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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읽는다는 것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15 『여왕국의 성』, 이 시대에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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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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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고가 사부로가 ‘본격(本格) 미스터리’라는 말을 사용할 때만해도, 그다지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당시 미스터리라 불리던 소설들에는 공포, 전기(傳奇) 등 다양한 소설이 섞여 있었고 ‘본격’은 그들 중에서 평범한 미스터리 소설(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이 이를 해결하는)을 구분해내기 위해 쓰인 수식어였다. ‘본격 미스터리’에 ‘논리’가 강박적으로 달라붙은 건 그 이후의 일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범죄소설로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쏠리는 중에, ‘평범한 미스터리’가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논리’밖에 없었다. 덕분에 본격 미스터리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됐다.

 

이 시대에 본격 미스터리를 쓰는 건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닳고 닳은 독자들도 놀라게 할 결말을 준비하고, 그곳에 이를 때까지 여기저기 함정을 파며, 전체 구조를 논리적으로 짜맞추어야 한다. 웬만한 열정으로는 어림도 없고, 구도(求道)가 아니고서는 닿기도 어렵다. 하지만 일본에는 그런 구도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작가 중 한 명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본명은 우에하라 마사히데)는 1959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치면 내년에 쉰아홉을 맞는다. 1989년에 첫 작품을 출간했으니 대략 27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해온 셈이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주로 본격 미스터리를 써왔고 또 그러한 작품들로 이름을 얻었다. 남들은 평생 한 편도 쓰기 어려운, 게다가 유행이 한참 지난 본격 미스터리로 일가를 이뤘으니 남다른 고집과 성실함을 지닌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11살 때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를 읽은 이후로 줄곧 미스터리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바느질 흔적이 있는 흰색 바지와 끈이 끊어진 구두 한 켤레로 집요한 연역 추리가 이어지는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는 엘러리 퀸 특유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학을 선택한 이유마저 학과가 아닌 ‘추리소설 동호회’ 때문이었다고 하니, 엘러리 퀸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인생에 확실한 길잡이가 돼준 듯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낮에는 서점에서 일하며 밤에 끊임없이 글을 썼다. 출판사에 습작을 투고하면서 ‘본격 미스터리의 신’이라 불리는 아유카와 데쓰야(우리나라에는 『리라장 사건』,이 출간돼 있다)와 인연을 맺게 됐고 가까스로 『월광 게임』(1989)을 출간해 작가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세계는 두 시리즈가 대표한다. 각각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 ‘학생 아리스 시리즈’라고 불리는데, 모두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작가와 동일한 이름의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의 직업에 따라 시리즈를 구분하는 별칭이 생긴 셈이다. 각 시리즈에서 히무라 히데오라는 범죄학자와 에가미 지로라는 동호회 선배가 탐정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시리즈들은 일종의 병행 세계에 존재하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미스터리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다.

 

범죄학자가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 달리 ‘학생 아리스 시리즈’는 에이토 대학 미스터리 클럽(EMC)의 멤버들이 맞닥뜨리는 사건을 소재로 한다. 주된 등장인물들이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작품들은 낭만적인 모험담이 가미된 청춘 드라마로도 읽힌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평범한 대학생들이 기이한 사건에 자주 휘말리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느냐고 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시리즈는 작가 인생 내내 진행 중이다. 전작 『쌍두의 악마에 이어 6년만에 국내에 선보인 『여왕국의 성』은 일본에서는 무려 15년만에 발표된 작품이다.

 

본격 미스터리라는 탑을 현대에 세우기 위해 작가들은 종종 두 가지 기법을 이용한다. 하나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폐쇄된 공간 안에 등장인물을 몰아넣는 것이다. 『여왕국의 성』은 이 두 가지 기법이 동시에 적용된 작품이다. 휴대폰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버블 시대, EMC 멤버들은 행방 불명 상태인 에가미 지로를 찾아 한창 번성하는 신흥 종교 ‘인류협회’의 성지인 가미쿠라 마을로 향한다. 11년 전 가미쿠라 마을에서 일어났던 의문의 사건과 인류협회 내에서 일어난 세 건의 연쇄 살인이 겹쳐지고, 협회의 관 내에 갇혀버린 EMC 멤버들은 자유와 진실을 위해 필사적으로 추리 게임을 시작한다.

 

여름 캠프가 열린 야부키 산(『월광 게임』), 다이아몬드가 숨겨진 가시키지마 섬(『외딴 섬 퍼즐』), 예술가들이 머무르는 폐쇄된 기사라 마을(『쌍두의 악마) 등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EMC 멤버들이 활약하는 곳은 이성이 최대한 돋보일 수 있도록 직조된 낭만적인 공간이다. 탐정 에가미 지로는 그 불가해한 공간에 서서 순수한 논리만으로 범인을 지목한다. 이는 본격 미스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의 아름다움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여왕국의 성』에서, 에가미 지로의 입을 빌어 본격 미스터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유치하고 과도한 망상이야. 본격 미스터리는 그 망상을 유희로 바꾸지. … 한마디 덧붙이면 나는 유치하고 과도한 망상에서 태어난 소설이라고 해서 전부 유치하고 시시한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이 시대에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또 읽는 의미를 너무나도 정확히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저 ㅣ 시공사

20세기에 출간된 본격 미스터리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발리콘 가가 운영하는 유서 깊은 장례 회사가 위치한 미국 북동부의 시골 마을 툼스빌. 그곳에서 시체가 되살아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죽은 시체가 되살아난다는 규칙 아래 일어나는 살인 사건과 자신의 몸을 방부 처리해서 사건을 추적하는 이미 죽은 탐정. 놀랍게도 완벽한 미스터리이다.

 

 

 

 

십각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저 ㅣ 한스미디어

1987년 '신본격 미스터리의 축포'라고 불리는 아야쓰지 유키토의 전설적인 데뷔작.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선보인 '폭풍의 산장 플롯'과 수수께끼 건축가가 설계한 독특한 건축물, 육지와 섬으로 나뉘는 교차 구조를 통해 독자에게 지적 게임을 선포한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일본 미스터리는 하나의 분기를 맞게 된다.

 

 

 

 

데드맨
가와이 간지 저 ㅣ 작가정신

가와이 간지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라는 흔한 문구가 잘 어울리는 작가이다. <데드맨>은 제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상 대상 수상작으로 도쿄에서 일어난 여섯 건의 토막 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 가부라기의 활약을 그렸다. 초현실적인 사건을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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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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