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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아는 척’이 되지 않으려면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민이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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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철학 특유의 화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가고 싶은 욕망이 있죠. 그러나 학계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철학을 설하며 사는 이들에겐, 대중의 화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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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생각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낮은 ‘타인’의 시선과 ‘밖’의 소리로 시끄러웠다면, 밤은 ‘자신’과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밤에는 때때로 이유 모를 불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늘 비슷한 고민들로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은 보통 사람들의 하루 끝에 가장 적합한 철학책이다. 니체가 말하는 ‘이미 도래한 미래’부터 라이프니츠의 인생 방정식,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데카르트가 의심한 ‘생각’의 실체, 들뢰즈의 노마드 철학, 베르그송의 원뿔 시간 모델까지, 책 속 그들의 철학은 우리 마음속 의문들에 대한 길을 탐색한다.


민이언 저자는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했다. 제자백가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이수하고, 니체로 시작하는 ‘거의 모든 서양철학’을 둘러보았다. 동양철학이 갖추지 못한 서양철학의 논리 체계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어렵게 설명하는 걸까?’라는 의문과 회의감을 품게 되었다. 매 순간 존재하는 철학을 실질적인 삶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인문공동체 ‘디오니소스’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제목이 독특합니다. 굳이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인 이유가 있나요?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와 다소 의견 대립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철학의 문법에 좀 더 익숙하고, 출판사는 서점가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보니…. 출간의 시기마다 출판사와 가장 갈등을 겪는 문제이긴 한데, 이번에는 그냥 출판사의 감각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밤’이라는 키워드로 구성된 전체적인 얼개는 출판사의 담당자 분께서 수고하신 것이고, 저는 그 제안에 따라 프롤로그를 각색한 정도입니다.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철학을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공이 한문이다 보니, 전공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라도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 정도는 거의 외우다시피 해야 했습니다. 한창 미니홈피가 대세이던 시절에, 동양 철학의 글귀 밑에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게재하는 작업이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 글을 퍼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고…. 우연찮게 그 글들로 출간이 이루어졌고, 출간을 계약한 원고에 조금 더 읽을거리를 첨가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서양철학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시작인데 이제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죠.    

 

주로 서양 철학을 다루셨지만 <주역>에 관한 글도 있습니다. <주역>이 역술인지 철학인지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뽑은 점괘가 나의 운명이란 논리가 아니라 나의 운명이 그 점괘를 뽑는다는 논리’라고 하셨습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고사는 공자와 <주역>에서 연유합니다. 공자와 같은 지혜로도 주역을 엮은 끈이 세 번이 떨어질 정도로 펼쳐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죠. 단 한 번의 점괘를 숙명으도 단정할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한 것이 우리네 삶이기도 하죠. 삶의 우연성에 관한 한 공자도 ‘말을 아꼈다’고 <논어>에 적혀 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기치도 자신의 절실함을 다하고 난 뒤에 하늘을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보다는, 알 수 있는 것들은 제대로 알고 있는가를 돌아보라는 것이 공자를 대변하는 주제이기도 하죠. <주역> 역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기 보단, ‘지금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는 미래에 관한 조언이죠. 즉 ‘의지’가 ‘숙명’에 앞서 있다는 논리입니다.  

 

<터미네이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 유명한 영화를 비롯해 실생활에서 겪을 만한 일을 철학 설명을 위해 다양하게 쓰셨습니다. 철학 사상마다 적절한 예시를 찾는 방법이 있나요?


가령 레비나스의 ‘타자’에 관한 이론을 공부하던 중에, 마침 보게 된 영화가 <타인의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우연이었던 경우들이 적지 않아요. 융의 정신분석을 빌리자면 ‘공시성’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실상 제가 염두에 두고 있던 지식들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이겠죠. 동서양의 철학사를 대강 둘러본 지금에는 영화를 보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이 있어요. 그 키워드들 위주로 적어 내려가는 해석이 제 방법론 중에 하나입니다. 가끔씩은 다른 영화를 같은 키워드로 해석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원고로 쓰게 될 경우에는 하나의 영화를 택해서 한쪽으로 몰아 각색을 합니다.


제겐 블로그가 초벌원고를 저장하는 공간인데, 영화든 소설이든 일상이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일단 막 적어 놓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아카이브가 쌓이게 되죠. 어떤 철학의 주제로 글을 쓰게 될 경우, 이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조합하면서 원고로 만들어내는 편입니다.  

 

‘나 또한 철학적 화법의 겉멋에 매몰되어 ‘철학을 위한 철학’을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순간순간 돌아본다.’(116쪽)고 하셨는데요. 보통 사람들이 철학은 어렵고 현학적이라고 많이 생각합니다. 겉멋이 아닌 철학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 걸까요?


관념 철학의 절정에 있었던 헤겔에게 던져진 혹평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 줄은 키르케고르의 것입니다.  


“그것은 굶주린 사람에게 요리 교과서를 읽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저는 헤겔도 좋아하고 그의 철학을 공허한 담론이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만 키르케고르의 지적만큼은 모든 철학도들이 반성해야 할, 아니 모든 글쟁이들이 반성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정말 실질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글을 쓰기 위한 ‘글로 머문 생각’들의 돌려막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삶에 관한 기술이 아닌, 그저 한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시 적어 내려가는 공허한 이론 뒤 이론과 이론. 들뢰즈가 철학에 쏟아낸 성토 역시 아무것도 전복시키지 못하는 추상적 진리들에만 도달한다는 점입니다.


발터 벤야민이 지적하는 정보사회의 문제점은, 공유되는 정보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너무 많은 간접 경험의 정보에 직접 경험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부연입니다. 직접 경험을 하지 않아도, 수많은 ‘타자의 담론’으로 지식을 구성할 수 있는, 그러나 결국엔 수많은 타자의 견해들일 수밖에 없는 정보들. 여기서 파생되는 더 큰 문제점은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니체가 철학에게 던진 질문의 초점 역시 ‘체험적 인문’에 관한 문제죠. 철학이 과연 삶을 ‘사는’ 것에 관한 스토리텔링인가? 그저 삶과 동떨어져 ‘삶의 지식’이라는 명분으로 구축된 체계에 대한 ‘아는 척’인가? 이 질문부터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철학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것은 인문학이지만, 인문학을 읽는 자신의 이미지도 함께 구매하는 것이며, 읽는 이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이 너무 상업적으로 쓰여서도 안 된다는 주장’(178쪽)도 나옵니다.


책에선 제 의견으로 쓴 글귀는 아니었죠. 그러면서도 제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을 소재로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철학 특유의 화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가고 싶은 욕망이 있죠. 그러나 학계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철학을 설하며 사는 이들에겐, 대중의 화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이죠. 그런데 대중의 화법을 고려하면서도, 또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지키고 싶은 선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한쪽에선 어렵다는 평이 들려오고, 다른 쪽에선 또 ‘깊이가 없다’고 비판을 해요.

이전에 출간한 6권은 그 영점을 잡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화법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 스스로는 만족할만한 영점은 찾은 것 같습니다.

 

인문공동체 디오니소스는 어떤 단체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체라기 보단 기획입니다. 디오니소스는 니체의 키워드로,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 전 영역을 의미합니다. ‘마이너’라고 표현해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문학 관련 블로그들을 유람하다 보면 섬세한 분석과 기발한 해석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저 블로그에 고여 있기엔 아까운 지평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도 출간의 기회는 쉽사리 얻지 못하는 현실이 뭔가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도리어 적지 않은 함량 미달들이 메이저 출판사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서점가이기도 한데 말이죠.


그래서 마이너들을 위한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플랫폼 자체를 브랜드화하고자 한 기획입니다. 비유하자면 <개그콘서트>와 같은 전략입니다. 잘 돼서 다른 기회를 얻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떠나가도 좋고,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고 지금은 시카고 대학의 ‘위대한 고전’을 주제로 한 첫 책을 출판사와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면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꼽자면요?


치르치르 미치르에게 파랑새는 이미 다가와 있던 현재였을까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래였을까요? 니체를 빌리자면 ‘이미 도래한 미래’였죠.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인식 밖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철학에서는 시간 개념도 과거, 현재, 미래의 단순한 나열이 아닙니다. 철학을 투영한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현재로 과거를 살고, 누군가는 매 순간의 미래를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이데거로 이어받자면, 존재는 시간의 산물이며, 입체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은 지평의 입체감도 다른 법이죠. 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입체감도 다를 수밖에 없고 평면도보다는 부감도가 보다 많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죠. 가령 위와 아래 같은…. 평면을 살아가는 이는 벽에 갇힐 수밖에 없지만, 부감을 사는 이는 벽을 넘을 생각을 하죠. 때로 철학은 생각의 문제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민이언 저 | 쌤앤파커스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은 사람들의 하루 끝에 가장 적합한 철학책이다. 니체가 말하는 ‘이미 도래한 미래’부터 라이프니츠의 인생 방정식,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데카르트가 의심한 ‘생각’의 실체, 들뢰즈의 노마드 철학, 베르그송의 원뿔 시간 모델까지… 책 속 그들의 철학은 우리 마음속 의문들에 대한 길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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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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