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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의 측면돌파] 내가 한 선택이 최고라고 믿어요 (G. 김민철 여행작가)

“내가 한 선택이 최고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예요.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요”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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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신 작가님은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으신 분입니다. 책에서 말씀하시길 “모든 여행자는 자신의 역사책에 전성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여행에서 돌아오신지 얼마 안 됐어요. 이번에는 어떤 내용으로 “인생의 한 챕터”를 채우셨을지 궁금한데요. 『우리 회의나 할까?』,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을 쓰신 김민철 작가님 모셨습니다. (2018.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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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동시에 여러 순간을 사는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지금 어디에 있을 것인가, 거기에 언제 있을 것인가. 여행에서 이 두 가지 질문은 끝없이 교차한다. ‘나의 시간’을 선택하고 ‘나의 공간’을 선택하여 그 둘을 직조하면 비로소 ‘나의 여행’의 무늬가 드러난다. 이 무늬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며 나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그 무늬를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의무가 된다.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 『모든 요일의 여행』 속 한 구절이었습니다. 여행에 대한 이 이야기는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의 나는 어디에 머물러 있었을까요?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꿈꿨던 곳에 서 있나요? 어쩌면 기대했던 모습과 사뭇 다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우리의 의무는 그 무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 김민철 여행작가 편>


김하나 : 이번에는 어디로 여행을 다녀오셨죠?

 

김민철 : 한 달 동안 이탈리아를 다녀왔습니다.


김하나 : 사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꿈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어떻게 한 달이나 여행을 다녀오실 수 있었어요? 회사에서 전횡을 저지르고 계신가요(웃음)?


김민철 :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저희 회사가 좋은 제도가 있는데요.


김하나 : 회사가 어디죠?


김민철 : TBWA라고 광고 회사입니다.


김하나 : 저도 다녔던 회사네요(웃음).


김민철 : 그렇습니다(웃음). 우리는 아마도 거기에서 만났죠? 그곳에서 선배님으로 만났죠. 하늘같은 선배님이시죠(웃음).


김하나 : 여행을 다녀오실 수 있었던 그 회사의 제도는 어떤 건가요?


김민 : 회사가 4년마다 한 번씩 한 달짜리 휴가를 줍니다. 그런데 처음에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하면 9년을 다녀야 한 달짜리 휴가가 나와요. 처음에 그 말을 듣고 ‘내가 9년은 안 다닌다’라고 생각했는데(웃음), 9년을 지나 올해 14년차입니다.

 

김하나 : “여행이 나를 말해준다”고 하셨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스스로에 대해서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이 있었어요?


김민철 : 완전 새롭게 깨달았다기보다는 조금 강해진 생각이 있었는데요. 이건 장점인 것 같아요. 어쩌다 생긴 장점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어떤 일이 생기면 지금 내가 겪은 일, 내가 한 선택이 최고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예요.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요. 예를 들면 어딘가에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기로 했고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인데, 거기에 도착을 했더니 줄이 너무 긴 거예요. 유명한 곳이었던 거죠. 저는 어떤 곳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데, 도착하기 전부터 남편에게 “시라쿠사라는 도시에 가면 파니니를 만드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나는 꼭 그 할아버지가 만드는 파니니를 먹어보고 싶어”라고 말했어요. 제가 그렇게까지 포부를 밝히는 적은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갔는데 생각보다 줄이 너무 긴 거죠. 그래서 남편을 줄에 세워놓고 그 안에 저는 뭔가 요깃거리가 있는지 찾아보고 돌아왔는데, 남편이 잘 안 보이는 거예요. 줄 선 가족들 틈바구니에 남편이 너무 납작하게 되어서 서 있는데, 그 순간이 너무 불행한 거예요. 그래서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기다려서 먹으면 그것 자체가 행복할 수도 있는 거고, 거기에서 행복을 느끼는 류의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분명히 행복하기 위해서 여기를 왔는데 파니니라는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 두 세 시간의 행복을 포기하는 건 못하겠는 거예요.


김하나 : 그렇죠.


김민철 : 그래서 옆을 봤더니 바로 옆의 식당도 너무 좋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로 들어갔어요.


김하나 : 거기는 뭘 파는 데였나요?


김민철 : 작은 타파스 같은 것들을 파는 곳이었는데, 엄청 맛있었어요. 기분도 너무 좋았고요. 그렇게 되면 그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 되는 거죠. ‘파니니를 포기하고 이 식당을 들어온 건 너무 잘한 것 같아, 지금 너무 행복하지 않아?’라고 믿어버리는 거죠. 그런데 제가 집착도 해요. 그래서 그 다음 날 아침에 또 가는 거죠. 샌드위치를 먹으러(웃음).

 

김하나 : 자, 여기서 아무 맥락 없이 등장하는 스피드 퀴즈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로바로 대답해 주시면 돼요.


김민철 : 네.


김하나 : ‘모든 회사 일은 사생활에 우선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


김민철 : 일할 수 없다.


김하나 : 머리와 가슴이 복잡할 때 평정을 찾기 위해 되뇌는 말이 있다.


김민철 : 없다.


김하나 : 내가 술을 즐기는 스타일은?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 스톱!’ 또는 ‘취할 게 아니면 술을 왜 마셔?’ 


김민철 : 1번입니다.


김하나 : 술을 마셨을 때 김하나 작가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웃음).


김민철 : 네, 다르죠(웃음).


김하나 : 나도 그렇다.


김민철 : 그렇지 않다(웃음).

 

김하나 : ‘모든 회사 일은 사생활에 우선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왜 그럴까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김민철 : 저는... 이를테면 제 팀원이 사생활에 앞서서 일을 밤늦게까지 하고 아침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고, 매일 그렇게 사는 것도 싫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왜 싫을까요?


김민철 : 저는 그 사람 인생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일 말고. 그래서 거기에서 에너지를 얻어서 저랑 같이 일하는 순간에 즐거웠으면 좋겠지, 바보같이 모든 걸 다 포기해 버리는 후배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선배도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선배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있기도 하니까... 그런데 후배는 싫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게 옳지 않다고 누누이 말하기도 하고요.

 

김하나 : 머리와 가슴이 복잡할 때 평정을 찾기 위해 되뇌는 말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일을 해버리시나요?


김민철 : 잡니다.


김하나 : 아, 좋다~ ‘잠 신’이잖아요(웃음)?


김민철 : ‘잠 신’입니다. 제가 이 순간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면 저는 잡니다. 1초 만에 잠들어요. 지하철 안에서도 세 정거장이 남아있으면 ‘세 정거장 동안 잔다’ 생각하고 바로 자요.


김하나 : 셀프 최면술사도 아니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김민철 : (웃음) 회사에서도 너무 복잡하고 모르겠고 하면 책상에 엎드려서 바로 자는데요. 10분 정도만 자면 모든 것들이 다 말끔해지고 다시 리셋이 돼요.

 

김하나 : 이건 진짜 놀라운 대답이었어요. 내가 술을 즐기는 스타일은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 스톱한다’ 엄청 많이 마시잖아요?


김민철 : 그러니까요. 웬만큼 마셔서는 취기가 잘 올라오지 않아요.


김하나 : 어떻게 그래요? 저는 왜 이걸 몰랐죠? 저는 우리가 같이 취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웃음).


김민철 : 저는 대학교 때까지는 취하는 게 싫어서 술을 잘 안 마셨었어요. 내가 취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 때문에 술을 안 마셨고요. 회사를 마시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요(웃음).


김하나 : 거기에 제가 지대한 공헌을 했죠(웃음). 지금은 저보다 훨씬 많이 드시는 것 같아요.


김민철 : 네, 정말 튼튼한 간을 가지고(웃음)...


김하나 : 그런데 안 취하는 건 정말 몰랐어요. 너무 억울해요. 같이 술을 자주 마시는데, 그러면 제가 취해가는 모습을 늘 멀쩡한 정신으로 보고 있다는 거잖아요.


김민철 : 그렇죠. ‘아, 이 사람 취했다’ 딱 아는 거죠(웃음).

 

김하나 : 오늘 김민철 작가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저는 너무나 감회가 새로워요. 2005년 1월에 선후배 관계로 만나서 같이 일을 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둘 다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작가로 데뷔를 하더니 저도 책을 냈고요. 김민철 작가가 다음 책을 내서 저도 그 다음 책을 냈는데, 그때 제가 김민철 작가에게 추천사를 부탁했어요. 그래서 ‘와, 우리가 2005년에 만났을 때는 이런 관계는 상상도 못 했는데 내가 추천사를 다 부탁하네’라고 했었는데, 김민철 작가가 세 번째 책을 냈을 때는 저한테 추천사를 부탁했어요. 그래서 저는 정말 감격해서 추천사를 열심히 썼었어요. 그리고 제가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했을 때 김민철 작가에게 미리 이야기를 했거든요. ‘나 팟캐스트 진행하게 됐는데, 내 꿈은 널 부르는 거야’라고 이야기했었어요(웃음). 그런데 드디어, 정말로 불렀네요.


김민철 : 네. 제가 그렇게 ‘새 책 나오고 하면 안 될까?’라고 했는데 ‘아, 몰라. 나와!’라고(웃음)...


김하나 : (웃음) 이탈리아 여행을 갔다 오면 그 감흥이 가시기 전에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제가 꼬셨는데요. 오늘 나와 주셔서 정말 고맙고요.


김민철 : 감사합니다.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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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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