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책은 사람을 만든다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다 ‘시인 최영미’
단지 잔치가 끝난 시점의 심상을 노래했을 뿐
한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문학의 진정성을 추구했다. 시인은 여고 때 문학소녀였다고 했다. 그냥 문학이 좋다고 했다. 아니 시가 좋다고 했다.
소설가 박성천이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를 통해 만난 문화예술인 7인에 대한 인터뷰 후기를 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최영미 시인의「선운사」라는 시가 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으로 시작하는 그 시를 많은 이들은 애송한다. 선운사라는 산사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기자는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가끔 선운사에 간 적이 있었다. 막막한 미래와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선운사 붉은 동백꽃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던 처연한 모습을 보며, 이 땅에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환희를 느꼈다.
최영미 시인은 여고 때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좋아하는 시를 외웠다. 그 시절에 외웠던 시들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더러 지치거나 쓸쓸할 때, 힘이 되어준다고 한다. 시는 그런 것인가 보다. 비록 당장은 밥이 되지 못해도, 돈이 되지 못해도 우리의 내면을 다독이고 위로해주는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다.
단지 잔치가 끝난 시점의 심상을 노래했을 뿐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잔치가 있기 마련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잔치란 의미 있는 매듭과도 같다. 대개의 잔치는 왁자지껄하며 즐겁기 마련이다. 그 뿐인가. 누군가는 잔치에 초대받고 누군가는 문전박대를 당한다.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는게 잔치다. 최영미 시인에게 잔치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연계된 다양한 풍경과 그 이후의 허탈함에 닿아 있다.
시를 썼을 때의 시인은 정확히 서른 세 살이었다. 서른세 살과 서른 살, 물리적으로 세 살의 차이가 나지만 삼십대 초반이라는 동일한 시간대에 존재한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십대의 환상적인 감상도, 스무살의 뜨거운 열정도 사라진 지 오래다. 사십대의 능숙한 감각도, 오십대의 관조적인 시선도 갖고 있지 않다. 육십대의 노회한 안목도 없다. 서른은 이제 세상을 향해 소리칠 수 있는 나이다. 서른은 시집가고 장가가서 아이를 낳는 나이다.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거다. 비로소 세상이 보인다. 비로소 ‘잔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시「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우리네 삶의 이면에 드리워진 허탈함을 ‘잔치’라는 상징으로 담담하게 그려냈었다. 그러나 서른 잔치가 끝났다고 슬퍼하지 말자. 서른 잔치는 끝났지만 우리 삶이 끝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마흔 잔치도 있고, 쉰 잔치도 있고, 영원한 안식 너머의 잔치도 있으니까. 깊어가는 가을 한 줄의 시가, 그 ‘투명하고 단단한 울림’이 외롭고 아픈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풍경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세상이 치이고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자연이 주는 넉넉함과 생명력에서 위로를 받곤 하지요. 예전에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인물화에 필이 꽂혔지만 지금은 자연의 아늑함, 평화로움이 더 좋아요. 저도 이제 늙어가나 봐요.”
삼십대를 ‘가혹하게’ 건너왔던 최영미 시인. 그러나 그 가혹한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그녀가 있다. 시인의 글에는 그녀 특유의 ‘진정성’이 녹아 있다. 문학을 대면하고 또 그 문학을 지향하는 결기에는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다. 아마도 ‘끝났다고 노래했던 서른 잔치’는 ‘50대에 다시 시작되는 잔치’로 화려하게, 아니 잔잔하면서도 따스한 울림으로 부상하지 않을까.
최영미 시인은 1992년『창작과비평』겨울호에「속초에서」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오십만 부 이상이 팔려가며 그 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시집이 가져온 반항은 여러모로 엄청났지만, 시집의 대중적인 성공이 시인 최영미에게 반드시 행복한 경험만은 아니었다. 2002년 미국에서 출간된 3인 시집 『Three Poets of Modern Korea』는 2004년 미국번역문학협회상의 최종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2005년 일본에서 발간된 시선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일본 문단과 독자들에게 커다란 반항을 일으켰다. 2006년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선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 산문 『화가의 우연한 시선』, 축구 에세이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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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광주일보 기자인 저자는 다양한 영역에 걸친 글쓰기를 통해 사람과 세상, 문화에 대한 지평을 넓혀가는 인문학자다. 문학 기자와 『예향』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학 관련 기사뿐 아니라 우리 시대 화제가 되는 인물 인터뷰, 다양한 문화 담론, 인문학적 주제, 학술 전반에 대해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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