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면 안 되는 책 한 잔
<월간 채널예스> 1월호 낮책밤책 조지 오웰의 『1984』
바와 심야서점이 결합되어 있으며, 책과 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책바(Chaeg Ba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술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소설 마시는 시간』을 썼습니다
작년 11월은 유난히 뜨거운 한 달이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소중한 주말을 포기하고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부터 주름이 굵게 새겨진 손까지 모두 같은 염원이었으리라. 나도 이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 어느 하루 굳게 마음을 먹고 책바를 닫은 뒤 광장에 나갔다. 손에는 조지 오웰의 『1984』가 들려 있었다.
『1984』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분류되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빅 브라더'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언론이 도청, 감시 등의 키워드로 기사를 쓰면 늘 언급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84』라는 제목은 어떤 경로―심지어 하루키의 『1Q84』를 보아도―로든지 종종 접했을 것이며, 인용된 문장도 곳곳에 등장하기에 대략적인 줄거리도 어떨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 읽어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읽지 않았는데 마치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데자뷰 같은 책인 셈이다. 일단, 나부터 그랬다. 그런데 책을 펼쳐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그 느낌이 너무나도 생경해서 깜짝 놀랐다.
『1984』는 빅 브라더로 대표되는 소수의 당이 다수의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집 안에 놓인 텔레스크린이 쌍방향 송수신으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심지어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물론 사랑과 고독, 기쁨 등과 같은 감정은 절대 허락되지 않는다. 성욕은 죄가 되며, 섹스는 단순히 당에 봉사할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 당이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 중에 '이중사고'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2 2=4가 상식이지만, 때로는 2 2=5에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아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계에는 신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은 사람들의 사고를 제어하기 위해 지속해서 낱말들을 줄여나간다. '좋은(Good)'의 반대말은 '나쁜(Bad)'이 아니라 '좋지 않은(Ungood)'이 되고, '훌륭한(Excellent)'은 '더 좋은(Plusgood)'으로 대체된다. 사고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표현의 자유는 억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빈민가에서 구한 노트에 일기를 쓰며 나름의 저항을 하고자 한다. 다행히도, 집 안에는 텔레스크린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그는 일기를 쓰기 전에 승리주(Victory Gin)를 마신 뒤 승리담배(Victory Gigarettes)를 한 대 태운다. 그런데 승리주는 결코 맛있는 술이 아니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식사로 남겨둔 흑빵 한 덩어리 외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선반에서 '승리주(Victory Gin)'라는 흰색 라벨이 붙은 맑은 술병을 꺼냈다. 그 술은 쌀로 빚은 중국의 화주처럼 독한 데다 느글느글하니 구역질 나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었다. 윈스턴은 술을 찻잔에 가득 찰 만큼 따르자마자 쓰디쓴 약을 삼키듯 진저리를 치며 단숨에 마셔버렸다. (14쪽)
원래 진(Gin)은 주니퍼 베리(노간주열매)를 각종 허브와 함께 증류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 풍미가 깔끔한 편이다. 더불어 토닉 워터와 함께 섞어 마시는 진 토닉은 청량감을 주는 대표적인 칵테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승리주에는 명백히 진이라고 라벨에 표기가 되었음에도, 그 맛은 진이 가지고 있는 풍미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저 구역질 나고 역한 술로 묘사된다.
이렇게 아이러니한 상황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 번째, 원래의 진은 다양한 풍미를 가진 종류들이 존재한다. 어떤 진은 블루베리의 향이 짙게 배어 나오고, 어떤 진은 오이의 상큼함을 입속 가득히 느낄 수 있다. 즉 진은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승리주는 지극히 매뉴얼적으로 생산된 획일화된 술일 뿐이다. 즉 술을 마시는 순간에도 표현의 자유는 억제되는 셈이다. 두 번째, 승리주는 이름과 맛이 정반대로 받아들여지는 술이다. 승리 담배와 그가 거주하는 승리 맨션조차 반어적인 면은 마찬가지다. 조지 오웰은 이를 통해 『1984』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비판했다.
토요일에 이 책을 들고 나간 것은 내재된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글을 쓰는 이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발표가 나왔다. 윈스턴은 이 세상을 뒤집는 것이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절대다수의 일반 시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레시피
승리주는 존재해서도 만들어져서도 안 됩니다.
1984조지 오웰 저/정회성 역 | 민음사
『동물농장』과 함께 조지 오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관련태그: 1984, 조지 오웰, 승리주, 디스토피아 소설
바와 심야서점이 결합해 있어 책과 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책바(Cheag Ba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더운 날, 누군가와 갈등이 생긴다면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이 뜨거운 더위와 갈등을 식혀주는 책 한 잔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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