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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뿌리가 어디인지 생각해봐야”

어제를 통해 오늘을 살고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다면 1000개의 역사 순간에서 꺼내 본 단단하고 가치 있게 사는 지혜 『이덕일의 고금통의』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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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0일 저녁, 『이덕일의 고금통의』 출간을 기념해 저자 이덕일의 강연회가 열렸다. 현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는 이덕일은 식민사관 극복과 역사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이다.

작가만남-이덕일

 

‘고금통의’란 《사기》의 <삼왕세가>에 나오는 말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통하는 의(義)는 같다’는 뜻이다. 즉 오늘날 일어나는 일의 미래를 옛 일에 비추어 알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시간 상으로는 분명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지만 그 양상이 과거에서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과 비슷하게 반복되는 경우를 꽤 마주한다. 예측할 수조차 없이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고 바라봐야 할까.

 

『이덕일의 고금통의』 는 오늘을 위한 성찰이란 부제를 단 1권, 내일을 살아갈 통찰이란 부제를 단 2권 이렇게 총 두 권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천 여 개의 역사 순간을 살아있는 오늘의 언어로 바꾸며, 옛 것 속에서 오늘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담아 냈다. 이날 열린 강연에서 이덕일은 ‘선인들의 공부법’이라는 큰 주제를 잡고, 우리나라의 잘못된 공부 방법과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는 공부를 외우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외운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을 습득하는 것이지 공부가 아닙니다. 공자가 한 말 중에 네 모퉁이 중에 한 모퉁이를 가르쳐줬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스스로 알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잘못된 것을 바꾸는 것이 공부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식민사학이 있는데 식민사학이란 조선총독부의 눈, 즉 일본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노예의 역사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해방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식민사관이 정리가 안 됐습니다. 그 뿌리에 있는 것이 우리의 교육 제도, 학문 제도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배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사관. 이덕일은 그 뿌리에 있는 것이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라고 지적하며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힌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역사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만남-이덕일

 

평(平)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울음


주자를 신앙으로 삼을 정도로 주자의 학설을 제일로 생각했던 송시열. 학문적으로 주자와 다른 입장을 취하며 사상적으로 자유롭고 혁신적인 면모를 보였던 윤휴. 이 둘은 주자학의 이해를 둘러싸고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이덕일은 조선 후기 사상사의 흐름을 바꿨다고 할 수 있는 백호 윤휴와 우암 송시열, 그리고 주자학과 양명학을 비교하며 과연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주자학은 중세유학이에요. 쉽게 말해서 주자학이 무엇이냐 하면 공자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공자님 말씀에 주희가 단 주석을 외우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한 가지 있습니다. 마구간에 불이 난 것을 보고 공자가 ‘사람은 다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는데 이것에 대해 ‘공자는 사람에 대해서만 물어보고 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는 게 주자학이에요. 이와 달리 ‘말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공자님은 당연히 말에 대한 걱정도 했을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양명학입니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물어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학문사상의 자유가 깎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휴가 말했던 것처럼 천하의 많은 이치를 어찌 주자 혼자 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덕일은 학문을 조각조각 나눴던 조선총독부의 통치 이전에, 이미 송시열로 인해 주입식 교육의 큰 흐름이 생긴 바 있다고 말했다. 학문을 대함에 있어서 송시열이 되어야 할지 윤휴가 되어야 할지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과 다름 없다. 다만 그 경지까지 도달하려면 공부를 어마어마하게 해야 한다고 이덕일은 말했다. 아주 깊숙한 곳까지 공부해서 내가 이 문제에 있어서는 주자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학설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불평지명(不平之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平)한 세상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세상에 대한 울음소리라는 뜻이에요. 개인을 위한 울음이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 우는 큰 울음인 것입니다. 저는 ‘불평지명’이 진정한 학문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춘추>를 쓴 공자, 그리고 <사기>를 쓴 사마천이 불평지명을 한 대표적 인물들이라고 이야기하며 우리들 역시 우리의 세상, 우리의 역사를 위해 울음을 울어야 한다고 말했다. 짧게 벼슬하고 기나긴 시간 동안 유배생활을 했지만 훌륭한 제자들을 기르며 수많은 저서들을 남긴 다산 정약용. 노동의 어려움, 가치를 아는 사람이 벼슬을 해야 한다고 말했던 성호 이익. 진정한 학문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학자들을 언급하며 그는 우리의 뿌리를 알고 역사를 아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작가만남-이덕일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주어진 대로 받지 마시고 과연 뿌리가 어디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산정약용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 모두 밝았던 것처럼 두루두루 공부하는 것이 원래 학문의 정신입니다. 이걸 조각조각 나눠 놓은 것도 조선총독부가 한 일입니다. 종합적인 지식을 가지면 총독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게 하려고 학문을 나눠놓은 거예요.

 

우리가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성취한 분들이 제가 지금까지 말한 학자들입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학자들의 공통점은 당대에는 불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대에는 불행했지만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분들입니다. 역사는 그 사람들의 기승전결,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아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약 1시간 반 동안 이어졌던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현재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고 소개한 한 참가자는 자신이 그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있었다고 밝히면서 이덕일에게 이제까지 알고 있던 역사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안 적이 있는지 물었다. 이덕일은 이 같은 질문에 그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답했다.

 

“학위를 받게 되면서 학위논문을 제출하던 때 자발적으로 역사학자로의 길을 가겠다고 선택했는데 그 당시 초기에는 소주 한 병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고 그런 자세로 살았습니다. 그 당시 현실에선 그런 자세로 가지 않으면 가다가 꺾이고 마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저는 그렇게는 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제가 전공했던 분들은 다들 불행하게 끝났어요. 그분들에 비해 나 정도면 만족할만하다고 생각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쯤 가니까 뭔가 문제가 많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이 문제를 바꾸려면 그 구조 속에서 내가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선택에는 잘한 측면도 잘못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 속에 있으면 좋은 게 좋은 거란 식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왔고, 이제는 또 새로운 역사학회를 만들려고 생각 중입니다. 끝까지 가다 보면 그래도 바뀔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는 과거에 있어서의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학이 비단 과거만을 말하고 있는 학문은 아닐 것이다. 지나간 일에 비춰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잘못된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고 반성하는 것. 그것이 『이덕일의 고금통의』를 통해 이덕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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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이덕일 저 | 김영사
역사 서술의 질적 전환을 이루어낸 역사학자 이덕일의 역사지혜서. 1000여 개의 역사 순간에서 찾아낸 오늘을 가치 있게 사는 방법,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통찰의 메시지를 준다. 감춰진 역사에서 정치, 경제, 문화, 생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가의 눈과 머리를 한곳에 담은 명저로 오늘 우리가 왜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지, 역사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명문장과 생각의 단서 그리고 오래된 교훈이 즐비한 삶의 지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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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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