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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욱 작가가 그린 『인생의 지도』

가상의 대륙 ‘니히르반’이 보여주는 삶의 여정 삶의 방식이라는 ‘추상’을 ‘구체’적으로 담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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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 『인생의 지도』 출간을 기념하여 오영욱 작가가 독자를 만났다. 오영욱 작가는 건축, 여행 그리고 그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정의했다.


‘니히르반’이라는 두 대륙이 있다. 이 대륙은 탄생, 침묵, 경험, 자존심 등 108여 개의 키워드로 채워져 있다. 기적의 나루터인 ‘탄생’을 시작으로 각자 자신만의 길을 떠난다.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여정이 펼쳐진다. 제자리에서 맴돌 수도 있고, 그 지역을 떠날 수도 있다. 선택을 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그 여정의 해답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오영욱 작가의 신작 『인생의 지도』는 이렇게 가상의 대륙 ‘니히르반’을 통해 우리의 삶을 그려냈다.

 

오영욱 작가는 건축가이자 여행작가이다.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등을 통해 그만의 스타일로 세계 곳곳의 다양한 도시를 기록했다. 11월 10일, 『인생의 지도』의 출간을 기념하여 독자를 만난 오영욱 작가는 건축, 여행, 그림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의 그림은 97년부터 시작되었다.

 

“97년 대학교 3학년 때 일본에 가서 안도 다다오의 ‘명화의 정원’을 그렸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건축과 학생으로서 좋은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 그린 다음에 어떻게 보일까 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데, 실제로는 만나게 되어 있는 두 선이 제 그림에서는 어긋나 있더라고요. 그래서 두 선을 잇기 위해서 실제 건물은 직선임에도 불구하고, 곡선으로 휘게 그렸습니다. 이 때 관찰자의 입장에서 꼭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그릴 필요는 없고, 그저 두 선이 연결된다는 것을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게 제 그림들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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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주목하는 건축가

 

그에게 건축은 지도를 채워가는 일이다. 건축가로서 지도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던 그는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물음을 품게 되었다. 세상 모든 도시들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바르셀로나와 파리는 둘 다 19세기 중반에 개발된 도시입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기도 같은데 왜 이렇게 서로 다른 도시를 만들었을까요? 프랑스는 평등 사상이 많이 퍼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화려했던 귀족 문화를 가지고 있던 곳이죠. 그래서 도시가 항상 누군가를 돋보이게 만드는 구조, 방사형의 중심이 되는 위치가 자신의 사회적 자리를 보여주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반면 바르셀로나는 마드리드의 핍박을 받으면서, ‘다같이 힘을 합쳐서 마드리드를 이겨내고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르주아가 융성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의 구분이 없는 형태로 도시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지도에도 이야기가 있다. 가로수길은 둘로 나누자니 짧고, 한 블록으로 하기엔 너무 길어 개발 계획이 분산되어 진행되면서 생겼다.

 

“가로수길을 중심으로 개발 계획이 분산되어 진행되었죠. 양쪽에서 따로 개발되어 오니까 재미있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신사 부근의 개발과 압구정역 부근의 개발 이렇게 양쪽에서 자연스럽게 개발되어 온 길이 서로 엇갈리게 된 것이죠. 가로수 길이 보행자 중심의 한적한 길이 된 데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는 대기업들이 들어서면서 복잡해졌지만, 양쪽의 개발로 엇갈려있는 모습 자체가 가로수길 지도의 특징입니다.”

 

오영욱 작가는 공간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건축가답게, 최근 가로수길 근처에서 지역의 특성을 건물에 살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가로수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지역은 계획된 신작로와 옛날 마을인 구시가가 만나는 곳이라, 경사가 지고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반듯한 90도의 공간이 건축에는 더 쉽지만, 두 마을이 만나는 곳이라는 지역의 특징을 그대로 건물에 살리자고 생각했어요. 신시가지에 맞는 반듯한 건물과 옛날 마을에 맞게 기울어진 건물을 조합했습니다. 그 지역의 특성을 건물의 이야기가 되게 하자는 의도였죠.”

 

삶의 방식을 지도로 나타낸 『인생의 지도』

 

오영욱 작가는 『인생의 지도』가 삶의 방식이라는 ‘추상’을 ‘구체’적인 지도로 나타내는 작업이었다고 설명하며, 『그리스인 조르바』의 구절을 소개했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에 이를 수도 있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리스인 조르바』, p. 35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때, 이 구절을 읽고 뭔가 깨닫는 게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건축 설계를 하듯이 지도를 기획하고 디자인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태극 모양의 두 대륙부터 생각을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지도를 108개의 공간으로 나눈 뒤, 인생의 화두가 되는 키워드를 적었습니다. 제가 살면서 고민하는 키워드들이 갈림길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108개의 공간은 108번뇌를 생각하기도 했고, 실제로 종이를 3의 배수로 나눠서 접으니 12X9, 108개가 나오더라고요. 작업실에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의 종이를 깔고 108장으로 나눠서 작업했습니다.”

 

오영욱 작가는 삶의 키워드를 지명으로 하는 108개의 공간으로 가상의 대륙을 만들었다. 지명과 함께 이에 대한 그의 생각도 담았다. 예컨대 니히르반에서 ‘노력’은 ‘찬물이 뜨거워지는 폭포의 공간’이다. 오영욱 작가는 이에 대해 ‘진정한 노력의 속성은 침묵이다. 노력하겠다고 말을 하는 것은 적당히 노력하거나 노력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적고 있다.


“『인생의 지도』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키워드를 따라 갈 수도 있고, 순서대로 책을 읽은 후 다시 큰 지도를 보며 자신이 갔던 길을 되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나름의 세상을 그려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인생의 지도라고 하니 결론을 내리는 것 같은데, 사실은 시작입니다. ‘나도 인생에 대해 고민해보자’ 이렇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했던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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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론은 내가 행복해지는 것

 

오영욱 작가의 이야기가 끝난 후, 이동진 작가와 함께하는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이동진: 『인생의 지도』를 보면,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건축가가 다시 그린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 책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오영욱: 지금껏 스스로 부정해왔던 것 같은데, 사실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말에 자신이 없다 보니 대체재를 찾았고, 그게 그림이고 건축이었습니다. 그래서 건축과 그림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더 효과적으로 나타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지도책 보는 것을 좋아했던 영향도 있었을 것 같고요.

 

이동진: 『인생의 지도』에 깔려있는 어둠의 포스가 거의 다스 베이더 수준입니다. 당연히 인간이 인생에서 꿈꾸거나 욕망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고, 실패하거나 좌절하면서 현실과 이상의 갭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생각하죠. 이에 대해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욕망을 그대로 두고 현실을 끌어올리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정반대로 현실을 인정한 다음 이상을 끌어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읽으면서 쓸쓸해지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했습니다.

 

오영욱: 솔직히 제가 자라왔던 사회,경제적인 환경이 평균 이하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항상 편안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작가 소개에 ‘내 인생의 팔할은 콤플렉스였다’ 이렇게 한 줄 쓰고 싶었을 정도로, 콤플렉스가 많았어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제가 행복해지는 것뿐이더라고요. 꿈을 작게 만들고 이를 성취하면서 사는 것도 제가 행복해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죠.

 

이동진: 이런 것을 포기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가님의 이런 생각이 책에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의외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습니다. 결혼을 ‘아주 우연히 연결된 운하’라고 표현하셨어요. 이 지역에 ‘미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명상원’도 있고요. 올해 결혼하셔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계실 것 같은데… 결혼 전에 쓰신 건가요?

 

오영욱: 기대치를 낮춤으로써 행복의 기반을 만드는 거죠. 결혼은 당연히 가끔씩 미치고 싶어지는 것이니까 나는 명상할 준비를 해야지, 미치지 않게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동진: 『인생의 지도』안에 있는 수많은 지명 중에 꼭 머물고 싶은 곳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센스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눈치)’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아요. ‘찬물이 뜨거워지는 폭포(노력)’ 는 꼭 가보고 싶고요.


오영욱 : 저는 ‘웃음보가 터지는 원형극장(재미)’이요. 가보고 싶기도 하고, 실제 만들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곳의 무대는 항상 비어있습니다. 관객들은 맞은 편에 앉아있는 관객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다가 돌아갑니다. 가장 위대한 희극은 사람의 인생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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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지도오영욱 저 | 페이퍼스토리
‘오기사가 그리는 불행의 미학과 치유의 여정’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우연들이 난무하는 인생의 길 위에서 누구나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수많은 선택과 희로애락의 여정을 담고 있다. 지도에는 다섯 개의 인생의 종착지, 즉 예술, 종교, 사랑, 지혜, 영혼이 등장한다. 이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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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노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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