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위치와 세기, 양에 따라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색과 모양, 느낌이 달라진다. 그래서 화가들에게 빛이란 너무 중요하지만 매우 성가신 존재일지 모른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얼마 동안 할말을 잃었다. 그리는 대상의 모습을 비추는 조명으로서 빛을 바라본 게 아니라 ‘빛 자체’를 그리기 위해 주변이 함께 그려질 수 밖에 없는, 보통이 그리는 방식과 정확히 반대로 빛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빛이 그림의 핵심이라고 하기엔 호퍼의 그림은 고독감으로 가득하다. 지나치게 깔끔한 방 안에 들어선 것처럼, 그림 속에서 묵직한 정적이 흘러나와 바라보는 사람을 끝까지 긴장하게 한다. 내가 가진 단어로는 ‘기분 좋은 낯섦’이라고 밖에 표현되지 않아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절판되었던 『빈방의 빛』이 3년 만에 재출간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책을 쓴 마크 스트랜드는 절제된 언어로 초현실적 이미지의 시를 쓰는 작가다. 언어로 이미지를 그리는 그의 시는 종종 호퍼의 그림과 비교되어 왔다. 그런 시인이 묘사하는 호퍼의 그림은 과연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스트랜드의 특별한 시선으로, 그만의 단어로 호퍼의 그림 30점이 어떻게 피어날지 꽉 찬 기대감으로 책장을 펼쳤다.
“호퍼의 빛은 이상하게도 공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지 않고, 벽이나 물건에 달라붙어 있는 듯하다. 마치 그곳에서 조심스럽게 잉태되어 고른 색조로 우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호퍼의 그림에서 빛은 형태에 드리워지지 않는다. 그보다 그의 그림은 형태를 가장한 빛으로 구성된다. 특히 실내의 빛은 그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신빙성이 있다. 모네의 빛과는 정반대”라고 표현한다거나 “그의 그림에서 사물은 어떤 마술적인 정적감에 쌓여 있으면서도, 다정한 명료함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분명히 느꼈지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마음 속에서만 맴맴 돌았던 그 느낌을 시인은 이렇게나 멋지게 표현해낸다. 같은 생각인데도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얼마나 다른지.
저자는 호퍼의 그림에 사람들이 집중하게 되는 이유를 그림의 구성에서 찾는다. 호퍼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나이트호크」(1942) 안의 소실점은 캔버스의 바깥쪽 어딘가에 존재한다. 사다리꼴의 기울어진 변은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우리를 재촉하고, 어두운 도시 속 식당의 환한 실내는 우리에게 머물 것을 종용한다. 「계단」(1949)에서는 문 밖의 어두운 숲이, 「좌석차」(1965)에서는 손잡이 없이 닫혀 있는 문이 움직이려는 관객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그것이 호퍼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개의 모순적인 명령어 사이에서 주춤거리는 동안 우리는 그의 그림에 한 발자국 더 깊이 관여하게 된다.
시인의 언어 역시 녹록지 않지만, 그가 읽어 낸 방식으로 호퍼의 그림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토록 그의 그림에 끌렸던 이유가 명백해졌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한 쇼핑몰의 광고가 호퍼의 그림을 토대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 호퍼와 관련된 책이 단 한 권도 없었을 때부터 오직 호퍼에 대한 지극한 애정 하나로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한 옮긴이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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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빛마크 스트랜드 저/박상미 역 | 한길사
《빈방의 빛: 시인이 말하는 호퍼》는 계관시인 마크 스트랜드(Mark Strand)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 30점에 대해 쓴 글이다. 때론 에세이처럼 때론 미학 비평처럼 써내려간 이 글들은 모두 ‘시인의 글’이라는 점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최지혜
좋은 건 좋다고 꼭 말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