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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와 독자가 함께한 ‘풀꽃 문학기행’

소설 『풀꽃도 꽃이다』 출간 기념, 독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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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이제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 비는 여전히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다. 서울까지 3시간을 더 달리면 자정 즈음에나 도착할 것. 녹록하지 않은 일정에도 독자들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마음 속에 마치 예쁜 풀꽃을 피워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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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아침 8시 20분. 출퇴근에 분주한 일군의 사람들을 거스르며 60여 명의 독자들이 교대역 14번 출구 앞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 없었다. 풀꽃의 상쾌함이 어른거리는 얼굴을 하고 준비된 버스에 올랐다. 며칠 전까지 기승을 부리던 폭염은 사라지고 얇은 바람이 살랑였다.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평창 풀꽃 문학기행. 좋은 시작이었다. 해냄출판사에서 든든한 간식도 쥐어 주었다.

 

3시간 정도를 달려 강원도 평창에 다다랐다. 평일이기는 했지만, 평창올림픽에 대비해 영동고속도로가 공사중인 상황. 혹여나 일정이 지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예정보다 조금 먼저 도착했다. 첫 일정은 한국전통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정강원에서의 점심식사. 정갈한 한식으로 배를 채우고, 잘 가꿔진 정원과 길게 줄을 선 장독대와 한국식 가옥을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산들에 폭 둘러싸인 곳에서 도시의 감각은 살짝 무뎌지고, 마음은 조금 푸르러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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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일정도 ‘풀꽃 문학기행’답게, 여러 풀꽃과 나무들을 만날 수 있는 평창 허브나라. 100여 종이 넘는 온갖 허브들이 야외와 온실에서 재배되고 있는 곳이다. 허브들은 인위적인 조경의 느낌이 나기보다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더 뻗어내지 못하고 기죽은 느낌이 아니라, 작은 잎이나 가지를 저마다 충분히 한껏, 제 원하는 방향으로 뻗은 느낌. 혹은 제 원하는 대로 충분히 웅크리고 있는 느낌. 그래서 인지 공기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풀꽃 하나 하나를 긍정하는 소설 『풀꽃도 꽃이다』의 조정래 작가를 만나는 길에 잘 어울린 장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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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와 만나는 장소는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더 흐려지고,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공기도 조금 서늘해졌다. 대부분 긴 팔 겉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르기 시작했는데, 조정래 작가와 만나기 전 진행한 ‘조정래 문학 퀴즈대회’가 독자들의 열성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기 때문. 조정래 작가를 만나기 위해 평창까지 나선 독자들인 만큼, 꽤 난이도가 있는 질문에도 여기저기서 ‘정답!’, ‘정답!’ 소리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 어떤 언어로 번역되었는지, 조정래 작가의 등단작이 수록된 문예지는 무엇인지 등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먼 질문이라도 크게 문제가 되질 않았다. ‘정답’을 외치는 소리는 갈수록 높아졌고, 예스24와 해냄출판사에서 준비한 경품은 쉽게 바닥났다.

 

이제 드디어 조정래 작가를 만나는 시간. 독자들이 일찍이 착석해 책을 다시 한 번 살펴보거나 저마다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사이, 조정래 작가가 뒤편에서 조용히 걸어 나왔다. 박수소리가 큼지막하게 피어나 강연장을 뒤덮고 사라지자, 작가는 가벼운 유머를 던진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신작 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이 모든 이야기를 두 권의 소설에 담은 것이 대단하게 생각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넓게 뻗어가는 이야기였다.

 

“근대라는 시기가 열리면서 대중교육이 시작되었어요. 그전에는 귀족들이나 교육 받았단 말이에요. 근대에 이룩한 놀라운 성과들은 바로 교육받은 대중이 이룬 겁니다.”라고 말문을 연 작가는 한국사회에서는 경제발전과 대중교육이 어떤 상관관계를 보이는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한반도는 초토화되었어요. 그때 어느 정도 말까지 나왔냐 하면 한반도가 석기시대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석기시대에서 이룩한 거에요. 그걸 만들어 낸 게 바로 우골탑 교육입니다. 우골탑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소를 팔아서 그 돈으로 자식들 대학보냈기 때문에, 소 뼈 위에 세운 게 대학이다 해서 우골탑입니다. 그때는 다들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짓는데 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때 소가 죽으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요? 먹었을까? 안 먹고 묻어 줬어요. 그만큼 소중한 소를 팔아서 교육을 시켰다고요.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 가까이에 왔는데, 이게 다 그런 교육투자의 결과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는 ‘교육의 불구화’라고 말합니다. 지난 팔 년 동안 죽은 청소년이 월남 전사자보다 많아요. 그런데도 신문에 안 나요. 부모를 죽였다거나, 불을 질렀다거나 그럴 때만 신문에 나요. 자살을 선택하는 10대가 연간 550명에 이르는데도요.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 시장은 날로 커졌습니다. 지금 사교육 시장이 40조에요. 사교육 시장에 40조가 들어가면 재투자는 8조 밖에 안됩니다. 그러니까 사교육 재벌만 커지고, 아이들은 힘들어 죽겠다고 하니 이게 ‘교육의 불구화’가 아니면 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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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되짚어보고, 지금 드리워져 있는 그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 작가의 목소리에는 점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우리가 선진경제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는 모방으로 안됩니다. 원천기술이 없으면 미래가 없다고요. 한국과 일본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암기식 교육하고, 석차를 교실 뒤에 붙이고, 교복입고, 이름표 달고 우리 교육은 일본을 그대로 답습했어요. 이제는 이런 식으로 하면 경제도 큰일 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도 국민들은 열심히 사느라 바쁘니까 국가가 만든 교육제도를 그대로 따라오기만 했어요. 그래서 이 심각성을 얘기하기 위해 내가 교육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교육현실에 대한 소신을 열정적으로 꺼낸 작가의 이야기에 모두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지나온 학창시절과 변화해 온 이 나라의 풍경, 우리 아이들의 교육환경,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스치듯 들었던 안타까운 소식 등이 조용히 떠올랐다. 작가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지니지 않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나왔다. 도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

 

“소설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어야지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계몽소설이 되어 버립니다. 원래 이번 소설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려면 세 권이었어야 하지만 두 권으로 줄이고 해법은 상징적으로만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교육은 혁신이 아니고 혁명이어야 합니다. 조금 뜯어 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암기식 교육을 폐기하고 토론식 창의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책읽기와 논술교육을 일상화 해야 해요. 학급 정원도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부가 공문 좀 내려 보내지 못하게 해야 해요. 교육부가 일선 학교로 연간 내려 보내는 공문이 오천오백 가지 입니다. 교사가 교육에만 집중할 수 가 없다고요. 교육부가 그러는 이유는 교육을 중앙집권적으로 장악하겠다는 겁니다. 이걸 못하게 해야 학교에서 더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있어요.”

 

“고졸과 대졸의 임금격차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모두 대학을 가려고 하잖아요. 독일의 대학진학율은 25%입니다. 그렇게 교육을 잘 한다는 핀란드는 40%, 미국은 60%, 한국은 80%에요. 지금 전국 대학에 1조 5천억 정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막대한 돈을 깔고 앉은 상태에서 이 돈을 또 지원받고 있고요. 이 돈을 대학에 주지 않으면 전국에 마이스터고를 제대로 육성할 수 있습니다. 대학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열어줘야 돼요.”

 

교육을 바꿔내기 위한 작가의 생각은 무궁무진 했다. 역사와 통계, 해외의 사례들을 종횡무진 제시하며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대한 입장이 줄이어 나왔다. 교육은 단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부와 연결된 문제이고, 100년의 미래라는 점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작가의 이야기에서 넘치도록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국민은 세금을 낼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할 책임과 권한이 있습니다. 한 달에 천 원 정도씩만 내더라도 시민단체에 가입하세요. 선진국은 2개, 3개씩 시민단체에 가입하는 시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회원들을 바탕으로 시민단체가 굉장히 활발히 활동해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때 활발해지는 것 같다가, 지금 다 사라져버렸어요. 시민단체가 많아지고 활발해져야 권력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권력을 포기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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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시민들 간의, 학부모 간의, 독자 간의 소통을 내내 강조했다. 이번 문학기행에 참석한 독자들에게도 이번 강연에서 나온 얘기를,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느낀 바를 주변의 다름 사람들과 많이 나누어 달라고 당부했다.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은, 남다른 누군가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풀꽃처럼 도처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우리들의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작가와의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이제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 비는 여전히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다. 서울까지 3시간을 더 달리면 자정 즈음에나 도착할 것. 녹록하지 않은 일정에도 독자들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마음 속에 마치 예쁜 풀꽃을 피워낸 것처럼.

 

 

‘풀꽃문학기행’ 추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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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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