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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KBS 드라마 <프로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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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요즘 같아서는 어떤 톱스타가 와도 잡기 힘든 시청률임은 분명하다. 마지막 방송에서 <프로듀사>는 자신의 저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프로듀사>가 선취한 성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쉽지만 뭐라 확언하기 힘들다.

전문직의 직업 정신과 성취를 다루는 드라마들은 상당하다. 조건을 더해서, 사랑스러운 로맨스까지 제대로 그려낸 드라마를 꼽아본대도 적지 않다. SBS <온에어>, <시티 홀>, <외과의사 봉달희>, MBC <뉴하트>, KBS <그들이 사는 세상>…. 그중에서도 <온에어>나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이미 방송국과 연예계 속 고뇌와 그 이면을 탁월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드라마다. KBS <프로듀사>가 방영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은 것은 그 때문이다. 이미 모범이 될 만한 선례가 여럿 존재하거니와 KBS 예능국을 배경으로 방송국 내 ‘미생’ 직장인들을 조명하겠다는 포부는 호기로웠다. 게다가 화려한 제작진?배우 라인업, 공중파 최초 금토 드라마 편성, 회당 4억에 달하는 제작비 등 <프로듀사>는 걸음마다 대중의 기대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대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12부작의 행보가 모두 끝난 지금, <프로듀사>는 무엇을 거뒀을까?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났을까?

 

 

‘프로듀사’들의 신념과 고뇌는 보이지 않고


<프로듀사>를 비롯한 많은 방송국 드라마는 어떤 신념을 기저에 둔다. 많은 시청자들은 우리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라는 확신.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를 동경하고 방송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처럼, 그들을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할 것이라고. 틀린 소리는 아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1박 2일 시즌3>을 사랑하는 만큼,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궁금증은 커진다. 기획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는지, 장소와 출연자는 어떤 기준으로 섭외하는지(왜 항상 시청자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지), 촬영과 편집은 누가 어디서 언제 하는지, 예능 작가의 업무는 무엇인지…. 방송국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가질 만한 기초적인 질문들. 아마 시청자들이 한 번쯤은 다 떠올려 보는 의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가 제시해야 할 해답이 그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해 전문직 드라마에서 그려야 할 것은 피상적인 업무 환경이 아니다. 전문가로서의 치열한 고뇌와 뜨거운 신념이다. 편집실에서 밤을 새며 돈까스를 물리도록 시켜 먹고, 편성과 시청률에 목을 매고, 탑 가수와 기 싸움을 하는 PD의 모습도 물론 흥미롭다. 하지만 상기 질문들은 보다 본질적인 의문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어떤 노력을 하는가?” 같은. 선택된 단 하나의 아이디어 이전에 버려지는 수백 개의 아이디어와, 하나의 프로그램을 위해 동원되는 기백 명의 인력, 천문학적인 수량의 돈과 시간,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그들을 지휘하는 ‘프로듀사’들의 고뇌와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예능 프로그램에 진리와 선을 논하는 것이 우습대도,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창작물에 대한 애정은 살아있어야 한다. 심지어 양념처럼 곁들인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제작 과정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예능국 8년차 <뮤직뱅크> PD 탁예진(공효진)에 대해선 독립적 에피소드가 전무한 수준이다. 예진은 승찬(김수현)과 준모(차태현) 사이에서 갈등하고, 신디(아이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지만 이것이 전부다. 안타깝게도 예능국 PD로서의 탁예진은 단편적 에피소드에서만 드러날 뿐,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서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디, 유나와 관련된 시퀀스에서 드러나듯 라준모라는 캐릭터는 속 깊고 다정한 사람이다. 변 대표(나영희)와 맞서는 유나를 위해 애를 써 주고, 신디가 유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제 프로그램을 걸고 나서기도 한다.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던 11회 신디의 오열은 라준모라는 캐릭터가 있기에 가능했던 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PD 라준모는 초반 방통위 출석이나 편집실 장면에서만 보일 뿐, 이후 PD로서 그의 역할은 대부분 거세돼 있다. 드라마는 준모가 시청률 표에 일희일비하고 자막 실수에 고개를 숙이는 장면으로 이를 갈음하려 하지만, 드문드문 이어지는 장면들로 PD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엔 다소 부족하다. 드라마 속 두 8년차 예능 PD는 시종 직업적 소양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고, ‘프로듀사’들의 치열한 삶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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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KBS

 

 

방송국 연애담도 좋아, 그런데


만일 <프로듀사>가 처음부터 방송국 내 연애담을 궁극적 지향점으로 뒀다면 그것도 좋다. 혹자는 어디가 배경이든 결국 모든 이야기가 로맨스로 귀결되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라고 말하지만, 모든 드라마가 MBC <골든 타임>, 혹은 tvN <미생>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가볍고 발랄하게 로맨스를 그려 내는 드라마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MBC <내조의 여왕>,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증명했듯 박지은 작가의 특기 역시 명랑하고 톡톡 튀는 로맨틱 코미디다. <프로듀사>에서 기대한 로맨스도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12부작의 짧은 리듬 속에 박지은 작가의 독특하고 생기 넘치는 에피소드 역시 힘을 잃는다는 점이다. 기존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 캐릭터들은 각각 서사와 개성을 갖춘 입체적 인물이었다. 동인은 단순하고 행동은 뚜렷하기에 주어진 역경 아래서도 선택과 성장을 거듭해나가는 그런 캐릭터들. 한 가지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나아가므로 다양한 에피소드는 인물을 설명하는 양념이 되었고, 독특한 설정에도 주인공은 묻히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듀사>에 이르면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다소 숨이 죽는다. 승찬과 준모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예진에게 마음을 쏟게 되었는지, 예진은 단 한 번도 승찬에게 흔들린 적이 없는지, 승찬이 신디에게 인간적 동정심 이상의 감정은 없었는지 설명하지 않고 드라마는 앞으로 나아간다. 준모와 예진이 10년 간 쌓아온 우정과 사랑 사이의 미묘한 다리는 내레이션 몇 마디로 대치되며, 승찬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인물 사이 평면적 갈등 구조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둘러 가라앉는다. 로맨스를 끌고 가기 위해 충분히 사랑스러울 수 있었을 예진은 황당하도록 눈치가 없는 여자가 되고 준모는 갑자기 승찬에게 날을 세운다. 아깝기 그지없다, 공효진과 차태현이 다채로운 로맨스에 탁월한 배우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하무인이지만 내면에 상처를 품은 신디가 스스로의 결핍을 인정하고 보다 넉넉한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 외에는 분명한 구성이 없다. 물론 신디와 변 대표를 중심으로 불공평 계약과 회사와 연예인 사이 알력, 비정한 연예계 현실에 대해 지적한 에피소드는 좋았다. 신디가 호도된 진실 앞에 대중의 뭇매를 맞고, 어느새 진정한 친구가 된 사람들로 인해 고난을 이겨내는 장면도. 하지만 그 외의 서사는 부족하거니와, 다른 캐릭터들이 짧은 에피소드로 소모되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발랄한 연애담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애매한 감정선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어떤 로맨스도 분명한 동인이 되지 못하는 데에 한숨을 내쉰다.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 여러 명의 주인공이 모호하게 얽히는 설정은 많은 드라마에서 주요 갈등 구조로 차용된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소위 말하는 멀티 메인 캐스트의 매력을 제대로 드러냈기에. 다만 이런 중첩 구조가 매력적인 것은 입체적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자신의 서사와 개성을 쌓아간 캐릭터들을 기저에 뒀기에 드라마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단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변전(變轉)만이 매력은 아니라는 것을, <프로듀사>는 조용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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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


<프로듀사>는 시작부터 예능형 드라마임을 표방했다. <개그콘서트>, <1박 2일>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했던 서수민 PD가 기획했고, 표민수 PD와 박지은 작가가 힘을 보탰다. 연작 드라마라고는 시트콤이 전부였던 공중파 예능국에 새로운 형태의 예능형 드라마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셈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등의 예능형 드라마가 거둔 성공에 자극을 받았으리라.


17.7%, 요즘 같아서는 어떤 톱스타가 와도 잡기 힘든 시청률임은 분명하다. 마지막 방송에서 <프로듀사>는 자신의 저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프로듀사>가 선취한 성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쉽지만 뭐라 확언하기 힘들다. 드라마는 신드롬이라 말하기에도, 웰메이드라 말하기에도 불충분한 온도로 끓어올랐고 방영 내내 애매한 평가가 따라붙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와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KBS의 대규모 공세가 있었지만, KBS의 야심작이 거둔 성과는 17.7%의 최고시청률과 배우들의 열연뿐인 듯하다. <온에어>와, <시티홀>과, <미생>과, 그리고 무수한 선례와 차별되는 <프로듀사>만의 특장점은 드러나지 않기에. 수없이 많은 본보기를 두고도 <프로듀사>가 결국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것은 아닌가, 끝까지 한 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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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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