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변호사가 있었다고?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정명섭 작가 인터뷰
하의도 토지분쟁은 조선 시대 시작되어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야 막을 내린 사건입니다. 하의도 사람들에게 이 일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소설보다 더 잔혹한 현실이었죠.
좀비, 역사, 추리, 스릴러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발표하며 한국 장르 소설계의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는 정명섭 작가가 장편소설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을 출간했다. 조선 시대에 변호사가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절대 권력인 왕실에 소송을 걸다니 그 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호기심을 안고 정명섭 작가를 만났다.
조선 시대에 정말 변호사가 있었나요? 그리고 조선 변호사가 왕실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설정인지요?
모두 사실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소송이 빈번했습니다. 특히 가장 큰 재산 가치를 지닌 노비들은 상속하거나 분배할 수 있었는데요. 이런 과정에서 소송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법적 절차와 재판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외지부였죠. 그리고 하의도에서 올라온 섬사람들의 대표자가 홍 씨 집안을 제소한 것도 실록에 기록된 엄연한 사실입니다. 선조의 딸 정명 공주가 민가에 시집간 무렵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무려 330년 동안 이어진 소송이었지요.
330년 동안 소송이 계속됐다니 백성들의 고초가 말이 아니었을 것 같네요. 실제 사건을 소설로 가공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은 영조 때를 배경으로 실제 사건의 비교적 초기 시점을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 시기를 소설의 무대로 고른 이유가 있는지요?
약 백여 년간 수탈을 당하던 하의도 주민들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대표자들을 한양으로 보내서 소송을 제기한 게 바로 이때입니다. 물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멀리 떨어진 섬에서 한양까지 와서 왕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랏법을 잘 아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당시에 성행했던 외지부와 자연스레 그림이 맞춰졌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장르적으로 굉장히 잘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속도감 있게 읽힐뿐더러 묘사도 상세해서 어쩌면 하의도에서 집필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료 고증이나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취재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실제로 하의도를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작년 여름에 가볼까도 생각해봤는데 소설 속에서 하의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도와주는 외지부도 사실은 하의도를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주인공의 그런 감정들을 공유해보고 싶어서 일부러 안 갔습니다. 글이 안 풀렸을 때는 가서 며칠 돌아다녀 보고 싶다는 유혹을 많이 받았는데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자료 조사나 고증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이나 전공한 분들이 쓴 논문에 주로 의지합니다. 사실 하의도 토지 분쟁은 역사실학회라는 학회의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들은 겁니다. 학회 세미나에 주기적으로 참석해서 질문이나 토론을 통해 궁금한 점을 충족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웠던 건 실제 송사 진행과정이었는데요. 이건 해남 윤씨 집안의 노비 관련 소송을 다룬 논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죠.
소설에 보면 ‘성종 때 외지부들이 소송을 부추긴다는 명목으로 북방으로 추방되기도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쫓겨난 셈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이 다시 한양으로 슬금슬금 들어왔다고 표현한 부분이 있거든요. 당시의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후원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혹시 변호사들을 돕는 후원 세력이 있지 않았을까요?
임금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외지부가 소송을 부추긴다고 싫어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비호를 받았던 것 같지는 않았고, 아무래도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허술한 부분을 이용해서 한두 명씩 빠져나와서 돌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몰락한 외지부 주찬학의 캐릭터가 인상적입니다. 어떨 때는 정의로워 보이다가 어떨 땐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거든요. 끝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상대편인 홍신찬 역시 그 자신이 신분 계급 사회의 피해자이면서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들에게는 완벽한 논리로 야멸차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인물을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사극에서 보면 정의로운 주인공은 계속 정의롭고 악당은 무작정 악당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을 보면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고, 시간에 흐르면서 생각이 변하기도 합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주찬학 같은 경우 한양 최고의 외지부였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극과 극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마냥 정의롭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무작정 사악한 인물은 더더욱 아닐 것 같았어요. 홍신찬 역시 집안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행동했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히 절박한 이유였을 거예요. 그런 욕망들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하의도 주민들이 낸 소지를 관청이 받아들여 주지 않자 주찬학이 수를 써서 대신 접수해주는 장면이나, 피고인 홍씨 집안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뎨김(재판 출두명령서)을 받게끔 상황을 유도하는 장면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때 소송 절차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인 것 같아요. 소설에서 언급되진 않은 소송과 관계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해남 윤씨 집안의 노비 소송 관련 기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때 고소인의 친척으로 위장한 외지부가 대송노(代訟奴)라고 불리는 해남 윤씨 집안의 소송 전담 노비들에게 유도신문을 하고 거기에 걸려드니까 바로 물증을 꺼내서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죠.
작가 소개를 보면,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다가 어느 날 문득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가 되었고 글을 쓰게 되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거창한 포부나 동기 없이 문득 그렇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궁금합니다. 작가가 되기로 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뭔가를 거창하게 계획하고 진행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바리스타가 된 것과 작가가 된 것 모두 제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단지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좀 컸었죠. 작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의 존재감을 찾고 싶어서였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역사는 지나간 이야기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의도 토지분쟁은 조선 시대 시작되어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야 막을 내린 사건입니다. 하의도 사람들에게 이 일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소설보다 더 잔혹한 현실이었죠. 이 책을 통해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정명섭 저 | 은행나무
조선변호사, 약자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국가를 제소하다! 해박한 역사 지식과 유쾌한 필치로 다양한 역사추리소설과 인문서를 써온 정명섭 작가의 신작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이 출간되었다. 장장 330년 동안 이어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긴 소송이자 조선의 대표적인 농민항쟁으로 기록된 ‘하의도 토지반환소송’을 모티프로 한 이번 작품은 18세기 영조 때를 배경으로 조선 변호사 외지부(外知部)의 활약상을 그리며 흥미롭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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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정명섭, 소설, 토지분쟁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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