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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좋은 부모란 자녀를 시민으로 키우는 것”

2016 부모 여름 특강 경쟁의 완전체로 자라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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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둘러싼 풍경이 심상치 않다. 등록금 문제, 시간 강사 처우 문제에서 최근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사태까지 이곳은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태한 듯하다. 언제부터, 어째서, 어떻게 대학이 모습을 바꾸며 지금에 이르렀는지 제대로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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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양천도서관에서 진행된 ‘2016 여름 부모 특강’ 세 번째 순서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를 비롯해 최근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를 출간한 오찬호 저자였다. 이날은 대학에서 11년째 강의를 해오는 저자에게서 대학의 공기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생생하게 전해 듣는 자리였다. 오찬호는 “‘헬캠퍼스’, ‘헬조선’의 실상이 무엇인지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른들의 조언이 통할 수 있는 시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시대가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어른들이 시대가 달라졌는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태연하게 조언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조언 받는 사람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어요.”

 

‘어른’, ‘멘토’라는 사람들의 조언을 들을수록 청년들은 “차별에 찬성”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이 날카롭게 들렸다. 저자가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이 실제로 그랬다.

 

“누가 힘들다, 형편 좀 낫게 해줘, 라고 하는데 학생들은 네가 열심히 안 살아놓고, 어릴 때 공부 안 해놓고 불평한다고 해요. 누군가 차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네 사정 아니냐, 하기 나름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거죠.”

 

다시 대학 이야기다. 지금의 대학은 이런 학생들을 환영한다. 차별에 둔감한 상태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대학은 공동체나 협력 같은 가치를 가르치지 않는다. 오찬호는 그런 대학은 이제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 가치를 가르치는 것을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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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변한다


오찬호는 “사회가 병이 들면, 개인도 병이 들게 마련이다.”(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 177쪽)라는 문장을 곱씹었다. 병든 사회에 사는 개인이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끝내는 자신의 병까지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논리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지금보다 30년 후의 사회가 더 낫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말을 내뱉는 순간 굉장히 분위기가 이상해지죠. 제가 학부모 모임에 나가서 이런 얘기를 하면 국회의원에 나가라는 말을 듣습니다. 조롱이죠. 한편 과거 같으면 이런 생각을 속세에 찌들어가면서 점차 하게 됐었죠.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점점 빨라져요. 요즘은 중고등학생들만 하더라도 이런 얘기를 하면 오글거린다고 해요.”

 

‘그런다고 사회가 변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나쁘게 변해왔다고 저자는 말했다. 사회는 변한다. 시민이란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체가 되는 것이며 좋은 부모란 자녀를 시민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이것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나의 삶도 병들지 않게 하는 길이다.

 

경쟁을 모두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처럼”은 아니다. 오찬호는 각 나라에서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산층, 사회의 허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느냐고 질문하니까 이런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공적 분노에 의연히 참여한다, 시사지를 정기 구독한다, 강자에 대응한다, 같은 말이요. 경제적인 것만으로 중산층이 형성되는 게 아니죠. 얼마나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하느냐로 결정되는 거죠. 미래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평등해지고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조건이 들어가는 건데요. 한국은 어떤가요? 아파트 30평, 자동차 3,000cc, 예금 잔고 1억, 해외여행 6개월에 한 번. 이 수치는 1년 지나 조사하면 또 늘어나요.(웃음)”

 

한국 사람들은 흔히 ‘내가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이후 다른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그 다음 목표는 더 잘 먹고 더 잘사는 것”이 될 뿐이다. 그 결과는? ‘각자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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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풍경


저자가 만난 학생들은 각자도생을 일찍부터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한 예로 저자는 ‘민주주의’를 더 확장되어야 할,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가치로 설명하면서 그러나 이 가치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학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재의 대학 풍경을 이야기했다.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훼손될 때 분노해야 한다고요. ‘사람에 따라서는’, ‘경우에 따라서는’이라며 저울질을 하거나 ‘그럴 수도 있죠’라고 해서는 안 돼요. 그래서 강의를 하다보면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사건에 대해 굉장히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은 대개 이래요. 아는데, 별 느낌이 없어요, 라는 거예요.”

 

지금의 학생들은 이전 세대보다 민주적인 배경에서 성장했다. 두발 규제는 옛날 얘기다. 일상은 훨씬 민주적인데 왜 학생들은 민주적 가치가 훼손되어도 무감각한가?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경쟁 완전체’다.

 

“다른 세대와 다른 특징이 바로 경쟁에 훨씬 더 빨리 노출되었다는 겁니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네가 이겨라, 하는 얘기를 듣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요. 태어남과 동시에 경쟁을 숙명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된 거예요. 경쟁에 줄을 세우는 단계가 빨라지고, 강도가 심해지는 동시에 비판은 사라집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결과다.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고,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권리(민주주의)가 무너지지만 ‘현실이 그러니까(자본주의)’ 부차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해야 한다는 감각, 이것이 “과거에 비해 객관적으로 달라진 환경”이다. 이들이 30년 후, 사회를 이끌게 될 때 만들 청사진은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했다.

능력주의?


“능력주의라는 것은 하나의 모델이잖아요. 모든 경우에서 그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거든요. 2013년 서울대 커뮤니티에 ‘기균(기회균등선발)충’, ‘지균(지역균형선발)충’이란 말을 쓰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나보다 수능 성적이 낮은데 나와 누리는 보상은 동일하다는 사실이 심장을 찌르는 거죠. 기분이 나쁘고, 쟤 때문에 누군가가 역차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능력주의란 성과를 우대하는 것이다.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이 궁극적으로 인류에 공헌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능력주의의 목표 자체가 30년 후 그 사회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가 빈곤하고, 멸시를 당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에 능력주의를 가져와서 정당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저자는 ‘결과의 평등’을 이야기했다.

 

“능력주의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기회, 과정, 결과가 평등해야 합니다. 기회와 과정의 평등은 이해가 되는데 결과의 평등이라고 하면 갑자기 의아해지시겠죠. 그러나 결과의 평등이 없는 상태에서 능력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인 거예요. 결과의 평등이란 경쟁에서 어떤 결과를 얻든 사회적으로 존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인간이니까요. KO로 졌다 해도 약속된 개런티를 제때 지급해주고,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도 치료해줘야 하는 거예요.”

 

“먹고는 산다”는 반론에 저자는 “지금은 778년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지금은 세 끼 먹었다고 행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라는 것이다.

 

“강연도 다니고 싶고, 뮤지컬도 한 편 보고 싶고, 한 달에 한 번 치킨도 사 먹고 싶고, 커피도 한 잔 하고 싶은 거죠. 그게 우리가 말하는 ‘문화’라는 거죠. 절대로 사치도 아니고 낭비도 아니에요. 결과의 평등은 거기에 있는 거예요. 한 인간이 주 40시간 일을 했는데 그가 빈곤까지는 가면 안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져야죠.”

 

그러나 대학에서 이런 이야기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학은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공간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했다. 지금 대학은 ‘자본주의 가치에 진격한 곳’이다. 흔히 ‘실용적’이라고 말하는 곳에 정부 예산이 배정되고, 학과가 재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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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학교

 

“돈이 안 되는 학과에도 대학이 권력을 준 이유는 사회가, 대학이 곧 기업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사회가 곧 시장은 아니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기업이 가야 할 방향과 맞지 않을 때도 있다고요. 그때 제동을 걸어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돈 안 된다, 취업 안 된다, 하는 말로 구조조정을 해요. 당해낼 재간이 없어요.”

 

모두가 인문학을 하고, 비판정신을 가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을 하고 싶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난 2004년, 한 기업인이 ‘대학은 이제 직업 교육소’라는 말을 할 때부터 대학은 노골적으로 기업적 가치에 진격한다.

 

“겉으로는 지성의 전당, 학문의 장, 이런 얘기를 하긴 했어요. 그러다가 그런 말조차 없어진 시발점이 2004년입니다. 실용적인 교육을 하면 사회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가설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추구했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좋아졌나요? 아니라는 거예요.”

 

전국 189개 대학에 있는 경영학 계열 학과수는 686개다(참고로 사회학과수는 30여 개다). 이것은 대학의 풍토 자체가 경영학의 풍토로 되어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여기서 다른 가치는 힘을 잃는다. 의사 진행의 모든 과정이 효율성과 실용성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대학에 기업의 자본이 들어오고, 기업의 이름을 붙인 건물이 올라간다. 이것은 해당 기업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역할을 한다. 대학은 자연스럽게 자본에 대한 비판 능력을 상실한다. 오히려 친기업적인 공간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했다.

 

“지금 대학에는 스타벅스가 들어왔죠. 커피 한 잔을 먹어도 비싼 커피를 먹어야 해요. 토론이 안 되는 거죠. 공부를 하러 왔잖아요. 조별모임을 하는데 오천 원짜리 커피를 마셔야 해요. 만약 이런 곳이 이윤을 노리지 않는 협동조합에서 운영을 하면 천오백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자치 활동, 동아리 모임을 유지할 수 있죠. 지금은 돈이 없으면 그런 모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굉장히 비교육적인 거예요. 그런데 이게 논쟁이 안 돼요.”

 

기업화된 대학은 비싼 월세를 내는 프랜차이즈에 임대를 주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오찬호가 말하는 ‘비교육적인’ 상황은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 삼는 목소리는 점차 제거되어 간다. 대학 안에서 소비해야 하고, 소비하기 위해 다른 것을 투자해야 하는 악순환인 것이다. 모두가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면 모두가 자판기 업체를 비판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만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면 비판의 목소리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찬호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지만 사회가 잘못 변하고 있으면 대학이 따라가지 말아야”한다고 말했다.


대학과 학생들의 변화를 짚어본 그는 어떤 각오로 살아야 하는가를 검토하는 것으로 이날의 강의를 마쳤다.

 

“세상을 비판하며 살다보면 실제로 좀 울적하잖아요. 남들은 다 앞서나가려고 하는데 혼자 추상적인 이야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들어요. 그럴 때 각오를 해야 해요. 내가 오늘 얼마나 인간답게 살았는가를 자꾸 생각하는 거죠. 이 각오에 성적, 직업, 이런 게 자꾸 들어오면 안 돼요. 이타심과 이성을 가진 비판적 사유 능력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구분점이에요. 나는 왜 너처럼 사랑을 못 받고 있는가, 생각하면 질문해야죠. 무엇이 그것을 막고 있는가 하고요. 제도, 관습, 잘못된 고정관념이 이것을 막고 있음을 알아야 해요. 이 질문을 하며 사는 것이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표라는 거예요.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하루를 살아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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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학교오찬호 저 | 문학동네
살아남기 위해 대학은 기업(의 자본)에 종속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기업이 요구하는 ‘개혁’의 과정을 통해 취업의 전초기지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대학이 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인 이상 대학의 문제는 그곳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현재 대학의 실상을 가감 없이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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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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