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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찬욱씨의 결핍 혹은 과잉 : <아가씨>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하나의 브랜드,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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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숙희와 히데코, 백작이 각자의 계획을 은밀하게 설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범죄 영화의 장르적 관습 속에 여성들의 연대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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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어 던지는 사람들의 말과 평가에 점점 살이 찌는 작품들이 있다. 박찬욱 감독이 7년 전 직조해낸 <박쥐>도 그랬다. 관객에게 굳이 전부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감독과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은 관객 사이의 괴리감은 끝없는 텍스트의 해석을 쏟아놓았고 <박쥐>는 다층적 해석의 비만아가 되었다. 소문난 잔치 이후 2012년 할리우드에서 만든 <스토커>는 달랐다. 극단적 취향에 휩쓸리거나, 비난을 받을만한 여지가 없이 매끄럽게 가공된 영화였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잔혹함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보기 어려워하는 관객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장르영화의 과장된 스타일에서 발생하는 묘한 기류 대신 거대한 저택과 어우러진 가족의 독하고 매혹적인 욕망을 주시하면서 한결 차분해진 모습을 보였다.

 

신작 <아가씨>를 이야기하면서 굳이 감독의 전작 두 편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미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관객들에게는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하나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작품의 잔상이 <박쥐>에 남아 있는지, <스토커>에 남아있는지에 따라 <아가씨>를 기대하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가씨>의 매끄럽고 세련된 느낌은 <스토커>의 연장선상에 있다. 타고난 더러운 피를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소녀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도 있다. <아가씨>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만 결국 타인을 거울삼아 힘을 얻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소녀로 변신하는 성장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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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워터스의 원작소설 『핑거 스미스』는 8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시대소설이지만 반전을 품은 지극히 통속적인 이야기 덕분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속고 속이는 극적 반전에 더해 아침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출생의 비밀로 치닫는 극적 구성이 흥미진진하다. 박찬욱 감독이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부터 출생의 비밀이라는, 늘 흥미롭지만 너무 흔해 클리셰 같은 극적 반전을 얼마나 스타일리시하게 직조해낼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은 원작에서 가장 힘주어 이야기한 장면을 대수롭지 않게 베어 툭 덜어냈다. 원작의 가장 큰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는 스쳐지나가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속고 속이는 하녀와 아가씨, 백작 사이의 이야기와 소설의 고풍스러우면서도 내밀한 교감의 정서만 차용한다. 그래서 원작보다 더 에로틱하고 더 간결하며 더 즐거워졌다. 

 

원작 속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1930년 경성으로 그 자리를 옮겼다. 일본과 서양의 건축물과 급히 쏟아져 들어온 문물이 혼재된 특이한 구조 속에서 당시의 시대상 보다는 이국적인 풍광에 집중한다.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건축물과 무대 세트처럼 만들어진 실내 공간이 만들어내는 미장센은 영화 속 제3의 캐릭터가 되어 전반적인 정서를 이끈다. 1부는 아가씨의 저택에 하녀로 들어오게 된 숙희(김태리)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아가씨(김민희)와 결혼한 다음, 그녀를 정신병원에 넣고 재산을 가로채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은 숙희를 통해 아가씨를 꼬이려 한다. 하지만 소매치기 사기꾼으로 키워진 숙희의 계략은 2부를 통해 반전을 맞이한다. 더해 아가씨 히테코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조금 더 깊어진다. 아가씨의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를 비롯한 그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숙희가 보지 못한 아가씨의 본성(혹은 본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3부는 영화 속 주인공 네 명이 각자의 결론으로 이르는 일종의 맺음과 풀이 과정이다. 인물들의 결말은 원작과 상관없이 온전히 박찬욱 감독이 새롭게 만들어냈는데, 무척이나 친절한 서사와 관객들이 기대하는 결말로 무리 없이 진행되어 사람들의 취향을 고르게 만족시켜주지만 톡 쏘는 맛없이 좀 밋밋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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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1세기 박찬욱 감독이 담은 여성의 이야기는 따뜻해서 좋다. 박찬욱 감독은 숙희와 히데코, 백작이 각자의 계획을 은밀하게 설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범죄 영화의 장르적 관습 속에 여성들의 연대를 담아낸다. 『핑거 스미스』의 두 여인이 결국 삶은 진창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 파국 속에서 열린 결말로 나아간다면 <아가씨>의 여인들은 좀 더 주도적이고 훨씬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래서인지 파격적일 수도 있는 두 여인의 정사는 에로스를 뛰어넘어 좀 더 사려 깊고 따뜻해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아가씨>를 믿고 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일본어로 첫 대사를 하는 순간 매혹되게 만드는 김민희의 아름다움과 그야말로 보석의 발견인 김태리는 팽팽하게 대립했다가 늘어지면서 당당하고 아름다운 연대를 만들어낸다. 원작의 백작이 끝까지 냉철하고 지독한 악당이었던 것에 비해 영화 속 악역을 맡은 남자들은 악랄하다기 보다는 멍청하고 허점이 많아 조금 더 연민이 간다. 중심이 확실히 실려 버린 두 여배우의 틈새에서 존재감이 약한 백작이라는 인물에 귀여운 사기꾼의 색깔을 입힌 하정우의 능청맞은 연기와, 짧은 등장에도 그 존재감만은 묵직한 조진웅 덕분에 영화는 시종 꾹꾹 눌러 담긴다. 

 

불균질한 요소들이 툭툭 비져 나와 충돌과 파괴의 이미지를 구축하던 전작들에 비하면 박찬욱 감독의 이번 작품은 무척 친절하다. 사실 박찬욱 감독은 불친절한 서사의 결핍으로 상상의 여백을 만들고, 불균질한 이미지의 과잉으로 관객을 매혹시켰다. 그런 점에서 조금의 상상력도 개입할 틈이 없는 직선적 서사는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은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준다. 클림트 회화 속 여인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 분명한 김민희의 스타일과 동서양의 기묘한 조합, 음서를 읽어주는 낭독회를 통해 활자를 상상하게 하고, 그 상상의 장면을 결국 이미지로 구현하는 방식은 무척 세밀하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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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을 영화 <바운드>

 

형제였다가 남매였다가 다시 자매가 된 워쇼스키가 형제였을 때 만든 인상적인 데뷔작이다. 전과자 코키(지나 거손)와 마피아의 정부 바이올렛(제니퍼 틸리)은 옆방에 살며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 친밀감을 나눈다. 시저의 강압적인 태도에 짓눌려 사는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이올렛은 코키에게 시저의 돈을 빼앗아 도망치자는 제안을 한다. 남성 중심의 범죄 느와르의 전통적 이야기 구조 속 터프가이와 팜므 파탈의 캐릭터를 전과자 여성 동성애자와 팜므 파탈로 대치하면서 아슬아슬한 음모와 배신의 순간을 포착한다. 끝내 배신은 남성의 몫, 연대는 여성들의 것이라 외치는 두 여인의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은 짜릿하고 톡 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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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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