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우리는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토론을 통해 살펴본 정의의 세 가지 원칙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다.
지난 12월 4일, 숭실대학교 한경직 기념관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샌델 교수는 ‘정의, 시장 그리고 좋은 사회’라는 주제로 한 시간 반 동안 1,600여 명의 청중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 여섯 번째 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곳에 오기 전에 국회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왔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한국의 민주주의 운영방식, 정당 간의 갈등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국회에서 논의했던 포인트 중 하나가 시민사회 내에서 시민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적 움직임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이 이러한 담론,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인들에게 상기시켜주면서 실제 정치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그들을 상기시키는 행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당 스스로는 정치 이행을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상당히 많은 나라들에서 정당 간의 경청하는 태도가 아니라 서로 소리지르는 식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치가 좀 더 큰 주제를 다루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의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공공담론이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내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상당히 두꺼운 팬 층과 많은 수의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보내고 있는 뜨거운 반응에 대해 그는 소감을 밝혔다.
“지난 2012년에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14,000명을 대상으로 야외 강연을 했는데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제 책에 뜨거운 반응을 계속해서 보내주시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물어봅니다. 제가 설명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공공담론을 통해 가치, 윤리, 공공성과 같은 큰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 열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고자 하는 열정, 열망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희망이 보입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의 담론이 정의라는 키워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양 당 모두가 정의, 공정성, 경제민주화라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외부인이기 때문에 실제 이런 담론들이 정치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제민주화, 불평등, 빈부격차의 주제에 대한 공공담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얼만큼 공정한가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담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고 이것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담론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일어나야 하는 담론도 생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출간한 샌델 교수는 한국의 10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기도 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젊은 층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굉장히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했던 강의는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담론과 같은 큰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친구들도 철학 책을 읽기 전에 일상생활에서 얻는 윤리적 딜레마, 윤리적 주제에 대한 토론 방법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들 두 명이 있는데 아이들이 6, 7살일 때부터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리 가족은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주변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할 때부터 평등, 불평등, 정의 등에 대한 토론이 여러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언급한 적 있는 유명한 가설을 이야기하며 본격적인 토론의 문을 열었다.
“제가 지금까지 했던 강연들을 봤다면 아시겠지만, 여러분들이 얼마나 대화에 참여하는지에 따라 강연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의 가설적인 상황을 말하겠습니다. 이미 들어보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이고, 지금 기차를 운전해서 선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선로 끝에 다섯 명의 인부가 있고,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멈춰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서 지금 인부와 충돌하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다른 트랙이 하나 또 있습니다. 그 트랙에는 한 사람의 인부만 있습니다. 기차가 방향을 금방 바꿀 수 있다고 가정하고, 옆 트랙으로 선로를 바꾸면 인부 한 명이 죽지만 나머지 다섯 명은 살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기차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이 나을까요?”
강연에 참석한 청중들은 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덜 가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다섯 명을 죽이지 않기 위해 상대적으로 소수인 한 명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자 샌델 교수는 또 다른 상황을 제시했다.
“예시를 조금 바꿔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한 명을 살리는 것보다 다섯 명을 살리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상황은 조금 전과 동일하지만, 여러분은 이제 기관사가 아니고 다리에 서서 선로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찰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옆에 덩치 큰 남자가 서있어서, 이 사람을 다리 밑으로 밀어서 떨어뜨리면 기차를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덩치 큰 남자는 죽겠지만 기관차는 그 사람 덕분에 멈추게 되고 인부들은 모두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요? 이 남자를 밀어서 다리 밑으로 떨어뜨려야 할까요?”
첫 번째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명이 희생되더라도 다섯 명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는 덩치 큰 남자 한 사람을 떠밀어서 다섯 명을 살릴 수 있음에도 그 사람을 밀겠다고 답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샌델 교수는 두 가지 상황을 둘러싼 차이와 그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철학적 원칙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명이 죽더라도 다섯 명을 살리는 것이 낫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리주의적인 원칙이죠. 공리주의는 복지, 쾌락, 행복과 같은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의 효용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밀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공리주의적 원칙에 의구심을 던진 것이죠. 그렇다면 공공선을 결정하는 도덕적 원칙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덩치 큰 남자를 쉽게 밀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희생해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늘 인간을 하나의 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 이게 정의에 관한 두 번째 원칙입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사상이죠. 칸트는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더라도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좀 더 큰 철학적 토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과연 정의라는 것이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을 하나의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하는 것인가. 때로는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 목적 자체로 대우받는 것이죠.”
샌델 교수는 앞서 제시한 두 가지 상황을 통해 공리주의의 원칙과 인간을 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칸트의 원칙, 이렇게 정의에 대한 원칙 두 가지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또 다른 상황을 들며 이야기했다.
“어느 작가가 쓴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완벽한 행복의 도시가 나옵니다. 모두가 부유하고, 평등도 보장이 되며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 행복의 도시에 있는 한 건물 지하에 방이 있는데, 그 방에 아이 한 명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영양실조 상태로 추운 지하 방에 혼자 방치돼 있습니다. 행복의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은 이 아이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아이를 구해준다면, 도시 전체의 행복이 사라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도시에 사는 시민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아이를 구하실 건가요?”
이번에는 사람들의 의견이 상당히 팽팽하게 갈렸다. 샌델 교수는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실제 있었던 사례를 하나 더 들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한 가지를 더 하겠습니다. 테러리스트가 도시 어딘가에 폭탄을 설치했고, 이 폭탄은 곧 폭발할 것입니다. 정부가 현재 폭탄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테러범을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폭탄이 어디에 있냐고 추궁하는데, 테러범은 말을 하지 않고 모른다고 잡아뗍니다. 이 상황에서 당국은 폭탄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테러범을 고문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테러범을 고문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고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사회 전반에 물의를 일으켰고, 한 사람 때문에 다수의 행복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고문을 해도 된다고 답했다. 그러자 샌델 교수는 동일한 상황에서 가정을 하나 덧붙였다.
“테러범이 고문을 당했는데도 폭탄이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테러범의 어린 딸을 붙잡아와서 고문해야 그 사람이 폭탄의 위치가 어디인지 말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딸을 고문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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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역시 사람들은 활발한 토론을 이어나갔다. 고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답한 사람들도 있었고, 앞서 말한 대답과 일관성 있게 자신의 의견을 고수한 사람도 있었다. 샌델 교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정의의 마지막 원칙에 대해 설명했다.
“이 토론을 통해 정의의 세 번째 원칙이 나왔습니다. 테러범을 고문해도 된다고 이야기한 분들은 그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도덕적 근거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은 공리주의 원칙과는 좀 다른 이야기죠. 그리고 테러범의 딸을 고문해도 되냐는 질문은 칸트의 원칙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의의 세 번째 원칙은 과연 무엇일까요? 정의란 늘 효용을 극대화하는 문제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의는 사람들이 받아 마땅한 대우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범죄자들, 살인자들은 처벌 받아야 하지만 잘못이 없는 지하 방의 아이나 테러범의 딸은 처벌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정의의 세 번째 원칙입니다. 정의는 공리주의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도덕적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딜레마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정의의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공정성에 대한, 정의로움에 대한, 옳은 삶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의견 충돌이 정의에 대한 세 가지 원칙 사이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우리는 공공담론이나 논의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공허함을 느낍니다. 정치인들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고 누가 더 목소리가 큰지 경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한 토론을 정치계에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각자 나뉘었지만, 우리는 서로가 주장하고 있는 원칙을 살펴보고 그 원칙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했던 토론, 논쟁의 바로 밑에 이런 원칙들이 있습니다. 바로 경청입니다. 결국 서로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경청은 중요합니다.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우리의 공공생활이 더 풍부해지고, 도덕적 참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저/김선욱 감수/김명철 역 | 와이즈베리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마이클 샌델은 구제 금융, 대리 출산, 동성 결혼, 과거사 공개 사과 등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부딪히는 문제를 통해 ‘무엇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해답을 탐구했다. 이 책은 탁월한 정치 철학자들이 남긴 시대를 초월한 철학적인 질문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 저/안기순 역/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시장논리가 사회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한 시장만능주의의 자화상이다. 저자는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공적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샌델 특유의 문답식 토론과 도발적 문제제기, 그리고 치밀한 논리로 일상과 닿아 있는 생생한 사례들을 파헤치며 시장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철학논쟁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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