인 맥락을 알게 해주고요. 그걸 바탕으로 지난 책 『그림 속 경제학』 을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경제학을 공부할 때 수학이 너무 많아 진저리치며 고생했답니다. 그때도 미술 관련 교양수업을 많이 들으면서 그림 읽기, 시각문화 읽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던 것 같아요. 그 뒤 저희 영어신문에 입사해서 전공대로 경제부 기자로 일하게 됐지요. 경제부 기자 일도 재미없진 않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이건가’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뭔가 아쉬운 마음에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책 『명화독서』 의 밑바탕이 된 ‘명화로 보는 신화와 문학’ 이야기였어요. 블로그가 인기를 얻어서 출간 제의를 받아 첫 책을 내게 되었고 여러 기관에서 초청을 받아 강의도 하게 되었죠. 그게 직장에도 알려져서 경제부에서 문화부로 옮기게 되었고 미술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미술에 대해 더 체계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예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요.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 그리고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비결은 무엇인지요?
미술기자로 일하면서 예술학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예술학은 철학, 미학, 현대미술사를 같이 배우며 사회학, 심리학, 미디어학 등과 연계해 다학제적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학과 미술기자 일을 하다 보니 제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점점 폭넓게 진화하게 되더라고요.
말씀드렸듯이 제가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최초의 계기는 신화와 문학 이야기가 담긴 유럽 고전 회화였어요. 그 후 점차 미술에 대한 관심을 넓히게 되었지만 그래 봤자 20세기 초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같은 모던아트 거장들에까지만 머물러 있었죠. 그런데 미술기자로 일하다 보니, 직접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그리고 샤를 보들레르가 말한 것처럼 내가 사는 ‘지금, 여기’의 이슈를 다루는, 동시대 미술 작가들이야말로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예술학 공부가 더욱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게다가 제 첫 전공이 경제학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경제사회적 맥락에서 미술작품을 보는 시각이 키워졌고, 또 동시대작가들은 그런 맥락의 작업을 더욱 많이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동시대 미술가들의 작업과 그들이 경계를 넘나드는 각종 시각문화 영역을 큰 눈으로 통찰하기 위해,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더욱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그나마 두 가지가 서로 상통하기에 버틸 수가 있지요. 이를테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취재해서 기사로 쓰고 그걸 좀 더 학문적으로 분석해서 소논문으로 쓰는 식으로요. 하지만 저널리즘 글쓰기와 학문적 글쓰기는 좀 달라서 어휴… 왔다갔다하기 힘듭니다. 그냥 삐걱거리면서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습니다.
주로 미술 기사를 쓰신다고 하셨는데요, 기자로서의 업무가 궁금합니다.
앞서 조금 말씀드린 것처럼 동시대 미술가들, 또 큐레이터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게 미술기자의 즐거운 일인데요. 이들을 만나는 과정은, 일단 각 미술관이나 상업갤러리에서 새 전시를 시작할 때 기자간담회를 열거든요. 거기에서 미술가 또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게 되지요. 거기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엮어 전시 소개 기사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전시가 인상적일 때, 즉 개인전일 경우 작가의 작품세계가 더욱 알고 싶을 때, 또 여러 작가를 모은 테마전일 경우 기획이 잘 되어 있고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고 생각될 때, 별도의 인터뷰를 신청하지요. 생존 작가 개인전인 경우 작가에게, 그리고 죽은 거장의 회고전이거나 여러 작가를 모은 기획전일 경우 큐레이터에게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심도 깊은 기사를 쓰게 됩니다.
그 밖에 정부 미술 정책의 변화, 또 김환기 화백의 뉴욕 시대 전면점화 경매 신기록 같은 미술시장의 주요 사건과 트렌드, 간혹 발생하는 법정 공방을 낀 스캔들 등도 미술기자의 취재 대상입니다. 기사는 늘 팩트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되도록 중립적으로 써야 합니다. 전시 리뷰일 경우에는 좀 더 주관적인 견해도 들어갈 수 있고요. 어떤 주관적인 저의 의견을 쓰고 싶을 때는 칼럼을 씁니다. 저는 저희 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에 영문으로 기사를 쓰고 간혹 중앙일보 일요일판인 중앙선데이에 국문 기사를 쓰고, 중앙일보에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어요.
7년째 네이버 파워 블로거이십니다. 바쁜 와중에 ‘잇님’들과 소통하는 것도 정말 대단한데요, 블로그는 기자님께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기자님의 블로그 관리 비결이 궁금합니다.
블로그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게 해 준, 새로운 길을 열어준 돌파구였어요. 블로그가 없었다면 아마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블로그의 취미가 생업으로 이어진 셈이지요. 아쉬운 건 이제는 블로그만을 위한 글을 따로 쓸 시간이 많지 않고, 주로 제가 신문에 쓴 기사와 칼럼, 다른 곳에 기고한 글을 옮겨 놓고 있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지금도 간혹 미술과 영화에 대해서나 또 문화 전반에 대한 단상을 블로그에 가볍게 쓸 때가 있는데, 그것이 나중에 제 정식 칼럼이나 기고문의 중요한 바탕이 되곤 해요. 게다가 블로그 글에 이웃님들이 달아준 코멘트가 칼럼을 쓰는 데 도움을 주곤 합니다. 그러니까 블로그는 영감을 기록하는 메모장이고, 생각을 나누는 카페이며, 제가 큐레이팅한 작은 미술관, 저의 글을 아카이빙한 작은 도서관이기도 해요. 그래서 블로그 이름이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이랍니다.
이제는 소셜미디어의 시대가 오면서 블로그가 예전처럼 바이럴한 효과는 없어요. 바이럴한 효과를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도 보조적으로 쓰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보조입니다. 왜냐하면 페이스북은 호흡이 긴 글과 아카이빙에는 적합하지가 않거든요. 저는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도 계속 블로그를 주된 플랫폼으로 쓸 것 같습니다. 다만 직장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블로그를 규칙적으로 업데이트하기가 쉽지 않아요. 또 댓글 달아 주시는 분들께 일일이 답을 하기도 힘들고요. 하지만 하나하나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쓰고 싶으세요?
두 번째 책인 『명화의 재탄생』 후속편은 이미 출판 계획이 잡혀 있어요. 영화, 웹툰, 광고, 이모티콘, 거리 디자인 등 우리가 가까이 접하는 대중 시각문화에서 고전 회화를 포함한 미술작품이 어떻게 차용되는지 살펴보는 책이지요. 왜 어떤 그림은 지속해서 인용되며 또 어떻게 다른 맥락으로 차용되는지, 즉 현대의 영화감독, 광고 디자이너, 웹툰 작가들은 명화의 어떤 부분에 끌리고 영감을 받는지 알아보는 것이지요.
또 『그림 속 경제학』 은 2부작 혹은 3부작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첫 책이 20세기 초 대공황 시기 뉴딜 벽화에서 끝났는데, 이제 20세기 전반 모던아트와 동시대 미술이 어떤 경제사회적 맥락에서 탄생했는지 살펴보려고요. 경제사회적 맥락에서 미술과 시각문화를 보는 것은 아마 제 평생의 연구 주제가 될 것입니다.
『명화독서』 후속편도 쓰고 싶어요. 이 책은 그림으로 읽는 문학작품인데, 후속편은 그림으로 읽는 신화ㆍ전설이면 어떨까 해요. 동아시아 신화를 큰 비중으로 다루고 싶고요.
또, 기자로 일하면서 만난 주요 동시대 미술가들과의 대화도 책으로 엮으면 좋을 것 같고, 제가 중앙선데이에 연재한 ‘문화트렌드’와 지금 중앙일보에 연재하는 ‘컬처스토리’도, 시각문화를 통해 바라본 현대사회에 대한 에세이로 엮고 싶습니다. 언제나 꿈은 많은데, 제가 굼떠서 시간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웃음)
명화독서문소영 저 | 은행나무
고전인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시작해 셰익스피어,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보르헤스, 베케트와 브레히트, 그리고 박완서까지, 다루고 있는 문학 작품의 폭이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