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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난 상처에 응급처치법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
결국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시간이고, 그 시간을 자기 성격에 맞게 잘 버텨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증상에 따라 어떻게 해야할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살짝 열감이 있는 정도면 타이레놀을 두 알 정도 먹고 일찍 들어가서 푹 잔다.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기침에 미열이 있으면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구입하던지, 조금 심하면 동네 의원을 방문한다. 그러나, 열이 39도까지 올라가고, 숨을 쉬기가 어렵거나, 가래에서 피가 나온다면? 그때에는 지체하지 않고 큰 병원을 찾아갈 것이다. 이런 단계적 행동을 질병행동(illness behavior)라고 한다. 합리적이고 적절한 질병행동을 익히는 것은 건강관리에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적절한 질병행동을 잘 알지 못한다.
불면과 식욕부진이 동반한 우울증상이 한 달이 넘어서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 데에 집중을 하기도 어려워하는 것이 뚜렷하다. 이때 병원에 가야할지 그냥 좀 쉬면 될 문제인지, 혹은 어디가서 상담을 받아야할 것인지 결정하기가 어렵다.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을수록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한몫한다.
거기다 주변에서 “한 번 약 먹으면 못끊는다.”. “의지로 극복해야한다”라는 책임지지 못할 조언을 하는 사람까지 끼어들면 병은 깊어지고,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나는 이렇게 지내다가 너무 나빠진 다음에 병원을 찾아오거나, 망설임 속에 한 두 번만 방문하고, 채 좋아지기 전에 치료를 중단하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많이 만나왔다. 그때마다 만일 그들이 마음의 고민과 어려움이 생겼을 때 급한 불을 끄는 방법을 잘 알고 있거나, 어느 순간이 되면 병원에 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꼭 병원에까지 오지 않아도 될 일상의 일시적 어려움을 큰 문제로 오인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마치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무릎이 살짝 까진 상처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온 일과 같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도 가이드는 꼭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적절한 책이 한 권 발간되었다. 가이 윈치의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Emotional First Aid)이다. 뉴욕대학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뉴욕에서 정신치료가로 일을 하고 있는 저자는 원저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정서적 문제의 가정구급함’로 자신의 책을 목표로 삼았다. ‘작은 심리적 상처를 입었을 때 재빨리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서적 응급처치방식을 알아야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일반적인 책들에서 필요로 하는 상처들을 ‘불안, 우울, 불면, 자살’과 같이 일반적 정신병리 증상으로 잡지 않았다. 대신 ‘거부, 고독, 상실과 외상, 죄책감, 실패’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 언어를 타겟이 되는 문제점으로 잡아서 각각의 문제가 생겼을 때 생길 문제가 무엇이고, 이로 인해 생길 마음의 상처는 어떤 양태를 갖는지를 사례를 곁들여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친절하게 혼자 해결해볼 수 있게 시도할 치료법을 ABCD로 순서대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야할 때’는 언제인지, 이 문제로 시작한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서 이 정도로 심각해지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구체적인 상태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나를 믿고 따르면 어떤 병이라도 다 해결 해줄께”라고 제안하는 사이비 치료자가 아니라 ‘분명한 한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는 혼자 해낼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이 정도의 증상과 문제까지는 이 책에서 하라는 대로 한 번 해보세요’라고 알려주는 가정구급함안의 작은 매뉴얼 북의 기능에 충실하다.
가이 윈치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평가하고 해결법의 단초를 던져주는지 보면 다음과 같다.
‘거부’편을 보자. 그는 거부당하는 느낌은 마음이 칼에 베인 자상이나 긁힌 찰과상과 같은 상처라고 정의한다. 이 상처는 살아가면서 가장 흔한 것이기에 대부분 사소하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상처는 아물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두면 상처가 곪듯이 사소한 상처에도 감염이 일어나 큰 문제가 되거나 심리적 합병증이 생긴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별것도 아닌 타인,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의 거부에 많이 아프고 힘든 이유는 우리의 진화과정에 가장 큰 형벌이자 생존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바로 부족이나 사회공동체에서 배척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 마음안에 아주 예민하게 센서가 세팅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영상촬영을 해보면 거부당하는 경험과 육체적 통증을 느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같은 영역인 것이다. 거부당하면 자존감도 바닥을 치게 되는데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욕구가 아주 기본 세팅으로 뇌에 배선되어있기 때문이다.
소속감을 오랫동안 느끼지 못하면 개인을 지켜내는 자존감의 수준도 서서히 떨어져버려 위험수위까지 갈 위험이 있다. 이와 같이 거부가 아픈 이유, 심리적 상처가 심해질 가능성에 대해 설명한 이후에 ‘일반적 치료 지침’을 제시한다. 치료법A는 자신을 비판하려는 마음과 싸우는 것이다. 거부당한 이유가 자신의 문제라고 자꾸 생각하고 자신을 비판하게 되는데 이런 자아비판에 대한 ‘반론’을 만들어 보려 노력해 봐야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거부하는 것 같으면 혹시 동료들의 야심이나 경쟁심이 심해서 상사에게 잘 보이려 하기 때문인지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치료법B는 자신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으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길만한 것들을 종이에 써보고 거부당하기에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해본다. 치료법C는 적극적으로 사회적 소속감을 재충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거부를 당한 사람이 그 외의 다른 사람과 따뜻한 느낌의 대화를 하고 나면 거부에 대한 분노가 금방 줄어들 수 있었다. 거부를 하는 사람들 말고도 세상에는 널린 게 사람들이니 자기와 더 잘 맞는 사람들의 집단을 찾아가 거기에서 어울리는 것으로 거부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가족의 사진을 책상위에 두고 보는 것도 마치 일회용 반창고를 붙인 것 같은 효과가 있다.
마지막 치료법D는 둔감해지는 것이다. 혹시 거부에 대해서 지나치게 예민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거부경험을 자잘하게 반복하면서 탈감각화를 하는 것도 상처의 아픔을 줄이기 위해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거나 그 상처가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이 어렵고, 만성화되어있다면 그때는 정신건강전문가를 찾아가야한다고 저자는 정확히 지시를 한다.
이와 같은 구조로 반복해서 모두 7가지 상황에 대해서 저자는 정서적 상처에 대한 응급처치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꽤 흥미로운 개념을 제안하는 것들이 있다. 먼저 고독한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근육’이 쇠퇴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근육은 사교기술, 의사소통기술, 입장바꿔생각하는 능력, 공감능력과 같은 것인데 고독해서 사람과 연결고리가 줄어들면 근육이 그안쓰면 약해지듯 쇠퇴하고, 나중에는 고독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그 힘이 약해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근력 유지를 위해 규칙적 운동을 해야하듯이, 인간관계의 근육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지속적 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조언은 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상실과 외상을 입은 사람에게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겪은 사건을 상세하게 회상하고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저자는 외상경험이후에 사건을 털어놓지 않은 사람이 도리어 많이 표현한 사람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상이 적었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꼭 그래야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각자의 느낌대로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해서 말하고 싶은 사람은 말하고, 그러기 싫은 사람은 괜히 억지로 떠올고 뱉어낼 필요가 없으니 하지 말라고 한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시간이고, 그 시간을 자기 성격에 맞게 잘 버텨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어떤 감정적 일에 대해서 반복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멈추지를 못하는 ‘반추’의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원하지 않는 생각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고 생각만 많아지고 에너지만 낭비가 되므로 차라리 주위를 분산하는게 낫다고 말한다. 그러니 수도쿠같은 간단한 게임을 하거나 자전거 타기같이 몰입할 다른 일을 찾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간단한 처치방법이지 의지로 싸워 이기지 말라고 한다. 이런 처치법에 대해서는 나도 매우 강하게 찬성하고 실제로도 많이 적용하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이 7가지 인생에서 자주 맞닥뜨릴 심리적 상처에 대해 명료하게 평가하고, 그 상처의 정체를 볼 수 있게 도우면서 혼자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처치법을 꽤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응급구조사가 되지 않는한 사실 이 방법들을 다 외울 필요는 없다. 그보다 책장 한 구석에 꽂아두었다가 고독해지거나, 상실의 상처를 입었을 때,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을 때 마치 찬장에서 가정용구급함을 꺼내듯이 이 책을 꺼내서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한다. 마치 연고를 꺼내 상처에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듯이. 그래도 안되면? 그때는 병원을 찾아가야하듯이 역시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처가 더 깊어져서 흉터가 남기 전에 도움을 받아야할 것이다.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가이 윈치 저/임지원 역 | 문학동네 | 원제 : EMOTIONAL FIRST AID
저자는 심리학 연구의 발전된 최신 결과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입는 심리적 상처들이 실제로는 우리 삶과 마음의 건강에 있어서 얼마만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마음의 건강에 작용하는지를 설명하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완화하고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서적 응급처치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방법들은 이 책에서 소개된, 저자 자신이 십여 년 동안 진행해온 상담 사례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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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가이 윈치> 저/<임지원> 역14,220원(10% + 5%)
거부, 고독, 상실과 외상, 죄책감, 반추 사고, 실패, 낮은 자존감은 모두 우리가 살면서 흔히 겪는 정서적 상처들이다. 흔히 경험하기에 쉽게 무시되는 상처들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자신이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는 식으로 또는 그 상처들이 마음의 큰 병으로 발전할 초기 단계의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