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책은 사람을 만든다
나는 죽을 만큼 노력한다 ‘소설가 조정래’
한국문학사의 빛나는 거장
작가 조정래. 두 말 할 필요 없는, 수식어 자체가 무색한 한국문학사에 빛나는 거장이다.
소설가 박성천이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를 통해 만난 문화예술인 7인에 대한 인터뷰 후기를 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조정래는 소설의 첫 문장을 쓸 때마다 파지만 30여 장을 버린다. 그렇게 해서 닻을 올리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기나긴 여정이 남아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원고지 한 장은 불과 1만 50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1만 4999를 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글 감옥에 갇혀야 한다. 세상과의 완벽한 고립 없이는 도저한 문학의 강을 건널 수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를 꼽아달라는 물음에 조정래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아껴가며 소설을 읽었다는 독자를 만날 때 가장 행복하다.”
작가로서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듯하다.
철두철미한 취재와 자료 조사, “작가는 발로 쓴다”
“90년대 『아리랑』 취재차 중국에 갔을 때 작품을 구상했어요. 80년대와는 사뭇 달라져버린 중국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당시 중국은 우리나라가 라면 하나씩 팔아도 10억 개인 80년대의 중국이 아니었으니까요.”
“중국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수첩이 90권, 현지 취재에서 얻은 정보를 기록한 수첩이 20권, 여기에 중국 관련 책을 80권 읽었습니다. 그동안 8차례나 현지를 오가며 취재를 했고, 갈 때마다 두 달씩 머무르며 현지 분위기를 파악했지요.”
기자가 만난 그는 ‘노력의 거장’이라는 말이 더 맞을 만큼 자신에게 엄격하고 치열했다. 새로운 작품에 돌입하면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고립시킨다.
‘완벽한 고립’ 속에서 건너는 도저한 문학의 강
조정래 작가는 세상과의 모든 연을 단절한 채 작품에만 몰두한다. 매일 원고지 25매 이상을 쓰는 것은 물론 15시간 이상을 창작에 쏟아 붓는다. 앞 뒤 돌아보지 않고 좌고우면 하지 않고 오로지 소설에만 파묻혀 강행군을 한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도 원고지 한 장 넘겨줄 수 없고, 마침표 하나 찍어줄 수 없는 게, 작가가 대면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 절해의 고독 속에서 작가는 원고지 한 칸 한 칸을 채워가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했는데 『아리랑』을 거쳐 『한강』을 끝내고 나니 예순이 되었다. 그 20년 세월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아들을 장가들였고, 나를 할아버지로 만들었다. 장년의 세월을 작품에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채워주는 것이 영특한 손자 재민이가 아닌가 싶다. 15개월짜리 재민이는 앞으로 15년쯤 후에 이 작품들을 읽게 되리라.”(『조정래 그의 문학 속으로』)
죽을 만큼 노력한다는 작가의 말은, 사실은 실의에 빠진 많은 이들에게 건네는 그의 ‘권면’이자 ‘위로’다.
소설가 조정래. 그는 항상 자신이 감동해야 타인도 감동할 수 있다는 전제를 되새긴다. 사선을 넘는다는 각오 없이는 삶에 지치고 억압받는 이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없다. 그의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이유다. 그는 남도 예향이 배출한 가장 전라도적인 작가다. 한국적인 작가인 동시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작가다. 그의 순교자적 글쓰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조정래 소설가는,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만 6천 5백 장 분량으로 6년간 연재된 그의 대표작 『태백산맥』은 좌익운동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헤치며 우리 민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을 비판적 시작으로 다뤄 젊은 세대의 공감과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은 전 32권 원고지 5만 3천여 장에 그 높이가 5m 50cm에 이르며, 조정래의 책은 1천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1981년 현대문학상,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으로 세계 곳곳에서 번역 출간되었고(중국어, 스웨덴어 번역 중), TV 드라마와 뮤지컬로도 제작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연습』, 『사람의 탈』 중편 『유형의 땅』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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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광주일보 기자인 저자는 다양한 영역에 걸친 글쓰기를 통해 사람과 세상, 문화에 대한 지평을 넓혀가는 인문학자다. 문학 기자와 『예향』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학 관련 기사뿐 아니라 우리 시대 화제가 되는 인물 인터뷰, 다양한 문화 담론, 인문학적 주제, 학술 전반에 대해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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