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 충만 강릉 당일 여행
Single Day Trip - 강원도 강릉
새해에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탄다. 키치한 카페와 앤티크 숍, 1950년대 골목과 한옥을 지나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곳. 조선 시대 선비가 사랑한 바다를 따라 걷고 원 없이 커피를 마시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임당동의 랜드마크인 푸른빛 성당.
WORDS & PHOTOGRAPHS : LEE KI-SUN
am 10:30 임당동성당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리쬐는 강릉 햇살은 서울보다 따스하다. 터미널 바로 앞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금방 중심가로 갈 수 있다. 가장 먼저 향할 곳은 강릉 관아와 오규환가옥 등 옛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어 산책하기 좋은 동네인 임당동이다. 1921년에 지은 임당동성당은 이 탐방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알맞다. 동화에 나올 법한 푸른빛 외관에 뾰족한 종탑, 긴 아치형 창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고전적 매력을 품고 있어 작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시내 한복판에 조선 시대 관아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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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11:00 강릉 관아
성당 건너편에는 기와를 얹은 돌담길이 길게 뻗어 있는데, 바로 고려 말부터 조선 말까지 강릉의 행정 업무를 보던 관아다. 성당에서 가장 가까이 자리한 객사 건물인 임영관에서 출발해 사또가 지내던 동헌을 지나 칠사당까지 드넓은 부지를 느긋하게 걷자. 관아 한가운데에 자리한 동헌에 신을 벗고 들어가 사또가 지내던 마루에 누우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바로 왼편에 딸린 작은 집 1채는 관아작은도서관으로 사용한다. 몇 칸 안 되는 작은 방의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역사책을 뒤적이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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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는 좋은 카페가 많다. 하지만 관아의 길고 고즈넉한 돌담을 바라보며 카페라떼(3,000원)를 마시는 것은 카페 테오(070 4196 0325)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다. 아담한 공간을 나무로 만든 피아노와 에메랄드빛 스피커 등으로 재미있게 꾸몄다. 아침을 걸렀다면 크림치즈 프레첼(3,000원)도 곁들이자. 일요일에는 쉰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옛 골목길에서 길 잃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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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2:30 명주동 골목
칠사당 바로 맞은편에 좁은 골목이 보이는데, 여기로 들어가면 옛 모습 그대로 정지한 듯한 동네인 명주동 골목을 탐방할 수 있다. 몇십 년 전 모습 그대로인 허름한 다방과 주택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길이 이어진다. 키치한 것을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분명 2층짜리 옛 방앗간 건물에 정감 가는 붉은 글씨가 적힌 간판을 단 봉봉방앗간(070 8237 1155)을 보고 열광할 것이다. 1층에서 커피를 팔고, 2층에선 때때로 전시회를 열며, 월요일엔 쉰다.
소박한 순두부 한 상이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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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30 초당마을
400년 전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강릉 두부의 본고장인 초당마을. 이곳은 옹기종기 지은 집 사이로 좁은 흙 길이 뻗은 소박한 동네다. 경포호수 바로 옆에 있어 오죽헌, 선교장, 허균 생가 등이 모여 있는 호수 일대를 돌아보는 김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갈 수 있다. 고분옥 할머니 순두부(033 652 1897)는 30년째 재래식으로 두부를 만들어왔으며, 고향집 할머니가 차려준 것 같은 점심상을 내어준다. 두부 본래의 순수한 맛을 느끼려면 두부찌개(8,000원) 대신 순두부 백반(7,000원)을 시키자. 간을 안 한 흰 순두부와 비지찌개, 연한 두부 1모가 딸려 나오는데, 모두 맛이 꾸밈 없이 산뜻해 강릉의 분위기를 닮았다. 특히 비지찌개가 맛있다. 여기에 옥수수 동동주(4,000원)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고소한 옥수수 향이 나며 맛도 달다.
Side Trip 1
강릉 시내는 반나절 정도 걸으면 웬만큼 다 돌아볼 수 있다. 임당동성당에서 중앙동 주민센터로 가는 길에 올랜도불룸(010 2966 1413)이라는 작은 앤티크 숍이 있다. 앤티크 물건을 하나씩 취미로 모으다 숍을 열게 된 강릉 토박이인 주인이 한가할 때에는 직접 커피를 내려 고풍스러운 찻잔에 내어준다. 나무 가구에 알록달록하게 칠한 틴 케이스, 때묻은 푸른색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인형, 손으로 수놓은 식탁보, 찻잔 등을 진열해두었다.
경포대에 올라 조선 시대 시조를 읊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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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3:00 경포대
“만일 속마음까지 환히 비추면, 정자 위에 오를 이 몇이나 될까?” 조선 중기의 문인 박수량이 경포대에서 경포호를 내려다보고 지은 시 구절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다. 누구든 내심 자신의 속마음을 들켜 위로받고 싶지 않을까? 설령 마음을 알아주는 게 호수라 해도 말이다. 관동 8경 중 하나로 경포 호숫가에서 몇백 년째 최고의 장소로 꼽히고 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호수는 명성 그대로 맑은 거울처럼 펼쳐진다. 절로 시조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풍경이다.
송강 정철이 예찬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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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4:30 강문해변
“이보다 갖가지 다 갖춘 곳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1580년 송강 정철은 경포해변과 강문해변을 잇는 강문교에 이르러 감탄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강문교 솟대다리가 놓여 있다. 파도가 유독 사납게 철썩거리고 짙푸르게 번쩍인다. 다리 한가운데를 지날 즈음 동전이나 소중한 물건을 던져 원 안을 맞추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조형물이 다리 밑에 나타난다. 두 번 던진 동전이 모두 엇나갔다. 몇 초간 마음을 비우고 경건한 자세로 던지니 세 번째엔 맞췄다. 올해엔 분명 소원이 이뤄질 것 같다. 다리를 건너자 경포해변보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갖춘 강문해변이 펼쳐진다. 방파제 위에 조성해놓은 길을 따라 걸어가니 갈매기는 저 위에서 바람 불 듯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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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옛 자판기 커피 한잔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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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5:30 안목해변
해가 지기 시작하자 안목해변 카페 거리의 카페들이 하나둘 불을 켜기 시작한다. 그 앞에 강릉의 명물인 구식 커피 자판기가 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 10여 년 전 이 해변에 차를 세우고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들이 그랬듯 밀크 커피(400원)를 뽑아 마신다. 오늘날의 맛이 과연 그 시절과 같을까? 직접 돌아다니며 자판기를 관리하는 아주머니와 마주치면 한번 물어보자. 자판기마다 커피 맛이 조금씩 다른데, 강릉 토박이인 한 택시기사가 추천하는 것은 맨 오른쪽 자판기다.
해가 저문 겨울 바다를 걷다 아늑한 식당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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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6:00 남항진
겨울 해는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진다. 어둑해진 강릉항에는 사람 없이 배만 몇 대 정박해 있어 스산하면서도 낭만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방금 지나온 안목해변 카페의 불빛이 멀리서 반짝거린다. 그 반대편에서는 아치에 조명을 줄줄이 설치해 현란하게 빛나는 솔바람다리가 손짓한다. 강릉항과 남항진 사이의 200미터 남짓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고 사방이 어둡다. 다리 반대편에 도착해 계단을 내려오자 외로이 불을 켠 남항진 어촌식당(033 651 4726)이 나온다. 해가 진 겨울바닷가의 아늑한 식당에 들어가 먹는 회덮밥(8,000원)은 세상 끝에서 하는 식사처럼 맛있다. 동해에서 잡은 가자미 회를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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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해변 따라가기 기사에 나온 경포해변에서 남항진해변까지는 자동차로 이동하자. 이 구간은 강릉바우길 5구간 바다 호숫길의 일부로 걸어서 서너 시간 걸린다. 중간에 카페까지 들르는 일정으로 해가 지기 전에 남항진에 도착하려면 경포해변에서 정오 전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Side Trip 2
내곡동 한라아파트 근처의 빵짓는농부(033 646 2668)에는 최근 입소문을 들은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우리밀 통밀가루과 채소, 과일만 넣어 누룩으로 발효시킨 빵을 만든다. 유기농 도라지 배즙과 겨우살이를 달인 물로 반죽해 구운 큼직한 통밀빵(1만3,000원)과 발효 산양유를 넣은 카스텔라인 뽀송빵(5,000원)이 인기 메뉴. 몸에 좋고 맛도 담백해 밥 대신 먹어도 된다. 저녁 전에 빵이 다 팔리는 날이 많으니 늦지 않게 가자.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1월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일정이나 비행기 탑승 시간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 혼자만 현지에 남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오랜 외유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터라 귀국한다는 마음으로 들뜬 사람을 혼자 배웅하는 기분은 썩 좋을 리 없다. 혹시 현지인에게 박대라도 받는다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다 찢어질 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울 마음이 가득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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