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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검색창에 쳐 봐도 안 나오는 장소

볼리비아, 아구아스 깔리안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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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붙잡아 주지 않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온천이라니! 아구아스 깔리안떼스에 가면 이 진귀한 온천을 만날 수 있다. (2017. 12. 12.)

나만 아는 여행지

 

 

남녀,-여행사정-36-01@아구아스-깔리안떼스.jpg

       넌 어디 가려고 열차를 기다리니?

 

 

브라질에서 볼리비아로 황열병을 실어 날랐던 일명 ‘죽음의 열차The 'Death Train', Bolivia’가 마을을 지나가지만, 내리는 사람을 찾기 힘든 간이역일 뿐이다. 딱 하나 있는 상점은 주인장이 가까운 도시에 직접 나가서 물건을 사 와야 재고를 채울 수 있는지 진열대에는 상품 대신 먼지만 가득하다. 음식을 사 먹는 사람이 없는지 식당도 하나뿐이다. 그나마 전기 사정이 좋지 못해 냉장고를 들일 수 없는 동네라 닭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주문하면 마당에서 모이를 먹던 닭을 잡아내어 준다. 사람 대신 돼지와 당나귀가 큰길을 채우고 있는 이런 이상한 마을에 갔던 것은 하필 누군가가 슬쩍 건넸던 말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어.”

 

볼리비아 전역을 여행 중이던 이가 환상 속에나 존재할 것 같은 마을을 소개해 줬다. 하지만 인터넷을 뒤져도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론리플래닛에 쓰인 한 줄 소개와 볼리비아 동쪽에 위치한다는 마을 이름만 손에 쥔 채 길을 나섰다.

 

남미 여행자들에게 ‘아구아스 깔리안떼스에 다녀왔다’고 말하면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에 자신도 다녀왔다고 말을 거든다. 하지만 우리가 다녀온 곳은 볼리비아 동쪽 끝에 위치한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동명의 마을이다. 스페인어로 ‘물’을 뜻하는 아구아와 ‘뜨거운’이란 의미의 깔리안떼가 합쳐진 지명을 발견한다면 그곳은 온천이 샘솟는 마을일 것이다. 우리가 찾아갔던 아구아스 깔리안떼스Aguas Calientes, Robor?, Bolivia도 온천수가 강바닥에서 솟아오르고 그 물이 모여 온천천溫泉川을 이룬다. 다만 오지라서 이 나라 사람들조차 찾는 이가 드물다.

 

혈기 왕성했던 20대에 나는 설산을 넘겠다며 소수민족들이 많이 사는 중국 윈난 성과 티벳탄이 사는 시좡자치구 사이를 트레킹 했다. 대중교통도 없어서 지나가는 트럭을 잡아타고, 가다 내려서 사나흘을 걸어 들어가면 사람이 살까 싶은 황량한 마을과 진흙으로 지은 집들을 마주한 적이 있다. 볼리비아의 이 마을이 딱 그 느낌이었다.

 

아무리 오지라 해도 한국인 중 누군가는 다녀갔겠지 싶었는데 녹색 검색창을 뒤져 보아도 다녀갔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아무래도 이곳을 다녀간 한국 사람은 그 여자와 나, 단둘뿐인듯 하다. 간혹 사람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다녀온 적 있는가?’라고 묻는다. 다른 사람 모르는 여행지 하나쯤 두고 싶은 마음, 우리라고 왜 없겠는가. 그 욕심이 우리를 아구아스 깔리안떼스로 이끈 건 아니었을까?


별이 흐르는 강

 

 

남녀,-여행사정-36-02@아구아스-깔리안떼스.jpg

       보석처럼 반짝이는 너희들을 갖고 싶구나

 

 

차편도, 숙소도, 위치도 무엇 하나 건질 수 없는 친구의 말만 믿고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장소’가 우리를 현혹했다. 이곳은 사람보다 닭, 돼지, 당나귀와 말, 소 등 가축들이 더 많았고, 변변한 슈퍼나 식당은 찾을 수 없었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숙소에는 시멘트 바닥에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고 유리창이 있을 자리에 커튼이 바깥과 실내를 구분할 뿐이다. 인터넷과 온수는커녕 백열등 하나 겨우 들어오는 깡 시골이다.

 

하루는 종일 미드를 보고 하루는 종일 해먹에서 뒹굴다가 하루는 종일 온천에 가는 날이 전부였다. 관광 인프라도 상술도 없는 소박한 동네였다. 성인 어른의 허리춤밖에 오지 않는 맑은 강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영을 즐길 수 있고 이곳 태생인 닥터 피시에게 발을 맡기며 치유의 효능을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을의 하이라이트는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면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아직도 지각활동을 하며 땅 깊숙한 곳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물은 흡사 늪지를 연상시킨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처럼 이 온천에도 강바닥에 깔려있는 모래 구덩이가 사람을 빨아들인다.

 

누군가가 붙잡아 주지 않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온천이라니! 아구아스 깔리안떼스에 가면 이 진귀한 온천을 만날 수 있다. 지각활동을 활발히 하는 기 센 온천이라 그랬을까? 온천욕을 하고 난 후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내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온천욕을 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입맛이 없어지고 밤새 오한으로 떨어야 했다. 잇몸은 피가 나면서 헐기 시작하고 입술과 혀에는 염증이 생기고 심한 악취가 풍겨왔다. 그 남자는 이것을 ‘구내염’이라고 했다. 영양분을 채워줘야 하는데 잇몸이 헐어서 음식을 씹지 못하고 칫솔질을 잘 해줘야 하는데 피가 나니까 닦지 못했다.

 

기 센 온천을 소개해 준 친구에게 미지의 세계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차마 못 건네겠다. 이럴 땐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어쨌든 우리의 선택이지 않은가!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행객이 없는 곳에 간다는 사실이 우리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그 남자와 아구아스 깔리안떼스를 선택한 건 이런 도취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 못 하겠다. 사람들이 가 보지 못한 곳을 말함으로써 우리의 여행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렸던 것이다.

 

비록 온천욕 때문에 앓아누웠지만 아구아스 깔리안떼스는 이런 욕망을 충족시킬 만한 특별한 여행지임은 사실이다. 내 몸을 삼켜 버린 괴랄한 온천과 더불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장소’인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밤하늘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목이 뒤로 꺾일 때까지 별이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하늘뿐 아니라 어둠 전체가 별로 반짝이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전기가 들지 않은 마을임을 감사해 하며 별들이 흐르는 강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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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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