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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이 파괴한 강에서 맺어진 사랑 - 김선우 『물의 연인들』

책을 보다 우는 축복의 시간, 꼭 누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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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본래 모습은 흐르는 것이지. 막혀 있는 것들은 썩는다. 강이 흐르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선생님? 와이강이 오빠랑 내게 늘 들려주던 얘기인데요. 어제보다 오늘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르는 거예요.

삶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받느냐의 문제

 

지난 11월 2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김선우 작가와 만남이 열렸다. 최근 발표한 신작 소설, 『물의 연인들』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작품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는 그녀가 장편소설로는 세 번째로 세상에 내놓는 이야기다.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김선우 작가는 『나는 춤이다』를 시작으로 『캔들 플라워』 등 장편 소설을 꾸준히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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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이다』는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최초로 서구식 현대무용을 공연한 무용가다. 세계적인 무용가였지만 친일 논란과 해방 이후 월북한 사실 때문에 그녀의 공적이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소설에서 김선우는 친일, 월북과 같은 정치적인 사안보다는 ‘자유’라는 단어로 최승희를 조망하려 했다. 세계는 전쟁 중이었고 조선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다. 어두운 시대, 자유롭기 위해 선택한 것은 무용. 예술로 자유를 추구한 최승희의 삶을 소설로 그린 작품이 바로  『나는 춤이다』이다.

 

첫 작품이 20세기를 다뤘다면 두 번째 작품인 『캔들 플라워』는 21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김선우는 2008년 촛불 정국을 소설의 무대로 세웠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항의하며 광화문 광장에는 연일 촛불이 타오른다. 촛불을 들고 다양한 사람이 광장으로 모였다. 이 광경을 김선우는 꽃으로 표현했고, 『캔들 플라워』라는 제목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녀는 소설에서 광우병 외에도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진다. 10대가 촛불 정국으로 나와야 했던 이유를 한국 교육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야기했다. 광우병이 생명을 탐욕으로 제압하려 한 데에서 비롯된 문명 차원의 문제라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녀의 작품에는 살고자 하는 생명과, 그 생명을 억누르려는 권력 간 투쟁이 드러나 있다.

 

 

김선우 작가가 쓴 문장 곳곳에는 생명이 스며들어 있다. 그녀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성장한 작가보다 더 자연과 맞닿은 글을 쓴다. 세 번째 장편, 『물의 연인들』은 이전에 발표했던 두 편의 장편소설보다 더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과 정부, 그에 맞서 강을 지키려는 사람 간 대결이 서사를 이루는 뼈대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이 소설이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르포 문학과 비슷하리라 짐작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소설은 김선우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로 쓰였으며, 이야기의 중심에는 갈등도 있지만 사랑이 넘친다. 작가는 사랑을 갈등보다 오히려 더 비중 있게 다뤘다. 

 

“이 소설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따라서 쓴 이야기다. 내가 내 옆사람을, 내가 사는 공동체를, 내가 사는 이 별을 어떻게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인 셈이다. 잘 사랑하고, 잘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 내는 과제다. 사랑, 하면 포용이나 이해와 보살핌, 돌봄, 연대감, 조화로운 공생이 떠오른다. 이런 게 사랑이 지향하는 바고, 이게 충족되면 인간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다. 사랑하고자 하는 게 우리 경향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방해하는 세상과 대결할 수밖에 없다. 이해와 소통, 보살핌과 반대되는 파괴와 소유욕, 정복욕, 불통, 이런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소설은 이것에 관한 이야기다.”

 

4대강 사업 때문에 아파서 쓰기 시작한 소설

 

소설에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교대로 등장한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유경과 그녀가 사랑했던 요나스. 요나스는 한국인이지만 어릴 때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다. 스웨덴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방불명이 된 요나스, 그를 잃은 유경에게 유리병이 도착한다. 그 유리병에는 유경의 어머니가 감옥에서 출옥한 뒤 꼭 가고 싶어 했던 와이 강의 물이 담겨 있었다. 유경의 어머니는 남편을 살해한 죄로 수용된 상태. 모범수로, 곧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만 감옥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복잡한 심경으로 와이강을 찾은 유경. 그녀 앞에는 와이강을 배경으로 서로 사랑을 키워온 해울과 수린의 이야기가 기다린다.

 

수린에게는 신기한 능력이 있다. 와이강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되자 수린은 앓기 시작한다. 현대 의학은 그녀의 병을 치료는커녕 진단하지도 못했다. 수린은 김선우 작가를 어느 정도 반영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도 4대강 사업 때문에 많이 아팠다고 한다. 『물의 연인들』을 쓴 이유가 고통 때문이었다.

 

“이 소설을 처음 썼을 때 정황을 말하자면, 2009년 겨울이었다. 4대강 공사 예산안이 통과됐다. 최소한 야당이 막아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안 되더라. 목숨 걸고 막았으면 막았을 것이다. 정치판이란, 개인의 순수한 바람과 항상 어긋나는 이상한 판이다. 2010년부터 4대강 공사를 시작했다. 어디에서 첫 삽을 떴다, 이런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봄이 되었다. 예쁜 새싹이 돋아나고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할 때, 시인은 아무 생각 없이 꽃 따라다닌다. 봄에 어디를 가나, 예쁜 꽃을 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막 울었다, 바보처럼. 저렇게 예쁜 것들이, 생명이 어떻게든 살아가 보려고 씨를 뿌리는데. 한편에서는 전국 강의 숨통을 끊어냈다. 수치로 정리할 순 없으나, 강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에 끔찍한 사건이다. 모순의 상황 속에서 어디를 가도 울다가 너무 힘이 들어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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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씨는 강이 파괴되는 순간을 보며 화가 났다고 말했다. 화가 나는 한편, 많이 아팠다.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쓴 글은 처음에는 성격이 모호했다고 한다. 그냥 쓴 글은 지나고 보니, 그 속에서 소설이 될 씨앗을 여러 개 발견했다. 원고를 쓰고, 초고를 수정하는 와중에 그녀는 집회에 나가고 인도에도 다녀왔다. 초고는 훨씬 적나라한 분노와 비통함, 한숨과 욕이 들어가 있었다. 책으로 나온 『물의 연인들』에는 초고에 있었던 내용 중 200~300매 정도 분량만 살아남았다. 저자 후기에도 밝혔듯 “처음에는 외부의 목소리를 따라갔으나, 내부의 목소리를 발견한” 과정인 셈이다.

 

작품에 관한 김선우 작가의 이야기가 끝난 뒤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에 2시간 글쓰면 행복하다

질문

다른 소재를 놔두고 왜 4대강 썼나?

답변

너무 많이 울어서. 울다 지쳤다. 아팠다. 강 공사를 하는데 왜 작가가 아픈가? 내가 가진 기질의 문제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뒷산에서 놀이터 삼아 발가벗고 놀았다. 내게는 이것이 유토피아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이전에 놀이터가 산과 바닷가, 냇가였다. 나무가 숨을 쉰다는 느낌. 비가 온 다음 날 땅의 표면이 부풀면서 숨을 쉬고 있구나, 이런 느낌. 바닷물 속에서 파도가 우리 심장처럼 두근두근 뛰는 어떤 큰 생명체 같구나 하는 느낌. 강물에 흘러가는 물길이 내 몸속을 흐르는 어떤 액체의 느낌과 퍽 닮았구나. 나는 이런 느낌을 자연 속에서 놀며 체득한 사람이다. 내 눈앞에서 공사 현장이 보이지 않더라도 아프기 시작했다. 공사를 시작하는 화면을 보면 아팠다.

질문

글을 쓰면 고통이 치유되나?

답변

한국 사회 속에 있으면 제대로 쉬기 어렵다. 신문 한 면만 봐도 온갖 사건과 사고로 가득하다. 개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욕망의 층위가 존재한다. 욕망을 만드는 거대한 폭력, 이 속에 있으면 정신 못 차린다. 전국 어디를 가나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옛날이라고 아픈 사람이 없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유별나다. 동시다발적으로 고통 현장이 많다. 마음이 편치 않다. 맛있는 밥을 먹고 따뜻하게 잠을 자도, 누군가는 철탑 위에 있다. 지금도 강정마을은 전쟁 상황이다. 재벌의 공사, 엄청난 공사다. 재벌의 비호 아래 국가가 정책으로 실행했다. 궁극적으로 재벌이 돈 벌기 쉬운 방법이다. 경찰이 재벌 공사를 도와주기 위해 용역처럼 사람을 괴롭힌다. 강정도 그렇지만 작년 한진 중공업 사태를 보자. 해고자 전원 복직, 약속하긴 했다.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의 탐욕이 끝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금고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나누려고, 함께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는다.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좀 편안해지고 싶다. 편안하게 예쁜 것, 좋은 것만 생각하고 살고 싶다.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적응했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무조건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책상 앞에 있을 때다. 하루 두어 시간이라도 글쓰는 자세로 책상 앞에 있지 않으면 불행해진 것 같다. 싸움판 와중에서도 하루 두어 시간 책상 앞에 앉을 시간이 확보된다면 매우 행복하더라.

질문

비극적인 사랑 말고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쓸 계획은 없나?

답변

혹시 『물의 연인들』을 읽었나? 다 읽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질 테다. 치열하고 열정적이지만, 그 속에는 평화로운 사랑이 있다. 여성 독자가 많이 울었고, 남성 독자 중 일부가 울었다는 얘길 듣는다. 책을 보다 우는 축복의 시간, 꼭 누리시길 바란다.

 

김선우 작가가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은 낭독이었다. 그녀가 낭독한 부분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으로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강은, 강물은 본래의 몸대로 살아야 하니까. 저 콘크리트 댐들, 벽들,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언젠가 강은 자기 모습으로 돌아올 거예요. 지금 나는 힘이 없지만, 다시 태어나면 좀 더 힘센 사람으로 오고 싶어요. 지켜 볼 수 있게. (중략) 강물의 본래 모습은 흐르는 것이지. 막혀 있는 것들은 썩는다. (중략) 강이 흐르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선생님? 와이강이 오빠랑 내게 늘 들려주던 얘기인데요. 어제보다 오늘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르는 거예요.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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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연인들 김선우 저 | 민음사

여기, 강을 파괴하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한 물방울로부터 한 물방울에게로” 흐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물의 연인들』은 현대문학상, 천상병시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가 무려 3년 동안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강한 애착을 가지고 쓴 작품이다. 와이강 유역에서 태어나 자란 유경과 그녀의 어머니 한지숙, 당골네의 손녀딸 수린, 와이강에 버려진 후로 수린과 함께 오누이로 자라 온 해울, 와이강 근처에서 발견된 후 스웨덴에 입양되어 자라난 유경의 연인. 『물의 연인들』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와이강을 둘러싼 인연의 자장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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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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