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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글을 쓴다는 건 굉장히 강력한 의미”

산문집 『말하다』출간 기념 김영하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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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젊은이들에게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 자신이 되라는 말도, 행복하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삶은 행복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친구 없이 지내는 일에 대해 말하고, 외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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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다 아실 겁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텔레비전에 나오면 뭐가 좋을까요? 유명해지겠죠.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텔레비전에는 우리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중략)슬슬 화가 납니다. 연기가 저게 뭐냐, 발연기다, 노래도 못하는 게 무슨 가수냐, 댄스가 아니라 에어로빅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채널을 돌립니다. 우리 마음속의 시기심은 우리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마음 저 깊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74쪽)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모두 한 작가, 소설가 김영하가 수상한 국내 문학상 목록이다. 하지만 이 목록만으로 작가를 설명할 수는 없을 터. 김영하는 그야말로 ‘핫’한 작가다. 『검은 꽃』,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며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작가는 강연과 인터뷰, TV 출연, 팟캐스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그의 말에 젊은이들이 귀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젊은이들에게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 자신이 되라는 말도, 행복하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삶은 행복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친구 없이 지내는 일에 대해 말하고, 외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말한다.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젊은이들이 알았을지 모르겠다.


그간 해온 강연과 인터뷰를 모은 산문집 『말하다』의 출간을 기념한 북토크가 지난 3월 23일 홍대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200여 명의 독자가 자리를 가득 채우고 그의 말 한 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미리 받은 질문지를 하나씩 뽑아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북토크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힘과 자존심, 글쓰기와 윤리를 지키는 일 등에 대해 말했다. 작가는 “작가가 말을 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경청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각별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좋은 것을 주셨어요.”라고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날 북토크는 김민정 시인의 사회로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되었다.

 

책은 한 마디로 ‘이런 짓궂은 코멘트’


김민정:하루 종일 책을 읽죠.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요. 사회적인 접촉면은 아주 최소화 되어 있습니다. 웬만하면 집 밖에 나가지 않아요.’라는 대목이 무척 부러웠어요. 이번 책을 유심히 보면서 작가는 스스로 잘 알고 있구나 생각한 대목이 있었어요. ‘아이들은 어쨌든 제 얘기를 듣는 걸 좋아했어요. 저의 모든 걸 좋아한 것은 아니거든요.’ 이런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책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산문집이라는 기획이 독특한데 이 산문집 3부작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김영하: 산문집을 오래 안 내고 있었어요. 내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어요. 어떻게 분류할 것이냐가 문제였어요. 원고는 여기 저기 많이 쌓여 있었고요. 처음에 출판사에서 썼던 제목은 ‘영하의 날씨’였어요. 디자인까지 다 뽑았는데 뽑아서 보니 제목이 ‘영하의 일기’로 왔더라고요. 그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 폐기하고 『보다』로 해서, 영화나 세상에 대해 쓴 것을 묶고, 『말하다』, ‘읽다’로 하자고 했죠. 제목이 너무 심심하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있었어요.

 

김민정: 책을 단숨에 읽었어요. 읽으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잘 읽히는데요. 이건 다 읽었는데 찜찜한 거예요. 읽고 다시 봤는데 또 새롭고, 또 새로워요. 어쩜 이렇게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나요?

 

김영하: 말을 한 것 중에 쓸 만한 말을 추리고, 추려서 담은 거예요. 정리하면서 봤더니 쓸데없는 소리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특히 10여 년 전에 했던 말들은 굉장히 치기 어리고 부끄러운 말도 많아서 다 빼고 쓸 만한 말이 남아 이렇게 된 거예요.

 

김민정: 이 책을 작가의 말로 설명하자면 ‘이런 짓궂은 코멘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짓궂은 건 나쁜 게 아니잖아요? ‘짓궂다’는 표현이 작가와 잘 어울리고, ‘코멘트’가 나에게 참 필요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좋은 소설은 밑줄 한 번도 안 긋고 다 읽은 후에 남겨두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죄송하게 저는 이 책에 밑줄을 너무 많이 그었어요. 제가 요즘 많이 힘든가, 생각했죠(웃음).


제가 2008년에 한 여성지에 연재하던 중에 작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잊고 있다가 원고를 찾았더니 제목이 ‘참으로 재미 좋고, 재미 좋아하는 영하 씨’더라고요. 이 책에 없는 부분이 있어서 그것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문학동네를 택한 것은 책 디자인이 예뻐서였어요. 물론 참신한 글도 많았고, 무엇보다 1회였고. 저 1회 이런 것 좋아하거든요. 비주얼적인 것을 꽤 챙기는 편이어서 문학동네 작가상에 투고할 때도 소설 앞에 삽화로 쓴 마라의 죽음을 인쇄해 붙여 보냈죠. 재미있잖아요. 일찌감치 당선이 될 거라고도 확신했었어요. 그만큼 문학판을 모르기도 했고, 또 그만큼 자신감으로 충만하기도 했고요.”

 

문학동네를 좋아하셨나봐요?

 

김영하: 문학동네 20주년 됐을 때 계간지에도 짧게 산문을 썼었는데요. 이 얘기를 길게 한 것이죠. 그때는 문청이고 아무것도 모를 때여서 어떤 계간지에 넣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서점에 가서 보니까 문학동네가 굉장히 현대적인 폰트를 갖고 있었고, 갓 창간된 잡지여서 허술하리라 생각했고요. 혹시 그런 예술가 지망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허술한 데를 노리셔야 돼요.(웃음) 허술한 데 들어가서 장악하는 게 중요해요. 유명한 데 들어가서 화려하게 하고 싶으시겠지만 그런 방법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그렇게 보여서 원고를 보냈던 것이고요. 보통 투고 하고 초조하게 한 달 기다리고 그렇잖아요. 그때 4일도 안 돼서 전화가 왔어요. 역시 허술하구나(웃음) 했죠. 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불안한 거 있잖아요. 그렇게 가서 보니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굉장히 자신감도 있고 그랬죠. 스물여덟, 스물일곱 이때니까요.

 

김민정: 이번 책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김영하란 작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조금 캐치해 볼 대목이라 읽어드린 것이기도 해요. 저와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독자 분들이 미리 보내주신 질문지를 뽑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혼자 있을 때 내적 에너지가 쌓인다


온갖 미디어에서, SNS에서 쏟아내는 활자와 이미지들에 피로감이 커지기도 합니다. 누구나 글을 쓰고 말을 하며 표현하는 이런 시대에 좋은 글이 가지는 힘은 무엇일까요?

 

김민정: 질문이 어렵네요. 저는 질문을 읽는 것도 어려운데요.(웃음) 힘드시겠어요.

 

김영하: 이걸로 강연을 하면 되겠는데요.(웃음) 전 세계 작가들이 접속을 끊는 문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잖아요. 작업을 할 때 깊이 내려가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깊이 내려가려고 하면 톡이 오죠.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와서 일상인처럼 행동해야 하잖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사실 자기 내면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끔찍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어두운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를 하다 갑자기 수면 위로 확 올라온다는 게 힘들어요. 이렇듯 접속을 끊는 방법에 대해서 전 세계 작가들이 상당히 많은 글을 썼더라고요. 저 역시 그런 고민을 하죠.

 

누구나 글을 쓰고, SNS에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하는 것들이 꼭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순수하게 언어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어의 가능성이 굉장히 넓어지고 있는 시대라고도 생각해요. 굉장히 다양한 말들이 빨리 만들어지고, 없어지고, 생기고 그렇잖아요? 언어실험들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보죠. 그러나 우리가 고독한 순간에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물론 그런 사람이 많을 필요는 없지만 몇 명만이라도 아주 깊이 내려가서 어두운 세계 같은 곳에 내려갔다 올라와야 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작업할 때 이런 걸 차단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내려가서 가져온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있으니까요.


아무도 가지 않는 산에 굳이 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간다는 것 자체로 인간의 가능성들을 넓혀주는 거예요. 시인들이 새로운 언어를 탐험하고 그 언어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면 인간이 저런 언어를 쓸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인간의 존엄을 느끼잖아요. 그런 것처럼 소설가들은 상상의 세계로 깊이 내려가는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하죠. 그 사람들이 그런 데서 캐온 세계와 상상력들이 사람들에게 다른 어떤 정신적인 세계가 있다, 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고 할까요? 저도 한 사람의 독자로 다른 작가들이 쓴 소설을 볼 때, 어떤 대목에서는 굉장히 깊이 들어가고 있구나, 이때 뭐 맞았구나, 이런 생각 할 때가 있어요. 그런 대목을 좋아해요.

 

최근 그 좋아하던 책을 읽어도, 좋아하던 영화를 봐도, 다른 어떤 무엇을 해도 즐거움이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작가님은 이런 무력감과 무의미를 어떻게 이겨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영하: 굉장히 진지한 질문들이 많은데요. 만약에 임상심리 같은 것을 하시는 분이 이 문장을 봤다면 ‘우울증’이라고 하겠네요.(웃음) 저는 아침에 눈을 뜰 때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눈을 떠요. 특징이 있다면 밖으로 뛰쳐나가진 않죠. 집에서 굉장히 바빠요. 한 번은 집에서 하는 행동을 적어본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집에 있다고 하면 뒹굴 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평균적으로 한 40가지의 활동을 하더라고요. 글을 쓸 때도 있고, 책을 보다가, 주문을 하기도 하고, 책을 사기도 하고, 이메일 보내기도 하고, 쿠키 같은 걸 굽기도 하고(웃음),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요. 책도 여러 권을 동시에 보고 그럴 때가 많아요. 여행 계획도 세웠다가요.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 가는 거죠. 그렇게 살고 있어서 무기력하진 않지만 이런 시기가 없었던 건 아니죠. 제가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해졌나 생각해보면, 사람을 만나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김민정: 제가 이번 책에서 그 부분에 무척 공감했던 게 뭐냐면, 결혼식, 돌잔치 너무 많잖아요. 안 가자니 미안하고, 찝찝하고요. 그런 것에 시달리거든요. 친구 없이 사는 걸 상상 안 해봤는데, 친구 없이 사시잖아요?(웃음) 저는 긍정적으로 보이는데 부정적인 사람이고, 작가는 바닥을 얘기하는데 희망적인 결론을 유도하는 거죠. 사람들은 그렇게 반반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영하: 그렇죠. 사람을 안 만나고 혼자 주로 있으면 내적 에너지 같은 게 쌓인다고 생각해요. 내적인 에너지가 쌓여야 뭘 할 힘이 생기죠. 글도 써보고 싶고, 요리 같은 것도 해보고 싶고, 혼자 산책도 하고 싶고요. 사람을 많이 만나다보면 혼자 있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잖아요. 신인 때 매일 어학당에서 일주일에 5일 동안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어요. 네 시간 동안 말을 하는 거예요. 그것도 바보 같은 말을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삼계탕을 드실까요?’(웃음) 이런 말을 해야 해요. 어쨌든 저는 꽤 고급한 언어를 쓰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부터 해서 언어 사용에 낙차가 너무 큰 거예요. 그렇게 하고 오면 너무 피곤해서 말이고 뭐고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었고, 내적 에너지가 없으니 멍하니 TV를 보거나 했었죠. 이 분도 어떤 일을 겪고 계신지 잘 모르겠지만 내적인 힘을 회복하는 방법을 한 번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혼자 계시는 시간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는 않죠.

 

김민정: 저는 작가가 해준 말 한마디가 더 좋을 것 같아요. ‘잘 안 될 거예요.’힐링캠프에 나오셨을 때 그 말을 듣고 이런 말이 어째서 나에게 안심과 위안을 주는지 정말 묘한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누가 잘 안 될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게 오히려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김영하: 어렸을 때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갖도록 교육 받았잖아요. 너는 남다른 아이가 될 거야, 성공할 거야, 잘 될 거야, 좋아하는 일이 뭔지 생각해봐, 이런 교육을 받았어요. 모두가 크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근대 이전에는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해 기대를 갖지 않았거든요. 갖는다면 반역자가 되는 거였죠. 아버지도 농사꾼이고, 나도 농사를 짓겠지 그런 거잖아요. 돈 벌면 뭐하겠노, 소고기 사먹겠지, 이렇게 살았는데요.(웃음) 서태지는 굉장히 혁명적이긴 했지만 그 이후에 다들 압박을 받았잖아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는 식의 메시지들이요.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부담이잖아요. 자기를 너무 크게 생각하면 우울도 더 깊은 것 같아요. 가끔은 잘 안 된다는 세계관도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김민정: 책에서도 비관적 현실주의자를 말씀하셨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비관은 나쁜 것이고, 현실은 또 너무 정 없어 보이는 것이고요. 사실은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해주는 힘인데 그런 생각을 갖지 않고 자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질문의 많은 답은 또 책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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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는 근본적인 힘이 있어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독서를 즐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독서 시간에 저도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재미있는 책을 읽어줘도 책을 따분해하는 학생이 많아서 고민이 많아요. 작가님이 만약 초등학생에게 독서교육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실지 궁금해요.

 

김영하: 저는 어렸을 때 자발적으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글쎄요. 선생님이 읽으라는 책은 늘 읽기 싫었던 것 같아요.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분은 일본의 책 오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 오덕이 결혼하는 법이라는 챕터가 있는데, 결혼할 때는 함께 책을 사랑할 수 있는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걸 명시해놓으셨어요. 필요한 책은 다 사야한다는 주의고요. 이분의 글 중에 재미있었던 게, 왜 아이의 공부방은 마련해주면서 아버지의 서재를 만들지 않는가 하는 거였어요. 아이의 공부방은 만들 필요가 없고, 일단 방이 하나 더 생기면 아버지의 서재를 만들어야 한대요. 아이는 그 밑에 앉은뱅이책상을 두고 공부하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는 아버지의 세계를 선망하게 되어 있다면서 ‘아, 내가 어른이 되면 저렇게 내 마음대로 책을 많이 살 수 있구나, 저 책을 다 내 마음대로 읽을 수 있구나’ 하게 된다는 거죠. 와타나베 쇼이치는 출타할 때 자기 방문을 잠갔대요. 아이는 아버지의 금지된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서, 내가 빨리 성장해서 나도 서재를 만들거야, 나도 커서 저 책을 다 읽을거야, 한다는 거예요. 혹시라도 아버지가 실수로 문을 잠그면 들어가서 몰래 책을 읽는 거죠.


저는 많은 분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힐 방법을 생각하지만, 아이들이라는 건 천성적으로 에너지가 넘치고 자기만의 세계를 스스로 찾으려는 성향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하면 아이들은 분명 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것을 보여주고, 어느 정도는 아이를 책으로부터 금지시키면 어떨까요. 공부방을 만들어주면 아이는 거기 틀어박혀서 가족과 담을 쌓잖아요. 그렇게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거보다는 아이가 정말로 자기가 좋아해서 책을 읽도록 하고, 아이가 물어보면 ‘너는 몰라도 돼’하면서(웃음) 여기에는 네가 모르는 어떤 굉장히 재미있는 세계가 있어, 하는 거죠.

 

김민정: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도 될까요?(웃음)

 

김영하: 저는 이 분에게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강제로 읽히지는 말라고요. 계속 권장한다, 읽어라, 독후감 내라, 이러면 멀어질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금지하는 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비관주의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비관주의가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낙관주의에 대해서 얘기하면 모두가 긍정의 힘을 갖게 된다고 믿는 사람이 세계에는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사회자나 저나 문학하는 사람들은 그 반대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어둡고 침울한 얘기를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믿는 것이고, 반대로 굉장히 웃긴 얘기를 해도 사람들이 거기서 어떤 슬픔이나 비극 같은 것들을 발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죠. 책은 그런 것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문학 서적에는 많은 아이러니와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것들이 있잖아요. 어린이 책이라고 해서 밝고 명랑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아이들이 그걸 읽으면서 자기 내면에 있는 두려움들이라든가 세상에 대한 공포 같은 걸 이겨낸단 말이죠. 선생님들이나 부모들이 아이에게 이 책이 좋을 거라고 어떤 예측을 할 때 그 예측이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겸허한 마음으로 아이를 책으로부터 금지시키면(웃음)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갈 거예요. 제 경험으로 보면 어렸을 때 읽지 말아야 한다는 책들 있잖아요, 성인물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런 것이 읽으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아이가 읽지 말아야 하는 책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일 만큼 받아들이겠죠.

 

김민정: 질문 하신 분에게 답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김영하: 독서교육이라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다니엘 페낙이라고 프랑스 소설가가 있는데요. 그 양반이 한 실험이 하나 있어요.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실업계 고등학교 정도 될 거예요. 정말 책을 읽지 않는 학생들이 있는 반에 들어가서 독서교육을 하게 된 건데요. 다니엘 페낙은 그냥 가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아이들이 떠들든 말든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대요. 한 여자가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아이를 낳죠. 그 장면을 읽어주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하며 있어요. 그래도 주구장창 읽은 거예요. ‘다니엘 페낙의 책 읽는 시간’이죠.(웃음) 계속 읽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걸 듣더래요.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다음 이야기를 묻고요.

김민정: 이게 답이 될 수도 있겠어요.

 

김영하: 한국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교육을 포기한 선생이다, 하겠죠. 똑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다니엘 페낙이 어떤 영감을 준다면, 제가 팟캐스트 ‘책 읽는 시간’을 처음 만들 때 사람들이 책만 읽어서 될까, 초대손님도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로 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주구장창 책만 읽잖아요? 그래도 사람들이 그냥 들으세요. 저는 이야기가 가진 근본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독서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데 어떻게든 꾀어서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을까 생각하실 게 아니라 그냥 좋은 이야기를 권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있다면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에 빨려들 거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가진 상상력 있잖아요. 그걸 발휘하게만 해주면 될 것 같아요.

 

당연히 누려야 마땅한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행사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도 자신을 지키기 힘들 때가 있는지 그럴 땐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영하: 요새는 진짜 야만적이잖아요. 공격적이고요. 오찬호 선생님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을 보면, 우리 모두가 굉장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자기보다 약자를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저는 뭐 사람들이 전부 악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요. 얼마 전에 신문 칼럼을 보다가 놀라운 통찰을 하나 봤어요. 예전 <대학가요제>라는 것은 1등, 2등, 3등 뽑으면 끝났어요. 승자를 뽑는 게임이었던 거죠. 최근의 오디션은 매주 ‘패자’만 뽑잖아요. 떨어질 사람만 가려내요. 승자는 말하자면 패하지 않은 사람, 끝까지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 승자라는 거죠. 모든 분야에 그렇구나 생각했어요.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사는 삶이에요. 루저가 된다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나만 아니면 되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농담이 있는데요. 어떤 남자 둘이 산에서 곰을 마주친 거예요. 한 명이 갑자기 자기 신발끈을 단단하게 묶어요. 옆에 있는 친구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곰보다 빠를 수는 없어’ 라니까 ‘너보다만 빠르면 돼.’(웃음) 해요. 지금 그런 자세로 우리가 살고 있잖아요. 내 경쟁자보다만 빠르면 적어도 패자는 안 되잖아요. 이런 세상에서는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를 얘기하는 것조차 사치예요. 권리를 얘기하면 ‘너부터 빠져’ 이렇게 되니까 모멸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참는 거죠. 패자가 된다는 건 끔찍하니까요.


박완서 선생님이 예전에 쓴 글이 생각나는데요. 박완서 선생님은 여성이었고, 옛날에는 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대우가 지금 같지 않았고, 여성 작가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죠. 6.25때부터 사셨으니까 모멸을 당한 적이 많으셨는데요. 그 분은 모멸을 당할 때마다 글을 써서 복수하리라, 이런 마음으로 사셨대요. 내가 너희들의 비천한 모습, 저열한 모습을 소설 속에 쓰리라, 이런 마음으로 모멸을 견디셨대요. 박완서 선생님 살아계셨을 때 저도 몇 번 뵈면 굉장히 온화하고 이런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에 독기가 있었던 거죠. 물론 그 분 소설을 보면 그런 복수를 발산한 것 같진 않아요. 유명한 평론가가 한 말도 있지만 복수의 목적으로 쓴 어떤 소설도 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소설이 후져지는 거죠. 그저 소설을 쓰는 동안 그 사람을 용서하게 되고, 극복하게 되고, 그 위에 올라서게 되는 거잖아요. 내가 소설의 한 인물로 나를 괴롭히고 멸시했던 인간의 저열한 모습을 쓴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만족감을 주거든요. 문청 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굉장히 황당한 일을 당해도 인물형으로 보고 연구하는 경우가 있어요. 나중에 너를 꼭 쓰리라.(웃음) 하지만 쓰는 일은 거의 없죠. 저 같은 사람이나 박완서 선생님 같은 분이 하시는 방법인데, 글쎄요 어떻게 자기를 지킬까요? 답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김민정: 저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를 쓸 때가 있잖아요. 저는 똑똑하지 못해서 그냥 욕을 해버리고 할 때가 많았는데, 미학적으로 아름답지가 않았네요.(웃음)

 

김영하: 살다보면 상처도 많이 받고 그러잖아요. 저는 20대나 30대에는 분노를 잘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거든요. 화도 많이 내고요. 요새는 화를 많이 안 내게 되는데, 소설 쓰면서 많이 유해졌어요. 소설을 쓴다는 건 사람을 이해하는 거잖아요. 옛날엔 나보다 강한데 힘인 약한 나를 짓밟고 공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굉장히 화가 났던 건데요. 이제는 다들 불쌍한 것 같아요. 자기도 견딜 수 없는 어떤 스트레스가 있으니까 저러겠지, 생각하고요. 그 사람을 소설 등장인물 중 하나로 생각하면 그 사람 심리에 대한 문장이 떠올라요. ‘그는 자기 안에 차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웃음) 이렇게 문장을 만들어보면 별 것 아닌 거예요. 그냥 몇 문장짜리 인간인 거죠. 크게 매력적이지도 않은 인간이다 생각하면요. 소설 쓰면서 많이 유해졌어요.

 

김민정: 화로부터 나를 지키는 수단이 글이었다는 게 되는 거군요.

 

김영하: 그렇죠. 글을 쓴다는 건 굉장히 강력한 의미잖아요. 자기가 했던 일과 자기감정을 서술하는 순간부터 그 감정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거죠. 억누르는 게 아니고 올라서는 거죠. 차분하게 무엇을 문장으로 논리적으로 쓰는 순간부터 위에서 내려다보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고요. 자기에게 인간 이하의 짓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저는 써보라고 하고요. 한예종에서 강의할 때도 학생들에게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하는 글 써보라고 했어요. 쓰다가 울고 그래요. 화가 나서 뛰쳐나가고, ‘용서 못해!’라고 쓰고요.(웃음) 그런데 어쨌든 쓰고 나면 그 사건을 훨씬 객관적으로 보게 돼서 학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걸 봤는데요. 글에 굉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김민정: 그런 의미로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라고 한 게, 사실 첫 문장 쓰면 다 쓴 거라고 그런 얘기하잖아요. 첫 문장 쓰기가 힘들어서 책상 주변을 뱅뱅 돌기도 하고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가요?

 

김영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잖아요. 문인들은 ‘시작할 때까지 시작한 게 아니다’(웃음)예요. 시작을 해야 그 글을 쓰는 거예요. 첫 문장이 바로 그 시작이죠. 상상 많이 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구상은 죽여도 첫 문장을 쓰지 않는 한 그건 허망한 뜬구름이죠.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한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두 권, 세 권의 소설을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지만 한 권의 소설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안에 내장되어 있는 내러티브가 있잖아요. 옛날에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시켜본 경험이 있는데요. 누구나 한 번 정도는 토해낼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김민정: 얘기를 돌려 말하면 우리 누구나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김영하: 이건 좀 어려운 얘기지만 어찌 말하면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지 않아서 글을 안 쓸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지키고 투쟁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일단 그 과제를 제쳐놓고 세상이 자동적으로 자신에게 회의적이 되기를 기다리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안 쓰는 건데 그건 다른 문제죠.

 

고개를 똑바로 쳐들어라


작가님의 오랜 팬이자 행정학과 대학원생입니다. 문학이 아닌 정책, 사회제도에 관한 논문을 쓸 때 작가님의 글들처럼 사회에 보다 힘 있고 흡인력 있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유념해야 하는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김영하: 행정학과 논문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 저에게 질문을 하셨네요.(웃음) 글쎄요. 논문을 쓰긴 썼어요. 석사를 했으니까요. 그때는 석사장교라는 게 있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합격하기만 하면 군대생활이 6개월 만에 끝나는 좋은 제도가 있어서 들어갔어요. 제가 들어가자마자 없어졌지만요.(웃음) 제가 썼던 논문은 ‘언론 기업의 비정규 노동’이라는 눈문이었어요. 거의 소설 같아요. 논문이 가져야 할 엄정성 이런 건 없고요. 지금은 신문을 컴퓨터로 조판하지만 예전에는 기자가 원고지에 기사를 쓰면 교열하는 분들이 활자를 짜서 찍으면 신문이 나오는 구조였어요. 이분들은 평생 이것만 해온 분들이고 신문의 판이라는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 지식노동자예요. 굉장히 지식인들인데 하는 일은 노동이죠. 이분들이 90년대 초반부터 잘리기 시작했어요. 컴퓨터로 대체되니까요. 엄청난 숙련 노동자가 직장을 잃은 거죠. 이분들을 인터뷰 했어요. 심층 면접한 내용으로 논문을 쓴 거예요. 그 당시 비정규 노동이라는 것은 아예 없던 말이었어요. 공식적으로 학술 논문에 비정규 노동이라는 말이 처음 들어간 논문이 제 석사 논문이에요.

 

김민정: 국회도서관 가서 찾으면 있어요?

 

김영하: . 하지만 찾지는 마세요.(웃음) 볼만한 논문은 아니고요. 제가 지도교수에게 초고를 제출했더니 그분이 돌려 말하기를 ‘너무 저널리스틱하다’고 얘기했어요. 굉장히 자극적이라는 거죠. 흡인력은 있었어요. 그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이 있으니까 잘 읽히는 논문이었죠. 그래서 그 선생님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예요. 제가 조교였는데 저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늘 개기고, 늘 말 안 듣고 했으니까요. 하루는 교수님이 ‘영하는 요새 얼굴을 통 볼 수가 없네’ 그러셔서 제가 ‘선생님은 월수금에 나오시죠? 저는 화목토에 나와요(웃음).’라고 대꾸했어요. 저는 연구실만 필요했던 거지 지도가 필요 없었어요. 신임 교수셨는데 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르셨죠. 갓 미국에서 박사 받고 오신 젊은 분인데 태연하게 저는 화목토만 나와요, 그랬더니 그렇구나 하시고 저를 졸업시켜 버리셨어요. 논문 첨삭 같은 것도 안 하시고, 영하가 논문을 다 썼네, 얼른 졸업해야지,(웃음) 하고 졸업을 시켜주셨어요.


저는 왕따를 당하거나 그럴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어요. 군대에 있을 때 제 위에 고참과 싸웠더니 어느 날부터 밑에 있는 부하들이 아무도 인사를 안 하더라고요. 고참이 김영하한테는 인사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헌병대에서 군화 닦는 문제로 그랬어요. 구두를 아침, 저녁으로 닦으라고 해서 제가 아침밖에 못 닦겠다, 그랬더니 저 놈한테 인사하지 마, 이렇게 돼서 저를 유령 취급했죠. 저는 좋았어요. 군대에서 혼자 있을 수 있잖아요.(웃음) 아무도 저한테 인사도 안 하고 아는 척도 안 하고, 좋더라고요. 결국 고참 제대하고 다시 정상적인 질서가 돌아왔죠. 저는 친구 없거나 따돌림을 당해도 잘 모르고요, 알게 된다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성격이에요.

 

김민정: 작가에게 교육 받고 싶네요. 우리 대부분 이런 얘기를 안 듣잖아요. 사람들과 잘 지내라고 하죠. 부모님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부모님의 특별한 교육이 있었나요?

 

김영하: 초등학교 때 여섯 번을 전학 다녔어요. 매번 다른 초등학교를 여섯 번 다녔어요.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했으니 나를 아는 사람이 잘 없는 곳에 가거나 친구가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있어도 그게 이상하지 않아요. 문학판에 처음 왔을 때도 여기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경영학과 나왔으니까 선배도 없고요. 물어볼 사람도 없었는데 그냥 괜찮았어요. 그런 것은 강해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사회고, 또 사회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장단을 맞춰야 하는데 그 기준을 작가님은 어떻게 정하고 있나요? 그리고 상대에게 거절의 의사를 어떻게 전달하나요?

 

김영하: 사회생활 전문가는 아니고요.(웃음) 제가 한예종 선생이었을 때 제가 막내니까 창이 없는 방을 줬어요. 창고로 쓰던 방을 줘서 처음에는 뭐야 이런 먹방을 주고, 했지만 곧 적응해서 어두운 방에 스탠드 하나 켜놓고 있었어요. 창이 없으니까 나름대로 동굴에 들어있는 것 같고 좋은 느낌이었어요. 석관동이 밥 먹을 데가 없어요. 식당에 동료 교수들과 나가서 밥 먹는 게 사실, 할 얘기도 없잖아요. 그래서 도시락을 싸갖고 다녔어요. 그 방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정말 마음이 편한 거예요.

 

김민정: 처음에는 같이 먹자고 다른 교수들이 제안했을 텐데요?

 

김영하: 도시락 싸왔다고 몇 번 그러니까, 쟤는 자폐다, 했겠죠.(웃음) 모두 연극원 선생님들이었고, 연극하는 사람들은 문학하는 사람들과 완전히 달라요. 연극은 협업이잖아요. 처음에 연극원에 갔는데 개강총회를 한대요. 갔더니 의자를 넓게 펼쳐놓고 학생 전원이 모여서 이번 학기에는 어떤 공연을 한다는 내용을 다 발표하고 인사하고 이래요.

더 놀라운 건 끝나고 ‘이것으로 총회를 마칩니다’ 했더니 모두 일어나서 의자를 싹 정리하는데 2, 3분도 안 걸렸어요. 문학계에서는 ‘끝났습니다’ 하면 일어나지도 않고 앉아서 계속 지방방송 같은 게 나오다가 의자를 정리하라고 하면 ‘의자라는 것은 꼭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다면 그것은 나여야 할까’(웃음)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안 된 채로 나가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연극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조직적으로 일하고, 술 마셨다 하면 밤새 먹고, 일사분란해요. 문학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으니까 혼자 밥 먹고 몰래 퇴근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사회생활을 잘 모르는데요. 그런 말씀은 드리고 싶어요. 저도 거절이 힘들지만 많이 하죠. 거절할 때는 최대한 담백하게 ‘안 됩니다’라고 해요. 얼마 전에 서점에서 한 여성 독자께서 ‘포옹해도 돼요?’라고 하기에 ‘안 됩니다’(웃음) 했죠. 상처 안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길게 끌면서 거절하면 더 이상해요. 가끔 저한테 인터넷이나 이메일 이런 것으로 자신의 소설을 읽어봐 달라는 요청들이 와요. 최대한 담백하게 ‘그런 건 안 합니다’해요. 그런 걸 자기 캐릭터로 만들어 가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우리나라는 타인과의 경계를 잘 지켜주지 않아요. 불쑥 들어와요. 제가 미국에 몇 년 살다 들어왔잖아요. 오랜만에 들어와서 굉장히 낯설었던 게 여기서는 사람 얼굴 이야기 굉장히 많이 해요. 살쪘다, 살 빠졌다, 얼굴이 왜 그러느냐 물어요. 서양은 외모로 절대 얘기 안 하잖아요. 우리에게는 경계를 넘는 것이 이른바 정이고, 서로 돌봐주고 그런 거죠.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할 중요한 한 가지는 남이야 어떻게 살든 윤리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는 지키는 거예요. 자기는 윤리적으로 살고, 자기는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고 그렇게 꾸준히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거절을 하든, 안 만나든 나중에 사람들이 참아주는 것 같아요. 윤리적으로 자꾸 타협하다보면 나중에는 자기를 자기가 못 지키잖아요. 명백하게 자기 윤리를 지키는 한에서 타인에게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이런 건 안 해, 이런 걸 일관되게 지키다보면 사람들이 존중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김민정: 담백한 거절과 자기를 지키는 일, 사회생활에서 수월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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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행복한 게 아니죠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는 글을 쓴다는 게 작가님께는 쉬운 일이었는지,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 많이 쓰다보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도 다른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건가요.

 

김영하: 글쓰기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어떤 소설 쓸 거야?’물어보면 학생들은 ‘주인공은 평범한 남자고요’ 하면서 말해요. 제가 얘기하죠. ‘평범한 남자는 없어, 사람은 다 이상해’ 라고요. 사람은 다들 평범한 사람 연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잖아요. 친구들, 가족들에게도 평범한 사람 연기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안에는 다 이상한 것이 있잖아요. 김민정 시인도 느끼시겠지만 문단 술자리에 나가면 글로 봤던 사람들이 너무나 멀쩡한 얼굴로 앉아서 술을 직장인들처럼 먹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잖아요? 저 시인이 저런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술을 아무리 많이 먹여도 멀쩡해요. 그 사람이 집에 돌아가서는 이상한 시를 써요. 그 사람이 집에 돌아가서 쓰는 게 진짜라고 생각해요.
이 분도 자기를 평범하다고 말씀하셨지만 당신은 별로 평범하지 않아요. 가면 뒤에 있는 자기 모습들을 정직하게 쓴다면 거기에 남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죠. 모두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부모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 남아 있을 것 아니에요? 훈련을 통해서 끄집어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경험을 뛰어 넘는다고 했는데, 경험보다 흥미로운 것이 자기 내면에 있잖아요. 자기 얘기를 검열 없이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 얼마나 고독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 같아요. 저도 평범해 보이지 않아요?(웃음) 멀쩡한 인간처럼 보이는데 집에 가서는 살인자 이야기 이런 걸 쓰잖아요.

 

『보다』를 통해 처음으로 작가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영화를 봐도 이렇게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서른이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영하: 삶은 행복한 게 아니죠. 몇 천 년 전부터 종교인께서 말씀하셨죠.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침을 얻고 말씀하셨고 저는 예전부터 그분의 통달이 마음에 들었어요. 지난번에 ‘힐링캠프’에서도 이 얘기를 잠깐 했었는데요. 행복은 동양철학에서 굉장히 낯선 개념이잖아요.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도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었던 거고, 행복이라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이상적인 것도 아니에요. 계속 웃으며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고요.


저는 일본인들의 태도, 그들이 갖고 있는 우울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어요. 뉴욕타임즈에서 다룬 글이에요. 미국에서 우울증 약을 만드는 회사의 최대 관심사가 어떻게 일본 시장에 진출할 것이냐 라고 해요. 일본에 진출하면 대박일 텐데 진출이 어렵대요. 왜냐하면 일본사람들은 얼마간 우울한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일본의 색조를 보세요. 사진을 보면 한 톤 낮아요. 약간 필터를 끼운 것처럼 어둡고 칙칙하지 않아요? 집 안에도 어둠이 있어요. 일본 전통가옥들은 한국 집에 비해서 좀 어두워요. 사람들이 우울증 때문에 의사를 찾아가도 처방을 잘 안 한대요. 미국 제약회사에서 일본 의사들을 하와이에 초청해서 세미나를 열고 해도 일본 의사들은 ‘사람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고 돌아간대요.(웃음) 한국 문인들은 자살하는 문인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일본 문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살하는 문인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것을 그렇게 터부시하지도 않죠.


저는 사람이 얼마간 우울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맘 같지 않네,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행복을 강조하는 서구적 세계관, 긍정의 힘, 이런 것보다 우리에게 맞는 건 그런 약간의 동양적인 달관, 체념의 정신, 그런 가운데 일상적으로 누리는 것들을 꾸준히 누리면서 그 안에서 소소한 것들을 발견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 정도가 바람직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3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남들이 보통이라고 말하는 삶에 굳이 발맞춰 갈 생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밀려오는 이유모를 불안감은 어쩔 수 없네요. 작가님이라면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실지 궁금합니다. 

 

김영하: 불안은 어쩔 수 없어요. 저는 불안에 대해 잘 모르고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권하고 싶어요. 알랭 드 보통은 여러 책을 썼지만 그 책이 가장 잘 쓴 책이 아닌가 생각해요. 현대인들이 겪는 증상들을 잘 포착한 것 같아요. 원제는 ‘지위불안’이잖아요. 사람들이 중세 때는 그런 게 없었다는 거잖아요? 인생이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나의 아버지가 강원도 이런 곳에 살았으면 나도 사는 거지 바깥 세계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으니까요. 이제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그 무엇이 되지 못한 세계, 화려한 삶, 누구는 파리에서 한류 스타와 연애하고 이러는데 난 뭐지? 이런 생각이 들죠. 예전에는 그런 게 없었고 부모가 나에 대해서 거는 기대라는 것도 굉장히 소박했어요. 이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지만 되지 못한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알랭드 보통의 통찰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지위불안’, 불안함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글을 읽어주셨을 때 초반 글쓰기와 사랑에 빠지는 허니문의 시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 시기가 끝나고 처음 쓰신 작품이 뭔지 궁금해요.

 

김영하: 약간 그 글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늘 초반에 허니문이 있어요. 소설이나 이런 것을 첫 문장을 쓰기가 굉장히 어렵지만 일단 첫 문장을 쓰고 몇 단락 써나가다 보면 인물의 성격이 잡히고 풀려나가죠. 『살인자의 기억법』도 10년 전에 잠깐 써놨었어요. 구상은 했지만 한, 두 문장 썼는데 간단치 않은 거예요. 문체를 얻는다고 표현하는데요. 이야기와 깜에 걸맞는 문체와 인물이 있어야 이야기를 전진시킬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춘향전의 저자라고 생각해보세요. 만약 이몽룡의 캐릭터를 햄릿으로 잡았어요. 우울한 남자예요.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내려가서 예쁜 여자와 사귀게 됐는데 아버지가 또 서울을 가자고 해요. 가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러면 이야기의 진도가 잘 안 나갈 것 같지 않아요? 이몽룡은 푼수 같은 인물이잖아요. 업고, 놀고, 신나고, 또 암행어사 출두도 얼마나 경박스럽게 하는지 몰라요.(웃음) 햄릿 같았으면 무척 주저하면서 출두했을 것 아니에요? 한편 햄릿 캐릭터를 잘못 잡아서 이몽룡 같은 캐릭터가 되면 안 되잖아요.(웃음)

 

마땅한 인물과 문체가 있어야 그 글이 전진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게 허니문의 시기인 거죠. 문체가 잡히고, 캐릭터가 잡혔을 때 그때는 굉장히 신나죠. 막 써 나가고요. 『검은 꽃』도 그랬어요. 처음에 이정이란 인물이 등장하고 그랬을 때는 쭉 .가는 거죠. 그러나 한참 진행되다보면 힘들 때가 오죠. 잘 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죠. 이정표 없는 길을 가는 거잖아요. 산을 올라가는데 이정표가 없는 셈이라서 헛고생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 되죠. 올라갔다가 이 산이 아니면 내려와야 하잖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 힘든 시기에 허니문이 끝나는 거고요. 그래도 가보지 뭐, 하고 끝내는 게 소설인 거잖아요. 언제나 소설에 허니문의 시기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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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김영하 저 | 문학동네
『보다』 - 『말하다』 - 『읽다』 삼부작 중 두번째로 선보이는 산문집 『말하다』는 작가 김영하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일반적인 대담집 형식에서 벗어나 작가가 직접 인터뷰와 강연을 해체하고 주제별로 갈무리하여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시킨 이번 책에서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 등 작가 김영하를 구성하는 문화 전반에 이르는 그의 생각들이, 때론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때론 작가 특유의 위트와 재치가 맞물리며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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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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