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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싸우지 않으면 승리도 없어요”

산문집 『부상당한 천사에게』 펴낸 김선우 시인과 독자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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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서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가 발현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있는 수확이 단 하나도 없어요. 힘을 가진 자들은 아무것도 그냥 주지 않아요. 싸워야만 얻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싸움의 과정이 굉장히 지난하고 빨리 지친단 말이죠. 그래서 제가 ‘여러분, 춤추면서 싸워야 돼요’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명랑하고 경쾌하게 하지 않으면 길게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능한 명랑하게 춤추고 노래하자는 게 제 지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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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힘듦을 들여다볼까요?

 

지난 11일 저녁, 홍대에 위치한 작은 카페. 시인 김선우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접점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자신을 매개로 하나 둘 모여들 때, 그녀는 읊조렸다고 했다. “천사들이 오신다” 더없이 따스한 한 마디이면서, 무엇보다 낯선 한 마디였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익숙해진 세상에 천사들이 모여 있다니. 시인은 자신만의 눈으로 이곳의 현실과 그 속의 우리를 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부상당한 천사에게』를 펼쳐야 했다.

 

시인 김선우가 3년여 만에 내놓은 산문집 『부상당한 천사에게』는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던 칼럼 ‘김선우의 빨강’을 바탕으로 다수의 매체에 기고되었던 글들을 엮은 책이다. 사이사이 자리 잡은 수필과 시 역시 그녀의 사유와 시선을 담고 있다. 멀리는 2008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글들은 우리가 함께 관통해 온 시간들을 되새기게 한다. 돌이켜 보면 공동의 기쁨보다 공동의 슬픔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집을 빼앗기고, 일터에서 내쫓기고, 생명을 짓밟힌 이들이 곁에 있었다. 김선우 시인 역시 힘겹게 버텨낸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부상당한 천사들’을 끌어안았다.

 

문학만 하지 왜 정치 칼럼을 자꾸 써서 공연한 안티를 만드느냐고 나를 걱정하던 지인에게 일찍이 조지 오웰이 명징하게 정리한 문장을 들려준 적이 있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인 것이다.” 문학은, 문화예술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절망의 자리에 남아 있는 단 한 톨의 씨앗에서도 생명의 온기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다.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떤 글쓰기도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오웰이 고백하듯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 글쟁이에게는 언제나 근원적인 관심사이니. (『부상당한 천사에게』 9쪽, ‘프롤로그’ 중)

 

김선우 시인과 독자들의 만남은 <한겨레신문> 최재봉 문학담당 기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그는 시인과 나눈 대담을 통해 책 속의 의미들을 독자 앞에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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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 : 『부상당한 천사에게』라는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김선우 : 우리 모두가 굉장히 상처가 많은 시절을 살고 있잖아요. 사실 인생이라고 하는 게 계속 상처를 받고 치유하는 과정의 연속인데, 너무 나쁜 사회에서 너무 나쁜 시스템 속에 태어나버린 존재들이라 이중 삼중의 고통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운명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일단 이렇게 태어났다면, 나를 끊임없이 상처 입히는 이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나를 더 잘 보호할 것인가 하는 자기 싸움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것이 모두가 당면해 있는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데 모두가 아프고 힘드니까 ‘너는 얼마나 힘드니, 나도 이렇게 힘든데’ 하고 손 내밀어 볼 수 있는 여유조차 사라지고 있잖아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글 쓰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거죠. (이 책은) ‘나도 당신도 이렇게 힘들군요, 우리가 어떻게 힘든지 한 번 들여다볼까요?’ 하는 말 걸기 예요. 글쟁이로서는 그것 자체가 문학적 예술적 치유를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죠. 그런 마음으로 묶은 책이에요.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발표한 후 최재봉 기자로부터 <한겨레신문>의 독서 칼럼을 제의 받은 것을 시작으로 김선우 시인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칼럼을 연재해 왔다. 시대의 아픔이나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온 것이다. 자신과 같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지면을 양보하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세월호 참사 소식이 들려왔고, 그녀는 ‘아직도 써야 한다는, 여전히 써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그것이 칼럼 ‘김선우의 빨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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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고 명랑하게, 싸워야 해요

 

최재봉 : 연재를 시작하던 무렵이 사회 전체적으로 힘든 시기였어요. 지금도 해결된 문제들은 없다시피 한 상황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당한 천사에게』에서는 일부러라도 명랑 쾌활하고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려는 태도들이 보여요. 비관과 절망에 먹힐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의지로 낙관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그리고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일상의 혁명’을 화두 삼아 제시하신 대목도 있던데요. ‘일상의 혁명’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김선우 : 제가 보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사실은 굉장히 어두워요. 비관적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주면서 살아야죠. 그것이 삶이고 생명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거대한 시스템을 바꾸는 싸움을 연상하면 지레 지치고 오늘을 숨 쉬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싸우지 않으면 승리도 없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희망 버스도 쌍용차도 굉장히 어두운 싸움이었잖아요. 그렇지만 한진중공업에서 부당한 해고를 경험한 사람들의 상당수를 복직시켰어요. 쌍용차도 일단 해고자 복직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요. 싸우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던 우리의 승리의 역사예요. 사회의 모든 부분들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싸워서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가 발현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있는 수확이 단 하나도 없어요. 힘을 가진 자들은 아무것도 그냥 주지 않아요. 싸워야만 얻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싸움의 과정이 굉장히 지난하고 빨리 지친단 말이죠. 그래서 제가 ‘여러분, 춤추면서 싸워야 돼요’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명랑하고 경쾌하게 하지 않으면 길게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능한 명랑하게 춤추고 노래하자는 게 제 지론입니다. 책에서도 제가 쾌락주의자라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렇게 살아요(웃음).

 

최재봉 : 책 중간 중간 ‘카덴차’라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적인 메모나 일기 같은 형식의 글들이 섞여 있는 건데요. 그런 글들은 어떤 계기로 어떤 때 쓰시는지 소개해 주세요.

 

김선우 : <한겨레신문>에 ‘김선우의 빨강’을 연재하면서 제가 썼던 글들이 굉장히 격렬하고 사회적인 메시지들에 민감한 것들이잖아요. 광장에 나부끼는 깃발 같은 글들이 많았죠. 그런 글들을 쓰면서 제가 쾌락하기가 쉬웠겠어요(웃음)? 그래서 찾아낸 쾌락의 방법이 이런 (‘카덴차’ 같은) 글을 쓰는 거였어요. 아마 보시면 ‘김선우 시인은 앞뒤 똑 떨어지는 문장들과 격렬한 주제 의식이 분명한 글들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약간 널널한 글도 쓰네’ 이런 느낌이 드실 텐데요. 그건 제가 가진 양 날개 중에 한쪽 날개예요. 한쪽 날개는 광장과 거리에서 아픈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 저의 쾌락이고요. 다른 한 쪽은 글쟁이로서 작가로서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쓰는 거죠. 그래서 문학잡지에 연재를 했던 글들이에요. 이 두 날개가 함께 있어야만 정신과 마음이 쾌락한 상태가 조화되는 것 같아요. 저도 책이 나오고 나서 알았어요. ‘이것이 내 양 날개구나’ 하고요.


최재봉 : 특히 저에게는 글쓰기에 관한 언급들이 흥미로웠습니다. 하나의 문장을 아름답고 정확한 문장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통해서 사람이 훌륭해지고 내면의 변화가 생긴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노하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선우 : 일단 제가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글쓰기는 무조건적으로 치유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거예요. 어떤 형태의 글쓰기이건 마찬가지예요. 많은 분들은 그게 무슨 상처의 치유냐, 정말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냐, 라고 반신반의해요. 그런데 제가 글쟁이로 20년을 살면서 정말로 확실하게 ‘그렇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떤 종류의 글이든 내 손으로 쓰여져서 바깥에 놓여봐야 우리가 확인할 수 있어요. 머릿속으로 ‘지금 나는 이런 상태야’라고 느끼는 것하고 노트에 써서 바깥에 놓고 보면서 ‘내가 지금 느끼는 게 이거야’라고 확인하는 건 굉장히 다르다는 거예요. 책상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내가 성장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사실 그 느낌이 있기 때문에 작가로서 글을 쓰는 거예요. 그 발전, 변화, 성장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오면 저는 미련 없이 안녕이에요. 조금 멋있게 이야기하면 절필이죠.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 글이라고 하는 것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훌륭한 벗이 된다는 거예요. 아주 훌륭한 수단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사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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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자기 운명을 가지고 있어요

 

대담이 끝난 후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 시대의 천사는 어떤 존재입니까?”라는 물음에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여러분”, “그냥 우리 모두”라고 답했던 김선우 시인. 그녀는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부상당한 천사들’을 위해 직접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 시집 『녹턴』에 실린 「견주, 라는 말」, 「걸식이 어때서?」 두 작품이었다. “진짜로 사람을 사랑하는 작가”로서 김선우가 보여준 마음은 『부상당한 천사에게』를 타고 『녹턴』까지 닿아 있었다.

 

시인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하시면서 조심스러운 점은 없으셨는지, 어떻게 용기를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이쪽 날개와 저쪽 날개가 함께 있어야 사람으로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인간이에요. 조금 치장을 하자면(웃음), 작가가 쓴 글이 세상에 나가면 그것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요. 그런 종류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운명적으로 책임이라는 게 따라요. 한 사회의 공동체에서 작가로 뭔가를 쓰고 자신이 쓴 것을 세상 사람들 속으로 던지면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 삶에 훨씬 더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해요. 동시대 사람들이 더불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계속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만 하고요. 그래야 좋은 글쟁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일신의 안일함에 머물지 않고 세상과 이웃에 계속 눈길을 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나 잘 살아야겠다’, 여기에서 오는 거죠. 내가 잘 살아있다고 느끼고 스스로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은 스스로 만들어줘야 하는 거니까요. ‘내가 먹고 사는 게 힘들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든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면, 저는 스스로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게 될 거예요.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나 잘 살려고, 잘 사랑하려고, 매일 매일 정성을 다해서 노력하는 것 같아요.

 

칼럼 ‘김선우의 빨강’ 제목을 정하실 때, 빨강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제가 빨강, 꽃분홍, 진분홍, 이런 색을 좋아해요(웃음). 『부상당한 천사에게』에도 피(혈액) 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붉은 빛이 가지는 아주 원초적인 생명력,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을 살게 하는 기본적인 활기가 있잖아요. 저에게는 ‘이 활기를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까’를 가장 자주 환기시키는 색깔이 빨강이에요. 그래서 빨강을 정말 좋아해서 ‘김선우의 빨강’으로 정하겠다고 했죠.

 

지금까지의 저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는 정말로 대답을 드릴 수가 없어요. 세상에 내놓은 모든 책들을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사랑하고요. 이건 정말 진심인데, 책이 세상에 나오면 여섯 달 정도까지는 아주 마음을 모아서 기도를 해요. 책이 세상 속으로 잘 들어갈 수 있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더 좋은 힘들을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저것은 내가 낳았으나 세상 속에서 자기 길을 가야 하는 자식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모든 책들이 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것 같아요. 자기 운명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미 길 떠난 그들을 보고 이 책이 제일 좋다거나 저 책이 제일 소중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거예요. 각각의 책들이 저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힘이 되고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잖아요. 그렇게 각각 다른 역사들을 만든단 말이에요. 그거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감히 ‘나는 저 책이 제일 마음에 들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어요. 다 저마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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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천사에게김선우 저 | 한겨레출판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산문 작가인 김선우 작가가 3년여 만에 내놓는 산문집이다. 사회적 스트레스와 우울이 극심한 시절을 견디며 작가가 걷고, 주저하고, 응시하고, 뒤척이고, 앓고, 일어나고, 그러면서도 겨우겨우 한 걸음씩 나아간 흔적과 분투가 황야와 바람과 천사와 눈물과 비상이란 이름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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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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