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일상을 맛보고 철학하라
『열일곱의 맛 철학』 정수임 저자 인터뷰
좋은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말의 수를 늘리는 일이고, 이것이 독서를 통해 흔히 얻게 된다는 교훈이나 감동을 떠나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이익이기도 하지요. (2018. 02. 21)
『열일곱의 맛 철학』 은 세상에서 먹는 게 제일 좋은 소년 ‘풍미’가 자신의 블로그에 음식과 연관된 하루의 단상을 연재한다는 콘셉트로 쓰인 청소년 철학 에세이집이다. 청소년 문학과 청소년 인문서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독자들에게 사유의 힘, 글쓰기의 즐거움을 일깨워 줄 『열일곱의 맛 철학』 의 저자 정수임에게 청소년과 먹거리, 읽기와 쓰기에 관한 일곱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청소년들에게는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철학’이라는 단어 앞에 ‘맛’을 붙여 주셨어요. 일상 속 철학을 가능하게 해 줄 여러 요소들 중 특별히 ‘먹거리’를 선택하신 이유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먹는 일은 누구나 평생 경험해야 하는 일이면서도 늘 새로운 일이에요. 매번 ‘오늘은 뭘 먹지?’ 하고 늘 고민하게 되니까요. 더구나 한창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먹거리란 거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존재예요. 하지만 청소년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거리를 쉽게 소비하는 대상으로만 여기죠. 그것들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의 과정, 혹은 그것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세상엔 먹거리들이 넘쳐나니까요. 늘 곁에 있고 누구나 경험하고 없으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한 대상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먹거리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열일곱 살 소년 풍미가 블로그에 글을 연재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소년’이라는 화자와 ‘블로그’라는 매개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년의 목소리로 글을 쓰시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우선은 글쓰기가 소년보다는 소녀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글쓰기는 누구나 관심이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블로그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연재의 형식을 유지할 수 있는 손쉬운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또 포털사이트에 먹거리를 검색하면 대부분 블로그가 검색된다는 점,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보다 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블로그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요.
소년의 목소리로 글을 쓰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소년처럼’이라는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었어요. 사실 학교 현장에서 풍미처럼 말하고 글을 쓰는 아이들을 만나기란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없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의 기대는 ‘거친’ 소년들이잖아요? 하지만 또 소년들이 매일 욕하고 싸우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사실 그런 소년들도 많지 않아요. 대부분의 소년, 소녀 들은 작은 일에 흥분하고 먹거리 앞에서 종종 이성을 잃기도 하고 별일 아닌 일에 까르르 웃기도 하죠. 애당초 ‘소년처럼’이라는 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제일 큰 어려움이었던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즐겨 먹는 먹거리를 통해 청소년들의 일상은 물론 무한 경쟁과 몰개성, 갑질 등의 사회 문제까지도 짚어 주셨습니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먹거리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가장 애착이 가는 먹거리를 하나만 고르는 일은 쉽지 않네요. 그렇지만 그중에 딱 하나만 고르라면 ‘진실은 어쩌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 편에 나온 참치 캔을 선택할게요.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참치 캔은 개인적인 고민이 함께 묻어 있는 먹거리거든요. 요리에 취미는 있지만 재능이 부족한 탓에 참치 캔은 저에게 좋은 재료예요. 참치전, 참치김찌찌개, 참치볶음밥, 참치마요 등등, 참치는 정말 좋은 기본 재료거든요. 그런데 먹으면서 참 마음에 찔리는 재료이기도 해요. 책에서도 언급했는데 참치를 잡는 집어 장치가 펼치는 축구장 70배의 크기의 그물은 참치뿐 아니라 상어, 고래, 가오리 등도 함께 죽이지요. 참치 역시도 마땅히 죽어야 하는 생물은 아니죠. 그래서 참치 캔을 안 사려고 노력하는데 어느 날 보면 부엌 찬장에 참치 캔이 들어와 있어요. 그만 먹어야 하는데 쉽게 끊어지지는 않고, 반성은 하는데 실천은 어렵고, 그런 의미로 참치 캔이 저에게는 고기와 함께 계속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해요. ‘알면서도 계속 먹을래? 너라고 언제까지나 안전할 것 같아?’ 이러면서요.
여기서 고기는 왜냐고요? 고기나 햄도 마찬가지죠. 한때는 분명 살아있던 것들이 목숨을 잃고 살과 뼈가 발라지고 먹기 좋은 형태로 우리에게 왔다는 이유로 별다른 불편함 없이, 심지어는 매우 맛있게 이것들을 먹고 즐기잖아요?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하고 믿으려고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이면을 종종을 잊고 살게 되죠. 그것이 꼭 먹는 문제에만 해당되는 건 아닐 거라고 믿어요.
현직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서 청소년들이 직접 쓴 글들을 많이 봐 오셨을 텐데요. 교사이자 작가로서 보는 청소년들의 글은 어떤가요?
학교에서 접하게 되는 청소년들의 글은 대부분 평가 기준에 따라 쓴 글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유로운 생각이 담긴 글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죠. 다만 아이들의 관심사가 제가 학창 시절을 보내던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해요. 진로나 성적, 이성에 대한 관심 등으로 좀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죠. 가끔 번뜩이는 재치나 생각이 나타난 글들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긴 글을 쓰는 걸 힘들어하고 싫어해요.
메신저처럼 짧은 글들을 쓰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생각을 형식에 맞게 풀어내는 일이 어색한 거죠. 주제에 맞게 A4 한 장 정도의 분량을 쓰는 일은 엄청난 일이라고 여기곤 해요. 또 ‘그냥, 응응, ^^, ㅠㅠ’ 등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표현들이지만 모두 ‘그냥, 응응, ^^, ㅠㅠ’이죠. 저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잘 고르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종종 아이들에게 말이 너무 가난하다고 말하는데 아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말의 수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말의 수를 늘리는 일이고, 이것이 독서를 통해 흔히 얻게 된다는 교훈이나 감동을 떠나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이익이기도 하지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쓰기에 도전한다면 자신이 가진 말을 가지런히 배열하면서 생각을 다듬을 수 있게 되죠.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 모드로 변신하게 되는데 이때 어떤 사건이나 생각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지요.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각을 풀어서 정리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읽기의 과정인 셈이에요.
특히 열일곱 언저리의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열일곱 언저리의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복잡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쓴 글이든, 혼자서 읽고 말글이든 자꾸 쓰다 보면 자신의 관심사 혹은 속상한 일, 기쁜 일 등을 알 수 있게 되니까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처럼 보이는 것들도 막상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다보면 선명하진 않아도 대강의 형태를 드러내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속으로 끙끙 앓는 일을 언어로 표현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혹은 너무나 기대되고 설레는 일들이 별게 아닐지도 모르니까요.
『열일곱의 맛 철학』 속 ‘쉼 샘의 한 스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인문학』 을 통해서도 일상의 사유에 깊이를 더해 줄 다양한 명화와 책, 영화 등을 소개해 주셨지요. 열일곱 소녀 정수임을 매혹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열일곱 소녀 정수임은 방황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저는 딱 열일곱이 되던 해 서울에서 전라도 무주라는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 빌딩 숲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디서든 볼 수 있던 높은 건물과 큰 대로를 떠나 앞뒤좌우, 사면이 산인 곳에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서 자퇴도 고민했었는데 학교를 오가는 길에 정말 너무나 예쁜 호수와 높고 길게 뻗은 자작나무 숲이 있는 거예요.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오늘 하루만 더 보고 자퇴하겠다고 말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호수와 숲을 보면서 하루하루 견디다 무사히 적응하여 졸업까지 하게 되었지요. 예전에는 꼬불꼬불한 길이었는데 몇 년 전에 무주로 가는 신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제가 좋아했던 자작나무 숲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더라고요. 언덕을 오르면 볼 수 있었던 호수도 보이지 않고 말이죠. 열일곱의 정수임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작품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글쓴이의 말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글로 쓰다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을 거’라 말씀하셨어요. 음식과 책, 그림과 영화 외에 선생님의 글쓰기 욕망을 자극하는 또 다른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최근 저의 관심사는 ‘여성의 삶’이에요. 제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제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삶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달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제 어머니의 수고에 대해, 역사적으로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많은 여성들의 삶에 무심했죠. 학교에서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었다는 변명을 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배우고 있지 않는 아이들에게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여성의 교육이나 참정권을 어떻게 얻게 된 것인지부터 여전히 평등해지지 않은 여성의 삶에 대해서 말이죠.
열일곱의 맛 철학정수임 저 | 북멘토
풍미는 먹는 걸로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싶다가도 이왕에 들어온 거 거창하게, 고딩다운 허세 좀 넣어서 먹거리에 ‘철학적’인 하루의 단상을 더해 글을 써 보기로 한다.
관련태그: 열일곱의 맛 철학, 정수임 작가, 청소년, 먹거리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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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맛있었습니다! 고딩이 바라본 세상의 맛이 담긴 매콤짭짤 철학 한 그릇 얼떨결에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새내기 고등학생 김풍미.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자 국어 선생님인 쉼샘은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1년간 자유롭게 글을 써 보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그건 바로 먹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