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 “낡은 상가아파트에 도시 주거의 해법이 담겨 있다”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밀도’와 ‘복합’ 『가장 도시적인 삶』 출간
황두진 건축가는 강의를 하면서 “할 얘기가 많지만 줄여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을 몇 번이나 드러냈다. 그만큼 상가아파트를 향한 애정과 꼼꼼히 조사하고 기록한 내용의 켜가 두텁다는 방증이었다. (2017.11. 23)
ⓒ반비 [가장 도시적인 삶]답사_유진상가 중정에서
동시대 한국에 적합한 도시건축을 고민해온 건축가 황두진은 지난 10월 28일, 『가장 도시적인 삶』의 출간 기념을 겸하여 오픈하우스서울2017의 스페셜 테마 ‘상가아파트를 말하다’를 진행했다. 『가장 도시적인 삶』은 집과 일터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도시를 위한 건축적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무지개떡 건축’론을 통해 살기 좋은 도시의 미래상을 고민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도심 곳곳의 상가아파트를 성실히 조사하고 답사한다.
이날의 행사는 ‘도시 주거 탐사기’라는 책의 콘섭트에 맞게 책에서 다루고 있는 홍제동 일대의 몇몇 상가아파트를 직접 답사하고, 한국 상가아파트 및 주상복합 건축의 변천 과정과 가능성을 짚어보는 강연으로 구성되었다. 강연은 집과 사무실을 겸한 무지개떡 건축인 목련원(황두진건축사사무소)에서 열렸다.
ⓒ반비 [가장 도시적인 삶] 강의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밀도’와 ‘복합’
60~70년대 상가아파트는 무지개떡 건축 진화 과정의 사라진 연결 고리
황두진 건축가는 모든 건물을 답사하고 가급적 사진도 직접 찍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번 책을 썼다. 결과적으로 상당한 분량의 작업을, 특히 본업인 건축사무소 일과 병행하면서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직주근접’의 삶을 살고 있는 덕분”이라고 한다. 도시가 지나치게 수평적으로 확대된 결과, 한국은 현재 OECD 국가 중 출퇴근 시간이 가장 긴 수준이다. 이 상징적인 지표는 곧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인 개인의 가용 시간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깊이 있는 ‘개인의 세계’를 갖추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니라 ‘도시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도시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밀도’와 ‘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껏 밀도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고, 어쩌면 밀도를 죄악시한 측면도 많습니다. 몸은 도시에 와 있는데, 마음은 자꾸 전원을 향하는 거예요. 건축계에서도 인구에 회자되는 담론들을 보면, 유독 땅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반비 코너 상가의 처리가 돋보이는 서소문아파트
밀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거로서 등장한 것이 아파트, 정확히는 단지형 아파트였다. 그러나 황두진 건축가는 주거 단일 용도의 아파트 단지가 많아질수록 도시가 ‘빗장공동체’로 쪼개져 단절되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단지형 아파트는 비록 현재 도시 아파트의 대세이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전원형이라는”(15쪽) 견해를 책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도시에 필요한 것은 기본 밀도 이상의 복합 용도 건물, 즉 무지개떡 건축이다. 특히 그는 인구의 도심 회귀가 일어나는 고도성장기 이후 현재의 도시에 보다 절실한 유형임을 강조했다.
“누가 계획한 것도, 유명 건축가의 멋진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지역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서울에 많은 이런 지역의 공통점은 아래층에는 상가, 위에는 주거가 있는 무지개떡 건축이 자연 발생적으로 많아서 주거와 상업이 적당히 혼재돼 있고, 건물들이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곳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전 세계의 도시들이 대부분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반비 답사_낙원상가 옥상에서
부실한 기록 속에서 머리와 발로 찾아낸 이야기들
이런 문제의식과 개념을 기반으로 무지개떡 건축의 사례들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황두진 건축가는 1960~7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상가아파트가 도시건축 진화 과정의 ‘사라진 연결 고리’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강의에선 ‘옥인동 2층 한옥상가’에서 ‘타워팰리스’까지 아우르는 본격적인 한국 주상복합 탐사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황두진 건축가는 강의를 하면서 “할 얘기가 많지만 줄여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을 몇 번이나 드러냈다. 그만큼 상가아파트를 향한 애정과 꼼꼼히 조사하고 기록한 내용의 켜가 두텁다는 방증이었다. 모든 건물을 답사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말 그대로 건물이 말을 걸어온다”고 덧붙였다.
ⓒ반비 좌원상가아파트 전경
‘좌원상가아파트’가 특히 그런 경우였다. 좌원상가아파트는 건축물대장상 사용승인일이 1966년 12월 23일이다. 이 숫자가 의미 있는 것은 흔히 ‘최초의 주상복합건축’이라 일컬어지는 ‘세운상가’의 건립 연도보다 1년 정도 빠르기 때문이다. 사전 조사 단계에서 별것 없으리란 인상을 받았지만, 직접 찾아가서 “상당히 큰 규모, 뒤로 깊고 전면이 넓은 비례, 문 없이 복도가 바로 외기에 열려 있는 1층 상가” 등 건물의 특별한 면면을 발견한 덕에 좌원상가아파트가 ‘주상복합’이란 이름에 합당한 건물임을 실감했다. 최초의 주상복합이라는 타이틀에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를, 지명도 낮은 건물의 의의에 주목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왜 우리는 그동안에 좌원상가아파트는 얘기하지 않았고, 세운상가만 얘기했느냐. 지명도가 비교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운상가는 얘깃거리와 자료가 비교적 많고, 무엇보다 김수근 사단의 작품이니까요. 좌원상가아파트는 누가 설계했는지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건축물대장은 사람으로 치면 호적등본 같은 겁니다. 출생 연도, 면적, 재원 및 특성도 나와 있어요. 그리고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가 나와야 하는데 대부분 공란입니다. 속된 말로 아비어미 없는 자식들이에요. 무명 혹은 익명이면 서러워집니다.”
ⓒ반비 충정아파트 전경
1930년에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 충정아파트를 통해서는 건물이 품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갖가지 이야기를 풀어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개발 시대를 거치며 몇몇 ‘도시괴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충정아파트에 인민군재판소가 설치되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고 전해지며, 1950년 서울수복 전후의 유명한 전쟁 사진들에서도 충정아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전후(戰後)에는 UN군 숙박시설, 곧 ‘호텔’로 사용되는 한편, 치열한 정보전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민간으로 소유권이 넘어가고 나서는 1961년 5층이 불법 증축되고, 1979년 충정로 확장으로 전면이 잘려 나가는 등 전쟁은 이겨냈어도 개발 바람은 피해가기 어려움을 제 몸에 고스란히 남겼다.
이 같은 파란만장한 건물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건축물대장은 물론, 일제강점기 발행된 기사, 종군기자의 사진, 옛 지도, 아파트 평면도, 소설, 영문 아티클 등 다양한 자료가 등장했다. 열악한 기록 문화 속에서도 건물에 얽힌 퍼즐을 맞추기 위해 분투하며 다방면의 관련 정보와 자료를 찾아나간 결과물이었다.
옥상마당, 중정 광장, 거리형 아파트, 수직마을…
오래된 건물이 간직한 도시를 살리는 미덕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일상에서 흘깃 스쳐봐서는 발견하지 못할 각 상가아파트의 특징과 가치가 선명해졌다. 황두진 건축가는 현재의 낡은 모습을 보고 이 건물들을 판단하거나 무시해선 안 됨을 강조했다. “한때는 연예인 아파트라 불렸던” 많은 상가아파트가 “낡았지만 도시건축의 기본적인 덕목을 갖춘 건물”이며, “도시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너무나 좋은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반비 안산맨숀의 옥상텃밭
‘안산맨숀’을 찾아 갔을 때, 주민들이 텃밭으로 가꾸어놓은 옥상을 보고 놀랐다. 거의 옥상 전체를 경작지로 이용하고 있는 안산맨숀의 사례에서 “옥상이 바로 교외의 대안”임을 실감했다. ‘금성아파트’에서는 “생활공간과 같이 붙어 있는 마당”처럼 옥상을 활용하는 ‘옥상마당’의 실제도 발견했다. 그곳에는 해 질 녘 주민들이 바구니 하니씩을 들고 찬거리로 쓸 푸성귀를 따며 서로 인사하는 풍경, 즉 아파트가 이룬 ‘수직의 마을’이 있었다.
“국토의 척추” 격인 삼일대로 위에 세워진 ‘낙원빌딩’의 매력은 실제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좀 더 생생하게 전달됐다.
“주민 분께 살기에 좋냐, 입지는 어떻냐고 여쭤봤습니다. 일단 한번 ‘훗’ 웃으시더니 ‘교보문고가 동네 서점이고, 경복궁, 창덕궁, 종묘로 산책 다니고, 버스와 지하철은 사방에 널렸다’고 답하십니다. ‘건물 지하가 시장이라 냉장고가 클 필요도 없다’, ‘어지간한 시내 중시부의 직장은 걸어서 출퇴근한다’고 말이에요. 또 9층의 중정이 일종의 마을 광장 역할을 합니다. 주민 회의에 해당하는 모임이 중정에서 열리고, ‘아이들이 뛰거나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동네스러운 안내문도 붙어 있어요”
중림동의 언덕 지형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은 ‘성요셉아파트’, 1층 상가에 인왕시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내놓은 ‘원일아파트’, 건물 뒤편의 골목이 단절되지 않도록 1층에 출입구를 두고 코너 상가의 두 면을 모두 개방하여 가로의 연속성을 지킨 ‘서소문아파트’ 등등. 요즘 건물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도시를 대하는 태도, 자기가 접한 가로나 지형과의 관계를 헤아리는 미덕이 하나하나 호명되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때론 쇠락한 채 외면당한 건물들의 프로필, 어디에도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익명의 건축가들의 고려가 그만큼 기억되고, 재해석될 가능성을 얻은 것이다.
ⓒ반비 삼일대로 위에 서 있는 낙원빌딩
“실무 건축가가 상당한 시간을 들여 답사 다니고, 자료 모으고, 책을 내고 이렇게 강연까지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너무 이르게 찾아온 이 건축 유형의 태도와 보편적 가치를 제대로 개발한다면 도시의 풍경이 많이 바뀌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얼마되지 않는 햇수 동안 이렇게 다양한 상가아파트들을 쏟아냈다는 것을 한번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점을 모색해야 되지 않을까요.”
가장 도시적인 삶황두진 저 | 반비
도시건축에 관한 문턱을 낮추고 일반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살아 있는 도시에 기여하고자 하는 저자의 태도와 열정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 답사를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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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편저19,800원(10% + 5%)
이 책은 우리 주변의 무지개떡 건축이 낡은 외관에 가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의미와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저자의 다양한 사전 조사 자료, 답사 기록, 애정이 담긴 사진을 통해 구체적인 모습으로 독자 앞에 다가간다. 또한 그 과정을 자세하게 공유하며,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지점을 제공한다. 입지, 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