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욱 “그냥 지나가는 오늘이 너무 아까워요!”
『안녕 하루』 저자 하재욱 언젠가 그리울 하루를 기록하는 사람
세 아이의 아빠, 평범한 직장인. 한때 그는 만화가가 꿈이었다. 출퇴근하면서 그린 그림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반응이 커졌다. 그렇게 『안녕 하루』가 태어났다.
세 아이의 아빠, 평범한 직장인인 하재욱 씨는 어느날 문득 페이스북에 하루를 기록하는 글과 그림을 올리기 시작한다. 일이 무겁고 많기로 유명한 게임회사에 근무하지만, 만화가가 되고자 했던 꿈을 이루고자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하루의 단상을 글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0.7mm 모나미 볼펜으로 마구 그린 것 같지만 독특한 연출력과 캐릭터들의 풍부한 표정, 따뜻한 색감이 살아있는 그림과, 묘한 반전의 재미와 찡한 감동을 주는 시처럼 짧은 글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툭툭 말을 건다. 2014년 10월, 하재욱의 라이프 스케치,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안녕 하루』는 하재욱의 그림일기이자 꿈을 엮은 책이다.
2013년 뜬금없이 페이스북에 그림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을 기록한다기보다 나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 나의 사랑들, 나의 슬픔들, 나의 염려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지난 후의 나의 변화를 기록하는 거지요. 내가 있었던 공간, 나와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과의 감정 등등. 끝까지 기억하지 못하니까 기록하고 싶었어요.
늘 만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졸업 후 시사만화를 생각했고 시사만화가가 되기 위해 6년 넘게 혼자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할 수 있는 것을 다 시도했던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면서요. 어느 순간 알게 되더라고요. 안 되는 건 안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해도 될 만큼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누구를 의식하지도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페이스북이 딱히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글쓰기과 그림 올리기가 다른 어떤 플랫폼보다 가장 용이했어요.
나이 마흔인 세 아이의 아빠, 미대 출신, 게임회사 디자이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 이게 하재욱 작가에 대한 정보인데, 좀더 ‘하재욱’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설명을 한다면.
질문에서 언급하신 나이와 가족사항, 대학전공 그리고 현재 직장외에 사실 딱히 내세울 것이 없을뿐더러 그 이외의 정체성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짧아서 저도 아쉽지만 그게 전부랍니다. 이제 이력에 『안녕 하루』 저자라고 한 줄 더 기록할 수 있겠네요.
작가님 모습과 작품의 캐릭터가 닮아있는데, 이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본인의 이야기라는 뜻이겠지요?
대부분 실제 있었던 상황과 실제 느꼈던 감성을 기록했습니다. 그림에 묘사되는 남자는 저와 거의 동일하구요. 딱히 메시지를 담고 싶어서 쓰고 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달하고 싶은 중요하고 거대한 메시지도 사실 없고요. 나 슬퍼요, 나 사랑하고 있어요, 나 오늘은 기뻐요, 라는 등등 제 나이에는 잘 표현할 수 없는, 혹은 표현하면 안 되는 감성을 표현하고 싶어서 라고나 할까요. 독자들이 느끼는 재미는 아마 제 나이의 남성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정서를 표현하면 정말 무겁고 우울하고 칙칙할 테니 그래도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공동체 의식의 발로에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썩소를 짓는 것이 웃기게 보인다고나 할까요.
어떤 방식으로 그리나요?
주로 글과 그림은 출근할 때 지하철과 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쓰고 그립니다. 지하철을 타는 시간이 1시간 30분정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거의 즉흥적인 글이 대부분이고 수정은 극히 드물지요. 글과 그림 모두 아주 빠르고 거칠게 나옵니다. 길어봐야 15분에서 20분. 색은 나중에 시간나면 슬슬 대충 입히는 거지요. 그려지거나 작성되는 내용은 사실 대중 없습니다. 그날 그때 유난히 마음에 걸리적거리는 느낌을 생활 동선에 있는 요소들에 얹어 표현하는 것이지요.
장 자크 상페의 그림체와 비슷하다는 평을 들었을 듯한데요. 존경하는 시인, 화가가 있다면요?
장자크 상페를 닮으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원래는 극화체 만화가가 꿈이었었는데 나중에 알겠더라고요. 저같이 헐렁한 성격으로는 그런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 스트레스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요. 그러다가 결혼 후에 우연찮게 장 자크 상페 그림을 접했는데 헐렁하게 그려도 모든 미적 완성도나 재미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엄청나게 따라 그리고 상페식 유머도 구사를 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시사만화를 그릴 때 상페 스타일을 엄청 적용 했었지요. 그러다가 만화가 선배님들에게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카피한다고. 우연찮게 프랑스에 세계시사만화페스티발에 2년 정도 참여하게 되었었는데 그곳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상페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프랑스에 마구 돌아다닌다는 것을, 상페는 그것을 잘 옮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나도 한국사람과 한국을 서울을 종암동을 그려야겠다는 다짐을 한 후에 조금씩 상페 그림과 달라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직도 여전히 상페 느낌이 남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요.
페이스북에 한참 그림을 올리는데 누군가 댓글로 하상욱 시인을 언급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찾아보니 이미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저와 이름도 비슷하고 글을 쓰고 반전을 구사하는 방식도 비슷하더라고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매체에 최적화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글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시는 이미 읽었었는데 책을 내기로 하면서 출판사 대표님도 마침 기형도 시인을 좋아하셔서 몇 번 그려본 것이 나쁘지 않아 책에 싣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남주 시인과 황지우 시인을 좋아합니다.
그냥 생활 속에서 굴러다니는 모나미 볼펜과 수첩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데,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림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데, 볼펜의 힘인가요?
일상을 기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멈추지 않고 매일매일 그려야 한다는 것인데요.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원칙을 세운 것이 휴대가 용이하고 아무데서 구입이 가능해야 하고 구입하는데 전혀 부담이 없는 필기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모나미 볼펜과 저렴한 수첩이었습니다. 그림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라. 볼펜의 힘도 있겠고 아마 드로잉 할 때 선의 느낌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어요. 설렁설렁 대충 그리는 선. 부담없는 선.
이번 책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애뜻한 작품,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요.
‘내 몸이 언제까지 버텨줄까 - 늘 몰래 꺼내는 생각’ 이라는 작품인데요. 사실 이 작업 이전까지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수가 30개 많으면 50개정도 였는데 이 작업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나서 갑자기 핸드폰이 하루종일 난리가 나는 거였어요. 갑자기 친구 신청이 늘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미생』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명실상부 최고의 작가인 윤태호 작가님이 공유하셔서 그의 페친들이 대거 이쪽으로 친구 신청을 했죠. 그 때가 제가 하는 작업이 조금 더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윤태호 작가님께 댓글을 달아드렸습니다. 감사하다고.
가족과 관련한 내용이 많아요. 가족에 대해, 특히 아이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재욱 작가에게 가정, 가족, 아이는 어떤 의미입니까? 그리고 샐러리맨 하재욱에게 직장은 어떤 것입니까?
전에는 사는 게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엇이 옳지 그른지. 정말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은 매우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불행하게 되지 않을까, 행복할까가 아니라 불행하지 않을까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저에게 깊은 행복감을 주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게 해줍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저에게 직장이란 감사하고 소중한 곳이지요. 저와 아내와 아이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해 주는 곳이니까요. 오래오래 다니고 싶어요, 제발.
작품에 첫사랑, 그리움, 설렘 등 아저씨들의 ‘낭만’에 대한 그림들이 꽤 많습니다.
아내가 서운해 하지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제 가슴 속의 추억을 뜯어내 버릴 순 없잖아요. 그건 아내가 이해해야지요. 물론 저도 표현의 수위는 조절해야겠지만요. 낭만의 배경이라. 다들 비슷하지 않나요. 이루지 못한 사랑, 잃어버린 사랑, 시작한적 없는 사랑. 뭐 그런 거. 저희 나이에는 흔들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절대로. 울어서도 안 되고 울 수도 없고. 그래서 저희같은 남자들에게는 아주 연약하게 달려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도 떨어지지 않는 것은 저희가 흔들리지 않아서이지요. 술은 저를 흔들리게 합니다. 아슬아슬하게 달려있던 많은 이야기들이 후두둑 떨어지지요. 그 이야기들을 주워서 쓰고 그리는 겁니다. 술은 저에게 그렇습니다. 그래서 엄청 술을 마셨습니다.
전업 작가가 아닌 직장인, 즉 생활인이신데, 작품활동을 할 시간이 많지는 않잖아요.
지금의 작업은 출퇴근 시간으로 충분합니다. 전업작가로서 산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고요. 그냥 오래도록 생활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이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게 할 것 같습니다. 페이스 북의 일상의 기록은 평생 할 생각입니다. 페이스북이 파산해서 사라지더라도. 출간 계획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쯤 두 번째 책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따로 책 작업을 했다기보다 이번 책를 엮을 때 그려 논 작품 수가 워낙 많아서 들어내다보니 사용하지 못한 작품수가 두 번째 책을 만들 정도로 남았더군요. 개인적으로 재밌어하는 원고는 두 번째 책에 더 많이 있습니다.
안녕 하루하재욱 저 | 헤르츠나인
하재욱의 그림은 프랑스 만화가 장 자크 상페의 그것처럼 선이 자유롭고 경쾌하다.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 그림이 마음을 건드린다. 그림만이 아니다. 그의 사유가 담긴 글은 제목과 어우러져 반전의 묘미를 더해준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발랄하지는 않다. 지하철로 오가는 직장인의 감성이라는 게 아무래도 ‘발랄’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에게는 희망이 있다. 세 아이의 아빠로서 묵묵히 꾸역꾸역 걸어가는 힘. 바로 아이와 가족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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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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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욱의 그림은 프랑스 만화가 장 자크 상페의 그것처럼 선이 자유롭고 경쾌하다.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 그림이 마음을 건드린다. 그림만이 아니다. 그의 사유가 담긴 글은 제목과 어우러져 반전의 묘미를 더해준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발랄하지는 않다. 지하철로 오가는 직장인의 감성이라는 게 아무래도 ‘발랄’과는 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