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것도 자격이 필요한 일인가
시집 『ㄱ』 출간 기념 시집담회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를 이야기하다
“우리 한 번 시 같이 써볼까요?”하는 한마디에 한 명, 두 명 모인 비(非)시인들의 시 모임 ‘ㄱ 의 자식들’. 그들이 모여 각자 시를 쓰게 된 이유와 시를 쓰면서 얻은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12월 21일 월요일 저녁, 시집 『ㄱ』 출간 기념 시집담회가 <도서출판 갈무리>에서 운영하는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열렸다. 시 모임 ‘ㄱ의 자식들’의 멤버 강수경, 김태일, 서윤선, 이록현, 최영식, 한민규 작가와 이성혁 문학 평론가, 표광소 시인이 함께 했다.
“우리 같이 시 써볼까요?”로 시작된 모임
“물론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은 특히나 소위 말하는 ‘스펙’과 라이선스의 시대잖아요.” 어떻게 시작된 모임인가, 하는 물음에 시 모임 ‘ㄱ 의 자식들’을 처음 만든 이록현 작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를 쓰는 것도 자격이 필요한 일인 건가…… 그러다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내가 쓰는 글도 시라는 형식의 글이 될 수 있을까? 예전에 저는 담금질 끝에 나오는 시적 언어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어느새 인가부터 제가 좋아하는 시들을 보니까 우리가 쓰고 있는 일상적인 언어를 이용했지만 그 사이사이의 틈새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지는 시들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몇 안 되는 언어들 중에서도 골라내서 시라는 글을 엮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얻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붙들어 봤어요. ‘시 써본 적 있으세요?’, ‘우리 같이 시 써볼래요?’하면서. 그렇게 해서 이 모임이 시작됐죠.”
시 모임의 이름은 왜 하필 ‘ㄱ 의 자식들’이었나. 이에 대해 이록현 작가는 “’ㄱ’이라는 게 자음의 시작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쓰고, 버리고, 또 나누는 ‘언어’라는 것을 처음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임의 이름을 ‘ㄱ 의 자식들’로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김태일 작가는 자신은 원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에는 저도 문학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는데,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대학원에서도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가 이록현 작가한테 이 모임을 제안 받아서 거의 20년 만에 글을 쓰게 됐죠. 근데 글을 다시 써보면서 정말 기분이 이상하고 낯설었어요. 우리가 보통 그 동이근, 귀를 움직이는 그 근육이 다 마비되어 있잖아요. 저도 귀를 움직이는 방법을 까먹고 있었어요. 글을 쓸 때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강수경 작가도 시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제가 시를 쓰게 된 이유는, 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이 감정에 대해서 좀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였어요. 저는 관계나 감정 이런 부분이 단순히 이해하거나, 쓰다듬어 주거나, 보듬어 준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만으로 덮어버리려고 하면 그 사람의 감정은 더 폭발한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 감정에 대해 헤쳐 주는 글을 쓰고 싶어서 이 모임에 들어왔고, 이렇게 책을 내게 되었네요.”라고 말했다.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에요. 이 모임을 제안 받을 당시 제가 음악적 고민이 많았어요.” 이어 한민규 작가도 입을 열었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 아픔이나 개인적인 치부를 대중에게 보여야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회의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음악으로는 그런 주제를 다뤄보지 않았죠. 근데 그 질문에 대해서 다시 의문이 들 때 즈음에 이 모임을 제안 받고서 나도 시를 통해서 나에게 솔직한 그런 글 한 번 써보자, 해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죠. 물론 아직 완벽히 솔직한 글은 아니지만 솔직해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아직 가족들에게도 이 책이 나온 게 비밀이에요.(웃음)”
무언가를 계속 들여다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의 즐거움
그렇다면 이렇게 시 모임을 결성해 시집까지 출간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김태일 작가는 이에 관해 즐거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처음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할 때에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70편이 넘는 시를 쓰면서 저는 이 모임을 하던 지난 4-5개월 내내 즐거웠어요. 생활의 일상적인 순간을 계속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들더라고요. 물론 시를 쓰는 과정에서 창작의 고뇌, 이런 건 있겠지만 내가 느낀 걸 표현하고, 또 표현하고 하는 게 기분 좋았어요. 아까 이록현 작가가 말했듯이 시를 쓰는데 자격이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점에서 2-3년 뒤에는 개인 시집도 내보고 싶네요.”
서윤선 작가는 “저도 문학을 짧게나마 전공을 하긴 했는데, 딱히 시라는 글을 써본 경험은 없었어요. 근데 나에게 가장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또 시라는 장르 같아서 부채의식 같은 게 있었죠. 그러다가 한민규 작가의 제안을 받고 ‘그래, 나도 한 번 써보자. 그러면 적어도 후회는 없겠다.’하는 마음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책까지 나오게 되어서 정말 인생에 있어서 큰 선물 같네요.”라고 말하며 소감을 전했다.
최영식 작가는 처음 시 모임에 들어오고서는 후회를 많이 했었다고 하며 말문을 열었다. “제가 이 모임에 들어와서 후회가 들었던 이유는, 이 모임의 멤버의 대부분이 예술가에요. 예술가는 대개 시를 굳이 쓰지 않더라도 예술적 촉수 같은 것이 있는데 저는 30여 년 간 계획서와 같은 건조한 문장만 써봤지 글을 써볼 기회는 거의 없었을 뿐 더러 삶에 계속 지쳐왔기 때문에 정말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안 나더라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얻었다고 최영식 작가는 소감을 밝혔다. “그래도 제가 좋았던 것은, 뭔가를 계속 관찰해야 된다는 것이었어요. 굳이 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느낌이 좋았죠. 이렇게 책으로 나온 것도 뿌듯하지만 제가 이 모임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함께한 시간이에요. 소통에는 여러 가지 수단이 있죠. 저희는 시를 소통의 한 가지 방법으로 쓰고자 했던 것이고요. 이렇게 각박한 세상 속에서 이웃들의 속을 들여다보고, 이웃들에게 내 것을 꺼내준 적이 있었던가…… 이런 생각을 하면 이 시간이 매우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평론가와 시인이 말하는 시집 『ㄱ』
함께 한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이 모임이 ‘시나 한 번 같이 써볼까요’하면서 모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근데 전 그게 정말 좋았어요. 시라는 게 대단한 저 위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것이에요. 아까 시에 관한 이야기는 두 시간하고 밤새도록 술 마셨다고 하시던데, (웃음) 그렇게 술이나 한 잔 할까, 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기 좋더라고요. 또 제가 책 뒤에 해설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모임의 구성원분들 모두 기존의 문학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제도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시를 써내려 갔다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또 이렇게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시집 『ㄱ』의 추천사를 쓴 표광소 시인은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시는 상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 시라는 장르가 들어온 지 꽤 지났죠.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나라 사회는 완전히 자본주의 사회가 됐잖아요? 근데 시라는 것이 사실 이런 자본주의 유통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요.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이 될 수 없는 생산물이죠. 여기 시 모임 ‘ㄱ 의 자식들’분들도 시를 써보시면서 느끼셨겠지만, 시 한 편 쓰는데 굉장히 시간이 많이 들어요. 빠르게 써내려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그 한 편에 그 시간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살아온 내력들이 나오는 거니까요. 시에는 그 사람의 삶이 들어있거든요. 근데 그렇게 해도 시장에 나오면 팔리지는 않죠. 근데 사실 시 좋잖아요, 읽어보면. 그래서 이게 어떻게 하면 존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와중에 이 원고를 접하면서 이게 시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최근에 세월호 청문회 보면서도 느낀 것이, 우리 사회는 서로 소통이 안 되고 있어요. 요즘에는 시도 그렇게 불통(不通)하면서 쓰고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런 시도는 정말 바람직하다고 느꼈죠.”
시집 『ㄱ』 출간 기념 시집담회는 시 모임 ‘ㄱ 의 자식들’의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시를 한 편씩 낭송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록현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추운 날씨에, 또 이렇게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시집담회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밝혔다.
ㄱ (기역) ㄱ의 자식들 저 | 갈무리
‘ㄱ’으로 시작되는 자음들의 자식이기도 한 언어들은 점점 뭉뚝해지거나 날카로워지고 있다. 삶의 무게로 등은 자꾸 ‘ㄱ’을 닮으려 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얼어붙거나 굳어진 언어에 군불을 지피거나 그것을 불려 왔다. 서로 만나 추천한 8편의 시를 읽고 다시 짧은 형식의 시로 그 감흥을 옮겨 보기도 하고, 각자의 자작시들을 들여다보고 벗겨 보고 서로 담아 나눠 가졌다. 시를 핑계로 만나고, 만남을 핑계로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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